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66화 (36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6화

내가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스퀘어.

내가 보고 온, 내가 과거의 미래에서 만든 걸그룹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형, 뭘 어떻게 알았는지 소통을 해야 내가 형을 믿지. ‘저절로’라고 하면 내가 형을 어떻게 믿냐.”

-아…….

내 말에 신중하게 고민하던 박중운 팀장이 말했다.

-아니, 내가 엔터 쪽에서 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웬만하면 확인을 하는데…….

그걸 왜 확인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건 스파이의 취미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스파이가 말을 이었다.

-아이돌 연습생 중 한 명이 네가 팬사인회에서 곡 주기로 약속했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그래서 확인해 보니까 그 친구가 진짜로 네가 사인회에서 곡 주기로 했다고 약속한 포스트잇을 들고 다니더래. 그걸 누가 우연히 봤나 봐. 연습생한테 너한테 곡 받는 게 얼마나 하늘 같은 일이겠냐. 바로 소문이 났지.

“……어, 근데?”

-근데 네가 그런 약속을 허투루 하고 다니는 애가 아니잖아? 그래서 신기해서 좀 더 알아봤는데…….

박중운은 그 ‘좀 더 알아본’ 이야기를 이어갔다. 좀 알아본 정도가 아니었는데, 나도 스파이에게 익숙해졌는지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박중운 내가 생각하는 멤버들이 누군지, 내가 왜 박종렬 엔터의 지분을 가졌는지도 거의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내 생각에 너는 걸그룹을 만들고 싶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아.”

나는 이제 좀 납득을 했다가, 다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물었다.

“형 근데.”

-어.

“형 브삼 팀장이잖아. 내가 회사 세우면 나 따라오겠다고?”

-네가 네 사람 굶어 죽게 할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고맙네.”

뭐, 어쨌든 내가 걸그룹을 만들려면 분명히 매니저가 필요한 게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믿을 만한. 음원 유출한 사람을 믿을 만하다는 게 이상하겠지만, 왠지 믿을 만하다, 진짜로.

나는 말을 이었다.

“2년 뒤에 준비됐으면 좋겠어. 이름은 ‘스퀘어’고 멤버는 다섯 명이야.”

-응.

“내가 회사를 차릴 건 아니고, 레이블 내달라고 할 거야. 효준이 형한테. 난 사업은 자신 없거든.”

-그렇구나.

“그리고 내가 프로듀싱 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해.”

-그렇지. 화제성 면에선 아깝지만, 네가 여돌 프로듀싱 한다고 어그로 끌릴 걸 생각하면…….

그 말이 맞았다. 나는 곧 확답을 했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하자고?

“같이 일하자고.”

어쨌든 이상한 쪽으로 유능하니까…….

이쯤 됐으면 슬슬, 스파이를 믿어볼 때도 된 것 같았다.

* * *

“아, 장난하냐고.”

정해원의 누나 정수연은 비장하게 짐을 챙기고 있는 앤서니 맥긴리를 보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앤서니 맥긴리는 마지막으로 백팩에 퍼스트라이트의 응원봉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처남과 거리를 두고 싶어.”

“뭔 소리야, 그러니까.”

“머글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아.”

“내가 보기엔 퍼라팬들도 의아할 것 같은데?”

물론 정수연도 동생이 런던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에 감동하긴 했다. 우여곡절을 넘어서, 이제 명실상부 스타가 된 동생이 공연을 위해 찾아오는 것 아닌가. 뿌듯했다.

하지만 앤서니 맥긴리 정도는 아니었다.

초대권을 주겠다는데도 ‘일단 티켓팅을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결국 초대권으로 가기로 했다.

어찌 됐든 본인이 나고 자란 지역에서 퍼스트라이트가 공연을 하는 건, 팬 입장에서 굉장히 뜻깊은 일인 모양이었다. 공연이 정해진 날부터 들떠서 난리더니, 갑자기 정해원이 여기 와서 묵을 거면 자기는 아틀리에에 가서 자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날 공연에서 볼 건데, 처남인 정해원과 퍼스트라이트 정해원이 섞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나.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도대체 뭔 개소리냐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앤서니 맥긴리는 ‘머글은 이해모테……’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틀리에로 출발 준비를 마쳤다.

노을이는 또 노을이대로, 콘서트에 연령 제한이 만 7세라, 이제 36개월 고작인 본인은 입장할 수가 없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왜 나는 못 가는 거야? 왜? 왜 안 돼?”

“거기 너무 시끄럽고 그래서.”

“그럼 언제 가?”

“노을이는…… 좀 많이 남긴 했어.”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큼 더 살아도 못 간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딸렸다. 정수연은 대충 얼버무리며 이 복잡한 상황을 만든 정해원에게 화풀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 집에 강경 햇살이를 둘이나 만들어서 사람 피곤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현관 쪽에서 정해원이 누군가와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정해원이 여기까지 데려다준 현지 매니저와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다가 노을이를 발견하고 두 팔을 벌리며 달려왔다.

“노을아!”

“삼촌아!”

‘삼촌아’라는 말에 정해원이 온 표정으로 웃었다. 팬인 앤서니 맥긴리는 처남과 아이돌을 분리해서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떠났는데, 정작 정해원이 웃을 때는 누가 봐도 아이돌 그 자체였다. 쟤는 삶이 아이돌인데 뭐가 헷갈린다는 건지.

“야, 난 안 보이냐?”

“오구, 노을이. 왜 이렇게 많이 커써어?”

그렇게 못 들은 척 노을이를 안아 들더니 정수연에게 물었다.

“매형은?”

“그게 진짜 어처구니없는데, 좀 들어봐.”

정수연이 앤서니 맥긴리가 아틀리에에서 자게 된 심오한 사연을 털어놓자 정해원 본인도 좀 이해를 못 하고 ‘어어……?’ 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 있지.”

