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48화
CICA의 멤버 루아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빈 차에 제일 먼저 달려가서 앉아 퍼스트라이트 미니 7집 티저 영상을 찾았다.
영상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심호흡을 한번 했다.
“아직 방송국이다, 루아야. 소리 지르지 말자.”
그렇게 충분히 자기 스스로를 달랜 후, 영상을 시작했다.
송캠프에서 흘러나온 타이틀은 센 컨셉이었지만, 31초의 짧은 영상은 다음날 올라올 선공개 곡에 대한 티저 예고를 담고 있었다.
프로모션 시작이 3주 전이라, 평소 한 달 반은 전부터 홍보를 시작하던 퍼스트라이트치고는 다소 늦은 편이었다. 그러나 선공개 곡 티저를 보고 나니, 늦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공개 곡은 벚꽃이 피는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최대한 날씨가 풀리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공개하려고 했던 듯했다.
티저 분량에서는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박선재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나가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첫 장면에서 줄 이어폰을 양쪽 귀에 끼우고 자전거에 탄 박선재가 선공개 곡을 흥얼거렸다.
배경에 들리는 소리는 부드럽고 기분 좋은 바람 소리뿐이었고, 그 위로 박선재가 흥얼거리는 목소리만이 들렸다.
찬 공기가 녹기 시작한 계절에 들리는 허밍은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게 만들었다.
“……벌써 좋네. 아, 미치겠다, 진짜. 내 현생 어떡하지? 아니야, 루아야. 너는 프로야. 올해 성인도 됐고, 애기 때처럼 그렇게 막 어, 정신 놓고 달리면 안 돼. 잠도 충분히 자고, 수분 보충하고, 현생 달리면서 덕질도 달리자. 루아 파이팅. 우리 존재 파이팅.”
두 주먹을 꽉 쥐고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둘러보니 달려간 루아를 확인하러 온 멤버들이 어느새 차에 타서 루아를 보고 있었다. 루아가 부담스러워하며 말했다.
“왜 다 날 보고 있어요, 부담스럽게.”
“아니, 재미있어 보여서. 덕질 힘내.”
리더의 말에 루아가 히히 웃었다. 멤버들이 너무 머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써줘서 고마웠다.
거기에 요즘 루아는 케이팝 덕후 이미지로 CICA의 멤버들 중 가장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요즘 들어 심지어는 루아가 ‘햇살이 컨셉에 잡아먹힌 건 아닌가’하는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컨셉 때문에 등 떠밀려 덕질을 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워했던 것이다.
루아는 참고 있던 팬심을 이제 숨기지 않게 된 것뿐이었지만, 굳이 정정하기도 이상해 오해하고, 심지어는 안쓰러워하는 멤버들을 그냥 놔두었다.
* * *
그리고 하루 뒤, 선공개 곡의 영상 전체가 올라왔다.
팬들의 예상대로 봄 냄새 나는 곡이었다. 송캠프에서 만들어진 곡으로, 작사가 신여진의 가사가 덧붙여져 있었다.
[퍼라 선공개한 곡 미쳤다 달달해ㅠㅠㅠㅠㅠ]
[이거 그 송캠프에서 만든 거라며ㅋㅋㅋㅋㅋㅋㅋ지옥의 송캠프에서 이렇게 달달한 노래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곡가들 광기에 휩싸여있던데 거기서 이게 나오네]
[↳↳다른 작곡가들은 광기에 휩싸여있었지만 정해원은 혼자 멀쩡했거든…… 편곡을 정해원 혼자 함ㅎㅎ]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가자들 다 갈리고 있는데 혼자 행복했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인과관계가 있어 참가자들이 갈렸기 때문에 행복한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 나쁘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쿠스틱 기타 진짜 좋다 영상이랑 너무 잘 어울려]
선공개 영상 속에서 멤버들은 벚꽃이 날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나름의 휴식을 취하는 장면에서, 각자가 셀프캠을 들고 촬영한 소소한 일상의 영상들이 이어졌다.
가족 여행을 가서 촬영한 일출,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 자전거를 타다가 본 코스모스 같은 것들을 담았다.
