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4화
뷰티 유튜버, 신희범은 본인의 유튜브 시청자들의 애칭인 ‘별이’들에게 말을 이었다.
“별이들, 나 그 꿈 또 꿨어. 국선아 첫 번째 미션 꿈.”
이상하게 요즘 들어 국선아 때 정해원과 첫 번째 조별 미션을 하던 꿈을 꿨다.
조별 미션은 A와 B등급 연습생들이 제비뽑기를 해서 8명의 리더를 정했고, 그 리더가 팀원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8팀은 A 혹은 B, 많이 봐줘도 D에서 연습생을 쓸어갔고, F반이었던 정해원과 신희범은 어느 조의 리더도 뽑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했던 다른 연습생들이 모인 여섯 팀 중 한 팀이 됐다.
정해원이 연습생 생활을 하던 퍼펙트 엔터는 연습생을 빡세게 잡는 회사였다. 연습생들이 하나 같이 자존감이 바닥나고, 표정이 우울해진다는 지나친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었다. 모든 연습생이 무서워서라도 열심히 한다는 점. 위에서 윽박지르고 잡으니까, 자기들끼리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옆에서 조금이라도 대충한다, 싶으면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던 정해원이 실력과 의욕이 모두 없는 연습생들과 팀플을 하게 됐다.
팀원 일곱 명 중에 두 명이 그랬고, 나머지는 의욕은 있었지만 대부분 E, F등급이라 실력도 고만고만하게 부족했다.
그래도 다행히 곡은 잘 골랐다. 커버하기 힘든 티케 음악만 피하기로 했는데, 신희범이 죽기 살기로 게임에 달라붙어 무사히 티케를 피했다.
그 후 정해원은 알아서 악역을 도맡았다. 회의보다 연습이 급하다고 생각한다며 의견이 갈리는 걸 다 쳐내버렸고, 연습하며 사람을 들들 볶았다. 신희범은 처음에 정해원이 독선적이라고 생각했다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이 상황에서 ‘그나마’라도 그럴듯한 무대를 뽑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다.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를 찾는 회의에 집중하기에는 팀원들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다.
다툼이 있었지만 짧았고, 연습한 시간은 비교도 안 되게 길었다. 그렇게 연습하지 않았다면 무대에 올릴 수도 없었을 거다.
근데 원래 그렇지 않나. 연습보다는 싸움이 자극적이고, 서바이벌의 거의 모든 다툼은 방송에 나간다. 싸우거나, 연습생들이 정해원의 독재에 불만을 토로하며 뒷담을 한 인터뷰는 하나도 빠짐없이 방송에 나왔다.
그리고 무대 직후에는 연습생들 모두 펑펑 울었다. 미안함과 안도, 기쁨이 몰아쳐서. 그렇게 무대를 마치고 울던 일곱 명은 정해원이 정한 팀명 그대로였다. 보통의 소년들.
* * *
두 번째 국선아의 첫 번째 조별 과제.
원래 나는 처음 결정된 8개팀 리더들에게는 뽑히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크게 바뀌었다.
“……이야.”
이건 예상 못 했네.
이번에는 나도 제비뽑기 기회가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퍼스트라이트는 여전히 한 명도 리더가 되지 못했다. 뽑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게 팀컬러인가 보다.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을 잘 뽑았으니 됐다.
아무튼 그랬는데, A반 연습생 하나가 나를 뽑았다.
“뭐해, 빨리 와.”
최윤솔이.
와씨. 이거 뭐야.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최윤솔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뽑을 때 최윤솔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편곡할 사람 부족한데 우리가 한 팀이면 어떡해?”
“그러니까.”
“……오.”
아, 맞다, 이거 경쟁이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최윤솔과 한 팀이라니 벌써 피곤했다. 내가 피곤해하며 아차하는 사이, 이 사람 보는 눈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미친놈이 미친놈을 하나 더 데려왔다.
구 티케의 악마견이자 현 퍼라의 아기자몽을.
‘X발…….’
랩퍼 둘에 댄서 하나. 정상인 하나에 미친놈 둘…… 나는 서서히 내 본래 첫 번째 조별 미션 팀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희범이 형 살려줘…….
