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8화
첫 번째 국선아, 첫 번째 순위발표식.
정해원은 아직 핸드폰을 돌려받지 않았는데도 인터넷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다.
뒤에서는 정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웃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거리를 두는 연습생이 생겼다.
그중 가장 크게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단연 우하정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변화는 가장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야, 떨린…….”
“조별 미션한 팀별로 앉으래.”
초조한 마음을 우하정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앞자리 의자에 반대로 앉았는데, 우하정이 한 소리 했다. 정해원은 멈칫했다가,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효식이랑 같은 조 되더니 너도 빡빡해졌네.”
“효석이에요, 형.”
“알았어, 효식아.”
“……진짜 형은 왜 그러는 거예요?”
한효석은 투덜거렸지만, 정해원이 일어나니 자기도 같이 일어났다. 한효석이 따라오자 정해원이 물었다.
“뭐해?”
“배웅하게요.”
“여기부터 저기 가는데?”
“빡빡한 사람이라서요.”
“마음에 담아뒀구나, 효식이.”
“효석이요, 형.”
정해원은 연신 한효석을 놀리고 낄낄거렸다. 배웅 같은 소리를 하면서 조를 벗어나는 게, 한효석 나름으로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는 거라는 걸 알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는 알았는데 정확히는 몰랐다. 그냥 불안했다. 죽을 만큼 불안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불안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더 크게 웃고 더 많이 나댔다. 알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그저 불안함에서 벗어나려 허우적거리며 무의미한 체력소모를 이어갔다.
자리에 앉았더니 황새벽과 박선재가 옆에 와서 앉아 친구가 안 생기네, 어쩌네하며 떠들었다. 안주원도 조별미션에서 얼마나 떨렸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민지호가 앉았다. 회사로 돌아가 데뷔할 생각만 하고 있어서, 여기 사람들과 일부러 더 친해지지 않으려 하는 녀석이었지만 그게 또 슬슬 외로운 모양이었다.
“민조 왜 떨어져 앉아, 이쪽으로 와.”
정해원이 부르자 민지호가 대꾸했다.
“우와, 우리 누나도 나 민조라고 부르는데!”
“‘나’가 아니고 ‘저’.”
아직도 안 간 한효석의 핀잔에 민지호가 대꾸했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형이 정하시는 거지.”
“근데 왜 네가 대답하냐?”
“…….”
둘이 계속 싸우자 황새벽이 말했다.
“싸우지 마. 서로 두 걸음씩 뒤로 가.”
그 말에 한효석은 정석으로 뒤로 가고 민지호는 일부러 크게 두 걸음을 뒤로 갔다. 그걸 보고 멤버들 모두 한바탕 웃었다.
이놈들이라도 없었으며 이 자리에서 뛰쳐나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정해원은 생각했다.
* * *
국선아 2회차.
나는 드디어 숙소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순위발표 때 내가 너무 많이 오열하고 울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 너무 울어서 사람들이 정떨어져하면 어떡하나.
솔직히 좀 많이 울긴 했다. 갑자기 가슴 속에 있던 감정들이 일순간에 치민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해소였다. 내 속에 있지만,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던 것들이 해소됐다.
그리고 다행히 댓글 반응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완전 달랐다.
[와 정해원 우네]
[인생 2회차 이미지라 X나 담담할 줄 알았는데]
[뭐야 해원이 즐겜러 아니잖아ㅠㅠㅠㅠㅠㅠㅠㅠ]
[누가 즐겜러랬냐 애가 이렇게 데뷔에 진심인데ㅠㅠㅠㅠㅠㅠㅠ]
[정.해.원.데.뷔.해]
[이번에 순위발표 덕분에 해원 안 절실해 보인다던 사람들 줄겠다ㅎㅎ]
[↳그니까ㅎㅎ 능력치 높아서 서바 즐기고 있는 애를 안 절실해 보인다고 까네 또ㅎㅎ]
[요즘 진짜 어딜 가도 국선아 얘기지 않니 내 주위만 그런가]
[↳국선아 안 보니까 대화가 안 돼…….]
