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7화
강효준을 만났으니, 국선아 수정은 어느 정도 계획한 방향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 직후에 나는 두 번째 국선아를 잠시 중단했다. 그다음 촬영이 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자면서 진행되고, 깨면 일했기 때문에 휴가가 끝난 후에 계속 진행한다고 해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단한 후에 나는 약속한 만큼은 아니어도 사흘은 부모님과 놀았다. 이제 덥지 않으니까 같이 자전거도 타고, 김밥도 만들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오래 나가서 살고 있는데도 음식을 전혀 못 만드는 나를 보며 많이 놀라셨다.
어쨌든 모처럼 요리한 거니까, 나는 김밥을 만들자마자 햇살이들에게 자랑했다.
[해원 : (사진) 부모님이랑 김밥 만들었어요!]
계획대로 햇살이들이 칭찬해 줬다. 하, 만족스러.
이번 휴가가 끝나면 앵콜 콘서트, 그리고 그날 밤 민지호의 솔로 티저가 예정되어 있었다. 일주일간의 활동 직후 퍼스트라이트 미니 8집 앨범 프로모션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국선아 때부터 팬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민지호의 춤이 민지호의 노래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춤을 너무 압도적으로 잘 춰서 그렇지, 노래도 잘했다.
[MIN]
민지호의 솔로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건 그 글자였다. 민지호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민지호는 민지호의 성씨를 중심으로 솔로 활동의 틀을 잡았다.
하지만 초안을 제외하면 민지호가 혼자 해보겠다는 의지도 있고, 나도 그게 더 맞을 것 같아 손을 뗐다.
2주 휴가까지 반납하고, 민지호가 뭘 완성했는지 궁금했다. 회사에 도착해 보니 직원들마다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다.
“진짜 2주 쉬고 왔어요? 사흘 안에 작업실 와 있을 줄 알았는데.”
“해원 씨 진짜 오랜만이다. 해원 씨 없으니까 회사 같지가 않더라고.”
내가 약간 보이드 엔터의 지박령 같은 존재였나 보다. 다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회사에 그만 좀 있어야겠다.
그렇게 인사하며 오랜만에 내 작업실에 들어가 보니 비어 있었다. 민지호는 내 작업실에 없으면 연습실에 있는 게 분명해서, 나는 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 문밖으로 민지호가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리드미컬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타고난 리듬감을 가진 사람이 만든 음악.
나는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음악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처음 한 번은 이렇게 듣고, 그다음은 민지호가 추는 춤과 함께 들을 생각이었다. 청각이 시각에 영향을 미치듯이, 시각도 청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공포 영화에 음악이 필요하듯, 좋은 영상, 좋은 춤은 음악을 더욱 살아 있게 했다.
내가 거기 앉아서 듣고 있으니 그 앞을 지나가던 댄스팀 UO의 장지영 팀장이 물었다.
“야, 너 오랜만이다?”
“누나, 저 오늘 그 얘기 30번째 들었어요, 진짜로.”
“그럴 만하지, 뭐.”
그렇게 이야기하며 장지영 팀장도 같이 음악을 듣다가, 끝나고 난 후에야 우리는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민지호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복송아지다!”
“야야, 민조야.”
민지호는 간만에 만나는 게 신이 났는지 힘 조절 없이 나에게 쿵 들이박았다. 진심으로 아팠지만 좋다고 그러는 거니까 형으로서 센 척했다. 민지호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나 혼자 하는 거 안 맞아, 고독해…….”
민지호가 ‘고독’이라는 말을 쓰는 게 왠지 안 어울리고 웃겼지만, 일단은 공감해 줬다. 그래도 음방 가면 더 고독할 거라는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체험해 보고 오면 알 거다. 옆에 우리 멤버들이 있고, 대기실에서 시끌시끌 떠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이었는지를…….
그렇게 생각하니까 물가에 애 내놓은 것 같고 걱정되네. 음방 응원 가야겠다.
징징거리는 민지호를 달래준 후, 나는 장지영 팀장과 거울 쪽으로 붙어 앉으며 말했다.
“자, 보자.”
“아, 좀 쑥스럽네.”
