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8화
인천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박선재가 말했다.
“와, 한국 여름 냄새난다.”
“어, 뭔지 알 거 같다.”
숨에 확, 9월 초의 더운 공기가 섞여 들어왔다.
오늘도 30도가 넘어가는 날씨였는데, 그 더위마저 반갑게 느껴졌다. 더위도 좋을 정도니까, 오래 해외에 나가 사는 누나가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존재하는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던 게 이제 좀 이해가 된다.
오늘부터 두 주 동안의 휴가가 끝나면 바로 앙콘, 그리고 10월에 앨범이 나왔다. 긴 비행 시간 내내 멤버들은 휴가 동안의 계획을 짜고 있었다.
신기한 게 그 휴가의 계획이 죄다 여행이었다. 해외에서 돌아오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이 공항에서 다시 여행지로 출발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멤버들도 다들 그런 것 같았다.
“형 진짜 안 가?”
한효석이 나에게 물었다.
한효석과 박선재, 그리고 안주원은 치앙마이에 다녀오기로 했다. 나에게도 가겠냐고 물어봤는데, 갈 시간이 없다.
“가고 싶은데, 못 가. 나 할 일 있어.”
내 말을 들은 박선재가 한효석에게 말했다.
“일주일 잠적한다잖아.”
“왜? 그걸 회사에서 허락을 해줘?”
당연히 안 해줬지. 그래서 나름의 계획을 짰다. 제일 마음 약한 쪽을 설득하는 거.
스템아, 스템아. 내가 일주일 잠적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중간중간 깨면 안 되겠냐.
라고 설득해 놨으니까, 아마 중간에 깨게 해줄 거다. 아니면 시간 흐름과 현실 시간을 다르게 해주거나. 뭐,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렇게 마음 약한 스템이를 믿기로 하고, 공항을 나서려는데 매니저가 나에게 말했다.
“해원 씨, 아무래도 인터뷰 좀 해야겠는데요?”
“공항에서요? 저요?”
“기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그냥 지나가면 나중에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멤버들이 먼저 나가고, 나는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멤버들이 나오니까 밖이 급격히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안에서 한동안 대기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공항에 둘러싼 기자들을 마주 보고 있는데 딱 그거였다. 국가대표들 입출국하는 장면…….
갑자기 국가대표가 된 기분을 대리 체험하게 됐다.
대기하면서 들었는데, 한국에서 로체스터 흥행이 초대박이 났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에서 한국 소식을 잘 못 듣고 있는 사이에, 그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제가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났나 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면 오스카?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나랑 가장 거리가 먼 시상식이 아닐까 싶다.
근데 좀 더 생각해 보니 후보에 오르는 게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다. 주제가는 미국인인 폴 존스가 불렀고, 미국 시상식이니까…….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남 일 같다.
사실 나는 곡을 쓰긴 했어도 우리 팀 일이 아니니까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거기다가 영화제에서 주는 주제가상…… 잘 모르겠다…….
나는 속으론 좀 애매한 기분이었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얼굴은 저절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대기할 때 들은 것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질문이 직설적으로 날아왔다.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 부문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니까 거기에 대해서 5분 전에 막 듣긴 했는데요…….
나는 앞에 말은 생략하고 말을 이었다.
“로체스터 시리즈에 합류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VESPER를 부른 폴 존스는 정말로 대단한 보컬을 가지고 있고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저는 솔직히 안 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주제가가 온전히 폴 존스의 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폴 존스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뛰어난 가수였다. 내 직업이 프로듀서라면 그 녀석을 위한 곡을 매일매일 만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점점 더 크게 성장하기까지 하겠지. 동갑내기 뮤지션으로서, 나는 국경을 넘어 폴 존스와 친구가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작곡했고, 최선을 다해서 디렉팅했다. 폴 존스는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마치 신이 이 노래를 위한 길을 잠시 열어준 것처럼 순간적으로 완벽한 녹음을 해냈다.
영화도 영상도 내가 보기에는 정확한 퍼즐 조각을 찾아서 맞춘 것처럼 정확했다.
그렇다면 안 될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설명들을 최대한 아이돌적으로 인터뷰했다. 갑자기 진행된 인터뷰에 이 정도면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지 매니저가 말했다.
“인터뷰 종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종료하겠습니다.”
“해원 씨! 하트……! 하트 해주세요!”
하트의 ‘하’가 나올 때 나는 이미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한숨 쉬었다.
“와, 저 아이돌인데 아무도 하트 하라고 말씀 안 해주셔서 섭섭할 뻔했어요.”
내 말에 기자들 대부분이 웃음이 터졌다. 진심인데 왜 웃지.
“큰 하트 한번 해주세요!”
“자, 케이하트 한번 합니다.”
“해원 씨 오른쪽 봐주세요.”
이제야 드디어 내가 익숙한 상황이 됐다. 나는 열심히 하트를 만들고 잔망을 떨다가 매니저가 진짜 가자고 해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하트 안 했으면 찝찝할 뻔했는데 좀 상쾌하게 돌아갈 수 있겠다.
* * *
“와, 진짜 천생 아이돌이다.”
“해원이는 그냥 막 찍어도 잘 나와.”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충분히 하고 가면서, 하트에 애교도 떨고, 무엇보다 기가 막힌 타이틀까지 뽑아주고 간 정해원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정해원, 아카데미 주제가상 가능성…… ‘솔직히 안 될 이유 없어’]
한 번 악편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 정해원은 매 인터뷰에 조심스럽기로 유명했다. 인기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오히려 그 조심성이 더 커졌다. 그런 정해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더더욱 타이틀로 가치가 있었다.