[근데 정해원 추세 무섭다 40위를 뛰어올라왔네ㄷㄷㄷ]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중위에서 데뷔권까지 한 번에 뛰어 올라옴]
[↳↳그렇다는 것은 퍼펙트 엔터가 일을 X나 심각하게 못했다는 뜻이지ㅎㅎㅎ]
[↳↳신희범이 메이크업 좀 수정해줬다는데 순발식 때 이미지 확 달라지더라]
[↳↳↳데뷔시킬 생각이 없는 거 아니냐 이 정도면]
[↳↳↳↳근데 처음부터 누가 봐도 우하정 밀어주는 거 보이긴 해]
[해원이 이제 안정권으로 올라가겠지?]
[얘들아 최애가 안정권이라고 투표 안 하면 절대 안 돼…….]
[↳내 말이]
[↳투표를 안 하는데 그게 최애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그렇게 국선아를 확인하고 나니 나는 이상하게, 물리적으로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저 형 요즘 날아다니네.”
신지운의 말에 내가 대꾸했다.
“컨디션이 좋아.”
“보기 안 좋아.”
“어쩌라고, 금쪽아.”
“아자몽이라며.”
“오늘은 금쪽이다. 신금쪽이.”
내 말에 한효석이 옆에서 신지운에게 말했다.
“저 형이 불러달라는 대로 불러주는 거 못 봤잖아요, 형.”
“그니까. 아주 국선아 때부터 한결같다, 저 형은.”
“제 말이요.”
한효식과 신금쪽(드물게 아자몽)은 양옆에서 나를 앞담화하고 있었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으므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휴가가 끝나고 바로 앵콜 콘서트 연습과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겨우 3주 만에 하는 콘서트인데 그게 그렇게 설레고 좋았다. 계절 때문인가.
본 콘서트와 같은 장소, 더 많은 인원과 함께 앵콜 콘서트를 끝내고 계획대로 민지호의 솔로 앨범 티저가 나왔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발매된 솔로 앨범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민지호의 솔로 앨범 음방을 응원하러 와있었다. 민지호는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거의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화려한 착장에 렌즈에 머리에 아이돌로서 힘줄 수 있는 건 다 힘주고 있는 민지호가 칭얼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거 시러…… 말할 사람 없어…… 나 친구 없어…… 있긴 있는데! 혼자 있으면 말 걸기 어색해……. 왜 그러지!”
민지호가 한참 우리한테 혼자 있어서 외로웠다는 말을 주절주절 떠드니까 박선재가 나와 황새벽, 그리고 안주원에게 말했다.
“형들이 잘못키웠어. 원래 알지? 강아지들 잘 키우면 독립심이 강하다고. 근데 민조는 독립심이 없잖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안주원을, 황새벽은 나를, 안주원은 황새벽을 가리키며 남탓을 했다. 너무 완벽한 남탓 삼각형이라 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댄서 형들한테 들어보니 민지호가 내내 긴장하느라 표정이 굳어있었다는데, 지금은 정말로 신이 나서 이것저것 멤버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우리 멤버들이 독립심이 다시 한번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그사이 민지호의 무대가 시작됐다.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미친 듯이 뛰고 싶어지는 노래였다. 민지호는 온몸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극강의 운동신경이었다.
나는 민지호의 무대가 끝나고, 응원을 위해 우르르 몰려온 우리 멤버들을 봤다. 한 명이 솔로를 냈는데, 촬영장에는 일곱 명이 다 몰려와 있다는 게 생각해보니 좀 웃겼다. 아주 처음, 국선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똑같은 생각을 한다. 진짜 더럽게 몰려다니는 거 좋아하는 놈들이라고.
국선아가 나에게 불행했어도, 행복했어도 결과는 같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언제까지나 여기 이놈들과 함께하겠지.
무대에서 내려온 민지호는 제일 먼저 우리에게 달려와 말했다.
“찢었지? 표정들이 그래!”
신이 난 민지호의 확신에 박선재와 한효석이 순서대로 한 마디씩 했다.
“좀 남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
“딱히 좋은 말을 해 줄 생각이 없긴 했는데.”
