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380화
“해원 씨, 괜찮으세요?”
멍때리고 있는 걸 들켰는지, 스태프가 내 표정을 살폈다. 내가 얼떨떨해서 바로 대답을 못 하자, 옆에서 댄서 형이 대신 대답했다.
“이러고 무대 잘할 거예요. 무대 체질이라.”
그러더니 정신 차리라고 내 등을 툭 쳤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최대한 긴장을 풀었다.
과거의 미래에서도, 무대에 오르는 건 매 순간이 미치도록 긴장됐다. 그것도 과거의 미래에 오자마자 2분 만에 무대에 오르다니…….
그래도 무대에 오르면 나의 긴장감은 모두 사라질 걸 알고 있었다. 관객이 적어도, 많아도 결과는 같았다.
야외무대에 오르니 관객들이 아득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내가 만든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바로 긴장을 풀었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건 내가 만든 음악들이 분명했다. 내 취향 그 자체였다. 수정된 국선아 속의 내가 만든 음악에서도 그게 느껴졌다.
나는 무대를 즐겼다. 멤버들이 없다는 건 쓸쓸했지만 기다리면 곧 만나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실컷 무대에서 뛰어놀고 나서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객실 발코니에 나와 도시의 야경을 보며 과거의 미래를 즐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내가 만든 퍼스트라이트의 음악들을 찾아 들어보았다. 여전히 내 취향으로 가득했지만, 분명히 결이 달랐다.
언제나 사랑만 받고 살아온 사람의 삶은 이런 거구나, 음악은 이런 거구나, 하루를 보내며 느꼈다.
“좋겠다.”
나는 나를 부러워하며, 지금의 나와 바꾸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놓고 보니,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꾸고 싶지 않다.
“됐다. 충분히 봤어.”
나는 중얼거렸다.
“돌아갈게.”
나는 내가 알게 된 어떤 것도 잊고 싶지 않다. 멤버들과 웃고 떠들었던 순간들, 하나하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앨범들, 팬들과 만났던 매 순간.
스무 살 이후에 쌓여 버린 삶의 어느 것 하나도 지우고 싶지 않은 욕심은 그 이전의 괴로움조차 붙잡게 했다. 아픔은 웃음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천천히 덮여간다.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니, 보이더라도 꽤 가볍게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을 마쳤다.
[대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과거’를 수정된 ‘국선아’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모든 기억은 남겨집니다]
후회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겪어온 삶이 좋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내가 무대를 되찾았다는 사실도, 멤버들과 팬들과 함께한 나의 역사를 사랑한다.
그리고 한 달 뒤, 퍼스트라이트 미니 8집 발매일.
잠실의 전광판에서는 1시 정각. 퍼스트라이트 타이틀곡 ‘목소리’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는 해구로부터 지상을 향해 파문을 일으켜]
[세상이 알게 될 거야 내가 여기 있는걸]
[함선에 올라타 앵커를 올려 다시 나의 세상으로 가]
[세상이 알게 될 거야 내가 여기 있는걸]
내가 선택한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음악이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을 사랑해 주었다.
* * *
요즘은 연일 퍼스트라이트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정해원의 생일인 오늘은 세계 다섯 개 랜드마크에서 퍼스트라이트를 상징하는 선라이즈 색의 조명이 켜지는 것으로 전달받았다.
강효준 대표는 미니 8집 활동을 하던 다음 해부터 짓기 시작해, 이제 막 마무리된 사옥의 최상층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계획대로 안 됐어…….”
강효준 대표가 중얼거렸다. 계획 실패였다. 생각보다 너무 잘 되어버려서.
대한민국, 아니, 세계 대중음악사에 남을 팀을 두 팀이나 데리고 있을 생각은……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VMC를 먹으라는 정해원의 허무맹랑하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정해원이 말한 그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소름이 끼쳤다.
인테리어가 한창인 사옥은 공사판이었다. 언제 끝나고 이사하나,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지는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할 때. 아직 문도 안 달린 최상층으로, 막 입국한 마스크를 쓴 정해원이 기웃거리며 들어왔다.