“뭐가 그럴 수 있어.”

“햇살이들이 하는 건 다 그럴 수 있는 거야.”

“넌 진짜 아이돌이다.”

“그렇다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비행기를 오래 타서 목욕부터 하고 싶어 하는 정해원에게 노을이가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삼촌 놀러 가. 지그음.”

“지금?”

“응, 밖에.”

그러자 정수연이 말했다.

“얘가 은근 자기 삼촌 아이돌인 거 자부심 장난 아니야.”

“진짜아? 고마워, 우리 노을이.”

그러고 누나로서 보기에는 주접을 떨더니 캐리어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옷만 갈아입고 나가자.”

“자, 뭘 나가.”

“비행기에서 계속 잤는데 뭐.”

“마스크는 왜?”

“나 알아볼까 봐.”

“누가 널 알아봐. 연예인이야?”

“믿기지 않겠지만 나 연예인이라니까?”

오늘날도 더운데, 그렇게 오래 비행기 타고 온 애가, 마스크까지 들고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노을이가 워낙 강경하게 나가자고 하고 있어서, 일단은 같이 나가보기로 했다.

평소에 노을이는 누가 봐도 정수연 2세였다.

스무 살부터 어떻게든 예술가로 살아남겠다고 이 악물고 버티던 독립심이 노을이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걸을 수 있으면 최대한 자기가 걷지, 누가 안아주는 걸 은근 자존심 상해했다.

그런데 오늘은 밖에 나갔더니 두 걸음 걷고 안아달라고 외삼촌에게 팔을 벌리고 가는 거였다.

“……쟤가 최애인가 봐.”

정수연은 최대한 햇살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며 중얼거렸다.

놀이터에 나왔더니 노을이는 정해원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만나는 친구, 친구 부모님들에게 외삼촌을 소개해 주고 다녔다.

“우리 삼촌이야. 아이돌이야. 노래도 만든다?”

그렇게 TMI를 남발하는데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반갑게 리액션을 해 주고 있었다.

하필 모처럼 날씨가 기가 막혀서, 온 런던 사람들이 죄다 나와서 광합성 중이었다. 정노을, 에블린 노을 맥긴리의 적극적인 홍보가 먹혔는지 그 사람들이 다 모여와서 냅다 사인을 받고 있었다.

누군지는 알고 저러나, 싶었는데 알고 그러는 게 금방 증명됐다. 근처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 직전인 팬들을 발견한 정수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마스크 써도 다 알아보네.”

팬들은 점점 늘어났다. 퍼스트라이트가 런던에서 콘서트를 할 거라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듯했다. 다들 얼굴이 상기 되어 있었고, 심지어 어디선가 응원봉들이 튀어나왔다.

누나가 영국 사람과 결혼해 영국에 산다는 점, 심지어는 영국인 음악감독과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들 때문에 유럽에서도 특히 영국에서 정해원이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사인을 해주다가, 정해원은 인사를 하며 노을이와 함께 정수연에게로 돌아와 말했다.

“미안한데 우리 들어가야겠다.”

“뭐가 미안해.”

그렇게 이야기하며 세 사람은 차에 타 집으로 향했다.

노을이는 이 상황이 신이 나서 상기 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아이돌의 삶 간접 경험에 지치기도 했는지 기절하듯 잠들었다. 정수연은 노을이를 침대에 눕혀두는 정해원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었다.

“신기하네.”

“아니, 몇 년 차인데 내가 아이돌인 게 아직도 신기해.”

“평생 신기해, 평생. 넌 사람들이 너 좋아해 주는 거 감사한 줄 알아.”

“맨날 감사해하지.”

정해원이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이내 말했다.

“근데 누나가 신기하면 안 되지 않아? 엄마, 아빠가 나 아이돌 한다는 거 반대했을 때 누나만 떠밀어줬는데.”

“그거 아니면 굶어 죽겠더라고.”

“그래?”

정해원이 그렇게 되물으며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정수연 입장에서 아주 신기하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정해원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냥 딱 그거다, 싶었으니까.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그랬다.

그래서 대신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세상에 상처받고 방에 틀어박혔을 때는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이라 더 그랬다. 그렇게 공격받기 쉬운 직업인 줄 알았으면 진작 말릴걸. 그렇게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신기한 건 그거였다. 그런 오르내림 끝에, 다시 아이돌 아닌 정해원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노을이가 일찌감치 잠든 덕에 남매는 간만에 영화를 틀어놓고 근황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리허설 후 콘서트 당일. 정수연은 외삼촌의 콘서트에 못 간다는 사실에 통곡하는 노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비장한 앤서니 맥긴리와 집을 나섰다.

긴 굿즈줄을 신기해하고, 팬들이 자기들끼리의 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미 퍼스트라이트 콘서트를 꽤 왔는데, 한국 외에서 공연을 하는 건 처음 보다 보니 새삼 각국의 공연 문화가 조금은 있구나, 싶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서 앤서니 맥긴리가 감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런던…….”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정수연은 공연장에 가득 찬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엄청난 인원이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응원봉을 꼭 쥐고 있는 앤서니 맥긴리를 힐끔 본 후 무대 쪽을 보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공연장은 퍼스트라이트의 노래와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시작하네.”

정수연은 무대를 보았다.

공연 시작.

옆에서 앤서니 맥긴리가 하도 떨고 있으니까 정수연도 괜히 떨렸다. 보는 사람도 이렇게 떨리는데, 공연하는 사람은 안 떠는 게 신기했다.

* * *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투어가 마무리되기 직전인 9월 첫째 주.

첩보 영화, 로체스터 시리즈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그리고 같은 날, 공식 X튜브에는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VESPER’의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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