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71화 (37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1화

“언제 갈 거야?”

안주원의 말에 빌린 숙소에 자기 집처럼 누워서 핸드폰을 보던 신지운이 대꾸했다.

“왜 오자마자 가라고 그러냐? 섭섭하게.”

정해원은 잠적하겠다고 투어 전부터 말해뒀었고, 황새벽은 요양을 해야겠다며 과수원으로 떠났다.

안주원은 여행이 가고 싶다는 한효석과 박선재, 두 동생을 데리고 치앙마이에 와있었는데, 혼자 여행 가겠다던 신지운은 이틀 만에 ‘혼자’ 부분을 취소하고 치앙마이로 넘어왔다.

안주원이 말했다.

“한 곳에 네 명 이상 모이면 나머지 애들이 슬슬 불안해한다니까, 자기 빼고 다 모일까 봐.”

“우리 멤버들 좀 피곤하지 않냐?”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아, 외로운데 어떡해. 참아?”

“애초에 네가 혼자 있고 싶다며.”

“혼자 있고 싶었지. 근데 하루면 충분하더라고……. 그보다 겨우 휴가받았는데, 민지호는 그걸 일을 하네.”

“해원이도 일할 걸.”

“하긴, 보나마나 방해 안 받고 일하고 싶어서 잠적했지.”

민지호는 전부터 준비하던 솔로 음원을 마무리하기 위해 정해원의 작업실에서 두 주를 보내겠다고 했다. 정해원이 잠적해서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고 기뻐하던 양이형은 민지호의 휴가 반납에 다시 회사로 끌려와서 노동 중이었다. 신지운이 말했다.

“제일 불쌍한 건 이형이 형이야.”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벌써 많이 벌었지. 우리도 많이 벌고.”

“너무 많이 들어오더라. 돈을 어디에 써야 돼?”

“돈 모아서 숙소 하나 살래?”

“회사에서 해주는 거랑 다른 게 뭔데.”

“……없긴 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수영장에서 목숨 걸고 물싸움하던 한효석과 박선재가 밖으로 나왔다. 한효석이 신지운에게 말했다.

“형, 형이 끓여준 라면 먹고 싶어요.”

“어, 끓여줄게.”

신지운이 말하며 부스럭거리고 라면을 꺼내자 박선재가 말했다.

“지운이 형 옛날엔 진짜 무서웠는데.”

“응, 나도 무서웠어.”

안주원도 공감하자 신지운이 할 말이 없어 괜히 코를 긁적거리고 라면을 끓이러 사라졌다. 한효석은 고기도 굽고 싶다면서 떠나고, 남은 둘이 라면 먹을 자리를 준비하다가 박선재가 안주원에게 물었다.

“형 어제 악몽 꿨지?”

“어떻게 알아?”

“새벽에 깨서 수영장 있는데 돌아다니는 거 봤거든.”

그 말에 안주원이 대꾸했다.

“요즘 자꾸 국선아 때 꿈을 꾸네.”

“피곤하겠다.”

늘 형들 걱정이 많은 박선재가 말을 이었다.

“어떤 꿈인지 말하고 싶으면 말해. 들어줄게.”

“국선아 등급 평가 때, 내 바로 뒤가 해원이었어. 그것도 자작곡 만들어온 해원이.”

“우와, 진짜 공포다. 너무 무서워.”

박선재가 격렬하게 반응해주자 안주원이 흐흐 웃었다.

안주원은 멤버들과 여행을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퍼스트라이트가 없는 세상의 꿈을 아무리 많이 꿔도, 깨서 동생들 얼굴을 보면 바로 진정이 됐다.

그리고 안주원은 머릿속으로 정해원이 작곡한 곡을 떠올려보다가, 결국 연락을 했다.

[해원아 곡 써?]

[악몽?]

그러자 정해원에게서 바로 답이 왔다.

[정해원 : 어떻게 알아?]

[꿈에 나왔어]

그 답에 바로 정해원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누가 봐도 작업하다 만 상태의 정해원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하품을 한 후 물었다.

-어때.

“좋은데, 많이 고쳐야겠더라.”

-어, 일주일 뒤에 수정 버전 보내줄게. 잘 놀고 있어?

“재밌어. 옆에 선재 있어.”

