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4화
[퀘스트 발생]
[종장.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과거의 미래’를 수정하세요]
[현재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퍼스트라이트 정해원 외 6인’의 정신력이 회복됩니다]
[추가 보상]
[어떤 보상은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수많은 굴곡을 넘어 역사에 남은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 정해원)에 대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화 영역을 (특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성 : ( )]
[사후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 중…….]
[(아이돌 정해원)은 ( )을 얻었습니다]
[(아이돌 정해원)은 ( )를 남겼습니다]
[(아이돌 정해원)은 ( )에 ( ) 남습니다]
[(아이돌 정해원)은 ( ) 아이돌로 평가됩니다]
나는 지금 당장 상황에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주 가끔 신경이 쓰인다.
내 발밑이 푹 꺼지는 건 아닌가. 내가 지금 건방 떠는 건 아닌가. 오늘 내가 한 말이 싸가지 없진 않았나.
팬을 못 믿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팬들을 너무 많이 믿고, 그래서 지나치게 애새끼 같아질 때가 있다. 뒷배 믿고 까부는 애새끼. 그리고 나는 그런 애새끼 상태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퍼스트라이트의 화제성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게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잘못 디디면 그곳이 함정일 것 같을 때가. 그리고 그 함정이 내가 지금까지 멤버들, 팬들과 함께 쌓아온 것을 일순간 삼켜버릴 것 같다는 지나친 염려를 하게 된다. 아마, 아주 없는 소리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가끔 로맨스 영화에서 나오지 않나. 너무 행복해서 무섭다고. 지금 내가 아마 그런 상태인 듯했다. 이 완벽한 행복에 아주 작은 흠집이라도 나는 게, 결벽적으로 싫은 거다. 이게 외로움에 대한 나쁜 기억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원래 모든 아이돌이 살아가며 한 번은 겪는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후의 평가를 알게 된다면 그런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아이돌 정해원)은 ( ) 아이돌로 평가됩니다]
이 부분이 궁금하다. 업적, 이런 건 솔직히…… 아주 관심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저것만큼 궁금하진 않았다.
사실 저걸 다 본다고 해서, 그게 엄청 나를 평화롭게 할 거라는 맹신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내 삶에서 닥칠 큰 어려움 앞에서 덜 불안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팀 멤버들의 ‘정신력이 회복된다’라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 * *
“아, 잠 안 와.”
침대에 누웠던 안주원은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요즘 꾸던 악몽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콘서트 후유증이 심했다. 안주원은 위버스를 켰다.
[민조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햇살이들 내가 정말 세상에서 제일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 끝에서 끝만큼 사랑해!!!!!!!!!!!!!!]
라고 쓰인 민지호의 글을 시작으로, 이미 멤버 모두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장문의 글을 올려두었다.
안주원은 자기가 쓴 글을 확인했다.
[주원 : 오늘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해원이가 스포한 것처럼…… 9월에 또 만나요^^]
“…….”
너무 무뚝뚝한 것 같았다. 다른 멤버들, 심지어 신지운처럼 햇살이들 말고는 아무도 귀엽다고 안 해줄 사람도 온갖 이모티콘으로 꾸민 감사 인사를 올려놨는데…….
[주원 : 햇살이들 잠이 안 와요ㅠㅠ]
그렇게 한 문장을 먼저 올릴까, 하다가 그렇게만 쓰면 걱정할 것 같아서 바로 다음 문장을 덧붙였다.
[주원 : 잠실에서 작은 소용돌이 하나를 삼켜서 집까지 가져온 것 같아요. 그게 가슴 속에서 계속 돌고 있나 봐요…….]
솔직하게 마음을 적었는데, 왠지 부끄러웠다. 새벽 감성이라고 팬들이 이상해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많이 서치를 했으니, 슬슬 올린 글들의 반응이 예상될 때도 됐는데. 그게 이상하게 자기 일이 되면 잘 예상이 안 갔다. 팬들이 좋아할지, 좋아하지 않을지 확신이 안 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콘서트 직캠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벌써 스테이의 직캠들이 많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햇살이들 보는 표정ㅠㅠㅠ]
[사랑이 눈에 보여…….]