최윤솔과 신지운을 아는 나에게는 최악의 팀인데, 겉보기에는 멀쩡한지 남은 연습생들이 강팀이라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와, 강팀이다.”
“저 팀 진짜 잘하겠다…….”
아니야…… 이건 강팀이 아니야…….
아니, 근데 그보다.
나는 최윤솔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야, 메보, 메보. 보컬 없잖아.”
그러니까 최윤솔이 인상을 쓰더니 내 귀에다가 소곤거렸다.
“남은 사람 중에 누가 보컬인데?”
하, 미치겠네.
“아직도 몰라?”
“90명이 넘는데 어떻게 외워.”
박선재, 황새벽, 한효석은 이미 첫 턴에서 다 빠졌다. 안주원도 비주얼이 있으니 두 번째 턴에는 털렸다.
나는 우리 팀을 보고, 남은 사람을 확인했다. 다행히 한 번에 보였다.
“오스틴 데려오자.”
“한국어 거의 못하잖아.”
“너희 둘 다 영어 잘하잖아. 보컬 발음은 어떻게든 내가 만들게.”
최윤솔은 일단 뉴질랜드, 한국 혼혈 연습생인 오스틴 해이를 뽑아왔다. 그 사이에 신지운이 나에게 물었다.
“나 알아요?”
“프로필 봤어.”
“반말하네.”
“어, 내가 한 살 형이야. 8개월 차이 나는데 그것도 형은 형이니까, 맞먹지 마라.”
신지운이 스토커 보듯이 날 봤다. 어휴, 저 시키. 그래도 국선아 이후 2년 동안 방에 처박혔을 때 우리 부모님이랑 주기적으로 밥 먹어준 게 평생 고마워할 일이라 그런지, 전보다는 좀 덜 꼴보기 싫다.
그 사이 최윤솔은 은은하게 빡쳤지만 선량한 척 표정을 관리하며 남은 연습생을 보고 있었다. 뽑을 사람이 없는 거다. 하, 저거 안 뽑힌 쪽에서 보면 그 눈빛이 얼마나 X같은지 절대 모를 거다……. 진짜 비참해지는 건, 못마땅해해도 좋으니까 그래도 날 좀 뽑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이었다.
신지운이 그걸 보더니 최윤솔에게 말했다.
“뽑을 사람 없으면 그만 뽑아요.”
“응?”
오스틴이 아무것도 모르는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신지운을 봤다. 신지운이 영어로 말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 한국어로 말했다.
“뭐 어쩌라고 쳐다봐.”
“……응?”
그치, 이때 신지운이 남 좋으라고 통역 봉사를 할 리가 없지.
진짜 망했다.
너무 망해서 난 중간부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스템아, 이거 그거니. 지금 우리 팀 멤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체감하게 해주는 그런 거야?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최윤솔은 정말 누가 봐도 꾸역꾸역 뽑는 표정으로 두 명을 더 뽑아왔다. 일곱 명이나 여섯 명으로 조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최윤솔은 여기서 조원 뽑기를 멈추겠다고 말했다. 연습생들은 우리 조가 더 조원을 안 뽑는 것에 아쉬워했다. 폭탄 피한 거야, 이 사람들아. 싱그러워 보이지만 대마 같은 거야. 본질적으로 잘못됐어…….
오스틴을 포함한 등급이 낮은 연습생들은 본능적으로 최윤솔과 신지운은 가까이 할 인물이 아닌 걸 알았는지 순진한 소동물 같은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신지운에게 물었다.
“지운아, 선호하는 곡은 있니.”
라고 했지만, 내 말을 맛있게 씹어 먹는다. 그치, 질문한 내가 잘못했지.
나는 잠깐 과거의 미래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 * *
요양 중이던 황새벽은 계속해서 반짝이는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톡방에 정해원이 계속 뭔가를 쓰고 있었다.
[정해원 : 멤버들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나? 내가 진짜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고 우리 평생 함께하자]
[정해원 : 내가 못 해준 거 있으면 미안하고 나 버리지 마…….]
[신지운 : 왜 저래]
[안주원 : 해원아 술 먹었어?]