은근히 내성적인 민지호가 말하며 히히 웃었다. 그래도 춤을 보여주는 거니까, 바로 음악을 틀었다.
‘내성적임’은 첫 동작에 사라졌다. 민지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든 솔로곡 ‘MIN’의 안무를 보여줬다. 웨이브가 많고,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동작으로 구성된 안무였다. 민지호에게 최적인 안무.
음악과 춤이 끝났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민지호가 말했다.
“어때? 어때, 어때?”
“…….”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장지영 팀장에게 말했다.
“누나.”
“응.”
“어느 시대에 태어나도, 쟤는 인기 있었겠죠?”
그 말에 장지영 팀장이 웃었다.
“당연하지.”
그 말에 민지호가 특유의 꺄 소리를 내며 또 달려들었다. 오늘 내 생각에 갈비뼈 한두 개 나간 것 같다.
그렇게 민지호의 안무를 본 후에 작업실로 가보니 그사이에 양이형이 와 있었다. 나는 양이형을 발견하자마자 똑같이 달려들려다가 멈췄다. 양이형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웬일로 안 달려드냐?”
“방금 민지호가 달려들어서 갈비뼈 부러졌거든. 내 몸 아껴야 돼.”
“와, X발 지는 엄살 부리네?”
“안 달려들어서 섭섭하지, 솔직히?”
“나가, 이 새끼야. 나가.”
“아, 왜 내 작업실에서 쫓아내애.”
나는 진짜 쫓겨나기 전에 얼른 내 의자에 앉았다.
양이형이 왠지 한숨을 하 쉬더니 나를 보고 물었다.
“근데 너 뭐, 잠적한 사이에 신내림 받았냐?”
“아니. 왜?”
“X나 잘 뽑아왔길래. 곡을.”
“나 원래 잘 만들잖아.”
“아니, 이번 일주일은 뭔가 달랐다니까.”
신내림 같은 건 아닌데, 일주일 동안 국선아를 경험하면서 뭔가 느끼는 게 많기는 했다.
사람이 서바이벌을 하면 아무리 여유 있게 하려고 해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평소 팬들이 그렇게 부른다면서, 연습생들이 나를 즐겜러라고 부를 때도, 나는 약간 긴장 상태였다. 컴백 첫날 같은 상태가 매일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게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긴장이 된다는 건,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일 테니까.
* * *
내가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 결국은 왔다.
첫 번째, 순위발표.
연습생들이 나에게 한마디씩 했다.
“해원이 왜 이렇게 긴장해, 네가 긴장할 게 뭐 있어?”
“야, 너 무조건 잘 나와.”
어휴, 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아. 국혐이라고 들어봤…… 와, 내가 이걸로 농담할 생각을 하는 거 보니까 진짜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나 보다.
핸드폰은 오늘 순위발표 이후에 돌려받을 예정이지만, 핸드폰 근처에도 안 가고, 주변 반응 전혀 확인 안 한 사람은 나와 한효석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나도 몰래 보긴 했구나……. 그럼 한효석밖에 없다.
아무튼 인터넷 반응을 본 사람은 다 하나같이 나에게 반응 좋다, 라고 했다. 메이크업이 X나 이상하다는 반응이라고도 했다. 특히 머리 색이 너무 톤그로라 뭔 짓을 해도 저건 못 살린다고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신희범이 메이크업을 좀 봐줬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시간 생기면 무조건 염색부터 해야겠다.
촬영장에 도착한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황새벽과 박선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와서 앉았다.
“둘이 좀 친해졌어? 맨날 붙어 다니네.”
내 말에 황새벽이 특유의 덤덤한 투로 대꾸했다.
“친한 애가 선재밖에 없어.”
“저는 친구 좀 생겼는데, 새벽이 형이 친구가 저밖에 없어요.”
“맞아, 없어. 얘가 나랑 놀아주는 거야.”
자랑이라고 이러고 있네.
“친구 만들 노력 좀 해라, 이것들아.”
내 말에 박선재가 말했다.
“새벽이 형이 그럴 체력이 없대요.”
“없더라.”
