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5화 (5/346)

5.

양실장이 안내한 곳은 강남의 고급 한식집이었다.

인테리어는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느낌.

“이런 곳은 어떠십니까?”

“솔직히 경험이 없어서 판단하기 어렵네요.”

“주로 임원 레벨분들이 마음에 들어하시는 곳입니다. 솔직히 저희 세대가 좋아할 만한 곳은 아니죠.”

일부러 임원 레벨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아까, 말한 줄서기는 반쯤 농담일 것이고, 남은 것은 하나.

“기억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해가 빠르신 것 같아서 기쁩니다.”

예상대로 어드바이스였다. 처음에 매니저니, 러닝메이트라는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는데, 차라리 트레이너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양실장은 조만간 내가 임원급 인사들을 접대해야 할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다.

하지만 그 전에······.

“그래서 조금 더 디테일한 내용이 궁금합니다.”

다름 아닌, 첫 번째 미션이다.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합병으로 충원된 신규 인력들은 기존 게임들의 유지보수를 담당하게 될 겁니다.”

“예.”

이미 알고 있던 내용.

“신규 인력에 한해서, 재량껏 팀을 꾸리십시오. 4명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O는 5명이지만, 제가 포함된 덕분에 아쉽게도 1명분 몫을 더 분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구성으로 작년 매출 이상의 성과를 내셔야 합니다.”

“그냥은 불가능한 미션이군요.”

“그렇습니다.”

모든 게임에는 기대 수명이 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고 하지 않던가?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은 자연의 섭리.

게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아니 훨씬 더 엄격하다.

그런 상황에서 작년 매출 이상을 기록한다? 이걸 그냥 하라는 것은 그냥 가혹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가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적이 왜 기적이겠나?

게다가 4명. 대규모 업데이트를 기획하기에는 맨파워도 부족하다.

“사업비 30억. 그것도 표과장님의 완전 재량.”

신규 출시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수백억 쏟아붓는 맥베스라지만, 출시 후 몇 년이 지난 게임 사업비에 수십억을 쾌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완전 재량이라면, 제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든지, 문제가 없다는 뜻이군요.”

“정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회장님의 뜻이라도 일개 과장급에게 30억의 재량권을 줘도 괜찮습니까?”

“당연히 표과장님 이름으로는 무리지요. 아마 이사진이 문제를 제기하겠지요.”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하지만 정확히는 저 양성태가 담당할 팀에게 배정된 금액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팀.

팀이라고 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같은 팀이라는 말을 하셨군요.”

만약 30억을 투자하고도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양실장의 몫이라는 것.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하, 염려 놓으십시오. 고작 30억 정도는 별문제 아닙니다.”

양실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어딘가 어색한 양실장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것이 고작 튜토리얼 정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튜토리얼이 30억.’

대체 이 게임의 끝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일단은 팀부터 꾸리시기 바랍니다. 표면적으로 표과장님이 팀장 대리입니다만, 실질적인 팀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좋은 팀원들을 모으시길 바랍니다.”

우선 파티부터 꾸려라 이건가? 진짜 게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만 확실히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팀의 전권은 완벽하게 제게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예. 저는 조언 정도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표세인 과장님의 서포터에 집중할 것입니다. 제가 안 된다고 해도 그것에 너무 얽매이실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목표지점은 팀이 작년도 매출 이상을 기록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양실장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꼭 담당 게임을 리뉴얼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 매출을 올려도 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확실하면 좋겠습니다.”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계획을 세우신 것 같군요. 그리고 회장님은 그런 기발한 방식을 좋아하십니다. 따라서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양실장은 무척 기대된다는 얼굴이었다.

*

*

*

“하, 점심 한번 거하게 드신 모양이네.”

혼잣말치고는 큰 소리. 차대리였다.

“성과장님, 안 그래요? 누구는 바빠죽겠는데, 아직 담당 파트 없다고 티내나? 새로왔으면 빨리 업무파악을 해야지.”

“어? 야, 너 왜 그래 인마.”

