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6화
최윤솔은 재활을 시작한 이후 제대로 잠드는 날이 거의 없었다.
영원히 이 상태가 지속될 거라면 차라리 세게 약을 빨고 빨리 뒤지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하루에 수천 번씩 들었다.
그러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깊이 잠이 들었다. 긴 꿈까지 꿀 정도로. 국선아 시절의 꿈이었는데, 최윤솔이 기억하던 것과 달랐다.
최윤솔은 첫 번째 조별 미션에서 어쩌다 보니 정해원과 같은 팀이 됐고, 회의를 마친 후 안무 숙지에 들어갔다. 신지운이 다른 멤버들에게 안무를 가르쳐 주는 사이, 정해원은 최윤솔에게 이것저것 작곡 시퀀서 쓰는 법을 알려줬다. 그냥 현실을 반영한 꿈인 모양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심코, 최윤솔은 이게 그냥 꿈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정해원은 최윤솔에게 콩쿨 때부터 네가 싫더라, 라고 말했다. 진짜 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있던 여러 감정 중 하나가 녹았다. 아마 열등감이었을 것이라 본인조차 받아들였다.
정해원은 최윤솔과 함께 작곡 프로그램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해원은 로직을 메인으로 쓰고 있었고, 최윤솔은 에이블톤 라이브를 골랐다.
정해원은 여러 작가들과 협업하며 모든 작곡 시퀀서를 다 사용해 봤기 때문에 최윤솔이 가진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었다. 열여덟 살의 정해원은 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꿈이니까 대충 넘어갔다.
조별 미션곡 ‘클리어’는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효과음을 활용해서 만든 곡이었다. 그걸 정해원과 함께 파보면 파볼수록 이게 대형 소속사에서 야심 차게 데뷔곡으로 준비하는 곡이구나, 돈맛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됐다.
연습생들이 편곡하는 건 불가능하니, 현직 작가들이 편곡을 맡았다. 열네 개 곡을 작가 세 명이 맡아서 갈리는 걸 보며, 저기도 어지간히 극한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클리어는 양이형 작곡가와 함께했다. 양이형은 양팔에 문신을 하고 있었고, 인상도 무서웠는데 정해원이 귀찮을 정도로 치대는 걸 은근 안 싫어하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빡치지만, 재미있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만든 티케의 음악을 카페인 때려 마셔가며 공부하는 게.
그리고 그렇게 아주 작은 비트 하나까지 직접 씹어서 삼킨 음악으로 무대에 올랐다. 구호는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최윤솔 본인이 뽑은 둘 중 하나가 만들었다.
“이번 라운드, 깨!”
“부수자!”
“깨!”
“부수자!”
“클리어!”
“클리어!”
‘깨부수자’라니. 그것도 두 번이나 하다니. 유치하기 짝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데, 입은 같이 구호를 하고, 얼굴은 웃었다. 원래 유치한 게 제일 재미있는 법 아닌가. 인생이 가오에 사로잡혀 있던 최윤솔은 학창시절 내내 안 해본 유치한 짓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소리까지 내서 웃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서 떠올렸다. 이게 무대였지.
‘깨! 부수자’팀의 모두가 본인 능력치를 뛰어넘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정해원이 뽑아오라고 한 메인보컬 오스틴 해이가 유난히 노래를 잘했다. 정해원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통했나 보다. 이러니까 그 새끼가 점점 더 나대는 거 아니야.
팀원들과 눈을 마주쳐가며 무대를 하는 건 재미있었는데, 관객의 시선이 다른 멤버에게 분산되는 게 싫었다.
나만 봐. 왜 다른 곳 봐?
최윤솔이 자기 이름이 적힌 응원 도구를 든 관객에게 눈짓으로 말하니까, 팬이 냉큼 자세를 고쳐 앉아 최윤솔 쪽만 봤다. 이게 맞지. 이거지.
아.
옆에 멤버들이 있었으면, 이 경쟁심이 나를 지탱했을까. 저런 유치한 구호를 하게 됐을까.
언제쯤 무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 생각해 보니까 나…… 약 빨았잖아?
못 돌아갈지도.
클리어 무대가 끝나는 순간, 최윤솔도 잠에서 깨어났다.
거실에서 술을 마시다 그냥 잠들어서, 손등에 빈 술병이 닿아 있었다. 조금 전 꿈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속이 역해졌다.
최윤솔은 몸을 일으키고 자리에 앉아 두 가지 선택지를 생각했다. 뒤져 버릴까, 아니면 그냥 살까.
