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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55화 (35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55화

내가 스포가 싫어서 안 보겠다고 했더니, 강효준이 미간을 좁히고 날 봤다. 나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풀라고 손짓했다. 새벽 세 시에 저렇게 인상 쓴 하마를 보면 무서우니까.

드라마에 대해서는 계약 당시에 설명을 들었다. 미국과 한국 X플릭스에 동시에 업로드된 리미티드 시리즈.

‘CHiLD’

한국계 미국인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로 인한 증상으로 아이 같은 행동을 시작하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였다.

젊은 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해 온 할머니는 원래 영어를 사용했는데, 증상이 심해질 때면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인구수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이 할머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고, 같이 놀아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이 한국계가 된 것은 이 시리즈의 작가가 어렸을 때, 실제로 이웃에 살던 한국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제목에 I가 소문자로 들어가게 된 것은 알파벳을 한국어로 읽은 ‘아이’가 child와 같은 뜻을 가졌다는 부분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딱 내가 좋아할 내용이었다.

나는 강효준이 전화하는 사이에 황당해서 말했다.

“이걸 바로 건너뛰고 3화를 보게 하려고 했네.”

“…….”

강효준은 한소리 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아직 전화 중이라 못했다. 히히.

그리고 잠시 후에 전화를 끊고 나에게 말했다.

“설에 외할아버지를 뵀는데 나한테 그러시더라. 너한테 잘하라고.”

“당연하긴 한데 왜요?”

“외할아버지가 아직도 내가 널 이용해서 이춘형 날린 줄 안다니까.”

“아, 배울 만큼 배운 분이 왜 그러지. 형이 그럴 정치력이 없다는 걸 아실 텐데.”

“아직 외손자에 대한 콩깍지가 안 벗겨진 거지.”

“그거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긴 하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또 캔 커피를 뜯었다. 아무래도 카페인이 이기나 몸이 이기나 실험 중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몸이 이길 것 같다.

강효준이 카페인이 좀 도는지, 아니면 방금 온 전화 때문인지 사람이 아까보다는 온화해져서 말했다.

“작가 인터뷰 나갈 거 설명해 주더라고. 이대로 나가도 되냐고.”

“뭔데요?”

내 말에 강효준이 방금 전화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작가는 한동안 심각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 자료조사차 한국에 왔다가 퍼스트라이트의 STAY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사를 몰랐고, 그냥 음악이 좋아서 나중에 가사를 찾아보았다고 했다.

‘CHiLD’를 쓰게 된 건, 그때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설명해 주는 사이에 작가의 인터뷰를 미리 우리 쪽으로 보냈다.

-바로 그 작곡가의 팬이 되었어요. 제가 음악 듣는 귀가 있었나 봐요, 그 작곡가가 로체스터 시리즈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는 걸 들었으니……. 그 곡 역시 정말로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건 그 인터뷰에 내 이야기가 절반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인터뷰였을 텐데, 내 얘기가 지나치게 많았다. 국선아 얘기부터 해서 내가 2년간 은둔한 이야기, 매니저 생활에 대한 것도 다 인터뷰에 쓰여 있었다.

하긴, 나도 내가 팬인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테니…….

-알면 알수록 멋진 사람이에요. 제일 대단한 부분은 ‘강함’이라고 생각하는데.

강함이요?

나 같은 유리멘탈이……?

나는 생각하며 인터뷰를 계속 읽어나갔다.

-‘해원’이 작곡한 곡을 들으면, 슬픔은 있지만, 증오는 느껴지지 않아요. 이 세상이 자신의 음악 세계를 부수지 못한다는 걸 증명한 거죠. 나도 그러기로 했어요. 우울함이 내 글을 파괴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그렇게 CHiLD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죠.

“……와, 겁나 부담스러우면서 감동적이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담보다 감동이 더 컸다.

하루하루를 버틸 때는 끔찍했는데, 그걸 누군가가 이렇게 근사하게 해석해 준 거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우울함에서 건졌다.

이 정도면 내 자랑으로 삼아도 될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러면 또 바로 안 볼 수가 없긴 하다. 내가 또 햇살이한테 약하니까…….

혹시 내가 피곤해서 길에 쓰러지면 스템이가 나 주워서 포션 먹이고 일으켜 주겠지. 그치?

나는 그렇게 스템이에게 나를 맡겨 놓기로 했다.

그사이에 강효준이 내 맥북으로 시리즈를 눌렀다. 그리고 바로 3화를 찾아서 내가 정색했다.

“형 진짜 나랑 안 맞는다.”

“이제 알았냐.”

“이게 무슨 재미예요. 처음부터 봐요.”

“나 죽어가는 거 안 보이니. 이걸 어떻게 봐. 한 편에 한 시간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팬이 우리가 영어로 따로 녹음하기까지 한 곡을 저작권료 살뜰하게 챙겨주면서 썼으니 안 볼 수도 없었나 보다.

강효준의 집에 영화관 비슷한 걸 만들어놨으니까 가서 보기로 했다.

나는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좀 보다가 자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나는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엄마가 영어를 잊어버렸어요.

작은 마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회의에서 주인공 ‘김미옥’의 딸이 말하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번거롭겠지만 다들 번역기 어플을 깔아주시면 고맙겠어요. ‘다름’에 놀라 할 수도 있어요. 그것도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아직 외국인이 낯설던 나이로 돌아갔거든요.

피곤해 보이는 딸의 발언이 끝나고, 한 마을 사람이 말했다.

-열 살 아이가 갑자기 우주에 떨어진 것과 같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 미옥을 돌봐주지 않을 사람은 없어요.