“와, 하나도 진행이 안 됐네.”
“기운 빠지는 소리 하지 마.”
“형이 할 말 대신 해준 거예요.”
정해원이 말하며 통창 앞에 털썩 앉았다.
“여름에 덥겠다.”
“겨울에도 더울걸.”
“아, 왜 통창으로 했어요.”
“있어 보이잖아. 원래 사업은 있어 보이는 곳에서 해야지.”
“누가 들으면 사업 욕심 엄청 있는 사람인 줄 알겠네.”
“넌 날 갈구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아휴, 당연하죠. 내 인생 낙인데.”
정해원이 낄낄거리더니 등 뒤에 양손을 짚어 몸을 뒤로 기울이며 말했다.
“뷰는 좋다.”
“뭘 처음 보는 것처럼.”
“훨씬 높아졌잖아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성향을 고려해, 회사는 원래 사옥이 있던 곳, 선유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으로 했다.
그렇게 창밖을 보던 정해원은 짤랑거리는 소리에 옆을 봤다. 강효준 대표가 열쇠를 건네고 있었다.
“뭐예요?”
“열쇠.”
“요즘 누가 열쇠는 써요. 그리고 무슨 열쇠예요?”
“내 집.”
“아, 맞다. 나한테 팔기로 했지.”
“뭘 팔아. 그냥 가져가.”
강효준이 열쇠를 툭 던지자 정해원은 얼떨결에 그걸 받아 들고 되물었다.
“그냥 가져가라고요?”
“네 연봉이라고 생각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막 하네, 이 형이?”
“뭐가 말이 안 돼. 네가 회사를 쌓아 올렸는데, 이것도 날로 먹는 거지.”
정해원은 열쇠를 한 번, 그리고 강효준을 한 번 보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농담도 아니었네.”
“돈으로 농담하면 안 되지.”
“그거보다 전에요. 핫백 1위 하면 집 넘겨준다는 거.”
“농담이었어?”
“농담이 아니었어도 그냥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안 받으면 안 줘. 안 팔 거고.”
“아니, 그럼 받긴 할 건데…….”
정해원은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본인이 회사에 얼마를 벌어다 줬는데 저 정도도 못 받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금전 감각이 없나?
……금전 감각은 혹시 재벌 3세이자 재벌 1세가 된 내가 없나?
아무튼 이 회사를 사실상 키우고 만든 정해원은 열쇠를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평생 이것보다 비싼 생일 선물은 못 받아보겠는데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퉁명스럽게 대답한 강효준 대표는 이내 정해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쨌든 생일은 축하하고. 이미 많이 들었겠지만.”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미 많이 듣긴 했지만.”
“가라, 이제 벌써 질린다.”
“와, 아까 이형이 형도 똑같이 말했는데.”
“양이형 마음은 내가 알지.”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 * *
새로운 사옥, 새로운 작업실.
나는 모든 준비가 끝난 작업실에 들어섰다.
나는 양이형에게 전화로 물었다.
“진짜 내일 와?”
-퍼라 놈들 모르냐. 내가 먼저 가면 자기는 2순위냐고 할 놈들이잖아.
“와, 순간 민조 목소리로 들렸어.”
-나도 지금 말하면서 소름 끼쳤다.
양이형의 말이 맞았다. 새 작업실 입주하는데 멤버들부터 안 부르면 두 명 이상 삐질 거다. 한 명은 몰라도 두 명부터는 감당이 어려웠다.
내가 처음 작업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상태창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작업실이 확인됩니다]
[새로운 작업실이 확인됩니다]
그사이 양이형이 말을 이었다.
-퍼라쯤 되면 이제 그런 걸로 안 삐져야 하지 않냐. 정신적으로 멋을 몰라, 이 새끼들은. 외적으로만 알지.
양이형이 지적하는 걸 듣고 있는 게 웃겼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퍼스트라이트쯤 되면.
