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53화 (35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53화

“36위.”

우리의 종전 스포티파이 진입은 글로벌차트 98위.

이번 bad influence의 진입은 36위에 올라가 있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바로 옆에 대기실을 쓰던, 데뷔 연차가 비슷한 블랙피치의 멤버가 문을 열었다.

“왜! 같이 소리치자!”

“뭔데, 뭔데.”

그렇게 문을 열자마자 우리 멤버들은 움찔하며 한마디씩 했다.

“어우, 이 형들…… 멋있네?”

다행히 블랙피치의 의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충격에서 잠깐 벗어났다. 물론 몇몇 멤버들은 여전히 핸드폰을 확인하며 자기가 본 것이 맞나 확인하고 있었고, 나도 스포티파이를 다시 확인하기가 무서워서 딴짓 중인 거였지만.

그렇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황새벽이 물었다.

“어디 가?”

“호정이 형한테 챌린지 찍어달라고 하러.”

“……이 와중에?”

“빨리 정신 차려야지.”

나는 말하고 곧바로 블랙피치의 강호정을 찾으러 갔다.

황새벽에게 말한 그대로, 빨리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는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한 칸씩 올랐다.

우리 회사는 신기할 정도로 잘 굴러갔다. 걱정할 게 별로 없을 정도로 굴러가고 있어서, 우리는 그냥 평소와 같은 활동기를 보내면 됐다.

그날 오후에 팬사인회 장소에 도착했다.

성적이 괜찮을 때, 그리고 예상 이상으로 잘 나올 때의 팬들 분위기는 분명히 달랐다. 오늘 햇살이들의 분위기도 체감하기에 뭔가 평소와 달랐다.

투어를 시작하면 한동안 컴백이 없을 거라서, 햇살이들은 평소보다 더 뭔가 눈을 많이 마주치고, 애정을 표현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신기해서 나는 자주 만난 햇살이에게 말했다.

“오늘 다들 엄청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네.”

“한국에 같이 못 있잖아, 투어 하면.”

“그니까 반대잖아요. 기다리는 사람보다 기다리게 한 사람이 더 간절한 게 당연한데…….”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평소보다 더 힘줘서 꾹꾹 그림을 그렸다.

한동안 복송아지를 그리는데 맛이 들렸다. 그래서 사인과 함께 복송아지를 그려줬는데, 요즘 강경 고양이파가 늘어난다고 해서 랜덤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무슨 동물이든 햇살이들이 말해주는 걸 다 수용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있어서는 마음이 열려있다.

자꾸 그려버릇하니까, 복송아지와 고양이 그림에 있어서 만큼은 엄청 잘 그리게 됐다.

그렇게 신경써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햇살이가 말했다.

“해원아, 선재한테 연애랑 결혼 추천하는 멤버 있냐고 물어봤더니 연애는 주원이랑 하고, 결혼은 해원이랑 하래.”

“네?”

그건 너무 의외로 손이 멈췄다.

“반대 아니에요? 왜 그렇대요? 나 요리도 못하고, 맨날 일만 하는데?”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저작권료 때문인가, 했다. 안주원과 비교해봤을 때 결혼 상대로 나은 점이라고는 그거밖에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햇살이가 말했다.

“시간 없어서 이유는 못 물어봤어. 근데 막냉이가 해원이 형 엄청 좋아하잖아.”

“맞아요. 아무래도 내가 좋아서 콩깍지가 씐 것 같아……. 이유는 내가 물어보고 올게요. 아니, 근데 누나, 맨날 일만 하는 남자 솔직히 별로예요. 우리 햇살이들 진짜, 진짜 좋은 사람 만나야 돼…….”

시간이 끝나서 햇살이가 일어나는데도 내가 미련을 가지고 잔소리를 쭝얼쭝얼하고 있으니까 햇살이가 웃음이 터졌다. 아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데. 농담 아닌데 왜 웃는지 모르겠다, 진심.

이번 활동에는 유난히 처음 온 햇살이들도 많았다. 햇살이들은 처음 만나면 거의 웬만하면 말을 못 하고, 심할 때는 시선도 피했다. 처음에는 내가 좀 인상이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은 아닌 걸 알았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서, 멤버들과 함께 이것저것 장난을 치고 팬싸템도 써보고 하다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어, 팬사인회 처음 오면 말이 잘 안 나올 수 있다면서요?”