“성과장님도 아까 들으셨잖아요. 김차장님이 하신 말씀 기억 안 나세요?”

성과장이 차대리의 어깨를 툭 치며,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캐릭터가 쉽네.’

성과장은 전형적인 기획서 기계. 아마도 차대리가 커뮤니케이션 담당인 모양.

‘프로그램팀과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기획자 중에서 흔히 있는 유형이다.

게임 업계는 강력한 카스트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기획자.

그 외 기타.

절대적으로 견고하고 무너지지 않는, 마치 먹이사슬 같은 구조.

따라서 때때로 자신이 기획자이면서도 프로그램팀의 일에 더 열성적으로 나서는 유형의 기획자들이 있다.

기획자로 살아남기 위해서 프로그래머의 환심을 사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

‘김차장이나, 윤과장을 통해서 내 악담이라도 들었나?’

꼭 그게 아니더라도, 마침 소문대로 자신이 그대로 유지보수에 남고 굴러온 돌인 내가 신규개발팀 자리를 차지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내가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쩐다.’

나는 슬쩍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대놓고 지켜보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은연중에 귀를 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하하!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표과장이 일은 잘하는데, 눈치가 없어요.’

마침 점심전에 들었던 윤과장의 조롱이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나는 전 회사에서 사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기획자간의 파워게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기획자의 첫째 역량은 다름아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이 커뮤니케이션의 해석에는 다양한 소지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기싸움.

약해빠진 기획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좋은 기획 채가고, 내 기획서 먼저 밀어 넣고,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 닦달해서 기한 맞추는 것까지 모든 것이 싸움 아닌 것이 없다.

‘조금 이르지만······.’

어차피 회장님과의 게임으로 신규팀까지 꾸리고 이런저런 바쁜일이 몰아닥칠 상황이다. 차라리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 시작한다.’

‘라저.’

마침 자리에 있던 홍대리와 눈빛을 교환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눈치 하나는 귀신인 홍대리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차대리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손이 멈추고 있다. 등뒤로 느껴지는 조금 경직된 분위기.

차대리는 성격 자체가 싸움꾼 스타일이 아니란거다.

제대로 불 같은 성격이면, 이렇게 우회적으로 깔짝깔짝 잽이나 날리지 않는다.

“차대리.”

“왜 그러시죠?”

“거기 오타있네.”

“네?”

일단 잽한번 날리고.

“그러고보면 착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정말이다. 정말로 많다.

“일부터 똑바로 해야,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법이거든?”

“그리고 이거 이렇게 퀘스트짜면 동선 틀어져. IF 하나 더 달아.”

나는 슬쩍 차대리에게 다가가서 그의 허술한 코딩을 손봐주었다.

요새는 기획도 어느 정도 코딩은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못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

“왜, 왜! 남의 작업물을 함부로 만지시는 거예요!”

오타 지적에 이은 코드 수정. 차대리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니, 차대리 말대로 내가 업무파악 좀 해보려는데,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말이지. 홍대리, 그거 가져와.”

“네.”

홍대리는 냉큼 두꺼운 파일철을 가져왔다.

“QA 사안 업데이트도 누락이고, 기안에 있는 내용이 데이터 테이블과 차이가 있네. 이래서 업무 파악이 제대로 되겠어?”

“그, 그건 우리가 요즘 너무 바빠서.”

이해한다. 바쁠거다. 그런데, 그건 절대로 기획자가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

“바빠? 프로그래머가 맨날 하는 소리가 그거 아니야. 만약 그런 상황이면, 차대리는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날거야? 여기 일을 그런식으로 해?”

“아······.”

모두가, 그리고 언제나 크런치다. 바쁘다는 변명은 그저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입 놀리기 전에 손부터 움직였어야지. 대리씩이나 돼서 그걸 몰라? 신입이야?”

“······.”

“그리고 성과장님.”

“?”

성과장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나를 봐라봤다.

