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59화
“우와, 나 지금 겨우 네 악몽 때문에 우리 커리어하이 좋아할 타이밍을 놓칠 뻔한 거냐.”
내 말에 안주원이 대꾸했다.
“타이밍은 이미 놓쳤고, ‘겨우’ 악몽이라니 섭섭하고 그러네.”
“야, 지금 네 악몽 걱정해 주느라고 X포티파이 9위를 못 기뻐하고 있었어어, 뭐가 섭섭해?”
“그건 그래.”
내 말에 안주원이 그렇게 대답하고 허허 웃는다. 하, 저 순딩이. 내가 저렇게 생겼으면 뻗대고 있는 싸가지 없는 싸가지 다 끌어다가 부렸을 텐데…….
나는 다시 작업물을 돌아봤다.
A&R팀에서 이것저것 레퍼런스를 줬는데, 그게 산처럼 많았다. 레퍼런스를 줘도 내가 제멋대로 곡을 만드는 바람에 그게 다 엎어지는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A&R팀은 해야 할 일을 했다. 나는 그게 정말로 든든했다.
이번에는 청량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라, A&R팀에서 그런 쪽의 레퍼런스를 부탁했다. A&R팀에서 충분한 준비를 해줬다.
내가 그것들을 훑어보고 있으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내가 방해했나?”
“너 뭐 나랑 내외하냐? 갑자기 뭔 방해.”
나는 말하고 자료들을 모은 후에 정리해 놨다.
할 말을 다 전달한 안주원이 나가고, 나는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막 작업을 마친 후, 다섯 시간 후에 시작될 연습을 위해 소파를 펼치고 잘 준비를 할 때. 잠이 확 깨는 시스템창이 떴다.
[(STAY)의 S+급 히트가 확실시 됩니다]
[(STAY)가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합니다]
[(STAY)가 빌보드 핫백 차트에서 17위를 기록합니다]
[최고 순위 기록 후 보상을 획득합니다]
나는 의자 뒤로 떨어질 뻔했다.
이런 거 알려줄 거면 예고 좀 하고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 정도로 올라간다고?
* * *
잠깐 연습실을 나와 물을 마시던 안무팀 UO의 장지영 팀장은 쓰러져서 연습실 바닥 여기저기서 쉬는 멤버들을 힐끔 보았다. 그때 동갑에 TRV에서부터 친하던 비주얼 디렉터 정선미 팀장이 커피를 건네주며 말했다.
“연습이 돼? 이 상황에서?”
“민조 있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너무 잘 돼서 나도 소름끼친다, 어휴.”
소름 끼친다는 말이 나와도 놀랍지 않았다.
정선미 팀장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스테이 역주행ㄹㄱㄴ네]
[요즘 셀럽들 차일드 겁나 추천하더라]
[스테이 언제 질리냐 X나 좋아ㅠㅠㅠ]
[퍼라 X나 셀럽이네]
스테이의 성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었다.
회사의 사회생활 할 만큼 한 사람들도 이러다 우리 회사 초거대기업 되는 거 아니냐 스타트업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대기업에서 퇴사하게 생겼다고 시끌시끌했다.
보이드 엔터의 직원들 중 대다수가 TRV 출신이었고, TRV 출신 전원이 오로지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의 가능성, 그리고 정해원을 믿고 이곳으로 이직한 사람들이었다. 장지영과 정선미도 마찬가지였다.
장지영 팀장이 말했다.
“와, 너 TRV 나가서 보이드 간다고 할 때는 미쳤나, 싶었는데.”
“UO가 다 여기로 왔잖아.”
“그럼 어떡해, 지호가 당연히 가는 걸로 알고 얘기하는데. 그리고 솔직히…… 해원이 있잖아.”
“그치.”
정선미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이가 있으면 절대 실패하지 않지.”
