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61화 (36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1화

주경기장에서 정말로 콘서트를 하는구나.

무대에 올라온 나는 멍하니 무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압감이 있었다.

“여기 진짜 우리 햇살이들…… 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콘서트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겨우 이틀이다. 이틀. 여기서 햇살이들과 만나고, 뛰어놀 수 있는 기회가 단 두 번뿐이라는 게 벌써부터 아까웠다. 세상에 하나 남은 솜사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내가 사운드체크를 위해 도착해있을 때, 거의 바로 민지호도 공연장에 도착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중얼중얼 콘서트 내용을 빠짐없이 상기하던 민지호를 본 내가 말했다.

“민조야.”

“엉?”

민지호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서, 나는 관객석쪽을 턱짓했다.

“봐봐.”

“……어? 와!”

민지호가 환호했다.

우리 둘 다 주경기장은 몇 번 와본 곳이 있다. 특히 1995년부터 시작되어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 콘서트가 이곳에서 열렸다.

우리는 신인 때부터 그 콘서트에 매해 꼬박꼬박 참가했다. 올해부터는 투어 일정이 겹쳐서, 참가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멤버들은 그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조금씩, 조금씩 햇살이들이 늘어났다. 작년에는 무대에서 보니 주경기장에 70% 정도가 우리 팬들이었다. 햇살이들의 응원봉을 보고 있으면 그것보다 힘이 나는 일이 없었다. 우리 잘 되고 있구나. 그걸 햇살이들이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선후배, 동료 가수 없이 단독으로 이곳에 섰다.

처음부터 끝까지. 퍼스트라이트의 노래로 시작해서 퍼스트라이트의 노래로 끝날 것이다. 이 넓은 공간 안에는 오로지 우리의 팬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관객석을 바라보는데 민지호가 물었다.

“형아, 기분 어때?”

“떨려.”

그리고 아마 민지호가 원했을 답도 같이 해줬다.

“그리고 안심 돼.”

내 말에 민지호가 히히 웃었다.

우리 팬들로 가득 찰 공간에서, 나는 세상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을 안정을 얻었다.

그때 음악이 시작되고, 주경기장에 우리 노래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기 불을 지피자 어둠은 촛불조차 삼키지 못해]

[안녕, 소년이여 우리는 제한 속도 없는 도로를 달려]

[네가 있으면 밤도 낮처럼 빛나]

[다시 밤이 우릴 멈춰 세울 수 없게 손을 잡아줘]

[너를 만나러 갈 때 나에겐 한계가 없어]

[모든 것을 넘어, 모든 것을 태워, 미친 듯이 달려]

우리 미니 6집 타이틀곡인 HIGHWAY였다. ‘불을 켜’와 이어지는 곡이며, 우리가 있는 곳이 언제나 낮일 수 있게 백야를 따라서 달린다는 불을 켜의 가사에서 이어져 우리가 밤을 밝히겠다는 의지로 진행된 곡. 아니, 진행이라기보다는 성장한 곡.

원래도 강하던 드럼은 더 강해지고, 일부러 더 찢어질 것 같이 효과를 냈다. 민지호가 옆에서 물었다.

“형형, 저거 뭐랬지? 부웅 하는 거!”

“글리산도.”

“멋있어!”

“멋있으라고 넣은 거긴 해.”

하이웨이는 ‘제한속도 무제한’이라는 컨셉에 맞게 아우토반을 미친 듯이 달리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 노래는 그냥 들을 때보다, 큰 공연장에서 들을 때 더 강렬한 음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민지호는 이 하이웨이를 이번 콘서트의 중요한 파트로 녹여 넣었다.

여기서 폭죽이 터질 거다. 강효준 대표가 회사 휘청하게 돈 썼다고 말하던 그 폭죽.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리허설을 할 수 없는 직업이 하나 있는데, 그게 폭죽 디자이너라고. 폭죽이란 건 리허설이 없어서 터트려봐야 어떤 건지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일리있고,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리허설에 리허설을 거듭하는 우리 직업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 무대를 시작해야만 폭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폭죽을 상상하면서 잠실 주경기장에서 듣는 하이웨이는…… 아. 뭔가. 미치도록 좋았다. 그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하이웨이를 듣고만 있었다.

