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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69화 (36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69화

“저기 진짜 잘생긴 애 있더라.”

연습에 집중한 정해원에게 우하정이 말했다. 정해원은 힐끔 우하정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쳐다보자마자 ‘티케 신지운’이라고 이름표를 단 연습생과 눈이 마주쳤다. 빨리 시선을 돌린 정해원이 말했다.

“잘생기긴 했네.”

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데뷔하겠구나, 싶어서 허탈감까지 느끼는데 우하정이 말했다.

“와씨, 어떡하냐. 해원아, 무섭다.”

“괜찮아, 너 잘생기고 실력도 있잖아.”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정해원이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안 되겠다. 나 나가서 노래 한 번만 더 연습하고 올게.”

“너도 쟤 얼굴 보니까 쫄리지?”

“경쟁할 마음도 안 들어.”

정해원은 대답하고 보컬 연습을 위해 잠깐 체육관을 나갔다.

대형 소속사 연습생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손이 달달 떨렸다. 정해원은 두 손을 꽉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잘하자. 춤 열심히 추고, 노래도 열심히 하고, 인사도 열심히 하고. 뭐든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정해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몇 번, 공연을 잡아 커버 무대를 했다. 학교 강당, 소규모 야외 공연장, 병원 등 여기저기를 가봤다.

하지만 방송국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건 처음이다. 얼마나 기다리던 무대인가. 무조건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자기 차례가 되기 직전까지 연습을 한 정해원이 돌아오자 우하정이 등을 퍽 치며 말했다.

“왜 이제 와!”

“연습했다니까.”

“네가 뭐 지금 연습하면 느냐?”

그렇게 말하며 부스로 들어갔다. 정해원은 정신이 없었지만 일단 누군지도 모르고 열심히 인사를 한 후에 안무를 시작했다.

춤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에 노래를 했는데…….

목이 완전히 가서 계속 삑사리가 났다.

어떻게 했는지 겨우 노래가 끝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 본방 때는 정말, 정말 목 관리 잘해서 오겠습니다!”

그렇게 우렁차게 포부를 전하는데, 박경석이라는 피디가 말했다.

“아, 괜찮아요. 잘했어요. 이거 이대로 준비해 오시면 돼요.”

열여덟 살이던 그때는, 그게 정말로 친절인 줄 알았다.

* * *

갑자기 국선아.

스템이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 머릿속도 순간적으로는 컴컴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약에 국선아 때 내가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많이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박경석 PD와 이춘형을 끌어내리고, 그 외의 관련자들이 나와 마주치면 저 멀리 피해 다니게 되니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됐다.

다만 민지호가 종종 지적하는 것처럼 머릿속 한구석에 여전히, 국민이 나를 선택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남았다.

그건 궁금했다. 악편이 없었다면, 대중이 날 선택해 줬을까?

나는 체육관을 서성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해야 할 건 이거다.

1. 악편은 피한다.

2. 국선아가 끝나기 전에 조작을 밝힌다.

3. 그 후에 TRV가 했던 것처럼 프로젝트 그룹을 제안한다. 강효준을 껴서.

그렇게 하면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더라도, 강효준이 어떻게든 해줄 거다. 그치, 이 아저씨 설마 알아서 하겠지……? 하, 왜 이렇게 미덥지가 않지.

워낙 참가자가 많으니까 체육관에 부스를 만들어 놓고, 참가자들이 들어가서 준비한 걸 보여주면 제작진들이 그걸 중심으로 방송을 구성해 나갔다. 첫 방송에서 나가게 될 개인, 혹은 소속사 단체 무대 준비였다.

나는 이때 우하정과 춤을 췄고, 제작진은 우리 둘 모두에게 노래를 시켰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시작이었다. 나는 그날 특히 더, 노래를 못했다.

안 그래도 목이 약한데, 며칠 동안 매일매일 노래만 부르고, 부스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 목이 안 갈 리가 없다. 내 기억에 음이탈이 열 번은 났던 것 같다.

하필 그 부스에 박경석 PD가 있었고, 그걸 그대로 살려서 첫 방에 어그로를 끌었다. 그건 성공적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방음과는 거리가 먼 부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AR을 틀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어느 쪽이든 음악은 필요했다.