정해원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실무를 해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정해원이 있는 팀이 망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주어진 쉬는 시간이 끝나가자 민지호부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일어난 황새벽이 민지호에게 가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같이 안무를 봐달라는 거였다.
민지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나머지 멤버들도 자리에 앉아서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독기 미쳤지, 쟤네.”
장지영 팀장이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웃었다.
솔직히 연습 분위기 잡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오히려 연습에 집중이 안 되는 건 퍼스트라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었다. 멤버들은 민지호에게 욕먹기 싫어서라도 평소보다 더 정신을 바짝 차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였다.
“……근데 좀 심하긴 해? 쟤네 무슨 일 있어?”
장지영 팀장이 묻자 정선미 팀장이 대꾸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주원이가 악몽 꿨다는데, 그때 이후로 이러네. 무슨 이거 아니면 세상 망할 것처럼…….”
* * *
“멤버들, 연습 집중해서 열심히하는 거 너무 좋고 고마운데. 조금만 더 대화하자. 나중에 비하인드에 쓸게 없겠어요.”
자컨팀의 말에 각자 이어폰을 꽂고 자기 파트 연습만 하던 멤버들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이온음료를 마시다가 힐끔 퍼스트라이트 놈들을 봤다.
멤버들도 뒤늦게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지만 기본적으로 말수 적고 반응도 빠릿한 놈들이 아니라 하나같이 어떡하지, 멍때리고들 있었다.
나는 더더욱 확신했다.
내가 보고 왔던 ‘과거의 미래’를 저놈들도 아주, 아주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걸. 개중에는 안주원이나 신지운처럼 꿈으로 명확하게 보기까지 한 놈들도 있는 거였다.
아니, 어떻게 그걸 한 놈도 말을 안 하냐? 지독한 새끼들이네…… 라고 하기에는 나도 뭐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
그걸 누가 입밖에 내고 싶겠나. 우리 중 하나가 없고, 애초에 우리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고…….
아무튼, 멤버들이 조용한 걸 보다가 나는 바로 놈들을 시끄럽게 만들 물건을 찾았다. 나는 매니저 형에게 부탁해 핸드마이크를 꺼내왔다.
그리고 바닥에 이니셜로 구분해 멤버들에게 하나씩 건네줬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 같은 디자인과 색깔의 핸드마이크를 쓰고 있었다. 하여튼 뭐 하나 사면 주르륵 다 똑같이 사는 걸 좋아하는 놈들이었다.
원래 쓰던 것도 일곱 개 모두 동일한 모델이었는데, 기껏 회사에서 새 커스텀 마이크를 해준다고 했는데도 결론적으로 다들 똑같은 핸드마이크를 골랐다. 싹 다 검정. 눈에 띄고 싶지 않단다. 미친놈들인가. 눈에 안 띄고 싶은데 어떻게 아이돌은 하고 있네…….
라고 생각하며 나는 내 검정 핸드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내 이니셜은 SUN이었다.
나이순으로 황새벽은 T, 안주원은 A, 신지운은 GF, 한효석은 H, 민지호는 MIN, 박선재는 C였다. 성, 혹은 거북이, 자몽에서 각자 따 왔다. 거북이는 그렇다고 해도 자몽은 양심 없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넘어간다. 우리 막냉이는 큐트의 C였다. 은근 막냉이도 자기 귀여움에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귀여운 걸 아니 다행이네. 히히.
아무튼 그렇게 마이크를 하나씩 쥐여준 후에 나는 음악을 틀었다.
꽤 오랫동안 우리 팬들이 기다리던 곡이 하나 있었다. 우리의 일본 싱글이었던 버터플라이였다.
나는 애초에 한국어로 가사를 적었다. 그 과정에서 민지호와 많은 상의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두 곡을 각자의 언어로 부를 때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사를 하기는 했어도 한국에서 버터플라이를 불렀던 적은 없었다. 기회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팬들은 이 버터플라이를 번안해 달라고 주기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준비를 하는 중이었는데 타이밍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렇게 비하인드에서라도 한번 들려주는 게 어떨까, 생각했던 거였다.