그렇게 친구들이 핀잔하고 나서, 형들은 반대로 잘했다고 아낌없이 칭찬해줬다. 빈말은 조금도 없었다. 2주간의 휴가를 포기해가며 준비한 민지호의 무대는 예술적인 경지였다.
* * *
민지호의 솔로 응원을 마치고 곧바로 회사로 이동했다. 민지호의 솔로활동의 끝과 겹쳐서 티저 공개. 그리고 우리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번 앨범은 말 그대로 통으로 ‘퍼스트라이트’ 그 자체에 대한 음악이었다. 원래는 앨범에 대한 계획이 세 개 정도로 갈렸는데, ‘퍼스트라이트’에 대한 앨범을 내자는 의견으로 투어 중에 자연스럽게 확정됐다.
투어 내내 우리는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같이 있었다. 함께 연습하고, 리허설하고, 공연하고, 밥을 먹었다.
투어를 할 때 가장 나에게 힘을 주었던 건, 세상에 우리 퍼스트라이트와 우리 팬, 햇살이들밖에 없는 세상에서 걷고 있는 듯한 그 느낌이었다. 어딜 가도 내가 가장 믿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멤버들과 시간이 날 때마다 거기에 대해 이야기했고, ‘퍼스트라이트’라는 앨범 주제가 확정된 건 신지운이 한 말 한 마디에서였다.
신지운은 ‘퍼스트라이트는 햇살이들을 포함한 단어야.’라고 했다. 아이돌도 팬도, 서로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상호 보완의 관계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에 우리의 팬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앨범, ‘퍼스트라이트’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 앨범 작업의 마무리가 다가오고 있다.
회사로 돌아와서, 믹싱 작업을 위해 나는 양이형과 작업실에 앉았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가며, 우리는 며칠째 밤을 새고 믹싱 마무리 작업 중이었다.
이제 양이형과 나는 어느 정도 뇌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션, 작곡, 작사, 편곡 모든 부분에서 음악을 들으면 딱 맞는 도움을 줄 사람을 떠올렸다. 믹싱 엔지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고생을 시킨 곡, 막 믹싱이 끝난 ‘목소리’의 수정1818을 받았다. 18은 18번째로 믹싱을 수정한 게 아니라 엔지니어 형이 우리가 짜증난다고 붙인 숫자였다. 근데 두 번 들어갔으니까 욕으로 화답한 걸 받아서 우리가 또 짜증나게 군 거다. 미안하게 됐지만 나중에 또 이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마지막 믹싱이 끝난 목소리를 들었다.
사실 수정18도 좋았다. 약간 바라는 게 더 있었을뿐이지. 그리고 수정1818은…….
“……완벽하다.”
양이형의 말대로, 완벽했다.
같이 회사에서 밤을 새던 보이드 엔터의 A&R들, 그리고 강효준 대표도 같은 반응이었다. 박선혜 팀장이 우리 둘을 가리키며 강효준 대표에게 말했다.
“저 둘이 계속 쪼아대니까 이게 나오네요. 어떻게 믹싱을 이렇게 완성했지?”
“그러게요.”
강효준 대표는 그렇게 네 글자만 대답하고 잠깐 말이 없었다. 내가 돌아보니, 강효준 대표가 말을 안 해도 박선혜 팀장은 표정으로 하고자하는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멤버들이 퍼스트라이트로서 통하는 게 있듯이, 나는 작곡가로서 양이형과 통하는 것이 있다. 멤버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양이형만은 이해하는 어떤 직업적인 것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A&R들끼리만 통하는 어떤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게 앨범에 들어갈 모든 음악이 마무리되고, 나는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작업실에 남았다.
소파에 누워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들었다. 이제 더 수정하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수정해도 약간의 미련은 남겠지만…….
그렇게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상태창이 떴다.
[‘과거의 미래’를 수정 중입니다]
[‘과거의 과거’가 ‘과거의 미래’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정 중…….]
[수정 중…….]
그리고, 나는 상태창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의 과거’를 수정된 ‘국선아’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대체하시겠습니까?]
현재 상태에서, 내가 수정한 국선아로 과거를 대체하고 싶냐는 질문인 모양이다.
어려운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