내가 자꾸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니까 우하정이 붙잡아서 끌고 왔다.

“아, 뭐 해? 왜 자꾸 나 두고 혼자 다니냐?”

……하, 불편하다. 나 이 새끼랑 이제 친구 아닌데.

하지만 막 18살이 되던 해 3월에는 여전히 우하정이 나에게 제일 친한 친구였다. 우리끼리 핸드쉐이크도 있었다. 그래…… 그땐 그랬지…….

나는 생각하며 우하정과 다시 안무를 맞춰봤다. 이때 연습을 하도 많이 해서 그냥 노래를 틀자마자 몸이 움직였다. 빅 블루의 ‘선(線)’이었다.

이건 춤에 관한 노래였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좋은 점만 뽑아서 섞어 놓은 것 같은 안무는 보기에 쉬웠고, 잘 추기는 끔찍하게 어려웠다.

……경연에서 이딴 보기에는 쉽고 잘 추긴 어려운 곡을 고른 게 누구야? 설마 퍼펙트 엔터 연습생 중에 하나뿐이던 스키퍼는 아니겠지…….

물론 내가 골랐다. 팬심이 그만…….

나는 내가 아는 걸 반복해 연습하는 대신 핸드폰으로 빅 블루의 안무 영상을 확인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연습생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던 디테일들이, 지금 연차쯤 되니까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우하정은 나를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 안다. 연습생 때라고 해서 프로와 연습생의 실력 차이가 안 보이는 게 아니다. 다만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를 모를 뿐이지.

나는 빨리 디테일까지 다 잡은 후에 말했다.

“됐다. 끝. 이제 목 아끼고 있자.”

“너…… 뭐야?”

“아, 맞다. 하정아.”

거의 24시간 붙어 지내던 우하정이 나에 대해서 이상한 걸 눈치채기 전에, 나는 말을 돌렸다.

“근데 너 클렌징 있냐?”

“……뭔 클렌징?”

“없구나. 편의점에서 사 올게.”

“어?”

그 디테일만큼 중요한 건 지금 한 이 미친 듯이 더운 메이크업을 지우는 거다.

* * *

“89번, 90번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박경석 PD는 부스로 들어오는 퍼펙트 엔터 연습생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저건 또 무슨 전략이야.’

한쪽은 세팅을 다 해놨는데, 다른 한쪽은 민낯이었다.

정해원.

퍼펙트 엔터에서 우하정을 확고하게 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메이크업부터 차이가 나면 그걸 시청자들까지 알아차릴 것 아닌가. 사장이 생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박경석 PD는 시작해 보라고 고개를 까딱했다.

그리고 빅 블루의 선이 흘러나오자 박경석 PD는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쳤다. 연습생들이 고를 곡이 아니었다. 빅 블루 커버는 티케 연습생들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맛을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근데 X소 연습생들이 그걸 하네. 하긴, X소라 저걸 골랐겠…….

……어? 그걸 살리네?

박경석 PD는 자리에 바로 앉았다. 지금까지 본 선 커버 중 단연 최고였다. 특히 90번, 정해원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너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툰 구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무대 경험이 없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너무 튈 거란 걸 아는지 힘 조절을 하고 있었다.

“보컬 준비한 거 있어요?”

옆에서 작가가 묻자 우하정이 먼저 자신 있게 보컬을 선보였다. 역시 퍼펙트 엔터가 자랑하는 보컬다운 실력이었다. 그러니까, 대형의 메보들만큼은 아니지만 꽤 했다.

그 직후 정해원이 한 번 더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자작곡, 해보겠습니다.”

……어?

정해원은 연습생들의 각종 특기 중에 제일 흔한, 피아노 연주를 보여줄 수 있게 가져다 놓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프로필에 초등학생 때 콩쿨 경력이 있긴 했다.

정해원이 피아노를 치더니 손을 멈추고 건반 하나를 눌렀다. 작가가 말했다.

“아, 그 건반 살짝 나갔죠? 녹화 때는 잘 조율한 걸로 둘 거예요.”