안주원은 멤버들이 팬을 보는 눈빛을 보고 있었다. 저렇게 팬들을 보고 있었구나, 새삼 생각했다. 사랑이 눈에 보인다는 말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었다.
그러다 본인 얼굴을 보니 좀 쑥스러워졌다. 똑같았다. 사랑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쑥스러운 중에, 오히려 영문 모를 자신감이 생겨 조금 전에 썼던 글을 X버스에 업로드했다.
그러고 나니 잠이 잘 왔다. 소용돌이는 여전한데, 그것마저 좋아하게 됐다.
* * *
아이돌 생활에 있어서 염려가 들 때 찾아가서 상담할 선배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빅 블루 이준희에게 이런저런 상담을 부탁했다.
이준희가 가볍게 술 한잔을 하자고 집으로 불러서 놀러 갔더니, 진짜로 술은 한 잔만 마시고 진득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했다.
선배에게 조언을 들은 것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좋았던 건 이제 나는 이런저런 걱정들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과거의 미래를 수정하려면 좀 길게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 계획대로 빨리, 빨리 진행하려고 해도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일주일을 잤다가는 진짜 적잖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가족, 멤버, 회사의 연락을 다 끊고 일주일을 잔다고? 분명 누군가 와서 내가 자는 침실 문을 부수고 들어올 거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잠적할 방법을 찾다가, 어쨌든 회사와 상의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강효준 대표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형, 저 투어 끝나면 일주일만 잠적해도 되죠? 어차피 보름 동안 휴가잖아요.”
“안 돼.”
이야, 이렇게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할 줄이야.
나름 무조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시간을 고른 거였다. 투어 끝나고 보름의 휴가 중 일주일. 누가 봐도 마음껏 살아도 되는 날 아닌가? 근데 여기부터 막힌다고?
내가 되물었다.
“왜요? 스케줄 없잖아요.”
“알아.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은 회사랑 연락해야지.”
“일주일 동안 곡 작업 해올게요.”
“넌 네가 일 많이 하겠다는 게 거래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게 참 이상하다. 아니, 솔직히, 메인 프로듀서 빡시게 굴려서 곡 쭉쭉 뽑아내는 게 회사 입장에서 제일 좋은 거 아닌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러더니, 요즘은 내가 일하는 절대량을 확인해서 그걸 줄이려고 한다. 물 퍼내면 말라버릴 우물이라고 생각하나. 그러면 그건 망가진 우물이잖아?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니라 내 건강 걱정이란 건 안다. 그냥 혼자 진상 한 번 떨어봤다. 하, 내 진상력 죽지 않았네.
나는 대표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무슨 회사가 프로듀서한테 일을 하지 말래요.”
“넌 프로듀서이기 이전에 아이돌이라.”
“…….”
“뭐.”
평소에 한 마디도 안 지고 꼬박꼬박 말대꾸하던 내가 멈칫하니까, 강효준이 오히려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친 것처럼 내 쪽을 봤다. 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과장되게 반응했다.
“와, 진짜 감동이다…….”
“딴소리하지 말고, 일주일 왜 필요해. 뭐할 건데.”
“작업한다니까요?”
“이형이랑?”
“아뇨, 혼자.”
“너 뭐 연애해?”
“전혀요.”
“보통 애들이 저러고 헛소리하면 연애던데.”
“억울하긴 하지만 연애 중이면 일주일 잠적하게 해줄 거예요?”
“더 안 되지.”
“그럴 줄 알긴 했는데.”
역시 제일 어려운 게 시간을 내는 일이었다.
나는 아무튼 ‘프로듀서이기 이전에 아이돌’이란 말이 무지하게 마음에 들었다. 회사가 나를 보는 눈이 그렇다는 거니까.