[설렘이란 익숙함 속에 한잠 잠들었던 듯 해]
[사랑조차 시간이 재운 듯이 고요해졌던 시간]
[깊은 밤도 아름다운데 내 마음은 저 바다에]
[시간이 마음을 잠들게 한 건 아닐까 고민해]
[나른한 밤공기와 약간의 취함에]
[어두워지는 길에 가로수의 빛이 번지던 날]
[창문 너머 익숙한 우산이 보여]
[설렘은 항상 곁에 있었는데]
[비 오는 우산 아래 머물렀는데]
[또 다시 한 번 너야]
[오늘의 비도 설레 날씨는 반복돼도 질리지 않아]
[나에게는 네가 그래 그래서 네가 나에게 설렘인 거야]
* * *
나는 선공개곡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안 해본 방식의 작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먼저 공개해 버리면 안 되겠냐고 회사에 제안했더니 회의를 거듭한 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이번에 신여진의 작사를 보면서, 사람마다 작사하는 방식이 엄청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안주원은 사실 어느 정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던 게, 우리는 처음부터 같이 작업을 해왔고, 안주원이 애초에 작사를 하면서 나의 음악 스타일을 떠올리며 가사를 적어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여진은 우리와 작사하는 스타일이 상당히 달랐다.
나는 단어 중간에도 음을 끊고, 그 음절을 길게 부르거나, 꺾어 부르기도 하는데, 신여진은 그런 방식을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이드 단계에서 작곡가의 발음을 살리려 노력했다. 내 해언어도 적극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가사 속에 서사’가 신여진의 가사 속에서 훨씬 잘 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 A&R들이 이번 앨범 타이틀, 수록곡이 다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프로모션의 방향을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잡았다.
‘음악과 얼굴’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하겠다는 거였다.
컨셉은 특별히 독특하게 가지 않고, 대신에 얼굴이 최대한 인식되게.
앨범에 수록된 여섯 곡 전부를 하나, 하나 다른 방식으로 공개하겠다고 했다.
첫 주에 공개된 곡은 송캠프에서 만들어진 곡이었고, 두 번째 주에 공개되는 곡은 안주원이 가사를 쓴,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송캠프에서 만들어낸 곡이었다.
세 가지 버전의 앨범의 컨셉포토는 그 곡의 분위기와는 매치되지 않았지만, 그냥 상관 없이 한 주에 한 버전씩 공개했다.
프로모션 팀의 과감함에 나도 멤버들도 좀 놀랐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듯했다.
우리는 안무 영상을 찍기 위해 연습실에 모였다. 이번에는 안무 영상도 다양한 착장으로 촬영해 보기로 했는데, 오늘 착장은 각자 다니던 학교의 교복이었다.
박선재, 민지호, 신지운, 그리고 황새벽은 모두 공연고로 진학했거나, 전학을 했기 때문에 교복이 같았다. 학년마다 넥타이가 달랐는데, 거기서 박선재, 민지호와 신지운, 그리고 황새벽이 각각 차이를 두기로 했다. 한 팀의 맏형과 막내가 모두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 팀은 참 위아래로 나이 차이가 안 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한효석은 중간에 옮기기는 했지만, 마음에 적을 둔 중앙예고 교복을, 안주원과 나는 각자 다니던 학교의 교복을 입었다.
우리는 교복을 갈아입으며 새삼스럽게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했다.
멤버들은 다 어떻게든 학교를 다녔다. 특히 국선아 직후 활동이 없었던 시기에는 제대로 아이돌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에 비하면 턱도 없지만 꽤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대해 할 이야기가 꽤 있을 텐데, 내가 고 2 중간에 자퇴를 하게 됐기 때문에 멤버들이 학창시절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었다.
“다 같이 학교 다닐 때 어땠어? 공연고.”
내가 물어보니까 박선재가 말했다.
“민조는 시끄럽고, 지운이 형은 맨날 농구했고, 새벽이 형은 잤어.”
“굳이 왜 물어봤나, 싶을 정도로 당연하다.”
“그치?”
“우리 막냉이는?”
그러자 신지운이 대꾸했다.
“형들 뭐 하나 구경하러 다니던데.”
“맞아. 그랬어…….”
“보면 은근 천상 막내야, 얘도.”
