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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54화 (35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54화

빠른 시일 내에 강효준 대표와 함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서로 너무 바빠서 진득하게 대화 좀 나눌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퍼스트라이트가 국내 활동이 종료되자마자 바로 해외 프로모션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눈 뜨면 태국, 눈 뜨면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운동신경도 좋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타입이기는 한데 그게 대부분 체중 감량을 위한 운동이었다. 거기다가 활동이 있으면 앞뒤로 절식에 가깝게 관리들을 했기 때문에 체력도 면역력도 꽤 떨어져 있었다.

다른 것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멤버들은 이번에 이동하면서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한효석에게 한 사람씩 상담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한효석의 행복도가 가장 높았던 주간이었다.

상담을 이유로 멤버들이 모처럼 한 방으로 모였다. 한효석과 내 방이었다.

한효석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 운동 메이트를 조합해 보더니 나와 황새벽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04즈가 제일 문젠데.”

“어? 나를 황새벽이랑 묶는다고?”

“그래도 얘랑 내가 동급은 아니지.”

나와 황새벽은 거의 동시에 반발했다가 서로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내가 말했다.

“야, 날 너랑 비교를 하냐.”

“나는 체력이 없는 거야. 넌 근육이 아예 없잖아.”

“너보단 있어.”

“까봐.”

황새벽의 말에 나는 바로 쿠션을 끌어안아 방어했다.

“복근 한국에 놓고 왔어.”

“좀 들고 다녀라, 걔도 외로움 타.”

“안 타. 너도 없잖아, 그리고.”

“뭔 소리야, 난 있지.”

라고 말했는데 선명하진 않지만 진짜 복근의 흔적이 있었다. 하, 어이없네?

“네가 왜 복근이 있어? 말이 안 되잖아.”

억울함과 황당함에 내 언성이 높아지니까 옆에서 황새벽과 같은 숙소를 쓰는 안주원이 말했다.

“새벽이 겨울에 계속 기침했잖아. 그랬더니 복근이 생겼어.”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진짜야. 새벽이가 그럼 뭐 운동을 했겠냐. 쟤가 진짜 근육이 잘 붙는다니까.”

와, 나 억울해서 기절하겠네…….

사실 생각해 보면 황새벽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근육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다른 멤버들이 그렇게 운동을 하는데도 여전히 황새벽에게 팔씨름은 못 이기는 것만 봐도.

물론 신지운이나 한효석이 마음 먹고 붙으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최근에는 안 해봐서 모르겠다. 그리고 할 생각도 없었다. 하면 내가…… 몇 명 이길 수 있지?

생각해 봤는데 멤버들 중에 내가 얘는 확실하게 잡는다, 이런 멤버가 없어보여서 생각하기를 그만 뒀다.

한효석은 흐뭇한 표정으로 운동 스케줄을 짰다. 운동 메이트를 셋, 셋으로 나누고 본인은 양쪽 다 끼겠다고 했다.

나는 한효석의 만족도가 느껴지는 스케줄러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팀이 운동신경은 다 좋잖아. 아이돌 안 했으면 국가대표 하나는 나왔겠다.”

“나 동계 스포츠!”

민지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신지운이 말했다.

“맞아, 얘 스노보드 잘 타잖아.”

“그치, 동계 스포츠는 내가 형 그냥 이겨!”

“지호야, 형이 한 일 년하면 바로 따라잡지.”

“아자몽 오늘 웃기네?”

민지호와 신지운은 요즘 대결 자컨을 찍으면서 뭐만 하면 컨텐츠화 시키려고 한다. 뭐 열심히 하는 게 기특하긴 했다. 자컨에 대한 반응도 좋았는데,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 팬들의 유입을 이끌고 있었다.

나도 이제는 슬슬 멤버들이 운동의 강도를 높이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투어에 들어가면 체력이 많이 들 테니까.

한효석의 운동적 골칫거리인 나와 황새벽을 두 쪽으로 나누고 운동메이트를 구성했다. 황새벽은 체력은 좀 더 키워야 했는데, 대신 근육이 너무 잘 붙어서 쇠질은 덜 해야하는 공통점이 있는 신지운, 그리고 춤선 때문에 몸이 커지는 걸 경계하는 민지호로 구성했다.

