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5화
‘목소리’
정해원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아무리 말해도 물 밖으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를 곡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민지호는 바로 정해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형, 목소리 이거 들을래.”
-안 그래도 지금 딱 새부기랑 작업했어.
그러더니 바로 가이드를 보냈다.
양이형은 정해원이 보낸 데모를 틀었다. 황새벽이 세션 작업을 자주 해서, 이제 황새벽의 기타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밴드부로 인근 학교들까지 들썩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더니, 그럴만했다. 물론 얼굴과 음색이 그 인기 대부분을 형성했겠지만, 황새벽의 기타에는 늘 짜릿한 맛이 있었다.
이번 트랙은 멤버들의 참여가 특히 더 많았다. 그리고 곡 하나, 하나가 한 멤버씩을 떠올리게 했다.
민지호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듣더니 여전히 통화 중이던 정해원에게 말했다.
“빨리 콘서트 하고 싶어! 햇살이들 보고 시퍼!”
-나도.
“일해라, 복송아지. 이랴, 이랴.”
듣자마자 ‘콘서트가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이, 민지호가 하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것을 이제 양이형도 알고 있었다.
* * *
“허니야, 이거 봐봐!”
“또 뭐.”
정해원의 누나, 정수연은 남편인 앤서니 맥긴리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앤서니 맥긴리가 핸드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처남! 1위!”
“핫백?”
“아니, 그거는 내일이고. 왜 관심 없어?”
“동생한테 이 정도면 무지하게 관심 가져준 거지. 뭔데?”
정수연이 핸드폰을 받아서 확인해 보니 영국 신문의 기사였다.
[대중문화에 가장 영향력 있는 20대 순위]
그리고 1위에 동생 정해원이 있었다. 정수연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쓸데없는데 또 순위 매기네.”
“처남이 1등이니까 안 쓸데없어.”
“걔가 뭘 했다고 1등이야.”
“클라루스 작곡가면서 완전체 계약하게 공헌한 사람? 로체스터 주제가 만든 사람? 스테이를 만들고 부른 사람? 퍼스트라이트 멤버?”
“공헌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하, 고급 한국어.”
앤서니가 도취하는 걸 뒤로 하고 정수연은 기사를 찬찬히 읽고, 신기하긴 하니까 대충 번역까지 한 후에 부모님께도 따로 보냈다.
* * *
황새벽과 작업을 하고, 민지호에게 칭찬까지 듣고 났으니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약쟁이와 악마견, 그리고 한국어가 거의 불가능한 외국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 팀의 보컬을 맡게 된 오스틴 해이는 국선아가 종료된 직후 소속사로 돌아가 데뷔를 했는데, 내가 퍼스트라이트 합류할 때쯤 이미 활동이 없다가 해체한 후 고향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우리 한 조가 바뀌니까 전체적으로 구성이 달라졌다. 반면에 8명의 리더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6개 조 중 하나, 신희범의 팀 구성원은 내가 있을 때와 거의 비슷했다. 신희범에게 메이크업 도움 받을 때 편곡이라도 도와줘야겠다.
아무튼 내 기억대로 곡 선택은 달리기.
앞선 국선아에서는 티케의 음악을 커버하기 힘들어서 피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티케 연습생이 있긴 하니까. 나는 신지운에게 물었다.
“티케 노릴까? 어차피 커버 어려워서 다들 피할걸.”
“…….”
“너 안무 다 알지?”
“당연하죠.”
티케는 신지운을 오냐오냐 키웠지만 기본기만큼은 어떻게든 주입을 시켰다. 기적이다. 아무래도 거기 육아 전문가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키운 신지운을 퍼스트라이트에 뺏기기 억울해했던 것도 공감이 갔다.
우리가 노리는 곡은 2017년에 데뷔한 티케의 남자아이돌 ‘올시즌’의 데뷔곡 ‘clear!’였다.
이 곡은 롤플레잉 게임을 모티브로 한 곡으로 청량하면서 잠시도 무대에 발이 붙어 있지 않는 안무로 유명했다.
컨셉적으로는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다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무의 강도가 너무 세고, 노래도 부르기 어려웠다. 저 고음을 아무것도 모르고 설명해달라며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오스틴 해이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믿었다.