내 말에 햇살이들이 ‘어?’하고 의아해하면서 날 봤다. 뭔 소린가 싶었나 보다. 그때 옆에서 황새벽이 말했다.

“아니, 얘는 낯가림이 뭔지 그 느낌을 모른다니까, 햇살이들? 나한테 오더니 팬사인회 처음 온 햇살이들이 자기 눈을 피한대. 말도 잘 안 한다고 혼자 섭섭해하더라고. 그게 낯가리는 건 줄 모르고.”

황새벽의 말에 햇살이들이 이제야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궁금해서 말했다.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요. 내 얼굴 다 알고, 햇살이들이랑 퍼스트라이트는 이미 제일 친한 친구인 건데. 왜 낯을 가리나 싶긴 하지…….”

“얘 봐, 이해를 못 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햇살이들이 ‘얼굴 때문에 말이 안 나오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황새벽도 의아해하면서 되물었다.

“낯가리는 거 아니고?”

“낯도 가려!”

“아, 복합적인 이유였구나. 몰랐어.”

황새벽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햇살이들이 웃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제 햇살이들이 낯을 가리고, 내 얼굴 때문에 말이 안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까.”

‘내 얼굴 때문에 말이 안 나온다’라는 부분을 햇살이들이 좋아했다. 하여튼 내 자존감을 가장 살려주는 건 언제나 햇살이들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말이 안 나오면 그냥 내 얼굴 쭉 보고 있으면 돼요. 그럼 내가 햇살이들 사랑을 읽을게.”

내 말에 햇살이들이 즐거워 해주니까 황새벽이 옆에서 말했다.

“얘는 이런 말 진짜 잘해.”

“너도 좀 더 표현을 해.”

“부끄러워…….”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쉬는 시간이 끝났다. 우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팬사인회를 이어갔다.

* * *

[팬들이 낯가리는 이유를 이해 못 하는 아이돌 멤버.twt]

[↳얘일 줄 알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원이 진짜 극외향형이다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정작 새벽이도 햇살이들이 얼굴 때문에 말 안 나오는 거란 건 이해 못 했네ㅋㅋㅋㅋ]

[정해원 진짜 낯가림 이해 못 하는 거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이들한테 자기 얼굴 많이 보고 왔을 텐데 왜 낯가리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구욬ㅋㅋㅋㅋㅋ]

[↳진짜 낯가림 없구나…….]

[햇살이들 마음 아플 얘기긴 한데 난 저렇게 외향적인 사람이 어떻게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어ㅋㅋㅋㅋㅋ]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인데도 히키코모리로 만든 거지]

[↳↳이거지]

[↳↳ㅠㅠㅠㅠㅠㅠㅠㅠ]

[↳↳X나 맘아프다ㅠㅠㅠㅠㅠ]

[오늘 정해원 팬싸남친 모먼트 장난 아니더라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사라진다면?’ 이거 물어봤더니]

[-그럼 행동으로 느낄 수 있게 내가 더 많이 표현해야죠]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

[↳미쳤나 진짜…….]

[맏형즈 이번 활동 팬싸 때 느꼈는데 진짜 이제 완전히 어른이더라 작년까지도 귀엽단 말 나왔는데 이번엔 그냥 뭔가 말이 턱 막혀…….]

[↳그니까ㅋㅋㅋㅋㅋㅋ]

[주원이 고백은 에둘러 말하는 거 아니라고 할 때부터…….]

[↳이건 뭐야 X나 설레네]

[↳↳주원이가 작사할 때 직설적인 가사 넣으면서 한 말…….]

[근데 퍼라 이번에 팬싸 너무 많이 돌지 않냐]

[↳평소에 적은 편이라 이번이 많게 느껴지는 거ㅎㅎ]

[↳투어 전이라 많이 도는 거야]

[↳퍼라 초동 이백만 넘지?]

[↳↳4일 차에 공구 합쳐지면서 이미 넘었어]

[↳↳이렇게 초동 이백만 넘으면 좋나]

[↳↳↳??팬싸 일 년 내내 돌아도 이백만은 넘을 팀만 넘어요 이 사람아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퍼라는 종수도 적은 편임 팬들 입장에서는 고마운데…….]

