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5화
클라루스는 라방이 시작되고 한동안 자기들 하고 싶은 말을 제각각 떠올렸다. 원래 여섯 명 다 말이 많기로 유명한 팀이라, 잠시도 오디오가 비지 않았다. 여섯 명 중에서는 말수가 적은 듯이 보이는 최효원과 박윤태 조차도 자세히 보면 목소리가 작다 뿐이지 구석에서 쫑알쫑알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멤버들이 자기 할 말을 하느라 오디오가 연달아 물리자 리더 서민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재를 시작했다.
“멤버분들, 앨범 얘기 좀 합시다. 앨범 얘기.”
“윤태 형 자기 입으로 자랑할래, 내가 해줘?”
막내 홍여름이 묻자 홍여름과 함께 막내즈에 속한 박윤태가 말했다.
“내가 하는데, 나 말 재미있게 못하니까 중간에 리액션 잘해줘.”
“어구, 형아가 해줄게, 해줄게.”
옆에서 송다온이 등을 슥슥 문지르며 말하자 박윤태가 익숙하게 체념하고 입을 열었다.
“이번 앨범에 대한 걸…… 제대하기 전부터 계속 가슴에 품고 있었어. 초심에 대한 건 아니야. 나는 내가 꽤 초심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맞아, 윤태가 진짜 안 변했어.”
채연재가 뒤에서 슥슥 박윤태의 머리를 쓰다듬자, 보고 있던 팬들의 손도 빨라졌다.
[윤태 머리 닳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
[윤태 혼자 있으면 막내즈인 거 안 느껴지는데 형아들 다 모여있으면 누가 봐도 막내즈야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너무 기특하다 눈물 나ㅠㅠ]
[표현은 덜 해도 클라루스에 클라루스 안 사랑하는 멤버는 없다 진짜…….]
“근데 이게, 우리 앨범에 너무 신중 하려다 보니까…….”
그거까지 말하고 박윤태가 힐끔 멤버들 반응을 살폈다. 성향이 조심스러운 편이라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걱정하며 눈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러자 서민혁이 말했다.
“통과 안 되고 계속 회사에 있었지, 기획안이.”
“맞아. 근데 그거를…… 이거 말해도 되나?”
“윤태는 안 되는 얘기 다 빼면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겠다.”
말수 적은 최효원이 드디어 답답함을 못 참고 한 마디 하자 박윤태를 포함한 멤버들이 한바탕 웃었다. 박윤태가 말을 이었다.
“근데 해원이가 1본부 A&R팀이랑 몇 번 일을 했잖아. 그러다가 그 기획안을 효준이 형한테 알려주고, 그러면서 보이드 엔터에서 쭉…… 와, 나 울컥한다, 어떡해.”
박윤태가 말하다 멈추자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리더를 봤다. 결국 팀에서 제일 눈물이 적은 서민혁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태가 그걸 정말 애정으로 만들었거든, 룩스들. 그걸 딱 해원이가 찾아줬으니까. 이미 한 방 먹은 거지. 그리고 해원이가 얘가 프로듀서니까 진짜 클라루스 장기 계획을. 룩스, 장기 계획을.”
서민혁이 양손 검지와 중지를 접어다가 펴며 ‘장기 계획’을 한 번 더 강조하고 말을 이었다.
“만들어 왔는데. 그전까지는 클라루스 앞에 엄청나게 큰 장벽이 생긴 것 같았거든. 근데 그걸 보니까 보이더라고. 클라루스랑 룩스가 같이 쭉 가는 미래가.”
“너무 신기해, 내가 머리로 생각했는데 정리를 못 한 걸 해원이가 다 정리했더라?”
채연재의 말에 송다온이 말했다.
“해원이가 원래 정리하는 걸 좋아해.”
“다온이가 해원이 진짜 이뻐해.”
“아니, 우리 계약하는 날 여름이가 연재 형한테 해원이 우리가 데려가서 키우자고 했잖아.”
“아, 맞아, 맞아.”
송다온의 말에 홍여름이 뒤로 넘어가게 웃었다.
그러다 여섯 명은 곧 클라루스가 계약하던 날, 박윤태를 속였던 것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멤버들은 놀리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었고, 팬들은 그냥 울었다.