안 그래도 영화 업계 관련자들은 소규모 영화가 현 상황을 뒤집을 정도의 주제가를 갑자기 들고나올 게 아니라면, VESPER의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오히려 국내 영화계는 신난 것에 비해 잠잠한 편이었다. 해외 영화계는 ‘04년생 페어가 오스카 주제가상을 노린다’라는 게 초대형 이슈였다.
“저 팀 자체가 미국에서 좋았다며?”
“미국도 미국인데, 이번에 앙콘으로 잠실 채웠다던데.”
“뭐야, 잠실 채우면 대단한 거야?”
영화 전문 기자들과 연예부 기자들이 섞여, 정해원에 대한 이야기의 주제는 퍼스트라이트로 넘어갔다. 투어 반응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북미 투어 중에 퍼스트라이트가 수행한 스케줄들이 뭐가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다음 앨범 진입 성적에 대한 추측이 있었다. 대한민국, 아니, 아마도 전 세계의 연예부 기자들이 퍼스트라이트의 다음 앨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 * *
그렇게 투어 내내 봐놓고, 고작 두 주 휴가받아서 서로 못 만난다고 멤버들과 회사 사람들이 모여서 회식을 했다. 강효준 대표가 개인카드로 엄청 비싼 소고기를 사줬다. 역시 재벌.
그렇게 실컷 먹고,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가고, 술을 안 마시는 나는 바로 본가 방향으로 운전을 했다.
“엄마, 아빠. 나 왔어.”
“그래, 얼른 들어와.”
아빠가 나와서 문을 잡아주는 사이에 나는 캐리어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 먹일 진수성찬이 주방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불 조절을 하고 나한테 와서 말했다.
“피곤하지? 빨리 씻고 나와, 일단.”
“나 씻고 투어 얘기할 거니까 다 들어줘야 돼.”
“알았어, 씻기나 해.”
히히. 오늘 이제 우리 부모님은 못 잔다. 내가 밤새워서 투어 썰을 풀 거니까. 부모님도 투어 초반에 두 번을 오셨었지만, 그 뒤의 투어에서 할 얘기가 무지하게 많이 쌓였다. 도시별로 에피소드가 몇 개씩 있었다.
나는 씻고 나와서 잘라준 수박을 먹으며 예고한 대로 투어 얘기를 떠들었다. 그러다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내 방으로 들어왔다. 눕기 전에 난 최소 20시간은 잘 거라고 예고하고 왔다.
오랜만에 내 방 침대에 누우니 기가 막히게 아늑했다.
[‘과거의 미래’를 수정하세요]
[현재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퍼스트라이트 정해원 외 6인’의 정신력이 회복됩니다]
[수정할 ‘과거의 미래’를 확인합니다]
[확인 중…….]
그리고 여느 때처럼 숫자 세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나는 과거의 미래에서 눈을 뜨자마자 일단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는 솔직히, 진짜 솔직히. 아아주 가끔, 매니저 형들이나 강효준 대표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보면 딱 한 대만 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물론 햇살이들이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바로 가라앉히지만.
그런데 과거의 미래에서는 어차피 흡연자 진행중이니까 여기 온 김에 한 대 정도는 피워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랬는데.
주머니에 담배가 없었다. 안주머니, 교복 재킷 주머니, 바지 주머니까지 다 털어 봤는데 없었다.
어, 잠깐만. 교복 재킷?
나는 멈칫했다가 손을 넣은 주머니를 들어봤다.
“……이건 예상 못 했네.”
“정해원, 뭐 해?”
너무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봤는데, 나는 욕이 저절로 나와서 대신 그냥 웃었다.
같은 소속사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배신자1, 손절한 내 옛친구. 가슴팍에 ‘퍼펙트 엔터 우하정’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붙인 우하정이 서 있었다.
체육관에 남자 연습생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아, 이 체육관. 맞다, 이런 곳이었지.
사람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건 냄새라고 했었나. 그때 그 긴장감과 체육관의 냄새, 연습생들의 새 옷과 향수가 뒤섞여 있던 그 냄새가 나니 기억이 확 돌아온다.
우하정이 내 소매를 꽉 쥐며 말했다.
“여기 대형들 다 왔어.”
“어, 알아.”
“……너 왜 이래? 이미지 만들어?”
그치, 내가 이 무렵에 엄청…… 나댔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표적이 될 만했구나, 라는 생각은 든다.
우하정이 말했다.
“저기 진짜 잘생긴 애 있더라.”
“오……. 오?”
당연히 안주원이 있는 줄 알고 돌아봤는데 신지운이 있었다. 아, 맞다. 쟤 잘생겼었지……. 잊어버린 지 좀 돼서 거기 신지운이 있는 거에 많이 놀랐다.
눈이 마주쳐서 히 웃었더니 신지운이 검지를 옆으로 까딱까딱하며 고개 돌리라고 했다. 꼴아보지 말란 거였다. 하, 저 새끼가 어떻게 아이돌이 돼서 아기자몽이에여>< 이러고 있지? 내가 열심히 사람 만들었다, 참…….
아무튼 저거는 어차피 내가 공들여 사람 만들 거니까 놔두고, 나는 심호흡 한번 한 후에 체육관을 둘러봤다.
여기 오면 트라우마가 올라올 줄 알았는데 진짜 이상하게, 그냥 괜찮았다.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애기들이던 멤버들 볼 생각이 그 트라우마를 무게감 있게 눌러 버렸다. 특히 우리 막냉이. 흑, 개기엽겠다.
아니, 근데.
스템아, 스템아.
나 여기서 뭐 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