* * *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이 낯설 할머니를 자기 집에 한 명씩 초대하기로 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예고된 이야기 그 자체였다.

우주에 떨어진 아이는 외국인들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고, 한국 문화와 다른 것들을 지적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씩 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마을의 해결사였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 연결고리였다. 부모와 싸우고 집을 나간 아이들이 찾아가는 집. 마을에서 유일하게 온돌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집. 세상 모든 음식을 한국 음식 맛이 나게 만드는 희한한 손을 가진 할머니가 사는 집.

1, 2편 모두 울컥울컥 눈물이 나는 편이었다. 그리고 3편 초반, STAY가 나왔다. 할머니가 10년 전 죽은 남편의 유일한 취미였던 기타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는데, 거기서 동네 아이가 기타를 가르쳐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5분 16초에는 동네 아이가 기타로 연주하는 STAY의 코드만 흘러나왔다. 가사도 없었다.

할머니는 기타를 연습하다가, 중간에 잠깐 증상이 완화되었고, 자기가 기타를 들고 있는 걸 이상해했다.

그 이후부터 마지막 화인 8화까지는 하나의 상통하는 스토리가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 같았다가, 다시 어른이 되곤 했는데 그사이 간극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을 사람들과 할머니는 점차 어른이 된 자신의 안에도 여전히 아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자기 스스로를 보살핌받을 대상으로 여기며, 사랑받기를 원했다. 꿈을 꾸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진행이었다. 여전히 모든 어른의 안에는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아이같이 행동하는 자신과 마을 사람을 보듬어주던 어른인 자신 사이의 간극에서 괴로워하던 주인공 역시 점점 그것을 깨달아갔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놓아버렸던 기타를 다시 들었다. 할머니는 매일매일 기타를 연주했다. 우리가 영어로 녹음한 STAY를 틀어 놓고, 가사를 한 자, 한 자 적었다.

[아픔이 없는 공간은 없겠지만]

[우리의 웃음이 그보다 강할 거야]

[절망이 울게 하는 시간 동안]

[작은 불빛에 의지해 아침을 기다리는]

[그 순간마저 우리는 함께하겠지]

[Stay, 영원히 소년 같기를]

[Stay, 잊지 않고 사랑하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가 만날 땐]

[언제까지나 오늘 같기를 약속하자]

[Stay, 영원히 소년 같기를]

[Stay, 잊지 않고 사랑하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가 만날 땐]

[언제까지나 오늘 같기를 약속하자]

마지막 편에서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기타를 알려준 동네 아이와 함께 그 곡을 연주했다. 아이는 STAY를 불렀다.

* * *

우리는 그 자리에서 여덟 편을 다 봤다.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다 보고 나니까 점심시간이었다.

근데 그럴 만했다.

이 리미티드 시리즈는 감동이 있었다. 연출자와 작가가 ‘울어!’ 하는 곳마다 울었다. 특히 주인공의 장례식 장면에서는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그런 편지를 남기는 건 반칙이잖아요, 할머니…….

그리고 강효준을 봤더니 저 형도 좀 운 것 같았다.

우리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내가 물었다.

“……근데 이 정도로 중요하게 쓰이는 거 알았어요?”

“아니, 대본 유출 지나치게 신경 써서…… 어쩐지 저작권료를 많이 챙겨주더라.”

STAY가 이렇게 강력하게 임팩트 있는 곡으로 쓰였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강효준이 중얼거렸다.

“저 드라마 잘 되려나.”

“방금 못 봤어요? 이게 안 잘 되면 세상 사람들의 감수성이 메마른 거지.”

“메말랐잖아.”

“그런가……. 아, 너무 피곤한데 감수성이 폭발해서 잠이 안 와요. 저걸 스테이 나오는 부분만 봤으면 이 감동을 못 느끼는 건데. 형이 내 감동 없앨 뻔했어요.”

“……그건 그렇지.”

“미안하다고 해요, 빨리.”

“미안하다, 그래.”

강효준도 엄청 피곤한가 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걸 보니까…… 엇, 그건 평소에도 그랬구나. 허허. 하지만 내 말 잘 들어서 손해 볼 거 하나 없었을 거다.

피곤해서 눈을 손으로 눌렀다가 뗀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이거 대박 나면…… 스테이도 난리 나겠는데.”

“그러려나.”

“명곡이잖아.”

“우리 멤버들이 특히 좋아하긴 해요. 햇살이들도 좋아하고. 우리 매형 최애곡이고.”

“나도 좋아해.”

“형은 제 곡 다 좋아하잖아요.”

“특히 좋아.”

“……형도 호불호가 있었구나?”

“없는 인간도 있어?”

“형 아무거나 다 먹잖아요.”

“안 먹는 것도 있어, 나름.”

“뭐 안 먹어요?”

“상한 거.”

강효준의 말이 대충 농담인 것 같아서 나는 흐흐 웃었다. 사실 농담을 분간할 상태가 아니긴 하다. 밤새고 드라마 여덟 편을 봤으니까.

그런데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했다. 좀 삭막해져 있던 감수성을 한 번에 쫙 수혈받은 기분이었으니까.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도 일단은 좀 잤다. 다행히 개인 스케줄이 있는 멤버들이 있어 밤에 연습실에 모이기로 했다. 새벽 연습. 짜릿하다. 하, 오늘도 우리 민조가 많이 갈궈주겠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자고 일어나서, 정신없이 콘서트 연습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콘서트 준비에 모든 정신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은 스테이를 들었다.

아주, 아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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