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양길.
대학시절 친구들과 인터넷 체스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MMO와 모바일 게임을 연거푸 성공하며 국내 굴지의 게임 회사를 창업한 입지적인 인물.
소수의 인원으로 번듯한 게임을 개발해내는 열정, 그리고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정확히 시류에 탑승하는 결단력.
조양길 회장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1세대 개발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시류를 잘 못 읽고, PC 시장만 고집한 끝에, 무너진 경우가 허다했다.
오로지 개발 중심으로 거듭 성공을 이어온 인물은 조양길 회장이 유일할 정도.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듣기로는 깐깐하고 성격이 불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그르르르르······.
자꾸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다. 굶주린 지옥의 파수견을 앞에 두고 있는 기분.
‘이거 긴장되네.’
보통 키에 마른 체격,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어찌 보면 미중년이라는 느낌이다.
자기관리에 엄격하다는 인상.
그런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저거, 게임 패드 맞지?
“아빠, 설마 아직도 클리어 못 했어? 그리고 오늘 같은 날까지 게임 붙잡고 있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냐?”
“막 접으려던 참이었다. 하드 소울은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밸런스를 이렇게 잡았지? 이게 요즘 트렌드야?”
하드 소울.
더 쉽게! 더 간편하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을 넘어서, 떠먹여 주는 것이 요즘 게임 개발의 트렌드인데, 그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작가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채, 유저의 멘탈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하드코어 난이도의 정점!
아, 케르베로스 사냥 중이셨구나. 아무래도 내가 들은 것은 환청이 아니라, 게임 사운드였던 모양.
“자네 게임은 좋아하나?”
첫 질문부터 예상 밖의 질문이다. 난데없이 게임?
물론 게임 개발사 회장과 직원의 대화라고는 하지만, 너무 뜬금없지 않나?
하지만 대답을 지체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
“좋아합니다.”
실수일까?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인물 중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을 자랑처럼 떠드는 이들이 많다.
특히 프로그래머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기획자다.
게임의 설계자가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다는 말인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게임 개발을 생업으로 삼게 된 것에 큰 자부심이 있다. 그 덕에 미칠 것 같은 크런치도 버텨오지 않았나?
“확실히 좋아하나? 게임을 만들다 보면 종종 게임을 쳐다보기도 싫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저는 아닙니다.”
“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빠, 시작부터 무슨 게임 이야기야? 보통 학교는 어디 출신이냐, 직업은 뭐냐? 이런 대화하지 않아?”
“그건 이미 조사 끝났다.”
조사? 조사라고?
“어차피 서울대나 카이스트 출신 아니니까, 학벌은 의미 없고. 회사는 이번에 내가 인수했으니, 직장도 질문할 필요 없지.”
“취미라든지!”
“지금 물어봤잖아. 게임 회사 직원이 취미가 게임이어야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취미가 업무에 도움이 되는 업종은 별로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게임 회사는 무척 이상적이다.
“일단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옛날 사람들처럼 너희 결혼에 왈가왈부할 생각 없다. 너희 오빠들에게도 그랬듯이, 결혼은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네 결혼 상대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내 직원에게는 관심이 많지.”
조양길 회장은 슬쩍 눈을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게임 회사 직원이라지? 그것도 우리 직원.”
“예 맞습니다. 내일부터 멕베스로 출근 예정입니다.”
“우연치고는 재미있군. 그런데 그냥 직원도 아니고, 내 딸이랑 결혼해야 할 직원이라면···”
나는 조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내 딸이랑 결혼해야 할 직원이라면, 테스트 정도는 해도 되겠지?”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테스트? 순간 오싹하고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솟구쳤다.
“어떤 테스트입니까?”
천하의 조양길 회장의 테스트는 어떤 것일까?
“자네 게임 좀 하나?”
“못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습니다.”
“이 게임 해본 적 있나?”
“하드 소울이요?”
“그래.”
하드소울을 해본 적 있냐고? 미튜브 공략 영상까지 외울 정도로 한때, 질리게 했었다.
“예. 조금······.”
“한번 실력 좀 볼까?”
내 손에 게임패드가 쥐어졌다.
“이게 테스트 입니까?”
“첫번째 테스트라고 해두지.”
첫 번째? 그럼 두 번째도 있나? 그런데 설마 테스트란 것이 계속 이런 식으로 하드코어한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일까? 그러면 어쩌지······.
이건 너무 쉬운데.
“깨갱깽!”
조금 전까지 조양길 회장 앞에서는 지옥의 파수견임을 어김없이 드러내던 케르베로스가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하지 못한 채, 가혹한 매질에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처음 출시 때야, 하드코어였지, 이제는 하도 많이 해서, 그냥 단순한 리듬게임이나 다름없다. 특히 케르베로스는 보스 중에서도 패턴이 확실한 녀석이라서 한번 익숙해지면, 어지간한 중간 보스 보다도 쉬운 녀석이다.
