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2화
실력 평가에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했는데도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D등급.
안주원은 이것도 그나마 TRV에서 손을 써서 받은 등급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등급 결정에 어느 정도 ‘쇼’가 있는 거다. 일례로 춤을 그렇게 추던 정해원이 F등급이었으니까. 자기 실력이 정해원의 위라고 세상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부모님도 정해원이 낫다고 하실 거다.
예상대로 안무를 익히는 도중에 F등급으로 조정됐다. 도무지 이 실력을 D등급이라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더 킹의 안무를 댄스 특기인 2개 조가 먼저 습득한 후, 다른 연습생에게 가르친다. 보컬도 2조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에서 개인 파트가 없는 보컬이 돋보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건 댄스 특기인 2개 조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아마 이 구성이 된 건, 사전투표 1위 민지호, 그리고 3위 한효석이 둘 다 댄스가 특기인데다 서로 정반대 성향을 가진 것이 ‘라이벌’ 구도를 잡아가기 좋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주원처럼 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같은 안무를 배우는 민지호와 한효석의 안무 표현력이 완전히 달랐다. 민지호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웠고, 한효석은 한 동작, 한 동작이 명확했다.
안무 습득이 빠른 참가자들은 대부분 연습생 생활이 긴 사람들이었다. 많은 연습생들이 잘나가는 선배 아이돌들이 신곡으로 컴백할 때마다 바로바로 커버를 땄다.
안주원이 봤을 때 안무 습득 능력이 단연 좋은 사람 중 하나가 정해원이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퍼펙트 엔터에서 커버를 일주일에 최소한 한 개씩은 땄다고 들었다.
안주원만 아니라 F등급 대부분이 안무 습득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하지만 그중에서 눈에 띌 정도로 안주원은 아이돌 연습생이 맞나 싶은 수준의 안무 습득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F등급 참가자들에게 안무를 가르치는 것의 주축은 단연 정해원이었다. 정해원은 실력은 F등급에서 단연 압도적이라 말할 것도 없고, 리더쉽, 카리스마도 있었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최대한 부드럽게 안무를 알려주던 정해원은 곧 그런 태도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연습생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 속도로 하면 계속 이 등급에 있어야 돼. 우리 다 데뷔 목표로 온 거잖아요. 무조건 잘 해야 돼요. 무조건.”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안무를 습득할 방법은 채찍, 채찍, 채찍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말이 좀 심한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는데 열여덟 살이란 걸 감안하면 심한 편도 아니긴 했다.
정해원은 당연히 높은 순위까지 올라갈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니고.
어쨌든 자신처럼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과는 친해질 일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숙소에서 정해원이 안주원을 복도로 불러냈다.
“왜?”
안주원이 경계하며 묻자 정해원이 말했다.
“내 생각에, 넌 무조건 원샷 들어올 거 같아. F등급이어도.”
“왜?”
연달아 멍청하게 ‘왜?’만 하고 있었는데, 정해원이 질려하지 않고 설명해줬다.
“많이 잘생겼잖아.”
“…….”
본인이 잘생긴 참가자가 많은 여기서도 잘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잘생긴 편이라는 건 알았다. 안주원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또 엄청 허우적거리는 거 나오겠네…….”
“그러니까 지금 나랑 연습하자.”
“지금? 우리 이제 자도 3시간밖에 못 자.”
“그러니까 3시간 건너뛰자고.”
“…….”
“야, 우리가 지금 밤새는 거 무서워할 때냐?”
“……원샷은 내가 잡힐 것 같다며. 넌 이득이 뭔데. 카메라에도 안 잡히잖아, 이거.”
안주원이 묻자 정해원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씩 웃었다.
“너랑 친해지잖아.”
* * *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서 하늘을 보던 안주원은 옆자리 썬베드에 털썩 와서 자기 쪽을 보고 앉은 신지운을 힐끔 돌아봤다. 신지운이 맥주 한 병을 내밀며 물었다.
“안 자냐.”
“바쁠 땐 괜찮았는데, 쉬니까 오히려 생각이 많아진다.”