예상외로 신지운은 빡세게 뛰었다. 만사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심 하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뛰어서 가져온 게 모두가 피하려는 ‘클리어’였으니 연습생들이 다들 이상해하며 우릴 봤다. 리액션컷 하나는 잘 나오겠다.
그 후에 바로 회의에 들어가고, 나와 최윤솔이 편곡 방향을 정한 후 안무를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무를 가장 정확히 아는 신지운이, 단체 연습을 마친 후 먼저 숙소로 돌아가려 짐을 챙겼다. 나는 급하게 신지운을 잡았다.
“안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가면 어떡해. 네가 최윤솔이랑 성민이 형 알려줘. 나도 안무 어느 정도 아니까 나머지 멤버들 알려줄게.”
내 말에 신지운이 대꾸했다.
“이거 결국은 개인전이잖아요. 체력 아껴요, 형도.”
“지금은 팀플이잖아.”
“형.”
“뭐.”
“자꾸 나한테 뭘 시키지 마요. 순위도 많이 차이 나는데.”
하, X발.
나는 웃었다.
이번에는 싸우지 말자고 마음으로 결심했었다. 두 번째 서바이벌을 하면서, 또 싸우고, 그게 방송에 나가면 무슨 의미가 있나. 어차피 신지운은 티케의 가호를 받아 성격 더러운 부분들은 많이 잘려 나갈 거다. 신지운이 이제부터 겪을 논란은 ‘저렇게 잘생긴 참가자가 왜 이렇게 분량이 적지?’에 대한 논란뿐이었다. ‘표정이 재수없는 것 같다’라는 논란은 이미 1, 2화에서 지나갔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안 싸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신지운과 나는 전생에 친형제였던 것 같다. 살면서 한 번은 뒤지게 싸울 운명인 거다.
“나와 봐.”
나는 말하며 앞장섰고 신지운은 일단 따라 나왔다.
살면서 주먹질하고 싸울 일은 많지 않다. 그 직전까지는 가도, 누구 하나 주먹을 내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형제가 있는 경우는 아닌 모양이지만.
나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누나밖에 없고, 신지운은 외동이라 우리 둘 다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없었을 거다.
그러니까 일생에 딱 한 번, 목숨 걸고 싸우는 거다. 지금.
예전과 똑같았다. 내가 먼저 주먹질을 했고, 신지운은 태어나서 이렇게 황당한 건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날 쳤다. 하지만 동생은 동생이라서, 나만큼 죽일 듯이 진심으로 주먹질을 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때도 이번에도 나는 마지막에 어떻게든 서 있었고, 신지운은 바닥에 자빠졌다. 그런데 죽어라 숨을 헉헉거리고 있는 건 나였다.
이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싸움을 안 하기로 했다. 스파링이 있는 종목도 다 피했다. 사람이 죽어라 싸우려니 1분도 천년 같이 느껴졌다. 너무 힘들어서 나도 눕고 싶은데 참았다. 할 말이 남아서.
“야, 개새끼야…… 너 싸가지없는 건 좋은데 이거, 평생 남아. 방송이잖아.”
“…….”
“평생 네 발목 잡는다고. 내 말 알아듣냐, 이 X발새끼……. 너 지금은 아이돌 별로 안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하고 싶으면 어떡할래. 그때 X발, 너 싸가지 없다고 소속사에서 아이돌 안 시켜주면 어떡할 건데.”
누가 누굴 걱정해, 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열여덟 살의 나는 대형 엔터의 연습생인 신지운과 싸울 때마다 나만 쓰레기처럼 방송에 나갈 걸 몰랐으니까. 정말 딱 이대로 말했다.
나중에 방에 처박혔을 때, 날 보고 신지운이 비웃었을까도 잠깐은 생각했었는데. 이놈이 주기적으로 우리 집에 찾아오는 걸 보고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신지운도 지쳐서 겨우 상체를 일으키고 말했다.
“무대 안 서면 되지.”
“무대 서고 말해.”
“…….”
“관객들이랑 눈 마주치고, 박수받고, 무대 끝내고. 그 이후에 다시 말해 봐. 무대 안 서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지.”
퍼펙트 엔터에서 아주, 아주 작은 무대를 잡고, 우리에게 집중하는 건 서넛도 안 되는 무대에 섰었다.