“형, 일주일도 잠적을 못하고 연락해?”

박선재의 말에 정해원이 흐흐 웃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민지호와 황새벽에게도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한 후 라면과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 * *

등급 평가는 A에서 F등급까지 6개로 나뉘었고, 우하정은 내 기억 그대로 B등급을 받았다.

[정해원 B]

나는 지난번에 F를 받았다.

여전히 목 상태는 별로고, 노래도 못했는데 B였다. 솔직히 말해서 내 보컬을 생각하면, 오히려 A를 받는 게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다. 나는 내 평가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 멤버 중에 A를 받은 건 연습생 생활이 길었던 황새벽, 원래 무엇이든 잘하는 민지호와 한효석이었다.

나는 순위표를 확인하고, 그 위에 스티커를 뜯었다. 그 아래 ‘댄스 E’라고 적혀 있었다.

댄스 O와 E는 댄스가 주력인 멤버들 중에 사전 투표 순위도 트레이너 평가도 가장 높았던 두 사람, 민지호와 한효석을 중심으로 나뉘었다. 홀수가 한효석 중심으로 댄스 O, 짝수가 댄스 E였다.

보컬도 마찬가지로 2조로 나눴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모여서, 국선아의 근본곡이라고 부르는 ‘더 킹’을 연습하게 된다.

국선아 파일럿에서는 등급 평가 때의 강렬한 어그로와 함께, 국선아의 주제가인 ‘더 킹’을 준비하는 장면이 일부 포함되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특기 조로 이동해서, 더 킹의 안무 혹은 보컬을 먼저 습득한다. 이후, 본인 등급으로 돌아가서 각자 상대 조에게 자기가 배운 걸 가르쳤다. 각 등급에서 습득하는 속도 차이, 연대감을 볼 수 있었다.

보컬 O에는 황새벽이 반장을 맡았는데, 체력도 없고, 낯도 가리다 보니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렇게 각 조에 반장 체제로, 민지호와 한효석은 국선아 때 서로 스타일도 완전 다르고, 성격도 안 맞아서 자주 충돌했던 기억이 난다.

둘이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경쟁하는 건 양쪽 모두에게 플러스 요소였으니 놔두면 되고, 문제는 안주원이었다.

원래 나는 F등급에 속했고, 준비한 게 시원치 않고 습득 속도도 많이 느렸던 안주원은 처음에는 D, 그리고 나중에는 나와 같이 F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서 나는 안주원과 친해져서 안무를 같이 연습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접점이 없게 생겼다.

뭐, 만들면 만들어지겠지.

* * *

F등급을 받고 난 정해원은 연습생들이 자기 조를 찾아 떠난 이후에도 잠시 못 움직이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음부터 잘하자, 해원아.”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한 후 확 떨쳐버리고 몸을 일으켰는데 앞에 황새벽이 서 있었다. 그러더니 정해원에게 새 물 한 통을 내밀었다.

“빌린 거.”

“어, 뭐야. 어디서 났어?”

“두 개 가져간 형 거 하나 훔쳤어.”

황새벽이 참가자들 쪽을 턱짓했다. 정해원은 물을 받고 웃음이 터졌다.

“안 갚아도 되는데.”

“알아.”

그러더니 바로 안 가고 앞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정해원이 물을 뜯으며 말했다.

“야, 너 아까 멋있더라.”

황새벽은 중학교 때 밴드부에서 자주 부르던 곡을 불렀는데, 음색 하나만으로도 스튜디오 안 모든 사람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덕에 보컬 O의 반장을 맡은 황새벽이 괴로워하며 중얼거렸다.

“모르는 사람들한테 보컬을 어떻게 가르치냐. 나 낯가리는데.”

“너 낯가려? 나랑 금방 친해졌잖아.”

누가 봐도 낯가리는 놈한테 그러고 장난을 쳤더니, 황새벽이 그제야 좀 긴장을 풀고 웃었다.

정해원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가자, 연습하러.”

“어.”

그렇게 말하고 황새벽은 보컬 O, 정해원은 댄스 E연습실로 이동했다.

여기서 만회하겠다고 마음먹고 연습실에 들어섰을 때, 댄스 E조 반장인 민지호가 정해원에게 불쑥 나타났다.

“형.”

“어?”