이제 그런 말을 들을 정도가 됐나, 잠깐 생각해 봤는데 그것까지도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입주를 마치자마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작업실로 우르르 몰려왔다. 민지호가 말했다.
“좋네! 근데 연습실 봤어? 넓고 무선 청소기 여러 개 있어!”
그러자 옆에서 박선재가 말했다.
“민조 때문에 부대표님이 무선 청소기 사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다녔잖아.”
“연습실 깨끗해야 연습 잘된다잖아.”
한효석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문득 멤버들의 시선을 느끼고 둘러보며 물었다.
“왜 다들 쳐다봐? 부담되게.”
“효식이가 내 편 들어써…….”
민지호의 감동한 목소리에 한효석이 우리가 동시에 쳐다본 이유를 알고 얼굴이 벌게졌다.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없지.”
옆에서 신지운이 한마디 거들며 놀렸다.
안주원이 황새벽을 보며 말했다.
“슬슬 먹을 거 시킬까?”
“이미 시켰어.”
황새벽의 말에 내가 투덜거렸다.
“먹을 것만 관련되면 빨라지네, 저 거북이는.”
“그 순간을 위해서 평소에 감속하는 건가 봐.”
안주원도 내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둘러 보고 나서, 멤버들은 창가로 모여들었다. 박선재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작업실도 뷰가 좋네.”
“그치?”
내가 자랑하려고 창가로 향하는데, 신지운이 말했다.
“다음번에 작업실 옮길 때는 전망 필요 없다고 해. 어차피 보지도 않잖아. 일하느라고.”
“이번엔 볼 거야. 그리고 너 오지 마, 이제.”
내가 투덜거리는데 황새벽이 말했다.
“정해원 작업실이 보이드 엔터 등대라서 퇴근할 때 잘 보여야 해.”
“왜 등대야?”
“밤에도 안 꺼지잖아.”
“밤에 작업하니까 그렇지…….”
“낮에 일하고 와서 밤에 일하는 거잖아.”
“…….”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코만 슥슥 문지르니까 신지운이 말했다.
“오늘 특이한 일 많이 일어나네. 말싸움은 새벽이 형이 이기고. 한효식은 민지호 편들고.”
그러자 안주원이 대답했다.
“새 작업실이랑 우리가 낯가려서 그런가 봐. 평소의 우리가 아니야.”
“그건 맞아.”
신지운도 동의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TRV에 있던 내 작업실 이야기로 넘어갔다. 박선재가 말했다.
“형들 기억나지? 작업실 좁아서 복도까지 쭉 신문 펼쳐놓고. 직원분들 그거 보고 웃고…….”
“회사는 별로지만 직원분들은 좋았어.”
그때 작업실 밖까지 신문을 펼쳐놓고 짜장면을 먹던 스무 살 내외의 애새끼들은 어느새 어른이 됐고, 그러는 시간 내내 그때의 직원들은 여전히 보이드 엔터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건물이 바뀌는 동안에도 줄곧.
나는 작업실 의자에 앉아서 멤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다가, 갑자기 보니 훌쩍 어른들로 보였다. 세계 어디서나 알아보는 놈들이다. 내 멤버들.
“왜 든든하냐, 갑자기.”
내가 중얼거리니까 멤버들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그렇게 돌아봐서 내가 소리를 내서 웃으니까 멤버들이 왜 웃냐고 한마디씩 했다. 나는 대답했다.
“몰라, 그냥 너희 보니까 웃음이 나와.”
“나도 그렇긴 해.”
황새벽이 옆에서 조용히 동의해 줬다.
잠시 후 식사가 도착하고, 창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원래 이사 하는 날 비가 오면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밥을 먹고, 다음 앨범에 대하여, 퍼스트라이트의 미래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렇게 웃고 또 웃고, 또 웃는 사이에 새 작업실을 찾아낸 상태창은 계속해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의 ‘타이틀’이 L급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장소에 L급 히트곡(퍼스트라이트)의 보상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나의,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새로운 기록이 다시 한번 시작되고 있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