그 서넛의 눈빛이, 박수 소리가 좋았다. 그 인원이 수만이 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의 나에게 집중해주는 서너 명만, 아니,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열여덟 살의 나는 생각했었기 때문에.
신지운이 혹시라도 그런 기회를 잃을까 봐 겁이 났다. 싫어서 무대에 오르지 않는 거랑, 관객이 거부해 오르지 못하는 건 완전히 다르니까.
국선아 때와 똑같은 멘트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뱉었는데, 내 스스로 받아들이는 감정이 달랐다. 그런 2년,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와 함께한 4년. 그리고 아마도, 우리에게 남아있을 아주 길고 긴 세월과 무대.
그땐 화만 났는데, 이번엔 웃음도 났다. 내가 화가 안 가라앉아 씩씩거리며 웃으니까 신지운이 정색하며 말했다.
“미쳤네.”
“말은 놔도 되는데, 형이라고 해.”
“8개월 차이 난다며.”
“어쩌라고. 8개월 일찍 태어나, 억울하면.”
뒤질 것같이 힘들긴 하지만 세 번도, 네 번도, 백 번도 싸워줄 수 있다.
이 멍청한 사춘기 청소년이 아이돌이 되고자 마음 먹었을 때, 관객이 등을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면. 그게 어떤 고통인지, 너무나 잘 아니까.
“하, X나 힘드네.”
나는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여전히 신지운은 싸가지가 없었다. 앞으로 한동안 더 싸가지 없을 예정이라는 것도, 그래서 내가 열 번은 더 크고 작은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하여 퍼스트라이트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악마견에서 벗어나게 될 거란 것도 알았지만 여전히 그 재수없음에 중간중간 놀란다.
그래도 처음 신지운과 주먹질하고 싸운 직후와 마찬가지로, 신지운은 내 말을 약간이나마 들어줬다. 팀원들에게 안무를 가르쳐주기 시작한 거였다.
* * *
“……이 형 뭐 해?”
치앙마이에서 결국 여행 끝까지 눌러앉아 있던 신지운은 핸드폰을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정해원이었다.
[친형 : 너랑 싸움 전승임ㅎㅎ]
[1번 싸웠잖아]
[심지어 내가 봐줌]
[친형 : 넘어졌잖아]
[친형 : 서 있는 사람이 완벽하게 이긴거야]
[너무 유치해서 소름끼침]
처박혀서 일만 하려는 것 같더니 은근 여기저기다가 끊임없이 쫑알쫑알거리고 있었다.
“하여튼 참 말 많네.”
신지운은 투덜거렸다. 그리고 멤버들과 공항으로 향하며, 잠깐 정해원과 주먹질하고 싸우던 때를 되짚어 본 후 말했다.
“진심으로 싸웠으면 내가 이겼지.”
그 혼잣말을 바로 알아듣고 안주원이 말했다.
“해원이랑?”
그러자 박선재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도 포기를 못 했어? 형이 전패야.”
“한 번 싸웠다니까? 1패지.”
“형 왜 이렇게 사람이 구질구질해요. 쿨하게 받아들여요.”
“아, 억울해.”
신지운은 억울함에 몸부림치는 사이, 운전하던 한효석이 말했다.
“목소리 다시 들어보자.”
“내가 틀게.”
박선재가 말하며 바로 목소리를 틀었다. 황새벽의 가이드 위로, 박선재와 안주원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겹쳐졌다.
[가라앉으며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파문은 일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흔적은 보일 거야]
[빛나는 윤슬은 나의 목소리로부터]
[마리아나 해구로부터 내 심장으로부터]
[파문은 일어날 거야 모두가 결국 알게 돼]
[추를 달고 절벽 아래로 밀어]
[압력으로 심장을 짓누를 때, 토해내는 악이]
[들리지 않아도 보일 거야 알게 될 거야]
[내 목소리는 해구로부터 지상을 향해 파문을 일으켜]
[세상이 알게 될 거야 내가 여기 있는걸]
[함선에 올라타 앵커를 올려 다시 나의 세상으로 가]
[세상이 알게 될 거야 내가 여기 있는걸]
신지운은 눈으로는 창밖을, 귀로는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로는 생각했다. 그때 악을 쓰고 화내주는 형을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그 악은 파문이 되어, 정해원이 방 안에 있는 2년 동안에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에게 남아 있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