“가사 모르지?”
내가 말하면서 멤버들에게 가사를 보냈는데, 다들 왜 모르냐는 표정으로 날 봤다. 무대할 기회도 없었는데 다들 외웠나 보다.
우리는 핸드마이크를 들고 버터플라이의 안무를 하며 라이브를 했다.
버터플라이는 안무가 쉬운 편이었다. 우리 안무치고는 힘을 빡빡 줘서 춰야 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 멤버들 모두 라이브를 하면서도 표정이 여유 그 자체였다.
버터플라이는 힘을 북돋아 주는 가사였다. 아무래도 공동작사를 하다 보니 같이 작사하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높지 않아 보여도 꾸준히 날고 있어]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건 신지운과 안주원에게 거의 끌려가서 캠핑을 했을 때였다. 산에서 정말 오랜만에 나비를 봤는데, 그리 높이 날고 있지 않았다.
내 시야에서는 그랬지만, 나비 기준에서는 엄청 높이 날고 있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곡을 썼고, 민지호는 내 설명을 꼼꼼하게 들은 후에 작사에 참여했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무대용으로 가다듬은 가사가 아니라서 어색하고 툭툭 끊어지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추후에 녹음할 때 그 부분들을 수정해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너의 지구야 너의 세상이야]
[너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아]
한국어로 번안한 가사를 부르다 보니 한발 늦게, 민지호가 멤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가사에 녹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사는 말하자면 그런 거였다. 낮게 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기준 때문에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 어떻게 들으면 악플러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고, 혹은 불필요하게 참견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라는 가사일 수도 있다.
그런 가사였다.
어쨌든 가사와 별개로 노래는 봄에 나비가 날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힘을 주기 위해 만든 곡이기 때문에, 청량한 감각을 느끼게 하려 애쓰면서 작곡했던 기억이 난다.
작곡도 멤버들이 불러본 후에 수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작사도 그렇다. 심지어는 녹음한 후에 이건 너무 입에 안 붙겠다, 싶어서 수정할 때도 있다.
결국 그 노래를 부르게 될 사람이 불러봐야 무슨 노래인지 확실하게 결정된다.
멤버들은 버터플라이를 부르고 나서, 신이 났는지 바로 다음 곡을 결정했다. 박선재가 말했다.
“나! 나 부르고 싶은 거 있어, 별빛!”
“별빛 부르자.”
“그건 세트리스트 들어가잖아.”
“비하인드 어차피 콘서트 끝나고 나와.”
멤버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바로 별빛을 틀었다.
[빛의 속도로 달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소리도 끝도 없던 void에서 별빛을 만났을 때]
[I'm breathing fine 너와 만난 순간]
[외로움은 사라지고 기억은 추억이 될 수 있어]
[이 별에서는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우리가 외계인일까?]
미니 4집 타이틀이었던 별빛을 부르고 있으니까 솔직히 감탄이 나왔다.
“진짜 많이 컸다.”
별빛을 부를 때도 멤버들이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별빛을 부르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또 달랐다.
그리고 확실히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긴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멤버들은 신이 나서 완전히 펄펄 날아다녔다.
한 번 시작한 노래가 멈출 줄을 모르니까 매니저가 중간에 소리쳤다.
“목 조심! 콘서트 얼마 안 남았어요!”
그렇게 잔소리를 듣고서야 멤버들은 라이브를 멈췄다.
그리고 다시 안무 연습으로 돌아간 녀석들의 표정이 싱글벙글이었다. 나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무와 노래를 끝내고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 라이브, 진짜 X나 잘하는구나.
바로 옆에 내 멤버가, 그리고 나의 라이브가 쩔어줬다. 무대에 서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보다 신나는 일이 있을까.
빨리 팬들을 만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