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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6화 (6/346)

6.

다음날 점심시간.

“그럼 잘 다녀와라.”

“라져.”

홍대리는 슬쩍 경례를 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홍대리 선에서 해결되면 좋을 텐데.’

홍대리에게는 간략하게 새로운 팀을 꾸려야한다는 정도로만 말해두었다.

그리고 첫 임무로 남궁원 대리와 함께 식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본격적인 포섭에 앞서 상대의 의향을 떠보라고 한 것.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혼자 점심을 먹겠구나.’

홍대리도 없으니, 오늘은 정말 혼자 점심을 먹어야할 상황.

“아니, 표과장! 드디어 홍대리한테도 버림 받은 거야?”

선자불래 내자불선.

좋은 놈은 오지 않고, 꼭 이상한 놈이 찾아온다.

“한가하냐? 니들 코드 파악하려면 죽어날텐데?”

기획 이상으로 프로그래머의 인수인계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과장씩이나 되서 뭐가 중요한지 파악이 안 돼? 이 귀중한 시간에 코드나 들여다보고 있어야겠어?”

너도 일 안 하는 거냐? 어째 전 회사 직원들은 죄다 이 모양이지?

“그런 귀중한 시간에 왜 나한테 와서 깔짝대지? 내가 파리로 오해해서 한 대 후려치면 어쩌려고.”

“와, 이제 막나가네? 송부장님 안계시니까, 아주 기운이 펄펄나는가봐?”

그러고 보니 그렇네? 정말 그 덕분인가? 요즘 아주 매일 같이 기운이 넘치는데?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랄까?

“그······.”

무슨 용건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양실장님하고 어제 무슨 이야기를 한 거냐?”

“뭐?”

“아니, 솔직히 이상하잖아. 출근하자마자 따로 면담하고, 점심까지 함께 하고. 둘이 무슨 사인데?”

“맙소사······.”

“뭐야? 그게 무슨 반응이야?”

“내가 너에게 그걸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던거야? 진심으로?”

“아, 이 자식.”

윤과장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이 근처에 제일 비싸고 맛있는 집이 어디냐?”

“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가 살거니까.”

“너 미쳤냐?”

“안 궁금해? 설마 우리 사이에 맨입으로 정보교환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어?”

“아······.”

“어디보자, 옳지 마침 괜찮네. 오마카세 10만원.”

“10만원? 너 미······.”

“잘 생각하고 말해라.”

윤과장은 잠시 몸을 배배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쉽다. 쉬워.

우리는 인근의 하이엔드 스시 전문점을 방문했다.

“오마카세 하나랑 런치 하나 주세요.”

나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왜 내 메뉴를 니 맘대로 정하냐?”

“그럼 너도 오마카세 시키려고?”

“······.”

이윽고 나는 눈돌아가게 화려한 초밥 풀코스를 만끽했다.

“그래서 뭔데, 이제 속 시원하게 말해봐.”

“어허, 식사 중에는 말하는 거 아니야. 와, 이 집 제대론데?”

미운 놈 등쳐먹으니, 더 맛있다. 초밥에 꿀 바른 맛이랄까?

“이제, 말해라. 우리 사이에 철창 아른거리는 것 같다.”

슬슬 털어놔야겠다. 안 그러면 진짜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중요한 부분은 빼고 적당히 둘러대면 되겠지. 게다가 어차피 곧 알게 될 내용이다.

“양실장님이 새로운 기획팀을 맡게 되시는데, 나도 그쪽으로 가게 됐어.”

“새로운 기획팀? 잠깐, 양실장님 정도면 기획이 아니라, PM달고 신규 개발실 하나 차려야 하는 것 아냐?”

“보통은 그렇지? 사업자 새로 빼서 독립 스튜디오 내기 마련인데.”

“신규 기획팀······.”

윤과장은 그래도 나보다는 사내 역학관계를 주워들은 것이 많은 모양인지, 뭔가를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도 하나 묻자, 양실장님은 사내 입지가 어느 정도냐?”

“너 모르냐?”

“내가 알 것 같냐?”

내 말에 윤과장은 씩 웃으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커피는 네가 사야지?”

“나랑 커피 마시고 싶냐?”

“······테이크 아웃.”

그래. 어차피 등쳐먹은 것이 미안해서, 커피 정도는 사려고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과장은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이것이 바로 호구의 모습이구나.

“양실장 별명이 왕의 남자래.”

“회장님과 그만큼 각별하다?”

“그렇지. 회장님 전담 비서가 따로 있는데도, 회장님은 꼭 양실장을 찾으셔. 특이하지? 너 아냐? 회장님 비서 엄청난 미인인거? 그런 미인을 놔두고 매번 양실장을 찾는다니까?”

