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379화 (37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79화

나는 한동안 떠 있는 문구를 보고 있었다.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음…….”

한참 동안 국선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애초에 그때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별개로, 선택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스템이는 나에게 빠른 선택을 종용하는 친구가 아니니까, 나는 일단 선택을 보류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이번 앨범 수록곡을 들으며 소파에 풀썩 누웠다.

“스템아, 이번 노래 괜찮지?”

그리고 궁금해했다.

“거기서 내가 만든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은 어때? 아니, 애초에 거기서도 내가 만들긴 하지?”

나는 음악이, 무대가 가장 궁금했다.

어려운 문제여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냥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음악을 만들고, 퍼스트라이트 일곱 명이 오래 함께 활동하고, 팬들이 나를 사랑해 주는 미래기만 하면.

그리고 어느 쪽에서도, 나는 햇살이들이 나를 사랑해 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 * *

regular_1228, 정해원의 팬인 이재희는 민지호의 솔로 활동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솔로는 솔로 앨범이라 즐거운 점이 있었다. 평소 이 멤버가 하고 싶었던 게 이런 거였구나, 알 수 있어서.

그렇게 솔로 앨범 활동이 종료되고 민지호는 X버스에 하루 종일 무언가를 쫑알쫑알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9시 51분. 도저히 못 참겠는지 스포를 터뜨렸다.

[민조 : 햇살이들 큰 거 온다!!!!!!!!!!!!!!!!!!!!!!!!!!!!!!!!!!!!!!!!]

퍼스트라이트 컴백 일정이 뜰 거라고 팬들이 예상하던 시점, 민지호는 2분 전에 팬들에게 오늘 자정을 기다릴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12시. 퍼스트라이트 컴백을 알리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WHO?]

그렇게 심플하게 상단에 적혀 있고, 퍼스트라이트 멤버 일곱 명의 멤버들의 뒷모습이 포스터 아래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7분 후. 한 장이 더 올라왔다.

[WE ARE]

두 번째 업로드에는 첫 번째 포스터와 같은 구도에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정면을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옆 사람에게 기대거나 정면을 보고, 혹은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다양하게 연출한, 심플하면서 모든 정성을 기울인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포스터의 최하단에 작은 글씨로 컴백 일정이 적혀 있었다.

단 두 장의 업로드로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뒤집어졌다.

[큰 거 온다ㅠㅠㅠㅠㅠㅠㅠㅠ]

[두 장으로 찢었다]

[개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햇살이들 있어? 퍼라 포스터 X나 잘생긴 건 알겠는데 뭔 뜻 같아???]

[↳컨셉이 퍼스트라이트일 듯]

[얘들아 두 번째 포스터에 컴백 일정 봤어? 8집 써놓은 거 봐 퍼라+햇살이임]

[↳이제 봤는데 7+1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

[↳↳와 나도 이제 봤다ㅠㅠㅠㅠㅠㅠㅠ]

[나…… 퍼라 진짜 좋아하는구나…….]

[↳나도ㅠㅠㅠㅠㅠ]

[↳숫자만 봐도 눈물ㅠㅠㅠㅠㅠ]

퍼스트라이트 미니 8집. 두 장의 포스터는 퍼스트라이트의 팬과 퍼스트라이트에게 관심이 있던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켰다.

이재희는 미니 7집이 나왔을 때,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이 유난히 열정적이었던 것을 떠올렸다. 퍼스트라이트 팬들에게 7은 특별한 숫자였고, 그래서 그 앨범이 어떻게든 놀랄 만한 성적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8을 ‘7+1’이라고 표기함으로써 팬들에게는 ‘8’ 또한 특별한 숫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벌써 8집이 나왔네.”

감격스러우면서, 동시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쩐지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정해원이 X버스에 질문을 올렸다.

[해원 : 햇살이들! 궁금한 게 있어요]

[↳해원 : 퍼스트라이트와의 추억을 많이 만들었나요?]

이상하게, 이재희는 그 질문에 울컥했다.

“응, 많이 만들었어.”

그렇게 혼자 대답해 봤다.

퍼스트라이트 중간 합류. 그때 정해원은 국선아가 끝나고 2년 동안 사그라들던 혐오의 불씨에 부채질한 것처럼 미움을 사고 있었다. 본인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나간 일이니 잊어버리고 웃자’라고 오히려 팬들을 달랬지만 6인 지지를 하다가 올팬으로 돌아선 팬들이나, 정해원의 팬들은 그러지 못했다. 좋아하던 쪽도, 싫어하던 쪽도 마음에 부채가 남았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걸로.

그러니까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편을 들어줄 거라고, 이재희는 단단하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재희는 정해원의 질문에 달리는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 * *

컴백 포스터가 나온 날에 이상한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닌가, 나는 올리면서도 고민했었다.

그런데 정작 올라오기 시작한 햇살이들의 댓글을 보니, 나는 이 질문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많은 햇살이들이 본인이 가진 추억을 나에게 공유해 주고 있었다.

[↳작년에 몸이 안 좋아서 방에만 있었는데 그때 퍼라에 입덕했어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내줘서 고마워]

[↳학년 바뀔 때 친구들이랑 다 떨어져서 무서웠는데 햇살이들이 많아서 금방 친해졌어]

[↳유학 중인데 룸메가 햇살이라 밤마다 수다 떨어서 언어 빨리 늘었어]

[↳한국어 배우는 건 덕질이 제일 도움이 됐어ㅋㅋㅋ 내 한국어 선생님은 퍼스트라이트야]

[↳혼자 여행 가서 기차에서 우리 노래 들었던 거! 그때 추억을 잊을 수 없어ㅠㅠㅠㅠ]

이런 댓글들을 하나, 하나 보고 있으면 햇살이들 개개인이 본인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에 퍼스트라이트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졌다.