“하, 말만 들어도 귀엽네, 우리 막냉이?”
내가 말하니까 옆에서 민지호가 내 팔을 퍽퍽 때렸다.
“편애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안 해, 안 해.”
이어서, 멤버들은 몇 안 되는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놨다.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보다 방송에서 풀 만한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민지호의 반에 비둘기가 들어와서, 아무도 못 잡고 결국 민지호가 3학년까지 가서 황새벽을 불러다 해결했다는 이야기라든지, 신지운이 한참 싸가지없던 시절이라 주머니에 손 꽂고 인상을 쓰고 다니면 박선재와 민지호가 신지운만 보면 ‘안 무서운 형’, ‘담배 안 피움’, ‘술 안 마심’, ‘X타닐도 안 함’, ‘싸움 안 해봄’, ‘저 형 신학교 갈지도 몰라’라고 해명하고 다녔던 얘기라든지.
박선재와 민지호의 해명썰을 둘이 풀고 있을 때 멤버들은 웃음이 터졌고 신지운은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내 인상이 그래?”
“형 국선아 직후에 인상이 진짜 안 좋았어.”
“그때 안 빡치게 생겼냐고, 내가.”
“그래도 형 진짜 데뷔 전에 안 좋은 소문 붙을 뻔했는데 우리가 해명해 줘서 고마운 줄 알아.”
“그건 고맙고.”
박선재의 말에 신지운이 순순히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박선재와 민지호가 해명하고 다니지 않았으면 데뷔도 전에 학폭썰이 따라붙을 뻔했다.
우리는 안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민지호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집중해서 한 번에 빡 가자!”
“실수하는 사람 오늘 저녁 사기.”
“나 고기 먹고 싶어.”
“고기 사기.”
그렇게 순식간에 벌칙을 정한 후, 우리는 안무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벌칙이 무서웠는지 멤버들은 한 차례도 안 틀리고 집중해서 한 번으로 안무 영상을 끝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내기 아쉬웠던지라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밥을 사기로 했다.
내가 걸렸다.
“이런 건 맨날 내가 걸리지 않냐?”
내가 투덜거리니까 옆에서 황새벽이 대답했다.
“어, 맨날 네가 걸리는 거 맞아.”
“그치? 기분 탓 아니지?”
그렇게 억울해하니까 신지운이 말했다.
“얼마나 좋아, 멤버들 밥 사줄 기회도 생기고. 부럽다, 와.”
“교복 입더니 사춘기가 돌아왔나.”
내 말에 옆에서 한효석이 정색했다.
“형 진짜 지운이 형 사춘기 잊었어?”
“아, 맞네. 내가 무슨 헛소리를.”
우리는 이야기했고, 신지운은 이제 본인의 사춘기에 대해서 비난하는 게 익숙해졌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신경 쓰이는지 안주원은 멤버들과 같이 웃지 못했다. 우리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더니, 중간에 핸드폰을 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거 조회 수가 왜 이래.”
그래서 우리도 다 같이 몰려가서 봤는데, 첫 주 공개한 선공개 곡 영상의 조회 수가 350만이 넘어 있었다.
“어, 진짜 이거 왜 이래?”
일반적인 프로모션 기간의 조회 수가 아닌지라, 멤버들 모두 당황한 표정이었다. 우리 팬들만 봐서 나올 조회 수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송캠프 이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 같았다.
다른 멤버들은 신이 나 있었지만, 안주원은 마냥 좋아하기 어려운 듯했다. 둘째 주에 공개되는, 내가 작곡하고 안주원이 작사한 곡의 반응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물었다.
“쫄려?”
“어, 많이…….”
“근데 곡 좋지 않아?”
“곡 좋지.”
“그럼 왜 걱정해. 우리 마음에 들면 되지.”
“나는 반응도 좋았으면 좋겠거든.”
안주원이 욕심을 내는 게, 나는 왠지 듣기 좋았다. 표정으로 그 기특함이 전해졌는지, 안주원은 긴장을 좀 풀고 웃었다.
어쨌든 둘째 주에 공개된 곡의 반응을 봤을 때, 안주원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무엇이든 예상 이상으로 좋은 것에도 대비가 필요한 법이었다. 보이드 엔터는 급히 회의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