“대리 따위한테 잡아 먹히면 안되잖아요. 만년 과장으로 지내다가 치킨집 차리러 갈 거예요? 자기 아랫사람이 다른 과장한테 필터링 없이 지껄이는데, 그냥 놔둬? 저랑 첫 단추부터 어긋나게 시작하고 싶어요? 아니지. 이거 성과장 지시 아닙니까? 지금 돌려서 나한테 시비거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미안하다. 미안한데, 내가 지금 남 사정봐줄 여유가 없다.

굳이 성과장까지 걸고넘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차대리에 대한 심적 부하를 강화하는 것.

“아니죠? 아닐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제가 부탁해도 되죠?”

“부탁이요?”

“지금 차대리 데리고 가서, 제대로 훈계 좀 해주세요. 새로 온 내가 성과장님 앞에서 차대리 깨부수고 그러면 성과장님도 기분 안 좋잖아요. 그렇죠?”

“아, 그, 그게 좋겠네요. 차대리 일어나. 우리 커피 한 잔 하자.”

“아, 예.”

성과장과 차대리는 엉겹결에 일어나 사무실을 벗어났다.

‘차대리 기 좀 꺾이겠네.’

성과장 같은 타입도 뻔하다. 자신에게 피해가 없는 동안에는 천사지만, 세상에 천사 같은 사람이 어디 있나?

은연중에 내가 심은 잡아 먹혔다. 라는 단어와 트러블을 싫어하는 자신까지 피해를 보게 만든 차대리에 대한 짜증이 솟구칠 것이다.

“오우, 엑셀 세게 밟으시는데요? 일주일 정도 후에 시작할 줄 알았어요.”

“어, 그랬는데, 마침 차대리가 입질을 보내더라고.”

“이건 다시 챙기고.”

홍대리는 두꺼운 파일철을 챙겼다.

“그런데 그거 뭐였냐?”

“글쎄요? 그냥 제일 두꺼워 보이는 걸로 잡았어요. 그래야, 툭 내려놓을 때, 임팩트가 있잖아요?”

QA 보고서가 이렇게 두꺼울 리가 없지.

“그런데 양실장님과 식사 자리가 불편하셨어요?”

“아니, 전혀. 완전 맛있더라.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한식 중에 최고였어.”

나는 살짝 홍대리를 약올렸다.

“맛있어 봤자, 남자 둘이서······.”

이 놈은 캐릭터가 너무 확실하다.

“그보다 우리 할 일 생겼다.”

“할 일이요? 분명 업무는 다음 주부터라고······.”

“기도야.”

“네? 불안하게 왜 이름으로 부르십니까?”

홍대리가 불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일이 하기 싫은데, 어떻게 회사를 다니는 거니.

따지고 보면 참 대단한 녀석이다.

“쓸데 없는 생각 말고, 사람 하나 추천해봐.”

“사람이요?”

“그래. 네 동기 중에 제일 잘난 녀석이 누구냐?”

“그걸 정말로 모르세요?”

“누군데? 만약 너라고 하면 죽는다. 진짜?”

“······.”

진짜로 한 방 날리고 싶은 놈이다.

“어떤 타입을 원하십니까? 머신? 파이터?”

머신은 기계처럼 기획서 잘 뽑아내는 놈.

파이터는 프로그래머와 그래픽팀을 닦달해서 일정 잘 맞추는 놈.

“완전체는 없냐? 니네 기수 폭망이야?”

그런데 왠지 홍대리 표정이 이상하다. 설마 진짜로 네가 에이스면, 이건 아웃인데.

진짜 홍대리가 기수중에 최고면, 얘네 기수는 경신대기근이나 다름 없다.

“하나 있죠.”

“오, 있구나. 그런데 진짜 너라고 하면 죽어.”

“남궁원이요.”

“아! 그 세븐메이지, 싸움닭!”

내가 왜 남궁원 대리를 생각 못 했지? 세븐 메이지 기획팀 에이스를 잊고 있었다니!

그래.

파티에는 든든한 파이터 하나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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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는 파이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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