그래도 열여덟 살에는 맞장구칠 체력은 있었다는 게 놀랍다. 이때 새부기 체력 좋았었네, 생각하다가 황새벽의 체력에 대한 기준이 너무 낮아졌지, 싶었다. 이런 놈이 투어를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돌았다. 기적이고 정신력이다. 이상하게 황새벽이 그렇게 누워 있어도 활동을 빠질 것 같다는 불안감은 든 적이 없다. 그냥 늘 뭔가 든든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더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앉아 있으니 곧 연습생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소속사별로 모여서 떠들다가, 곧 첫 번째 조별 미션 팀원들끼리 모여 앉아 달라고 제작진이 자리를 조정했다. 나는 ‘깨부수자’팀과 모여 앉았다. 깨부수자라니. 이름 참 마음에 든다.
신지운이 옆자리에 앉아 나에게 말했다.
“조별 미션할 때 형이랑 나랑 무슨 얘기 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더라.”
“쫌, 지운아. 핸드폰 보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른들 말 안 듣지?”
“맞았다고 할까 생각 중이야.”
“오늘 하루는 형이라고 불러줄까?”
내가 바로 태세를 전환했지만, 신지운은 웃지도 않았다. 저 드럽게 웃음없는 새끼. 지금은 잘 웃는데, 저 때는 사춘기가 웃음을 뺏어갔었나 보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떠들던 나는 제작진의 신호를 듣고 순간 몸이 굳었다. 내가 입을 다무니까 신지운이 더 인상을 쓰며 날 봤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최윤솔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데뷔 조 9명 중에 조작이 2명, 적극적인 접대가 있었으나 조작은 없었던 걸로 밝혀진 1명.
최윤솔은 데뷔 조였고, 그러니까 사실 퍼스트라이트는 최윤솔을 포함해 일곱 명인 게 맞았다는 말이 여전히 인터넷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걸 거다. 내가 자리를 뺏은 거라고.
최윤솔은 미친놈이고, 나에게는 나쁜 놈인데도, 별개로 그 부채감은 평생 내 마음속에 남아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사이 순위 발표식이 시작됐다.
첫 번째로는 데뷔권에서 10위권으로 떨어진 사람을 불렀다. 시작부터 좀 너무하네, 싶었는데 바로 그 마음이 사라졌다.
가장 많이 떨어졌다고 한 연습생은 데뷔 조 ‘소년들’의 멤버였다. 그러니까 어차피 전 순위도, 지금 순위도 본인 순위가 아닐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정말 메인 PD 마음대로 순위를 뒤바꾼 연습생들이 꽤 있었다.
그나저나 순위를 부르는 내내 조작이고 아니고를 떠나 내가 처음 경험했던 국선아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총 850만 2721점으로…….”
몇 가지 지표로 점수를 매기는데, 그 점수가 내 기억의 정확히 두 배씩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내내 고개를 숙이고 화면을 못 보던 나는 화면을 본 후에야 그 원인을 알았다.
첫 번째 국선아의 두 배였다. 득표수가. 그러니까 아주 단순화시키고, 왜곡도 들어가자면……. 두 배의 화제성인 거였다. 수정된 국선아가 오히려.
두 배의 화제성.
두 배의 득표수.
나는 기분이 정말로 많이 이상해졌다.
“다음은 순위가 가장 많이 상승한 연습생입니다.”
MC가 그 말을 하자마자 연습생들이 나를 돌아봤고, MC는 정말로 나를 호명했다.
“정해원 연습생.”
“예? 아, 네!”
“가장 순위가 많이 상승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좀…… 잘 보면 귀여운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반은 웃고, 반은 야유했다. 왜 뭐. 햇살이들이 나 귀엽대써.
“지난 순위 48위였죠, 정해원 연습생.”
“네.”
“7위에 가서 앉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어.
……어?
나는 순간 못 움직이고 자리에 서 있었다.
아, 이런 느낌 지난번 국선아 때도 느꼈었는데. 진공 상태에 들어온 기분. 세상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내 심장 소리만 지나치게 요란히 들리는 순간.
상태는 같은데, 감정이 반대인 게 신기했다.
나는 옆에서 누가 툭툭 쳐줘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7위.
퍼스트라이트 멤버의 숫자처럼, 일곱.
내가 정말로, 정말로 사랑하는 숫자.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감정을 추슬렀다.
왜곡되지 않은 나는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