뒤지는 게 편하긴 하지. 근데, 그럼 평생 정해원 못 이기잖아.
최윤솔은 액정이 깨지고, 완전히 방전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충전기를 찾아 충전한 후 핸드폰을 켰다.
오스틴 해이와는 나중에 조금 친해졌다. 둘 다 영어가 편하기도 했고, 음악적으로도 잘 맞아서. 그렇다고 국선아 이후에 연락을 해본 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최윤솔은 한참 생각하다가, 오스틴 해이에게 디엠을 보냈다.
[뭐 해]
절대 답 안 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바로 답을 했다.
[오스틴 해이 : 공연 준비]
알고 보니 호주의 작지만 역사가 있는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한다는 것 같았다. 한참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오스틴 해이가 말했다.
[오스틴 해이 : 근데 망했다]
[오스틴 해이 : 건반 없어 여자친구가 임신해서 나감]
[오스틴 해이 : 그때 네가 연락을 하네 운명이야?]
최윤솔이 흐흐 웃고 답을 보냈다.
[나 출국이나 입국 안 될 수도 있는데]
[오스틴 해이 : 빨리 올 수 있나 알아봐]
[잠깐만]
[된대 대신 길항제 주기적으로 맞아야 해]
[오스틴 해이 : 건반 구했다니까 우리 애들 날뜀]
[오스틴 해이 : 공항에서 대기 탄다 우리 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오스틴 해이 : 차 낡았다고 놀라지 마 잘 굴러가]
얼마나 낡았는데 미리 공지까지 해주나 싶었는데, 술조차 없는 지옥 같은 열 시간을 보낸 후의 정신으로 봐도 폐차 직전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 차를 2년이나 더 타고 다녔다.
* * *
[클리어 무대 찢었다]
[↳이게 청량이지]
[브엠 올해 무슨 복이냐]
[↳국선아 풀 미쳤음]
[↳잘생긴 애들도 많고 무대도 잘하더라]
[↳요즘 어딜 가도 국선아 얘기밖에 없어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클리어 팀 진짜 뭐지 신지운이 정해원이랑 나가서 무슨 얘기하고 왔는데 애가 갑자기 팀원들 도와주고 있어???]
[↳↳내 말이 그걸 보여줘야지]
[↳↳국선아 일 못 하네]
[↳↳무슨 얘기했는지 궁금한데ㅠㅠ]
[↳↳구마의식 치르고 온 거 아님???]
[↳↳↳겠냐ㅋ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은 그냥 즐겜러 같음]
[↳즐겜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긴해ㅋㅋㅋㅋㅋㅋ]
[↳트레이너들도 다 쟤 뭐지???이러고 보잖아ㅋㅋㅋ]
[↳↳역시 회귀자인가…….]
[↳↳상태창!]
* * *
국선아의 첫 번째 미션이 방영되고 스파이, 박중운 매니저가 나를 찾아왔다.
스파이는 확실히 취미가 이쪽인 사람이었다. 그사이에 조작 정황 증거를 어마어마하게 모아왔으니까. 행복해 보였다.
그걸 터뜨려 국선아를 문 닫게 만들기 전에 나는 강효준을 찾아가야 했다. 지금쯤 강효준은 송다온의 입대 전 솔로 앨범을 마무리하고 있을 것이다. 송다온이 입대한 후의 클라루스는 어떻게 될지 한참 고민하며, 매일매일 술을 퍼마시며 하마로서의 본성을 깨달아가고 있을 시기였다.
강효준과 만나는 게 어렵지, 설득하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다짜고짜 국선아의 조작을 알려주고, 사업에 욕심내라고 꼬드겨 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냥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겠지. 하지만 나는 강효준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안다.
나는 강효준이 자주 혼술을 하는 집을 알아서, 밤에 그 근처를 얼쩡거렸다. 이 아저씨도 보통 인간은 아닌 게, 혼술을 고깃집에서 한다. 여기 사장님은 나도 지금은 알고 지내는데, 여느 강효준 단골집의 사장님들과 마찬가지로 강효준을 정말로 많이 사랑하신다. 혼자 와서, 아주 많이 먹으니까.
아무튼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강효준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
나는 강효준에게 일단 말을 걸었다.
“저기요.”
강효준이 힐끔 날 보더니 말했다.
“불 필요하니.”
“오. 불도 없지만 담배도 없는데. 없으면 줄 거예요?”