[솔직히 보이드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좀 적폐길 걷긴 하는 듯]

[↳어쩔 수 없지 않나 브삼이랑 보이드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브삼 어떻게 한 대??? 솔직히 브삼 아이돌 파는 입장에서 X나 답답하고 미치겠어 차라리 빨리 인수해버리면 좋겠음…….]

[↳↳요즘 브삼 돌아가는 꼴 보면 팬들 답답하겠더라]

[↳↳↳진짜 미치겠어 회사가 그냥 아예 소속 아이돌 손 놓은 느낌임]

[↳↳↳근데 그럴만하지 않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대한민국 압도적 1강이었는데 갑자기 그 1강으로 만들어준 기둥이 다른 빌딩 지지하러 사라진 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빌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활동이 시작되고, 퍼스트라이트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보이기 시작하자, 동시에 부정적인 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활동 도중에 몇몇 X튜브 채널에서 연말에 멤버들의 열애설, 욕설논란, 팬혐오 등을 포함한 루머를 여과 없이 썸네일에 박아 업로드했다. 정작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그런 의혹도 있다, 혹은 썸네일과 상관없는 내용으로 이어졌고, 보이드 엔터에서 바로 저지했지만 술렁거리는 것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국선아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렉카 채널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정해원과, 거기 엮인 VVV엔터, 그리고 보이드 엔터에 관한 부정적인 영상과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난 진짜 강효준 대표 뭔 생각하는지가 궁금해 솔직히 지금 엔터 쪽에서 강효준 대표한테 뭐라고 말 얹을 수 있는 사람 없지 않냐…….]

[↳브삼 케어 좀 해줬으면 좋겠어 어쨌든 아직 브삼 대표기는 하잖아]

[↳그냥 회사 이렇게 반파시켜 놓고 보이드만 챙기는 기분…….]

[↳↳실제로 보이드만 챙기는 거 맞지]

[↳↳솔직히 자기 손으로 키운 퍼라 있고, 거기에 먼저 자기가 키우다가 뺏긴 장남 되찾았는데 브삼이 보이겠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삼 소속 가수들만 X된 거지…….]

[↳↳↳카일룸 빼고ㅎㅎ]

[↳↳↳↳이거 맞는 게 카일룸은 계속 앨범 나오잖아ㅋㅋㅋㅋㅋㅋ 자컨도 X나 잘 뽑아주고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이거 맞지 카일룸보다 더 잘 벌어오는 팀들 다 뒷전임 지금]

[난 브삼에서 올해 맏형들 입대하는 팀 파는데 진짜 미칠 거 같아ㅠㅠㅠㅠㅠㅠ 완전체 볼 수 있는 시간 1년도 안 남았는데 회사 상황 보면 결국 앨범 못 내고 입대할 듯…….]

[↳너도? 나도…….]

[↳아이돌들 어릴 때 하루하루가 중요한 거 모르는 사람 있냐고 진짜]

[VMC 부대표 쫓겨난 건 좋은데, 솔직히 너무 뒷일 생각 안하고 일 키우긴 했어]

[↳해원이 악편은 생각 안 하냐…….]

[↳↳주어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시비임?]

[↳↳정해원 팬들 국선아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한 X나 많아]

[↳↳↳그니까ㅋㅋㅋㅋ 그쪽 팬들이랑 엮이면 피곤해ㅎㅎ]

[아무튼 브삼 빨리 좀 어떻게 할 건지 말해줘라…… 감당 안 되면 어디 팔든지]

[↳그니까ㅠㅠㅠㅠ]

* * *

퍼스트라이트에게 향하는 VVV엔터 관련된 질문은 회사에서 많이 차단하는 편이었지만,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개인 스케줄 퇴근길, 나는 VVV엔터 관련 질문을 받고 잠깐 멈춰섰다.

“어, 죄송하지만 그런 질문은 회사 쪽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일단 차에 탔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효준 대표는 브삼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문뜩 요즘 강효준 대표가 너무 바빠져서 대화를 할 일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뭐, 몰라도 알아서 잘해주니까 안 궁금해했던 거지만.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게, 내가 강효준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부분이 좀 불안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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