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0화
“은석아, 보통 남의 집…… 문 잠가 놓고 집주인한테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게 맞는 거냐?”
VMC 비서실의 친구이자 스파이, 이은석 과장이 미니바에서 술을 꺼내며 말했다.
“이상하긴 한데, 네가 받아줄 것 같으니까 시도하는 거지.”
“…….”
이 정도면 본인이 문제인가, 되돌아보게 됐다. 강효준은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해원 프로듀서님 : 작업 중인 거]
[정해원 프로듀서님 : (사진)]
작업 중인 시퀀서를 찍은 사진을 보냈다.
‘악몽’
[정해원 프로듀서님 : 일주일 걸려영]
[정해원 프로듀서님 : 빠잉]
[정해원 프로듀서님 : ★노크 금지★]
강효준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혹시 일중독도 약처방 해주나. 얘 약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은데.”
“효준아, 그런 약 있었으면 네가 먼저 알았어.”
“……그것도 그렇지.”
어쨌든 어디 돌아다니면서 사고치는 것보다야 작업실에 처박혀서 일만 하는 게 낫긴 했다. 돌아다닐 때마다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다녀서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하면 긴장부터 됐다.
서로가 마시는 스타일로 술을 가져온 이은석 과장이 말했다.
“그럼 VMC에 대해서 얘기 좀 하자.”
“어, 해.”
“핸드폰 그만 보고. VMC에 관심 가져.”
“은석아, 우리 회사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 받는 사람 나오겠다. 배우도 없는데.”
“효준아. 놀랍게도 너네 회사 배우 있다. 주원 씨, 지운 씨 연기했지, 연재 형도 한 번이지만 연기했고.”
“너 오늘 굉장히 논리적이다.”
“난 늘 논리적이고, 솔직히 핸드폰 못 놓을 만해.”
이은석 과장은 빌보트 차트를 확인하고 허 웃었다.
“X나 축하한다, 효준아.”
빌보드 핫백 1위에 클라루스의 신곡이, 2위에 로체스터 주제가 VESPER가 있었다. 그 외에도 클라루스와 퍼스트라이트의 역대 타이틀이 차트인되어 있었다.
보이드 대 보이드.
디펜딩 챔피언이 수성에 성공하거나, 도전자가 새롭게 챔피언이 되거나, 어느 쪽이든 보이드 엔터의 승리였다.
* * *
‘국민이 선택한 아이돌’ 녹화 첫날.
대기실에는 고함이 난무하고 있었다.
“개인 짐 들고 들어오면 안 됩니다. 자리가 없어요, 자리가.”
“물은 한 사람당 한 개! 두 개 가져가신 분 다시 가져오세요!”
“아, 스타일리스트는 입장 안 돼요. 매니저도 한 회사 당 한 분만요.”
“저 이것만 하고 나갈게요!”
“하…… 그럼 빨리 하고 나가세요.”
참가자 99명 중 녹화 전 퇴소한 연습생이 2명. 총 97명이 남았다.
07년생에서 96년생 사이 남자 97명에 매니저들까지,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이대로 녹화가 될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체육관 미팅 때까지는 나름으로 대형을 우대해 주는 은은한 X같음이 있었는데, 오늘은 누가 대형의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난리였다.
정해원은 자기 소개와 안무를 무한 반복 연습하다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 엄청 말도 안 되게 어린애가 있었다.
“물?”
너무 애기라 자기도 모르게 애기한테 말하듯이 물어봤더니 ‘솔라 엔터 박선재’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두 손을 내밀었다.
“네.”
‘녜’ 하고 들린 기분이었다. 저렇게 어린애가 와도 돼? 초등학생 아냐?
그렇게 생각하면서 물을 주니까 박선재가 물을 들고 옆에 쓰러져 있는 연습생을 흔들었다.
“형, 물 드세요.”
“너 먹어라…….”
“형 그러다 죽을 거 같아요…….”
쟤네…… 뭐지? 역할극? 노친과 효자?