[아직도 계약일 얘기 하면서 웃을 수 있는 게 꿈같다ㅠㅠㅠㅠㅠㅠ]
[장기 계획ㅠㅠㅠㅠㅠㅠ]
[↳민혁아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서리더가 장기 계획 강조할 때 울컥 눈물 터짐]
[↳미치겠다ㅠㅠㅠㅠㅠㅠㅠ]
클라루스 팬들이 오열하고 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 저절로 대규모가 되어버린 라방에 케이팝 팬들, 심지어는 케이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큰 관심을 보였다.
[요즘 멤버들 표정 너무 좋지 않아?]
[↳행복해보임]
[↳안 그래도 룩스들이 클라루스 새학기 시작한 애들 같다고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X나 귀엽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클라루스 멤버들이 정해원이 큰일 했다고 하더니 진짜네ㄷㄷㄷ]
[↳그니까ㅇㅇ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일이었잖아……?]
[↳정해원 진짜 몸이 몇 개야]
[룩스 입장에서 클라루스가 왜 대형들 아무도 안 가고 보이드 엔터에 가게 됐는지 너무 납득되는 라방이었어…….]
[↳진짜ㅠㅠㅠㅠㅠㅠ 결국 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청사진 제시해준 회사로 간 거잖아ㅠㅠㅠㅠㅠ]
[↳↳나 또 운다ㅠㅠㅠㅠㅠㅠ]
[↳↳아 겨우 눈물 멎었는데 또 터지네]
[오늘 라방 보고 클라루스가 팀에 애정 없네 어쩌고 하던 사람들 다 할 말 없어질 듯ㅎㅎ]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
[↳팬이 아닌 사람이 봐도 팀애정 X나 넘치던데]
[난 룩스도 아니고 그냥 케이팝 즐겨 듣는 사람일 뿐인데도 해원이 너무 고맙다]
[↳룩스 입장에서는 그냥…… 아 뭔가 말로 못하겠다]
[↳평생 못 잊을 듯]
[↳해원아ㅠㅠㅠㅠㅠㅠ]
[안녕하세용 햇살이인데용 스트리밍 한 번씩 해주시면 감사와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올게요]
[↳이미 하고 있지만 뮤직비디오도 봐야겠다]
[↳아니 근데 퍼라팬들은 왤케 말투가 다 퍼라팬 같냐ㅋㅋㅋㅋㅋㅋㅋ]
[↳↳신기한게 느낌표 없어도 뭔가 민조 같음ㅋㅋㅋㅋ]
[↳↳↳맞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로체스터 나오면 바로 보러 가야지]
[↳와 로체스터 나오면 정해원 커리어 진짜 미친 거 아닌가]
[↳그냥 전세계가 정해원 알 듯]
[↳이미ㅋㅋㅋㅋㅋㅋㅋ클라루스 재계약+이번 라방으로 룩스들은 정해원 다 알더라ㅋㅋㅋㅋㅋ]
[난놈이여]
[↳애초에 악플 때문에 히키 된 사람이 원흉인 재벌 3세 뿌순 것부터가]
[↳↳이렇게 요약하니까 X나 대단함ㅋㅋㅋㅋㅋㅋㅋ]
[↳↳해원이 진짜 잘됐으면 좋겠다……. 이미 잘 되는 거 아는데 더 잘 됐으면 좋겠어ㅠㅠㅠㅠㅠ]
* * *
라방 이후, 정해원의 인지도는 국내외 할 것 없이 치솟았다.
[클라루스가 말하는 정해원이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이야?]
[↳로체스터 사운드트랙 작곡가]
[↳퍼스트라이트 소속 멤버]
[↳안 찾아봐도 네가 곧 알게 될 사람]
[↳↳오우ㅋㅋㅋㅋㅋㅋㅋㅋ]
[↳↳간지나네]
그리고 한 해외 네티즌이 적은 댓글로, 정해원은 ‘안 찾아봐도 네가 곧 알게 될 사람’이라는 설명이 소소하게 유명해졌다.
그 설명은 퍼스트라이트가 해외투어를 하는 사이에 차분하고, 그러나 속도감 있게 증명되었다.
로체스터의 개봉이 머지않아, 사운드트랙이 아주 짧게 삽입된 영화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자 그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다.