그래. 회장님 비서가 누군지 내가 잘 알지. 내 여자친구니까.

아마 딸에게 업무 외에 잡다한 일 시키기 뭐하니까, 양실장을 찾는 것 아닐까?

뭐, 아끼는 것은 확실하겠지만.

“어쨌든 사십대 초반에, 그것도 사업부 사람이······.”

“사십대?”

“놀랐지? 아주 동안이야 그 양반.”

몰랐다. 또래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나도 아직 잘은 모르고, 어지간한 임원들도 양실장 앞에서는 쭈구리 된다고 하더라.”

“그렇군.”

“그런데 그런 대단한 양실장이 왜 너 같은 쭉정이를 찝었지?”

“뭐 임마? 나도 옛날에는 기획팀 에이스였어, 세븐메이지, 내가 원년멤버인거 몰라?”

“언제적 이야기냐.”

그래. 옛날 일이긴 하지.

“어쨌든 가자.”

“그래, 커피라도 얻어먹어야지. 제일 비싼 커피가 뭐지?”

뭐긴, 블랙커피 500원.

*

*

*

“기분 좋으신가봐요?”

“어? 왔어?”

자판기 커피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하던 윤과장의 얼굴을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그럴 일이 있어. 그런데 너 표정 왜 그러냐? 까였냐?”

“까인 것은 아닌데, 걔가 가끔 똘끼를 부리는데, 오늘도 그러네요.”

“똘끼?”

“그게······.”

뭐야? 불안하게, 왜 말끝을 흐려? 아무래도 홍켓몬으로는 안되는 것 같다. 역시 몬스터볼은 트레이너가 직접 던져야 하는 모양이다.

“지금 남궁대리 어디 있어?”

“옥상이요.”

“잘됐네. 옥상 가서 얘기하자.”

“네.”

우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마침 저기 있네요.”

옥상 흡연실 벤치에서 홀로 고고하게 흡연을 즐기는 여성.

게임 회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트한 정장을 걸친 남궁원 대리가 마침 옥상에 있었다.

“아, 저거 똘끼 충만할 때 포즌데.”

마치 노천카페에 있는 것처럼 나이브한 자세로 벤치를 독점하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쟤 싸움 잘하냐?”

“프로그램팀하고 관계가 끔찍하죠. 얼마 전에도 제대로 한판 붙었어요.”

새로운 사무실에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한 판 붙었다?

“이유는?”

“자잘한 수정 사항 몇 개를 부장님 지시로 기획서 없이, 일정표만으로 프로그램팀에 넘겼는데, 프로그램팀이 펑크를 냈대요.”

“그런데?”

“부장님에게 꾸지람을 듣고는 나중에 적반하장으로 기획팀 욕을 했대요. 그때, 쟤가 뚜껑 열린 거죠. 쟤가 지지 않고 랩을 쏟아내니까, 프로그램팀 직원이 넋이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지금 우리 상황이 여기 프로그래머들에게 밉보이면 침몰 확정 각이니까, 차라리 다른 사람으로······.”

“그래서 결과는 누가 이겼어?”

개발자간의 다툼의 결과는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결국 프로그램팀이 백기 들고 야근해서 바로 처리했대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야근시켰다? 최고잖아?

“좋아!”

“네?”

“아주, 좋아 내 스타일이야.”

“과장님 취향 독특하시네요.”

게임 회사 직원답지 않은 세련된 오피스 슈츠 차림의 미친개.

게다가 졌다면 모를까, 이겼다?

어차피 기획자의 일은 프로그래머에게 기획안대로 소스를 코딩하게 만드는 것이다.

살살 달래든 윽박을 치든, 프로그래머에게 코딩만 시킬 수 있다면, 뭐든 상관 없다.

잘하면, 홍대리와 남궁대리를 이용해서, 굿캅, 배드캅도 연출할 수 있을지도?

“남궁대리.”

“아, 표과장님.”

남궁대리는 나를 발견하고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 진짜 건방지죠? 외국물 먹어서 그래요.”

너도 외국물 좀 먹지 않았니? 하지만 이 정도 건방은 아무래도 좋다.

일만 잘한다면야.

“대충 홍대리에게 이야기는 들었지?”

“예.”

“관심 있어?”

“솔직히 저 나중에 이직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왜 아니겠냐? 일 잘하는 개발자는 이직 코스 밟아서 커리어와 연봉을 끌어 올려야지.

“그래도 당장은 아닐 것 아냐? 최소한 과장은 찍어야 어디 명함을 내밀지.”