[민지호 : ㅇ]
[신지운 : 얜 또 왜 이래]
[민지호 : ㅎ]
[한효석 : 힘들대요]
[민지호 : ㅅ]
[민지호 : ㅂ]
[신지운 : 왜 욕해]
[박선재 : 아니야 심심하고 보고 싶대]
[신지운 : 진짜야? 꾸며내는 거 아니야?]
황새벽은 술 먹었냐고 보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통화를 눌렀다. 안 그래도 지금 리더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멤버들에게 돌아가면서 한 번씩 전화를 하고, 정해원만 남은 상태였다. 잠적했다니까 하지 말까도 생각했는데, 지금이 적시였다.
“취했냐?”
-그건 네 술버릇이고.
“그럼 왜.”
-생각해보니까 너희가 인성이 좋은 거 같다.
“……지운이도?”
-지금은 괜찮지. 예전에 비하면 천사야…….
“웬일이냐.”
-아니, 열일곱 살 신지운 체험…… 아니, 떠올리니까 갑자기 현재에 감사하게 되네.
그러더니 물었다.
-살아있지?
“어. 너는.”
-죽었어.
“그래도 퍼스트라이트에 네 자리 남겨 놓을게.”
-너 요즘 왜 이렇게 감동적이야, 짜증나게.
“네가 늙어서 쉽게 감동 받는 거야.”
-잘 쉬고 있나 보다, 대답이 빠르네.
정해원은 낄낄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다시 주무셔, 어르신.
“잠깐만.”
-왜?
“심심해.”
-미친놈이네.
정해원이 심심하다는 말에 터져서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영상통화를 다시 걸어서 말했다.
-심심하면 일하자. 때마침 너 할 거 있으니까 기타 가져와.
“얘기가 왜 그렇게 돼.”
황새벽은 투덜거리면서도 작업을 위해 기타를 가져왔다.
* * *
회사에 도착한 양이형은 정해원의 작업실 소파침대에 누워 있는 민지호를 발견하고 말했다.
“민조, 집 좀 가.”
“혀어어엉. 힘드러어여…….”
민지호의 징징거림을 들으며 양이형이 의자에 앉아 말했다.
“당연히 힘들지. 정해원이 맨날 이러고 개고생하고 있다.”
“아니요?”
민지호가 고개를 휙 들더니 말했다.
“그 형은 천재니까 고생해도 돼요!”
“뭔 소리야, 이게. 효식이랑 막냉이 없으니까 해석이 안 되네.”
양이형은 투덜거리면서도 정해원이 보낸 데모를 열었다.
이번 앨범처럼 모든 곡이 명확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첫 번째 트랙부터 쭉, 퍼스트라이트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트랙 제목부터 확실했다.
‘목소리’
투어 중에 만든 정해원의 이 곡을 받고 나서 양이형은 한 시간쯤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자기 이야기를, 본인이 인지하고 쓰고 있구나. 언젠가 쓸 줄은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정말로 좋은 곡이었다. 여기서 뭘 건든다고 더 좋아질까, 싶은 생각이 들어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사를 붙이기 전에, 그냥 정해원이 해언어로 녹음한 가이드 그 자체로 완벽했다.
멤버들에게는 황새벽과 스트링 편곡 겸 기타 세션 작업 후에 들려주고 싶다고 했으니, 아마 잠적 중에 뭔가를 만들어서 돌아올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어떤 반응일까.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양이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동료 작곡가로서 받는 느낌도 있었고, 정해원이라는 사람을 국선아 때부터 알아 왔기 때문에 느낀 감정도 있었다.
그렇게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를 생각하고 있을 때, 민지호가 말했다.
“이거 뭐예요?”
그러더니 냅다 음원을 틀려고 해서, 양이형이 급하게 막았다.
“야야, 잠깐만, 잠깐만.”
“락이죠?”
“……어떻게 알았어?”
“제목이 목소리니까!”
처음에 양이형은 정해원의 설명을 듣고, 이게 우울한 음악일 거라 생각했다. ‘물속에서 물 밖을 향해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소리치는 노래’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들어보니 락이었다.
정해원과 함께 작곡을 한 시간은 양이형 본인이 훨씬 길었는데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끼리는 지들끼리만 아는 단단한 뭔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