* * *

[해원 : 주경기장 바람 부니까 춥더라구ㅜㅜ 햇살이들 겉옷 꼭 따듯한 걸로 챙겨오기! 감기 걸리면 나 진짜로 속상해요…….]

[민조 : 햇살이들 주경기장 쪼아!!!!!!!!!! 햇살이들 좋아할 거야!!!!!!!!!!! 보고시퍼!!!!!!!! 사랑해 뽀뽀 쪽쪽 하트하트 일억만 개 짠!!!!!!!!!!!!!!!!]

연달아 X버스에 올라온 두 글의 온도차에 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같은 팀 형아동생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죽겠다 진짜ㅋㅋㅋㅋㅋㅋ]

[나 너무 떨려서 잠 안 와 어떡하지ㅠㅠㅠ]

[↳나도 안 와ㅠㅠㅠㅠㅠ]

[내일 굿즈줄 길까? 길겠지?]

[↳무조건 길어 퍼라팬들 굿즈 진짜 좋아하더라]

[↳아니 진짜 퍼라팬들은 굿즈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거의 굿즈 사려고 돈 버는 사람들 같음]

[↳↳아무래도 우리 애들 얼굴이 박혀있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이들 얼굴부심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ㅍ나 지금 주경기장 앞 지나가는데 하이웨이 들린다]

[↳세트리스트에 하이웨이 들어가려나???]

[↳↳지금 주경기장에서 들리는 거면 백퍼ㅇㅇ]

[↳↳↳나 하이웨이 입덕임ㅠㅠㅠㅠㅅㅂ입덕할 때 감정 생각나서 더 미치겠네ㅠㅠㅠㅠ]

[지금 ㅅㅍ 나오는 세트리스트만 봐도 심장 뛰어 미치겠는 거 정상이지?]

[↳ㅇㅇㅇㅇ극정상]

[↳이번 콘 세트리스트 진차 돌았다]

[지금이라도 갈까ㅠㅠㅠㅠㅠ 퍼라콘 자리있니ㅠㅠㅠㅠ]

[↳좋은 자리는 없어도 아직 갈 수는 있을 듯]

[↳갈까말까 고민되면 가!!! 퍼라는 진짜 무조건 자리 있을 때 가야 돼 절대 후회 안함]

[↳진짜 무조건 가 퍼라 콘서트 편곡 현장에서 들으면 평생 못 잊는다…… 음원이 좀 심심해지는 단점이 있긴 한데 그래도 가야 돼]

[퍼라콘 재밌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라이브인 듯]

[↳라이브 진짜 개잘해]

[↳그냥 가야겠다 이 댓글보고 마음 정함]

퍼스트라이트팬이자 정해원팬, regular_1228 이재희는 올콘을 결정했다. 그리고 성공적이었다.

최근 이직을 하느라 덕질은 잠시 미뤄두고 있었다. 그건 사인회에서 정해원과 나눴던 대화 때문이었다.

이직을 할까말까 고민된다고 하니까, 정해원이 신중하게 같이 고민을 해주더니 앨범에다 적어뒀다.

[저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기다릴게요]

인생에서 먹고 사는 것만 한 고민도 없을 거라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얼굴 보느라 정해원의 말을 몇 마디 놓친 게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대충 뉘앙스가 그랬다.

돌려 말했지만 정리하면 그 말이었다. 이직 먼저 하고, 계속 자기를 좋아해달라는 말. 그리고 앨범에 적어준 건 거기에 대한 보충 설명 같은 거였다.

최애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재희는 처음 구직을 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덕질에 열중할 수 있었다.

이재희는 자기 뒤로 쭉 이어진 굿즈줄을 보며 친구에게 말했다.

“줄 진짜 길다…….”

“하여튼 우리 진짜 굿즈 좋아해.”

“특히 애들 얼굴 있으면 다 사잖아.”

“얼굴을 좋아하니까.”