“네. 과장 찍고, 팀장급으로 이직할 생각이에요.”

그래. 당장 이직할 계획은 아니다.

“그래서?”

“표과장님 프로젝트가 정확히 뭔지 몰라서 별로 흥이 안 나네요. 솔직히, 유지보수 관심도 없고.”

과연 이 세상에 신규 개발 보다 유지보수에 관심 있는 게임 개발자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그나저나 확실히 캐릭터가 세다. 아직도 자리에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조금 나른해 보이면서도, 거리낌 없는 표정.

천성적인 거만함이 느껴진다. 이런 타입은 둘 중 하나다.

크게 되거나, 도태되거나.

하지만 그것까지는 내 알바가 아니다. 크게될 싹이라면, 다 자라기 전까지 그 역량을 최대한 이용해야지.

“문제는 그것뿐? 내가 그것만 설득하면 되나?”

“그리고 홍대리랑 일하는 것도 썩······.”

“표과장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얘는 진짜 아니에요. 다른 후보 더 있습니다. 우리 기수 괜찮은 애들 많아요. 저를 보시면 아시겠죠?”

홍대리는 남들 다 들리는 귓속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역효과였다.

너를 보니, 남궁대리 놓치면 안될 것 같다.

“홍대리 문제는 내가 미안하다. 내가 인덕이 없어서.”

“괜찮아요. 표과장님은 쟤랑은 다르게 열심히 일하시잖아요. 솔직히 매달 송부장이 내려주는 말도 안 되는 일정 커버하시는 것 보고, 항상 감탄했어요.”

1달을 2~3달처럼 사용하니까. 퇴근을 안 하고 일하면 누구나 나처럼 할 수 있다.

하지만 남궁대리가 그런 느낌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히 유지보수만은 아닐 거다. 그건 약속하지.”

나는 이미 양실장도 짐작하지 못한 플랜을 세웠다. 단순 유지보수만으로 회장님의 미션을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저예요? 저 싫어하는 사람 많은데?”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돌아왔다. 확실히 얘도 좀 깨는 타입이다. 홍대리 기수에 무슨 문제가 있나?

“너 싸움 잘하잖아? 특히 홍대리는 그런 타입이 아니니까. 가서 좀 질러줘. 내가 적극적으로 백업할게.”

“그렇게 말하고서는 나중에 이상한 술자리 만들어서 프로그래머에게 사과시키실 거죠?”

니네 팀 팀장이 그랬니? 웃기는 일이네.

“한번 기 싸움에서 눌렀으면, 계속 억눌러놔야지. 그걸 왜 풀어?”

겨우 건 목줄을 풀라고 지시하면 누구든 성나지.

“그러니까요. 누구는 좋아서 싸우는 줄 아나.”

역시 생각 없이 지르는 타입이 아니다. 계산하고 지른 것이구나?

확 끌린다. 이녀석은 정말로 놓치면 안될 것 같다.

“수습은 내가 상대 팀장하고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너는 그냥 계속 질러.”

“정말이죠?”

살짝 눈을 치켜뜨며 흰 치아를 드러낸다. 막상 이런 표정을 보니까, 조금 불안하다.

“질러. 귀찮게 두 번씩 묻지 말고.”

순간, 조금 껄렁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온 멘트가 머릿속 필터를 거치지 않고 튀어 나간 느낌.

어쩌면 내가 대리때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신입 시절부터 대리까지는 하루가 멀다고 남들과 싸웠다.

하지만 당시 상무 승진을 앞둔 PM님의 부탁으로 누르고, 과장이 된 후에는 송부장에게 눌려 지내느라, 소리치는 법 자체를 잊어버리고 지냈다.

“역시 쿨하시네요. 어제 차대리 까실 때, 다시 봤어요. 솔직히 그전까지는 음소거 모드 사무실 지박령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음소거는 그렇다치고, 지박령이라니······. 가끔은 칼퇴하고 연아랑 데이트도 했는데······. 물론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어차피, 인사이동이다. 의향을 물은 것은 요식행위야. 알지? 우리는 그저 까라면 까는 거 잖냐.”

“알죠. 물어봐 주셔서 감사해요. 열심히 지를게요!”

아니, 일을 열심히 해야지.

“흐음······. 그러고 보니 처음 과장님과 대화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처음? 이게 처음 아니야?”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갑자기 환한 얼굴로 배시시 웃는다. 뭐랄까, 감정선을 쫓기 어려운 타입이다.

‘모 아니면 도. 그런 캐릭터이려나?’

남궁원(파이터)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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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홀리는 재주도 있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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