“넵,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더니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박경석 PD가 작가에게 말했다.

“방금 거 써야지.”

“무조건 써야죠.”

절대음감. 이런 캐릭터를 안 써먹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정해원은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시작했다.

[몽롱한 밤 더 이상 지워지지 않을 악몽은 검은 흔적]

연습생을 지나치게 많이 한 몇몇 연습생들처럼 정해원의 목도 쉬어 있었는데, 마치 그 쉰 상태를 예상한 것 같은 곡을 골라…… 아니, 만들어왔다. 몽환적인 음악에, 이미 쉰 목소리를 오히려 더 긁어가며 피아노 소리와 섞어 나가는 게…….

‘아, 천재구나?’

바로 캐릭터가 보였다.

작곡이 가능하고 춤도 미친 절대음감?

뽑아 먹을 거 많겠다.

박경석 PD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노래가 끝났다. 잘하는 보컬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본인의 매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부르니 왠지 모르게 끌렸다.

피아노에서 손을 뗀 정해원은 인사를 하고 우하정과 함께 부스를 나갔다. 그리고 다음 연습생이 들어오기 전, 박경석 PD가 말했다.

“다 좋은데……. 왜 이렇게 날 좀 노려보는 것 같지?”

“에이, 그럴 리가. 독기겠죠, 독기.”

“아니, 진짜로 눈빛이 안 좋았다니까.”

“난 전혀 못 느꼈는데.”

“아니야, 저거 뭔가 성격에 하자가 있긴 한 거 같애.”

평소 예의범절에 매우 예민한 박경석 PD가 찝찝한 기분을 내려놓지 못하고, 다음 연습생이 들어온 이후에도 중얼중얼거렸다.

* * *

나는 잠에서 깼다.

국선아에서의 시간과 비슷하게 흐르기는 하는데, 다른 게 있었다. 내가 깨고 싶을 때 깰 수 있다는 거. 역시 우리 스템이다.

20시간 자겠다던 내가 금방 일어나서 방을 나오자 마당을 쓸던 아빠가 물었다.

“왜 나와, 20시간 잔다더니?”

“갑자기 일할 거 생각나서.”

“두 주 쉬는 거 아니었어?”

“다음 주에 쉬려고. 그때는 집에 와서 진짜 일주일 내내 방에만 있을게.”

“쉬긴? 가게 일 도와줘야지.”

“아니, 내가 무슨 가게 일을 도와줘어. 어차피 시키지도 않을 거면서 맨날 그러네.”

아빠 나름의 농담이다. 가게 일 도우라고, 맨날. 물론 예전에는 진심이었지만.

나는 벌써 가게 문을 연 엄마와 아빠를 한 번씩 꼭 안아주고 잽싸게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강효준 대표의 집에 일단 난입해 작업실로 향했다. 나름 음대 출신이고 돈은 쓸데없이 많으니까 집에 작업실을 만들어놨다. 작곡도 안 하면서.

[형 나 형네 집 작업실 쓸게요]

[음악으로 생존 신고할 테니까 절대 문 열지 마요]

[강 대표 : ?]

[강 대표 : 돌았니]

대답은 저렇게 해도 작업물 계속 보내서 살아 있다는 시늉만 하면 알아서 안 들어올 거다. 아마 세상에서 뮤지션의 요구를 제일 잘 들어주는 엔터 회사 대표일 테니까.

아무도 여기 안 들어오게 할 수 있고, 침대 있고, 작업도 가능한. 내 생각에 일주일을 보내기 가장 완벽한 장소가 여기였다. 나는 바로 내 맥북에 있던 ‘악몽’의 파일을 꺼냈다.

편곡 방향도 못 잡고, 가사도 잘 안 적히고 있었는데 방금 국선아에서 떠올랐다. 확실히 사춘기 막 지난 상태라 원하던 방향이 잘 나왔다. 이 기회에 호르몬 들쑥날쑥할 때 만들 수 있는 곡들 쭉 다 뽑아내야겠다. 히히.

나는 정리를 마치고, 깨자마자 작업할 환경까지 갖춘 후에 다시 과거의 미래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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