“······.”
“······.”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차, 너무 쉽게 깼나?
“아빠, 테스트라며? 결과 말해 줘야지”
연아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흠흠, 잘 하는군.”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장비를 잘 갖춰주셨고, 스킬도 잘 찍어 놓으신 덕분입니다.”
“하하, 그렇지?”
아니요. 막장 빌드 타셨는데요.
“뭐. 좋아. 첫 번째 테스트는 통과. 집안에 함께 게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는데, 앞으로 심심하지는 않겠네.”
“아버님, 그 말씀은···”
“일단 회사에서 자네와 내 딸의 관계는 비밀로 하지. 할 수 있겠나?”
“네.”
전혀 어렵지 않다. 어차피 연아도 회사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했다. 경영수업의 일환으로 비서실에서 근무한다고 들었다.
“나는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을 싫어해.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거야. 확실히 할 수 있겠어?”
“예.”
나는 조회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딱히 내 개인사를 떠벌리고 다니는 취미는 없다. 애초에 연아와도 결혼 전까지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었다.
조회장도 그런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인상이다. 대한민국 최대 게임사의 회장다운 카리스마랄까?
그러나 웬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나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식사하러 들어가요! 오자마자 게임부터 시키고 손님한테 뭐하는 거야.”
그런 우리 사이에 연아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환기했다.
우리는 다이닝룸으로 이동했다.
정말 으리으리한 저택이군.
“식사 내올게요.”
“네 잘 먹을게요. 이모!”
마침 식사 준비도 끝났다.
진수성찬이 하나둘 차려지는 동안 조양길 회장은 말했다.
“게임의 룰을 설명해주지. 나는 이제부터 자네에게 계속 미션을 내리고 자네는 그것을 수행하는 거야. 간단하지?”
게임?
“아빠! 아까부터 대체 무슨 꿍꿍이야! 결국, 우회해서 반대하는 것 아냐?”
“아니라고 했다. 네 결혼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직원이 내 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는 회장 입장에서 엄연히 자질을 테스트해봐야 하지 않겠냐?”
“또 말도 안 되는 고집 시작이네, 진짜.”
부녀지간의 말다툼을 보고 있자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재벌가라고 그렇게 엄격하진 않구나.
은근 평범한 부녀지간이라는 느낌이다.
“게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뭐?”
“조금 전에 게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싫은가?”
“아니요. 좋습니다. 다만.”
“다만?”
“게임이라면 확실한 보상이 있겠죠?”
조회장님이 만드신 게임은 확실한 보상으로 유저들 중독자로 만드시는 일에 능하시잖아요?
그리고 게임이라면, 나도 고분고분 휩쓸리는 성격이 아니다.
깨지더라도 부딪치면서 하나씩 보상을 따내는 게 묘미 아니겠나?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나?”
조양길 회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예. 있습니다.”
아마도 회장님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저는 따님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얌전히 호의호식하고 싶습니다.
“하하하! 이 친구 재미있네? 각오해. 우리 회사 게임 특성 알지?”
플레이는 노예처럼! 대신 보상은 값지게!
고 열정, 고 페이!
“기대하겠습니다.”
“나도 기대하지. 월요일에 출근하면 양실장을 보낼 거야. 일단은 그의 지시대로 행동해.”
“알겠습니다.”
“그게 오늘 첫 번째 테스트에 통과한 보상이다.”
그게 보상이라고요? 조양길 회장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웃고 있으니, 속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연아도 별말이 없는 것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다 먹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진수성찬으로 배를 채우고서 우리는 집을 벗어났다.
“그래도 생각보다 긴장 안 하고 잘했네?”
“아니, 긴장 많이 했는데?”
“우리 아빠가 웃음이 빈곤해. 그런데 웃었다는 것은 좋은 신호야.”
연아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나 잘했어?”
“아주, 잘했지. 그런데 조금 걱정되기는 하네.”
“뭐가?”
“아빠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빈말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결혼 반대는 아닐 테고, 난데없이 게임은 웬 말이지?”
나도 예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밉보이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솔직히 플라잉 재떨이 한 방은 각오했는데.”
내가 아니라, 애먼 케르베로스가 뚜드려 맞았지만.
“음···. 차라리 그거 한방으로 끝냈으면 편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말하니까 좀 불안한데?
“워낙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도 덕분에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어. 혹시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신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닐걸?”
그렇다고 해주지.
*
*
*
새로운 사원증과 함께 멕베스 사옥으로 출근했다. 원래 다니던 회사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출근 시간은 비슷했다.
“과장님?”
마침 입구에서 홍기도 대리와 만났다.