그리고 댓글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았다.

[↳해원아 나는 힘들 때 네 생각을 해 지금은 정말로 잘 웃는 너를 떠올리면서, 나도 이것만 버티면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돼]

내 과거는 이제 나만의 과거가 아니고, 추억은 나만의 추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걸리는 건 하나였다. 만약에 수정된 국선아라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도 팬들도 덜 상처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박선재가 방문을 두들겼다.

“형, 야식 왔어.”

“오.”

나는 컴백 한 달 전,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방을 나왔다. 이제 오늘 야식을 먹고 나면 컴백 날까지 기름진 음식은 숙소에 반입 금지였다. 라면도 못 끓였다. 멤버 중에 지독하게 관리하는 멤버들이 있다 보니, 나머지 멤버들도 최대한 협조하려고 했다. 그 협조 중 하나가 기름진 음식이나 라면을 나가서 먹고 들어오는 일이었다.

특히 늘 관리에 빡세게 들어가는 민지호가 치킨을 보며 말했다.

“반짝거려…….”

“안 반짝거려.”

옆에서 한효석이 핀잔했지만, 민지호는 귀를 닫고 안 들었다. 그렇게 야식을 먹기 시작한 후에, 내가 말했다.

“국선아 때 악편 없었으면, 나 무조건 데뷔했을 듯.”

멤버들은 여전히 내가 국선아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만 하면 표정이 굳었다. 그래서 일단 자신만만한 말로 시작했는데도 다들 손을 멈추고 날 봤다.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는 놈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려고 식사를 중단하다니. 감동적이다.

나는 멤버들이 굳은 걸 풀어주기 위해 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만약에 너희랑 처음부터 데뷔했으면, 더 좋긴 했겠지?”

아, 이것도 아닌가. 애들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데. 뭐라고 말해야 안 놀라지?

“얘들아, 대답 좀 해주라.”

애들이 아무 말도 없어서 그렇게 재촉하니까, 황새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냥, 가정해 봤어.”

“당연히 좋지.”

“그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만약에, 지금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다 사라지고. 국선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할래?”

내 질문에 신지운이 욕을 하며 중얼거렸다.

“와, 끔찍하다. 그걸 또 해?”

“그니까, 이번엔 잘된다는 가정하에.”

“형은?”

“내가 물어본 거잖아.”

“형은 괜찮아? 지금까지 고생한 게 다 의미 없어지는 건데.”

“……오.”

그러네.

그걸 생각 못 했다.

안주원도 똑같은 생각인지 나에게 덧붙였다.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지.”

“그래도, 너희도 국선아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잖아. 우리 가족들도 그렇고.”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 그 스트레스라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네 결정에 비하면.”

그제야 나는 멤버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들었다. 멤버들은 여기에 대해서, 온전히 나의 결정만을 지지할 것이다. 과거에 대해 안고 가든, 잊고 가든. 여기서 중요한 건 나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그렇게 멤버들과 야식을 먹고 나서, 나는 잠깐 부모님께로 향했다.

자정이 가까워 도착한 나를 보며 부모님은 놀라셨지만, 컴백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 보러 온 거라고 하니까 잘 왔다고 등을 두들겨 주셨다.

기분 좋은 정도의 바람이 부는 가을밤.

나는 부모님과 문을 닫은 찻집 툇마루에 앉아서 따듯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내가 물었다.

“나 방에 있을 때. 엄청 힘들었지?”

내가 묻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힘들긴. 네가 힘들지.”

“솔직히 힘들잖아.”

내가 투덜거리자 아버지가 말했다.

“그때는 힘들었지, 지금은 대견하고.”

“…….”

“지금은 그냥. 좋다. 다 좋아.”

“응, 그렇구만. 다행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히히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나니 한 가지 확신은 생긴다. 다들 날 정말 아끼는구나.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도 안 빼고, 다 똑같이 내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꽤 잘살고 있는 모양이다.

* * *

부모님이 나와 놀아주다 잠을 청하러 떠나신 후, 툇마루에 남아 있던 나는 중얼거렸다.

“스템아, 나는 어떤 음악을 만들었어?”

내가 하는 나의 미래에 대한 모든 결정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무대였다. 아이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다. 아마 내 인생 마지막 날까지 그렇겠지.

그러니까 궁금한 건 그거였다.

나는 2년 동안의 은둔 생활에서 정말로, 정말로 많은 영화를 봤다. 감정의 밑바닥에서, 감정의 하늘 끝을 보았다.

그런 나의 삶들이 음악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니 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은 음악이었다.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무대를 포기했던 2년의 은둔이 없었던 나는 어떤 음악을 만들었는지.

[‘과거의 미래’를 확인합니다]

[확인 중…….]

[확인 중…….]

그리고 착한 스템이는 내가 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줬다.

“해원 씨! 2분 남았어요!”

“아, 네!”

과거의 미래.

소년들로 데뷔한 후, 퍼스트라이트로 재데뷔한 정해원의 32살이었다.

제대 후의 나는 동생들을 기다리며 솔로 앨범을 낸 상태였다. 나는 제일 먼저 핸드폰을 열어 안주원과의 연락 기록을 찾았다.

[안쭈 : 지금 촬영장에서 양해 구하고 쉬는 시간 얻었어 스트리밍 기다림]

[안쭈 : 왜 내가 떨리지]

나는 멈칫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뭐야, 여기 어디야.”

해외의 페스티벌인 것 같았다. 밖에서 함성이 들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여기는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좋아하게 될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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