나는 체력도 떨어지지만 그보다 근육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근육을 좀 붙이기로 했다. 박선재와 안주원이 내 운동메이트가 됐다.

운동 메이트를 짠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형 최애즈네.”

“난 다 똑같이 좋아해.”

“형, 나랑 선재가 물에 빠지면.”

“우리 팀은 왜 이렇게 자꾸 누굴 물에 빠뜨리냐. 그럼 넌 나랑 어…….”

나는 나와 동시에 빠져줄 사람을 찾아봤다. 그러다 멤버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자기 누울 자리를 만들고 있는 황새벽을 가리켰다.

“황새벽이 빠졌어. 누구 구해줄 거야.”

내 말에 황새벽이 반쯤 누웠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나지. 리더 구해야지.”

“이럴 땐 리더가 양보해 주라.”

“목숨이 걸렸는데 양보하게 생겼냐?”

“이건 목숨이 걸린 게 아니야. 애정도가 걸린 거야.”

우리가 서로 양보하지 않으니까 한효석이 말했다.

“목숨은 새벽이 형 구하고, 애정으로는 해원이 형 구하는 걸로 할게요.”

“야, 나도 목숨 구해줘.”

“그럼 나한테는 쟤보다 애정이 덜하다는 소리냐?”

그리고 한효석의 탕평책은 더 복잡한 상황을 낳았다.

그 상황을 흥미롭게 구경하던 박선재가 말했다.

“효식이 당황해서 귀 빨개졌다.”

맏형들이 양쪽에서 힘들게 하니까, 감정이 귀의 색깔로 드러나는 한효석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황새벽과 나는 그냥 이쯤에서 동생 괴롭히기를 멈추기로 했다. 답은 안 나왔지만, 아마 둘 다 당연히 물에 빠지면 자길 구해줄 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당연히 효식이는 날 구해주겠지. 그치?

그 이후에도 우리는 한참을 더 떠들었다. 한동안 각자 개인 활동도 바쁘고, 앨범 준비, 콘서트 준비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느꼈다. 나는 멤버들과 놀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죽을 때까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일곱 명이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웃음 포인트도 잘 알아서 계속 웃고, 계속 싸우고, 또 웃다가 은근 감동 먹고, 또 싸우고, 또 웃었다.

이런 순간들이 우리가 제대를 한 후에도, 노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스포티파이 차트는 20위권까지 올라갔다가 서서히 떨어졌다. 빌보드 핫백 차트에도 두 주 동안 차트인했고, 그 후에 차트아웃 되었다.

그리고 국내 일간 차트에서는 타이틀곡과 수록곡 두 개가 모두 30위권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나는 햇살이들이 지겨워할 정도로 툭하면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가끔 벅차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 때가 있는데, 이번 활동은 내내 그게 이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프로모션 기간에서 콘서트 준비 기간으로 휴가 없이 은근슬쩍 넘어갔다.

서울에서 시작될, 우리 팀의 본격적인 첫 투어였다. 지난번부터 콘서트 연출에 참여 중인 민지호는 과장 없이 그냥 매일, 연습실에서 살았다. 나는 빈 연습실에서 혼자 고민하다가 침낭도 못 펴고 그냥 잠든 민지호를 발견하고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침낭을 꺼내 펴면서 민지호를 불렀다.

“민조야, 바닥에서 자면 어떡해.”

“나 5분만 더 자고…… 응?”

민지호가 무심코 말하다가 중간에 깨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내가 펴놓은 침낭으로 알아서 들어가며 말했다.

“침낭…… 귀찮아……. 고마워…….”

“침낭 펴기 귀찮아서 그냥 자고 있었는데 내가 펴줘서 고맙단 거지?”

“백 점…….”

민지호가 말하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민지호가 펼쳐놓은 노트를 봤다. 민지호는 형들이 종종 노트에 일기나 가사를 끄적거리는 걸 보고 배워서, 어느 날부터 자기도 노트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만 본인만 알아보게 필기를 해 놓아서, 내가 읽는 건 좀 어려웠다.