안주원이 말하며 맥주를 받아 들었다. 그걸 한 모금 마신 후, 안주원이 말했다.
“해원이는 왜 나한테 화를 안 냈을까.”
“녹음실에서 많이 내던데?”
“아니, 그거 말고…… 그건 좀 섭섭하긴 한데.”
안주원의 말에 신지운이 낄낄 웃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말했다.
“국선아 일들?”
“응. 직접적으로는 아니어도, 나 때문에 악편 당할 일들 있었잖아.”
“‘직접적으로는’ 아니었으니까. 그 형 원래 그렇잖아.”
“그래도 사람이.”
“그리고 우리 좋아하잖아.”
“…….”
“우릴 너무 좋아해서, 우리한테 화낼 수도 있었다는 선택지는 보이지도 않았을걸.”
“그니까. 우리가 왜 좋았을까. 우리 진짜 싸가지 없을 나이였잖아.”
“근데 넌 안 싸가지 없었어. 열일곱 살이 싸가지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나중에 너 같은 아들 낳고 싶은데 방법 없냐?”
“없다고 봐야지.”
“그렇게 잘라 말하지 말고. 과학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신지운이 안주원의 노트를 턱짓했다.
“작사 중이었어?”
“어. 볼래?”
“너 진짜 많이 컸다. 예전엔 절대 안 보여줬잖아.”
“그땐 쑥스럽기도 하고…… 쓸데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젠 곡이 될 가능성이 있잖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치.”
신지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를 펼쳤다.
정해원이 만들고 있는 곡, ‘악몽’과 같은 앨범에 들어갈 수 있는 가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신지운은 정해원이 투어 중에 만든 곡에 가사를 흥얼거렸다. 팀에서 가장 저음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신지운의 보컬은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에 무게감을 만들었다.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 물싸움 후 야식을 먹고 기절해서 자던 박선재가 수영장과 연결된 유리문을 열며 말했다.
“형, 그거 우리 거야?”
“해원이가 통과시켜 주면?”
“당연히 통과시켜 주지.”
그렇게 말하더니 마찬가지로 기절잠을 자던 한효석을 깨웠다. 그리고 수영장으로 나갔다.
* * *
더 킹은 내가 편곡까지 했던 곡이라 하나하나 기억을 못 하는 파트가 없다. 그래도 안무는 일부분 기억이 삭제돼서 다시 한번 찬찬히 살폈다.
그렇게 외운 후에, 나는 B등급으로 돌아가 안무를 가르쳤다.
여기에서는 큰 소리를 낼 일이 아예 없었다. 습득 속도가 차이 나게 빨라서, 오히려 나는 싱글벙글했다. 하긴 한참 커버 많이 딸 시기 아닌가. 습득 속도가 빠른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휴, 잘해, 잘해. 너무 잘한다, 형.”
“……너 왜 이렇게 주접을 떨어?”
“너무 잘하니까.”
내가 남들이 보기에도 지나치게 신나 보였는지, 다들 날 이상해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가르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내 기억 그대로, 황새벽과 숙소를 같이 쓰게 됐다. 그리고 일찍 탈락하는 연습생 둘이 더 있었다. 둘 다 국선아를 끝으로 더 이상 데뷔에 도전하지 않았던 형들이었다. 하나는 바로 입대했고, 다른 하나는 연극을 시작했다.
뒤가 어찌 됐든, 그때 당시에 우리는 룸메이트들이 마음에 들었고 시끌벅적했다.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시간의 압박이 우리를 더욱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새벽이 진짜 누워 있는 거 좋아하네.”
“야, 형들 서 있는데.”
그렇게 장난을 치거나 말거나 황새벽은 꿋꿋하게 누워 있었다.
나는 룸메이트들과 놀다가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안주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 안주원은 처음부터 F등급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국혐으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늘 저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안주원을 불렀다.
“05라고 했지?”
“어, 아. 네.”
“학년 같으면 그냥 편하게 하자, 우리.”
“……그럼 좀 꼬일걸요?”
“어쩔 수 없지. 그라데이션으로 받아들여야지.”
아직 본인이 강력한 족보 브레이커가 될 거란 걸 모르는 안주원은 좀 떨떠름하게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안주원에게 말을 이었다.