[미친 로체스터 오슷 개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
[심장 개같이 떨린다]
[정해원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사운드트랙 딱 두 마디? 나오는데 이렇게 뽕찰 일인가ㅋㅋㅋㅋㅋ]
[↳X나 뽕차ㅋㅋㅋㅋㅋ]
[↳역시 안 찾아봐도 네가 곧 알게 될 사람]
[아니 근데 퍼라 한국에 없는 사이에 한국에서 X나 유명해지네ㅋㅋㅋㅋㅋㅋ]
[↳정해원이 유명해지는 거지]
[↳↳이건 맞지]
[↳↳우리 부모님 정해원은 아는데 퍼라는 모름]
[↳↳↳우리 집도ㅇㅇ]
그 시간 VVV엔터.
스파이, 4본부 매니지먼트팀 팀장 박중운은 모처럼 있는 1-4본부 매니지먼트팀 회식에서 정해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와, X발. 퍼라 저거 급 차이 너무 나는 거 아니냐?”
박중운 팀장은 원래 ‘퍼라’, ‘퍼스트라이트’, ‘정해원’ 키워드에 귀가 열려 있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마치 그 키워드에 알람을 켜놓은 것처럼 그 단어들이 들리면 저절로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박중운 팀장은 옆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의심받지 않기 위해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사이에 매니저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좀 따라붙을 만하면 따돌리고 X라 달리잖아. 야, X발 저렇게 잘 될 줄 알았냐. X같네.”
“아, 여기 들어올 때 보이드가 알맹이 다 빼먹을 줄 알았냐.”
정해원에게 불만이 있었나? 라고 생각하며 박중운 팀장이 긴장하는데 매니저들이 말을 이었다.
“X나 상남자야.”
응?
“이춘형한테 들이박을 때 나 복도에서 구경하고 있었잖아. 이야, 나랑 상관없는데도 설레더라.”
“이게 재미없을 수가 있냐.”
아. 반응이…… 좋았구나?
“X발 이춘형 X같은 게 매니저가 지 매니전 줄 알잖아. 지 수행비서 있는데 왜 나한테 담배심부름을 시켜.”
그동안 이춘형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던 듯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매니저들은 뒤늦게 뒤에서 담배를 피우던 박중운 팀장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인사하고 들어갔다. 저렇게 놀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본인이 강효준, 정해원과 어느 정도 연계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스파이의 덕목이 신분 노출을 하지 않는 게 아니었나. 박중운 팀장은 새삼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 묻어가며 긴 세월을 스파이로 살아가는 프로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보다.
스파이는 최근 알아낸 정해원에 대한 의문들을 손에 쥐고 만지작대고 있었다. 그러다 왜 이렇게 오래 나가 있냐고 성화인 4본부 매니지먼트팀으로 되돌아갔다.
* * *
로체스터 메인 예고편이 업로드되었을 때, 나는 런던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짠 것도 아닌데, 로체스터 음악감독의 고향에서 콘서트를 하게 됐다. 공항에 도착해서, 멤버들은 호텔로 가고 나는 누나네 집으로 향했다.
나는 누나네 가족이 사는 곳에서 콘서트를 하는 게 엄청 벅찬데, 누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크했다.
[누나 : 어 그냐]
그렇게 세 글자 보냈다. 이렇게 감수성이 메마른 사람이 어떻게 예술가가 됐는지 의문이다. 아마 예술에 모든 감수성을 써버려서, 동생에게 쓸 건 남지 않은 걸 수도 있겠다.
현지에서 공항에서 누나네 집까지 차를 준비해줘서 가고 있을 때, 나는 스파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별로 스파이가 알아 와줄 정보가 없어서, 한동안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냥 투어 돌아와서 밥이나 먹기로 약속했다.
그랬는데 웬일로 전화했나, 싶어서 전화가 끊긴 후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응, 형.”
-해원아. 나…….
“응?”
-너 혹시, 회사 차릴 거면 나 데려가.
“……어? 웬 회사?”
이 형 뭐지?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잠깐 생각하다가 나는 허 웃었다.
아무래도 박중운 팀장이 안 것 같다. 내가 한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걸.
진짜 몰래 했는데. 세상 아무도 모를 텐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알아냈으면 너무 충격이었겠지만 스파이였기 때문에 기함할 정도는 아니긴 했다. 좀 섬뜩해서 그렇지.
“……어떻게 알았어, 도대체?”
내가 묻자 박중운 팀장이 말했다.
-그냥 저절로…….
“응,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허 웃었다. 그리고 도대체 뭘 어떻게 발견한 건지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