정해원이 자기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리며 보고 있으니, ‘솔라 엔터 황새벽’이 몸을 일으켰다. 와씨, 쟤도 잘생겼네. 망했다…….
정해원이 생각하는 사이에 황새벽은 박선재 먼저 물을 먹이고, 자기도 마셔도 되냐고 정해원에게 물을 들어 보였다. 물 안 주면 탈수로 죽을 것 같은 놈이라 고개를 끄덕였더니 물 반 통을 마셨다. 그래도 안 죽었으면 됐지, 싶을 정도로 다 죽어가는 사람이었다. 아마 하나는 어리고, 하나는 체력이 없어서 물을 못 얻었지, 싶었다. 분명 이 난장판에 물 두 통 가져간 놈들이 있을 테니…….
박선재가 남은 물을 돌려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너무 많이 마셨죠?”
“다 마셔도 돼. 돼요.”
“저 열다섯 살이에요.”
“나는 열여덟 살.”
“새벽이 형도 열여덟 살이에요.”
황새벽은 한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하더니 다시 쓰러졌다. 초등학생 같은 연습생이랑, 최소 중년의 체력을 가진 연습생이 같은 소속사에서 왔다니 참 희한했다. 그나저나 둘이서도 서로가 어색해 보였다. 가끔 애매해서 더 어색한 사이가 있는데 저 둘이 그랬다. 하긴, 솔라 엔터 정도 규모면 브삼, 티케나 노브 정도는 아니어도 연습생이 꽤 많을 테니까. 많을 땐 열 명, 죄다 나가서 적을 때는 대여섯 명까지도 연습생이 줄어드는 퍼펙트 엔터와는 다른 게 당연했다.
아무튼 박선재란 애는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애인데,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 쓰러져 있으니 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정해원 역시 아는 건 없었지만, 왠지 이 막둥이를 챙겨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 * *
기억이 난다. 박선재는 내가 물을 줬다는 이유로 한동안 나를 ‘하나뿐인 물을 준 형’으로 번호를 저장해 놨다. 그리고 황새벽은 물을 준 의사여서 ‘수의사’였다. 그때는 이 새끼 뭐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름 아닌 걸로 저장해주던 시기가 있었다는 게 감동이다.
아무튼 내가 과거의 미래로 돌아왔을 때는 그렇게 물을 준 직후였다.
그때는 나도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박선재가 내 뒤를 엄청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박선재는 낯을 가려서 말은 못 걸고 옆에서 나랑 똑같은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황새벽이 인구 밀도에 이미 지쳐 쓰러져 있으니까, 내가 그다음으로 개중 아는 형이 된 거다. 우리 막냉이. 너무 귀여워서 머리며 얼굴이며 벅벅 쓰다듬어주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둘러보니 우하정은 다른 소속사 연습생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쟤나 나나 낯가림이 없고, 낯선 사람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아마 동갑내기에, 24시간 붙어 지냈으니 서로가 서로의 성격을 닮으며 성장한 것 같다.
다시 생각하니 새삼 다시 X같고, 내가 특히 우하정을 마음에서 용서할 수 없었던 건 우리가 세상 둘도 없는 친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분명해진다.
드디어 녹화 시작.
첫 번째 녹화는 프로필만으로 정해진 자기 순위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했다.
어른이 돼서 생각해 보니까 어린애들 모아놓고 무슨 그런 잔인한 짓을 했나, 싶었다. 프로필만으로 투표. 그러니까 정말 프로필 사진과 스펙만 가지고 투표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국선아에 대한 모든 걸 억지로 잊고 있어서 순위는 특히 더 기억나지 않았지만, 낮았던 것만큼은 기억…….
“……어? 높네?”
48위.
나는 내 순위를 받아 들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내 순위와 앞에 모니터에 뜬 프로필을 번갈아 봤다. 여전히 내 기억 그대로, 세상 저런 재수 없게 생긴 놈이 있나, 싶은 톤그로 프로필 사진이었다. 아니, 솔직히 내 기억보다도 더 심각했다.