통성명도 안 했는데, 민지호가 대뜸 말했다.

“저 형이 한 거 안무 알려주세요.”

* * *

댄스 E 연습실에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내가 기억하던 것과 완전 달랐다.

“프로듀싱 하는 분이다.”

“와, 어떻게 열여덟 살인데 작곡을 그렇게 하냐.”

“치트키네.”

아무리 리액션을 따고 있어도 너무 다 들리게 말하는 거 아니냐, 여러분…….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댄스 E의 반장 민지호가 나에게로 걸어왔다. 열여섯 살의 민지호는 지금의 민지호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예 다른 사람이다.

[노브 엔터 민지호]

VVV엔터가 생태계를 깨부수기 전, 노브는 티케 이상의 대형 기획사였다. 유통 쪽에서는 특히나 노브가 꽉 잡고 있었다.

그 대형 소속사에서 차기 남자아이돌팀의 주축 멤버로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게 민지호였다. 국선아가 어그러지면서, 남은 연습생들끼리 너무 친해지고, 민지호를 따돌리다가 내보내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다시 빡친다. 아니, 따돌린 놈들이 문제지, 따돌림당한 우리 애를 내보내?

아무튼 그걸 알다 보니 지금도 그 노브 엔터의 아이돌, IMX와 마주치면 서로가 서로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친다. 양쪽 팬들도 그 사실을 알고, 가끔 소소하게 논란도 생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한 척할 생각은 우리 모두 없었다.

아무튼 열여섯 살, 국선아의 민지호는 본인의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 올려서, 그 IMX에게 도움이 될 생각뿐이던 시절이었다.

즉, 나와 친해질 생각이 전혀 없던 시기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나는 국선아 시절의 민지호를 미워할 수가 없다.

“형. 저 형이 한 거 안무 알려주세요.”

내가 F등급을 받았을 때와 B등급을 받은 지금, 민지호가 나에게 한 첫 마디는 똑같았다. 남들이 내 보컬을 보며 당황할 때, 민지호는 오로지 내 춤만 봤던 거다. 미친놈 같은 집중력으로. 그게 한결같다. 그리고 나는 민지호의 그 한마디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나저나 국선아 땐 몰랐는데, 민지호도 진짜 어지간히 어리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다. 열여섯 살인 민지호가 날 살렸다는 게. 방구석에서 2년 내내, ‘내가 실력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안무를 알려달라던 민지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노래를 못했지, 춤은 잘 췄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자신감만은 그렇게 많은 욕을 얻어먹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도 남았을 것이다. 춤에 대한 자신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으니까.

여기 와있으니까 알겠다. 억지로 잊어버렸던 기억 속에 하나씩 떠오른다.

내가 우리 멤버들을 왜 좋아했는지. 왜 같이하고 싶었는지. 내가 2년 동안 숨어 지낼 때, 삶을 등지지 않도록 발밑을 지탱했던 건 이 녀석들과의 기억들이었다.

내가 그걸 잊고 있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언제요?”

“우리 맨날 볼 거야. 시간 많아.”

“……저랑 형이요?”

어, 너랑 내가. 앞으로 맨날 볼 거다. 지겨워도 못 떨어지고, 한…… 최소 50년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더 킹’의 무대를 처음으로 모니터하기 위해 연습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민지호는 맨날 볼 거라 장담한 나를 엄청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옆자리를 툭툭 쳤다. 그랬더니 민지호가 슬쩍 옆에 와서 앉았다. 얘도 지금 엄청 센 척하고 있지만, 낯가림 맥스 상태라는 걸 안다.

그리고 연습실 벽에 빔프로젝터로 쏜, 여러 댄스팀이 체육관에서 촬영한 ‘더 킹’의 가이드 음원과 안무 영상이 나왔다.

와.

다시 생각해도 진짜 국선아의 치트키는 이 곡이었다. 인트로부터 심장이 쿵 내려앉는 음악.

시작은 댄스 O와 E 두 개의 조가 나뉘어 시작하고, 중반부부터 중독성 있는 훅이 반복되며 두 조가 합쳐지게 된다. 댄서들이 왕좌와 그 아래 쓰러진 적, 혹은 추종자들을 묘사하는 첫 장면부터 97명의 연습생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서바이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그 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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