아무튼 뭐, 잠적은 투어 끝나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나는 투어를 위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짐을 좀 일찍 일찍 챙기는 편이기도 하고, 짐 챙기는 일 자체를 남들보다는 즐기기도 한다.
이번에는 해외 스케줄이 엄청 기니까, 짐 챙기는 시간을 평소보다도 넉넉하게 투자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가서 부모님이랑 밥도 든든하게 먹었다. 당분간은 집밥을 못 먹을 거 같아서, 먹을 수 있는 최대까지 먹었다.
그렇게 충분히 준비한 후에 나는 투어를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에 우리는 일곱 명이 캐리어를 똑같은 걸로 맞췄다. 안주원의 디자인으로 랩핑을 해서 제작한 캐리어였다. 캐리어를 우리 나이순으로 쭉 늘어놓으면 거기 ‘퍼스트라이트’라고 글자가 맞춰진다.
캐리어는 원래 싼 거 사서 대충 찌그러질 때까지 쓰다가 버린다는 게 지론이던 신지운이 모아 놓은 캐리어를 보며 말했다.
“……왜 괜찮지?”
“내가 디자인했으니까.”
안주원이 옆에서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이 말했다. 요즘 안주원은 신지운도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데? 내가 안 넘칠 이유가? 같은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아주 괜찮은 태도라고 본다.
아무튼 막내들은 그게 특히 더 마음에 들어 신이 났고, 황새벽은 애들이 좋아하면 됐지…… 인 상태였다. 회사에서는 어쨌든 캐리어는 안 잃어버리겠다면서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게 공항에서 이동 중일 때, 핸드폰으로 파일 하나가 날아왔다. 송다온이 보낸 음원이었다.
아니, 무슨 클라루스 미공개 신곡 음원을 막 보내냐, 이 형은…….
어이없었지만 한편으론 좀 뿌듯했다.
우리가 투어를 시작하면, 이어서 클라루스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부러 우리가 투어를 시작한 이후에 클라루스의 앨범이 나온다는 것 같았다.
[Everlasting Ⅱ]
[룩스를 위한 클라루스]
회사를 옮긴 이후, 클라루스의 앨범이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컴백 이틀 전인 오늘, 클라루스 공식 채널에 뮤직비디오 티저가 올라왔다.
클라루스의 두 번째 앨범이자, 두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Everlasting’은 클라루스를 순식간에 스타로 만들어준 곡이면서, 치기 어린 첫사랑을 강렬한 힙합 사운드로 표현해낸 곡이었다. 실험적이면서, 소년적인 초기 앨범.
그리고 전원 재계약 후에, 그 앨범에서 이어지는 제목을 들고나왔으니, 전 세계의 룩스들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클라루스와 룩스의 관계를 생각했다.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지지해온 관계. 그리고 추억을 함께 쌓아온 관계였다. 이번 앨범의 반응은 분명히 좋을 거라고, 음악을 들어보기 전부터 확신했다.
[다온이 형 : 믹싱하고 너한테 처음 보내는 거야 멤버들도 다 듣기 전에 보낸다ㅋㅋㅋ]
[다온이 형 : 네 덕분에 클라루스 앨범이 다시 나왔어 고맙다 해원아]
비행기가 지면에서 멀어진 후, 나는 이어폰을 끼우고, 핸드폰에 받아 놓은 음원을 확인했다.
하늘에서, 누구보다 먼저 저 땅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돌의 미공개 신곡을 듣는 기분은 솔직히 짜릿했다.
그리고 곡이 좋았다.
아, 진짜.
무지하게 좋았다.
선택은 클라루스 본인들이 했지만, 내가 나름 거들지 않았으면 이게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공치사할 만하다고 본다.
* * *
퍼스트라이트의 투어가 한창 진행 중이던 5월 첫째 주. 클라루스의 음원이 올라오기 하루 전, 멤버들은 모처럼 단체 라방을 켰다.
클라루스는 바로 기념비적으로 빠르게 라이브방송을 터트리고, 한 시간 뒤에 기술적으로 준비를 한 후에야 다시 라이브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재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