“나 노래를 진짜 못해.”
“작곡이랑 춤을 잘하잖아.”
“오, 못하지 않는다고는 안 하네.”
“……미안. 근데 내가 허우적대는 수준은 아니야.”
나는 그 말에 흐흐 웃고 안주원에게 말했다.
“자, 나 체력 좋으니까 밤새고 같이 연습하자. 카메라 있는 곳에서.”
“숙소엔 셀프캠 밖에 없잖아? 4주차부터 설치한다고.”
“그러니까 연습실을 바로 가야지. 따릉이 타고 가자.”
“……진심이야?”
“당연히 진심이지.”
나는 말하며 셀프캠을 얻으며 연습실로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안주원에게 가자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연습하는 과정을 셀프캠에, 각자의 핸드폰에, 그리고 연습실 카메라에 남길 생각이었다.
악편은 솔직히, 쉬운 길이다. 원래 항상 나쁜 길은 쉽고, 좋은 길은 어렵다. 그러니까 악편을 피해다니는 것도 어려울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가려는데 안주원이 물었다.
“F등급, 몇 명 더 가도 돼? 가고 싶대.”
“어, 가자.”
우리는 우르르 연습실로 향했다. 피곤했고, 신경이 예민했고, 웃길 땐 웃었다.
* * *
나는 핸드폰 불빛에 눈을 떴다. 그리고 핸드폰을 찾아보니 박선재가 단톡방에 올린 음원이 있었다.
[막내♥ : 안주원 작사가님이 가사 붙인 버전입니다 빠른 확인 부탁드립니다]
안주원에게 가사 써보겠냐고 준 데모였다. 눌러보니 드물게 신지운이 가이드를 뜬 데모가 들어 있었다.
[막내♥ : 우리 타이틀 ‘악몽(가제)’을 꾼 사람을 위로하는 트랙이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하네용]
[민조♥ : 용암]
[거대자몽 : 암초]
[효식♥ : 초치]
[막내♥ : 치앙마이즈]
[민조♥ : 나 빼고 치앙마이즈 하지 마!!!!!!!!!!!!!!!!]
[새부기 : .]
[민조♥ : 새부기도 질투난대!!!!!!!!!!!!!!!!!!!!!!!!!!]
[새부기 : ㅇ]
[민조♥ : 맞대!!!!!!!!!!!!!!!!]
[거대자몽 : 해석 안 해줘도 알아]
“어우, 단톡방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나는 안 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을 느끼며 데모를 틀었다. 야외에서 녹음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그래서 좀 더 깊이 잘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이 잠들 때 도움이 된다면 잠들도록, 밤새도록]
[달밤이 보드라움을 끌고 온 듯이, 당신에게 펼쳐준 듯이]
[그렇게 잠들었으면, 이 전화를 끊은 후에도 걱정할 나를 위해]
내가 국선아를 수정하면서 실시간으로 멤버들이 영향을 받고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 속에서, 하나씩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좋네]
그리고 그 데모를 바로 A&R팀과 강효준 대표에게 보냈더니 답을 보냈다.
[강 대표 : 좋은데 너희 다 휴가의 뜻 모르니?]
[강 대표 : 진짜로 쉬는 사람은 새벽이밖에 없는데 얘도 휴가가 아니라 요양 중이고]
그걸 보고 나는 낄낄 웃었다.
[휴가 때 원래 좋아하는 거 하는 거잖아요]
[지금 좋아하는 거 하고 있어요]
[강 대표 : 미친놈들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저 다음 앨범 진짜 자신있음]
[강 대표 : 지금 A&R팀만큼 자신있진 않을 거다 우리 A&R팀 얘기 들어보면 이번 앨범 무슨 다시 없는 명반이야]
[형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ㅋㅋㅋ? 솔직해집시다]
[강 대표 : 아니 A&R팀이 그랬다니까]
투어 후의 첫 번째 앨범. 멤버들과 만들어가면 만들어갈수록, 점점 확신이 들었다.
이번 앨범은 정말로 온전히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겠구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은, 그런 앨범이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