나에게 표를 준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데뷔조 아홉 표씩을 나눠 투표했고, 30위 밖부터 99위까지는 사실 고만고만한 표차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내 순위를 꽉 끌어안았다.
“순위가 마음에 드세요?”
제작진이 질문해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순위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요, 아무 것도 모르는 저에게 투표해주신 분이 1200분이나 계신다는 게…… 뭔가. 찡해요.”
이렇게 많았구나. 내가 고마워할 사람들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순위표를 들고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는 좌석에 소속사별로 참가자들이 퍼져 앉아 있었다. 우하정이 나에게 물었다.
“어디 앉을까?”
“…….”
“정해원?”
스튜디오에 들어서니까 잠깐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늘 나의 탈락만을 빌던 의자들, 조명, 모든 게 그대로였다.
거기에 첫날 내가 느꼈던 그 마음들까지 생각났다. 데뷔조와 한참 먼 순위를 받고 나서 느꼈던 좌절감과 그 감정들을 이겨보려고 끌어냈던 과도한 자신감. 아마 그건 남들이 보기에 자신감이 아니라, 쫄보의 허세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줬다면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내가 그러하듯, 1200명의 선택에 집중했겠지. 하지만 말이 되나. 단 1초 후의 미래도 예지할 수 없는 열여덟 살의 소년이,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대중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나는 센터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자리를 가리켰다.
“저기 앉자.”
“……왜?”
“저기가 예쁘게 나올 것 같아서.”
조명으로 보나, 카메라와의 거리로 보나 내 얼굴이 제일 잘 나올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앉았다. 이제 나도 프로라고, 내 얼굴이 화면에 어떻게 나오게 되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
모두 착석한 후에 체육관 미팅에서 보여줬던, 소속사별 실력 평가가 있었다. 나는 이미 한 번 다 본 건데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진짜 필사적으로 잊었나 보다.
아무튼 나는 이때 실력 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았고, 민지호와 같은 댄스 조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때 아주 밤낮없이 싸웠었지…….
실력 평가에서의 음이탈 장면이 리플레이된 후, 최하 등급, 그리고 제일 높은 등급을 받은 민지호와의 다툼은 나를 답답한 빌런으로 만드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동시에 나 스스로가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라고 믿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엔 분명히 좀 다를 거다. 여전히 목상태는 안 좋았지만, 춤은 그때보다 훨씬 노련해졌고, ‘자작곡’으로 나의 부족한 보컬 실력을 최대한 눈속임할 테니까.
그사이 크고 작은 소속사들이 골고루 섞여가며 등장했다. 내 직전이 안주원이었는데, 스테이지에 서는 것만으로도 연습생들이 탄성했다. 크, 역시, 퍼라의 얼굴.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노래도 춤도 그냥 그랬기 때문에, 실력 평가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나저나 국선아 때 안주원 노래하는 걸 보니까 지금 얼마나 늘었는지를 알겠다. 칭찬 좀 많이 해줘야겠다.
……근데 원래 안주원이 내 직전 순서였나?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TRV가 끝난 직후가 퍼펙트 엔터 차례였고, 나는 체육관 미팅 때 보여줬던 걸 그대로 보여줬다.
* * *
“……무조건 A다. 그 위 등급 있으면 그거 받을 듯.”
“아, 어떡하냐…….”
“진짜 데뷔 경력 없어? 말이 안 되는데.”
“근데 메이크업이랑 머리 색 왜 저 모양…… 뭐, 나름 괜찮네.”
퍼펙트 엔터. 처음 듣는 소속사였다. 선배도 없고, 데뷔 그룹 자체가 없는 소속사.
그 소속사의 이름을 달고 나온 48위, 정해원은 자작곡을 들고나온 유일한 연습생이었다. 참가자들은 홀린 듯이 자작곡을 듣고 있는 트레이너들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TRV 안주원 쪽을 보았다.
독보적인 얼굴에 시원치 않은 실력.
안주원 본인도 편집 걱정에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