“그래도 첫날이라고 일찍 출근했네?”
“첫날은 그래야죠.”
아니, 다른 날도 그래야지.
“표과장?”
“?”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회사 입구 로비에서 윤과장을 발견했다.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송부장의 오른팔 같은 남자다.
“안녕하세요.”
“어어.”
홍대리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으며, 윤과장은 자신과 대화 중이던 낯선 남자를 소개했다.
“마침 잘됐네요. 이 친구가 지난번에 송부장님이 말씀하신······.”
“아, 반갑습니다. 김순영입니다.”
김순영. 아마도 지난번 송부장의 후배라고 했던 김차장이 바로 이 남자인 것 같다.
“표세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듣자 하니, 왕년에 기획팀 에이스셨다면서요?”
“표과장이, 일 하나는 잘합니다. 회사생활은 못 하지만요.”
옆에서 이죽거리는 윤과장을 보고 있자니,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혹시 학교는 어디 나오셨죠?”
아, 꼭 있다. 시작부터 학벌부터 확인해야, 성이 풀리는 사람.
“한체대 나왔습니다.”
“체대?”
“네.”
순간, 김순영 차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체대 나온 놈이 게임 회사 취직한 것이 그렇게나 우스운 일인가?
물론 극히 드문 일이기는 하다.
“듣자 하니, 유지보수팀으로 발령 나신 것 같은데, 신규 개발이 아니라서 조금 서운하시겠습니다?”
“우리 개발자들 실력이 맥베스 개발자님들과는 상대가 안 되죠. 신규 개발은 무리죠.”
얼씨구? 결국,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말인데, 낯부끄럽지도 않나?
“아닙니다. 저희 설거지해주러 오셨는데 감사하죠.”
이번 합병은 우리 회사의 캐시카우인 세븐메이지가 주 인수 목적이었다.
하지만 세븐 메이지를 담당하지 않던 기타 개발인력들은 맥베스의 기존 게임들을 유지보수하고, 맥베스 개발인력은 신규 IP개발에 착수하게 된다고 들었다.
게임 회사간 합병에는 흔히 있는 조직개편 패턴이다.
하지만 설거지라니? 말이 심한데?
“어쨌든 송부장님께서 당부하신 것도 있으니, 앞으로 종종 얼굴을 뵙게 될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대 놓고 갈구겠다는 선전포고다. 하지만 어쩌겠나? 여기서 괜히 상사와 드잡이해봐야, 피 보는 것은 나뿐이란 것쯤은 알고 있다.
괜히 일벌이지 말자. 서른 넘어서부터는 잘했잖나.
회사생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외운 것이 금강경이 아니던가?
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참이었다.
낯선 음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표세인 과장님?”
“네?”
처음 보는 남자였다.
“양실장님!”
김순영 차장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뭐지? 높은 사람인가?
실장이라는 직책은 회사마다 사용례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직급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멕베스 실장급이라면, 최소한 준 이사급 아닌가?
“표세인 과장님께 용무가 있습니다. 제가 먼저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예? 무슨 일로······.”
“제가 김차장님께 그걸 설명해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김 차장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설설 기었다. 조금 전까지 이죽거리며 나를 깔보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태세전환이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양실장은 나를 사내 카페의 간이 회의실로 안내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뷰가 일품이지만, 워낙 경황이 없어서 감상할 여유가 없다.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께서 게임을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걸 이렇게 바로 시작한다고?
“애초에 어떤 인연으로 회장님에게 그런 제안을 받으셨는지, 저에게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부분은 회장님께서 당부하신 사안입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제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예.”
내가 누군지는 모른다는 건가?
“앞으로 저를 개인 매니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러닝메이트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매니저?”
지금 내가 뭘 잘 못 들었나?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매니저?
내 얼빠진 얼굴을 본 양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 저와 표세인 과장님은 한팀입니다. 힘을 합쳐서, 보스를 쓰러트리는 것이야말로 게임의 묘미가 아니겠습니까?”
보스? 쓰러트려?
“상대가 고용주라는 생각에, 접대 정신 같은 생각하셨다가는 큰코다칠 겁니다. 하드 라이크 장르 알고 계시겠지요? 그것의 하드코어 모드라고 생각하십시오. 페널티는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하드 라이크 장르의 하드코어 모드라면······. 케릭터 삭제?
설마 지금 페널티가 캐삭빵 게임이라고?
“만약 겁나신다면······. 차라리 지금 당장 포기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양실장은 슬쩍 내 안색을 살폈다. 아마도 나를 가늠하려는 거겠지.
페널티와 보상.
이 둘 중에 어느 쪽으로 기우는 타입인지.
“제 페널티가 크다면 보상도 어마어마하겠군요?”
“상상 이상이실 겁니다.”
양실장은 만족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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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이고 싶다고?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