두 사람이 하는 말이 줄 앞뒤에 있던 팬들에게도 들렸는지 다들 까르륵 웃었다. 이재희는 그런 앞뒤 팬들에게 가장에 챙겨온 간식을 나눠줬다. 그리고 앞뒤에서도 간식을 나눠줬다. 퍼스트라이트가 본인들도 잘 먹고, 팬들에게도 잘 먹으로 하도 강조해서인지 간식들을 많이 들고 다녔다. 서로 나눠주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게 굿즈를 사고, 곧 두 사람은 주경기장에 입성했다. 이재희가 경기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폭죽쓰겠지?”

“보이드면 백퍼 쓰지. 돈을 물쓰듯이 쓰잖아.”

“아, 재벌 3세 대표 너무 좋다.”

“우리 하마 대표님. 평생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서서히 콘서트가 시작되는 다섯 시가 가까워졌다.

“오늘 일몰 몇 시야?”

“일곱 시. 일몰 때 진짜 대박이겠다.”

“아, 나 너무 설레는데 어떡해.”

이재희가 너무 떨려 하니까 옆에서 친구가 어깨를 꽉꽉 주물러줬다. 그러는 사이에 주경기장이 햇살이들로 가득 찼다.

아직 밝은 시간이었지만, 응원봉의 발광력이 좋은 편이라 불빛들이 충분히 보였다.

콘서트가 시작되는 다섯 시 1, 2분 전부터, 웅성웅성 시끌시끌하던 주경기장은 신기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아직 콘서트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팬들 모두 확신했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하게 될 이 야외콘은 분명히 평생 기억에 남게 되겠구나.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정확히 다섯 시. 화면에 15초 전부터 카운트다운이 뜨자 주경기장이 환호로 뒤덮였다.

카운트다운은 퍼스트라이트의 시그니처인 셈이었다. 일단 팀명에 숫자가 들어갔고, 그래서 구호에 숫자를 역순으로 세는 것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퍼스트라이트는 콘서트에서도 이렇게 카운트다운 띄우는 것을 늘 활용했다. 그리고 5부터 퍼스트라이트 공식 내레이션 담당인 안주원의 음성이 숫자와 함께 들려왔다.

-fifth, fourth, third, second.

-first.

그리고 VCR이 시작되었다.

화면에 꽉 차게,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갔다. 멤버 모두 사복이면서 한쪽은 좀 더 포멀했고, 나머지 한쪽은 캐주얼했다.

그렇게 두 팀은, 퍼스트라이트 팬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편을 나눈 상태였다.

정해원이 처음으로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게 된 자체컨텐츠에서 퍼스트 컴퍼니에 신지운, 민지호, 안주원, 그리고 라이트 컴퍼니에 정해원, 황새벽, 한효석, 박선재로 나누었던 조합이었다. 팬들이 퍼컴즈, 라컴즈 라고 지금까지도 부르고 있는 조합이었다.

퍼컴즈는 좀 더 캐주얼했고, 라컴즈는 좀 더 캐주얼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 뮤직비디오에서 ‘싸우는 역할’을 담당했던 신지운과 한효석이 대립하게 될 것을 암시했다.

VCR은 은유적인 영상이라,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 준 건 아니었고 일곱 명이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 주고, 건물 옥상을 걷거나 모여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그 대립각을 보여 주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모두가 어디선가 쫓겨나고, 소외되며 일단은 이렇게 일곱 명이 모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연출팀과 멤버들은 VCR로 보이는 그 스토리를 통하여 공연 속에 다양한 디테일을 숨겨두었다.

그래도 그 스토리를 전혀 관심 없어 해도 콘서트를 보는 일에 영향은 조금도 없었다. 스토리보다 중요한 건 멤버들의 얼굴이 예쁘게 나오는 거라고, 연출팀에서도 멤버들도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VCR 화면이 바뀔 때, 멤버들의 얼굴이 크게 잡힐 때마다 비명에 가까운 환호가 들리는 걸 보니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부분은 성공적인 듯했다.

잠시 후 VCR이 끝나고, 팬들의 환호 속에서 멤버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씩 전광판에 드러날 때마다 환호성은 점진적으로 커졌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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