“아니. 너희 부모님과 선생님한테 전화해야지.”
그 말에 나는 흐흐 웃었다. 강효준은 왜 웃는지 모르고 인상을 썼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저 국선아 참가자인데요.”
“아.”
“그거 조작이 있는 부분 터뜨릴 거거든요.”
“…….”
“형…… 아니라. 그…… 아, A&R님이 그 이후 좀 봐주시면 안 돼요?”
“어떻게?”
어이없이 듣더니, 그렇게 되묻는다. 나는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에 대해서 만든 기획안과 데모가 들어 있는 USB를 건네줬다.
“이런 팀을 만들고 싶어요.”
강효준은 기획안을 한 장씩 넘겨봤다. 읽는 속도만 봐도 진지하게 읽어주고 있다는 걸 알겠다.
나야 아이돌이니까 일을 시작한 나이가 빨랐지만, 보통은 대학, 군대, 스펙 쌓기를 끝내고 스물여덟 살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같다.
보통의 스물여덟 살은 인생에 대하여 미친 듯이 고민할 나이다. 재벌 3세에게는 이미 정해진 인생 순탄하게 따라갈 거지만 심심하니까 반항이나 해볼까? 정도 고민할 시기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기획안을 한참 읽던 강효준이 물었다.
“이거 누가 만들었어?”
“저요.”
“데모도?”
“네.”
데모에는 ‘불을 켜’와 그 시기에 만든 온갖 잡다한 실패작들이 들어 있다. 아니, 실패작이라기보다는 습작이라고 말해주자.
강효준은 데모도 바로 틀어서 들어보며 나를 힐끔힐끔 봤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노려보는 줄 알고 도망갔겠다. 지금 나도 괜히 좀 쫄리는데.
그렇게 한참 확인을 하더니, 강효준이 말했다.
“너 뭐냐?”
“왜 저에 대해서만 자꾸 물어봐요. 형…… A&R님을 왜 찾아왔는지나, 이런 건 안 궁금해요?”
“그렇게 매번 고칠 거면 그냥 형이라고 해. 그리고 이 정도 기획안 써오면서 누구한테 주는지 연구 안 했을 것 같진 않다.”
“아, 맞다. 형 똑똑했었지.”
“뭐?”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몇 살의 강효준이든 설득하는 말은 똑같다. 음악으로 전하면 된다. 아마 처음 내가 VMC를 먹으라고 옆에서 애새끼처럼 굴 때부터, 실제로 VMC 차기 경영자로 내정된 지금까지. 사업에 욕심내라는 말이 먹혔을 것 같진 않다. 다만 지금도 그러하듯이, 스물여덟 살의 강효준도 내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니 아마 우리는 몇 살에 만나게 되더라도, 결국은 같이 일하게 됐을 거다.
* * *
보이드 엔터는 정해원이 보낸 7개의 곡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미니 앨범치곤 약간 많고, 정규치곤 적었다. 그렇다고 곡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외부 곡을 받는다든지 하는 형식으로 몇 곡 더 추가해 급하게 정규로 변경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부대표가 말했다.
“이거는! 7곡인 게 포인트여요! 어? 우리 애들, 퍼스트라이트 7명! 쎄븐 트랙! 아닌가? 트랙 쎄븐?”
“이상하게 부대표님이 말하니까 담배 이름 같아요. 트랙 쎄븐.”
“오, 있을 법해.”
“7집이면 더 멋질 텐데 8집이네.”
그렇게 딴소리로 빠질 뻔하다가, 8집이라는 말에 잠깐 직원들이 조용해졌다.
퍼스트라이트 미니 8집.
“언제 여기까지 왔나…….”
박선혜 A&R 팀장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서 A&R 하나가 중얼거렸다.
“근데 타이틀곡 어떻게 골라요? 미치겠네.”
“악몽 아니었어요?”
“목소리지. 이거 진짜 명곡인데.”
“악몽이 컨셉 잡기 좋잖아요.”
“스테이가 흥했으니까, 월드 생각하면 락으로 가야 한다니까요?”
“아, 또 이러네.”
“이러고 어차피 뮤직비디오 두 개 다 찍을 거잖아요.”
“우기는 것마다 찍을 거면 저는 조심스럽게 주원이가 가사 쓴 발라드를 한번 밀어봅니다…….”
그렇게 시끌시끌 회의가 이어지는 사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하나씩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사람이 많아지며 회의는 더욱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