필기는 못 읽어도 그려놓은 그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무대장치들과 LED 패널에 들어갈 영상들에 대해 간략하게 그림으로 표현해놨다.

퍼스트라이트의 첫 번째 투어, ‘Be a friend.’

나는 노트를 넘기면서, 마치 이미 투어가 시작된 듯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 콘서트는 분명히, 분명히 햇살이들이 좋아해 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노트를 가까운 곳에 두고 연습실을 나왔다.

그리고 간만에 강효준과 이야기 좀 하려고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이 비어 있어서, 소파에 앉아서 좀 작업을 하고 있으니 강효준이 돌아왔다.

“숙소에 뭐 귀신이라도 나오냐?”

나와 민지호가 하도 회사에서 사니까 하는 말인가 보다. 나는 노트북을 덮으며 대답했다.

“저랑 민조가 제일 겁 없어요.”

“뭐 필요해.”

“누가 보면 필요한 거 있을 때만 대표실 오는 줄 알겠네.”

“실제로 그러잖아. 네가 올 때가 제일 무서워.”

강효준이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물었다.

“필요한 건 없고, 궁금한 게 있는데. 브삼 어떻게 돼요?”

“네가 알아서 뭐하게.”

“나도 주주인데 알아야죠?”

“……그건 그러네. 아, 넌 왜 주주기까지 하냐, 피곤하게.”

강효준이 혀를 차며 캔커피를 뜯었다. 나도, 강효준에게도 캔커피는 최후의 선택지인데 아무래도 커피를 사오거나, 내려서 먹을 체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캔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고, 다음 캔을 뜯는 걸 보며 내가 물었다.

“형 그렇게 바빠요?”

“어, 이번 너희 앨범이 생각보다 지나치게 잘 돼서. 카일룸도 그렇고, 클라루스 쪽도 지금 신경을 제대로 못 쓰고 있어.”

“그럼 안 되잖아요.”

“안 되지.”

“브삼은 진짜로 신경을 못 쓰고 있겠네.”

“거기 다 본부제잖아. 나는 4본부만 신경 쓰면 돼. 알아서 하겠지.”

“형. 형 그 회사 먹을 거잖아요. 자기가 먹을 거 그렇게 상온에 내놓고 방치하면 상해요. 형이 어쨌든 브삼 대표잖아요.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지.”

내가 말하고 있었지만 강효준은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긴. 뭐, 브삼의 일은 브삼에서 알아서 하긴 해야겠지만…… 게다가 좀 상한 거 먹어도 멀쩡할 사람 같기도 하고…….

강효준이 세 캔째 커피를 뜯으며 말했다.

“너는 너희 팀 일만 신경 써. 올해 퍼라에만 집중해도 힘든 스케줄이야. 무슨 남의 회사까지 신경을 써.”

평소보다 좀 날카로워진 말투를 보니 많이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예상보다 잘 되는 것에도 체력이 필요한 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강효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받는 걸 보니 업무 전화인 모양이었다.

지금 새벽 세 시인데, 이 시간에 업무 전화가 온다는 건 해외일 가능성이 높았다. 예상대로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잠깐 뭔가 이야기하더니 나보고 노트북을 열라고 했다. 그러더니 쪽지에 OTT 채널을 확인해보라고 적었다. 미국과 한국에 동시에 올라온 미국 드라마 시리즈가 떠있었다.

그러고 보니 퍼스트라이트 음악을 영어버전으로 녹음한 게 몇 곡 있었다. 강효준이 해외 드라마에 수록될 수 있어서 녹음하는 거라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중 한 곡이 우리 멤버들이 특히 좋아하는 곡, 정규 2집 수록곡인 STAY였다.

강효준이 쪽지에 적었다.

[3화 5분 16초]

그래서 내가 그 밑에 적었다.

[스포X]

3화부터 보라니 이 사람아. 나는 순서대로 보고 싶다. 스포 시렁.

강효준은 어이 없어 했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너무 바빠서 STAY가 흐르는 장면은 콘서트 직후에나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생각보다 이 수록곡에 대한 반향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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