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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0화 (10/346)

10.

약간의 해프닝 이후, 무사히 회사를 빠져나온 나는 구로디지털단지 인근에 있는 한 카페로 향했다.

오늘 이곳에서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모임이 있다.

게임업계는 거기서 거기라서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지인이다.

“어? 왔냐?”

“잘 지내셨습니까?”

박영수는 내 첫 직장의 사수였던 사람. 회사에서 지낸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는 퇴사 후 작은 게임회사를 차렸고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유지한 인연이었다.

“얼굴 좋아졌네. 송부장 안 보니까 살만한가 봐?”

“아, 송부장님.”

송부장. 잊고 있었다. 한때 지긋지긋한 이름이었는데, 얼마나 됐다고 이름이 낯설게 들릴 정도다.

“맥베스 물이 좋은가 봐? 역시 대기업이 좋아. 그렇지?”

박영수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형님도 예전에 앵그리 게이트에서 근무하셨잖습니까?”

“아, 그랬지.”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러게 왜 서로 다 아는 처지에 괜한 말을 하십니까.

한국에서 대기업 성장 원동력의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가 크런치란 거 아시면서.

퍼지기 직전까지 잘 쥐어짜는 것이 대기업들의 노하우인 법.

IT라고 하면 뭔가 세련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스타트업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조금만 규모가 불어나면 갖은 이유를 들어 구성원들을 쥐어짜기 시작한다.

그리고 앵그리 게이트는 그 이름 그대로 업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회사 중에 하나였다.

“내가 오죽하면 회사까지 차렸겠냐.”

“거짓말인 거 다 압니다. 자기 게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차리신 거잖아요.”

업계에서 오랫동안 버틴 중견 개발자가 새삼 크런치를 못 버티고 뛰쳐나갔다? 그래놓고는 게임회사를 차린다?

이건 뭐, 노인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수준의 블랙 코미디 아닌가?

“요즘 좀 어떠세요?”

“죽겠다. 아주.”

네, 뭐 그러시겠죠. 회사를 운영하는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잖아요.

“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프로그래머도 아닌 주제에 회사를 차리겠다고 나선 내가 등신이지.”

모바일 시장이 막 기지개를 켜던 시절에는 게임사 명함 한 장만 들고 가면 투자자들이 줄을 서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이 시기에 개발자들이 숱하게 투자금을 날려 먹었고, 이후로는 서울대급 학벌 정도가 아니면 투자자의 얼굴도 보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너는 회사 차리지 마라.”

물론입니다. 절대 안 하죠.

남이 채운 족쇄야 도망칠 길이라도 있지만 스스로 채운 족쇄는 벗어날 방법도 없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솔직히 인정하자, 호랑이 앞에서 정신 차리면 뭐 어떻게 되는데?

맨정신에 물리면 덜 아프나?

“대출 만기도 다가오는데, 머리가 아프다.”

“외주 돌려서 어찌어찌 연명은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 요즘 국내 사정 알잖아? 신규개발 다 죽어서, 일감도 없어. 우리 애들도 지금 몇 달째, 월급 밀려있는 상황이다.”

아, 이거 하소연 길어지면 곤란한데. 빨리 일 처리하고 들어가 봐야 하는데.

“그런데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설마 너 회사 그만두려고? 차라리 치킨집 차려라.”

“그때 되면 그럴게요. 그보다 형님 발 좀 넓으시잖아요?”

박영수는 재직 중에도 부업으로 게임 아카데미 강사까지 뛰던 남자다.

지금은 인디 게임 모임에서도 제법 이름이 통하는 사람.

천성적으로 사람 좋아하고 에너지 넘치는 타입이다.

어디에 놓아도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사람인데······.

‘차라리 진짜 치킨집을 차렸으면, 단골 관리 잘해서 성공했을 것 같은데······.’

“뭐지 그 눈빛은?”

아차, 얼굴에 티 났나?

“설마 이 녀석! 너 정말로 회사 때려치우고 게임회사 차리려고?”

아니구나. 하긴 헛다리 잘 짚는 이런 인간적인 허점도 매력인 사람이지.

“그보다 질문이 있는데.”

“뭔데?”

“잘빠진 프로토타입 완성하고도, 투자 못 받아서 힘들어하는 친구들 좀 알고 계세요?”

모든 업계가 똑같겠지만, 좋은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줄을 서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천생 개발자 유형들의 경우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게임 개발능력은 우수해도 투자를 따내는 재주가 부족하거나, 그 방면에 아주 깜깜한 친구들이 많다.

하다 못해서 앰씨소프트의 간판인, 엘에이지 조차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허덕이다가, 현재의 CEO가 인수한 덕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지 않았나?

‘언제나 여기가 금광이지.’

블록크래프트 같은 인디게임이 2억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 반열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아닌가?

페이스북이나 기타 소셜어플리케이션 모두 시작은 볼품없는 소규모 개발사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형 게임 개발사들은 캐시 아이템을 붙여넣기 편한 일정 규모 이상의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것은 틀린 전략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금광을 모른 척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뭐, 금광일지, 나가리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조양길 회장이 던져준 30억.

작년 매출 이상의 수익을 기록해야 하는 미션.

이 두 가지 조건이 명확해진 순간, 나는 그 즉시 이것을 상상했다.

외부 투자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

‘뭘 하든 돈만 벌면 그만.’

모두의 부동산을 훌륭하게 리뉴얼해서 높은 성과를 기록하는 것은 좋겠지만, 무엇이든 한계는 존재한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옵션이 필요한 법.

“그걸 왜 찾는데?”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모르세요? 아니면 쓸만한 싹은 벌써 다들 침 발라놓은 상태?”

“한국 게임사가 인디게임 시장에 신경 쓰는 것 봤냐?”

“그럼?”

“넘치고 넘쳐. 다만 다들 투자자들이 우려할만한 요소가 하나씩은 있지.”

“개발 열정 과다?”

“정답.”

일인 혹은 소규모 개발자들은 지나친 작가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업계도 그렇다.

“아이디어는 쓸만한데, 플랜이 너무 크다든지, 아니면 지나치게 인디 지향이라든지.”

“그렇군요.”

“그보다 정말로 궁금해서 못 참겠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줘라. 그래야 내가 도와줘도 도와줄 것 아니냐?”

확실히 박영수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는 오픈해야겠지.

“사실 제가 투자 좀 하려고요.”

“투자? 얼마 오천?”

“그보다 좀 더 높게.”

“일억?”

“더 높게.”

“이억?”

안 되겠다.

“미니멈 10억. 맥시멈 20억.”

남은 10억은 킵해두는 편이 좋겠지. 차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2, 20억? 너 미쳤냐?”

어허, 목소리가 너무 크시네. 카페 안의 시선이 순식간에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단돈 2억 투자에도 눈물 흘릴 개발자들이 투성인데, 20억은 눈이 뒤집힐 만한 금액.

“제대로 말해봐. 그런데 니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 너 이 새끼 흙수저란 건 거짓말이었냐? 어쩐지 은근히 부티가 난다더라니······. 그동안 나한테 뜯어 먹은 술값이나 갚아라.”

부티 난다는 말은 태어나 처음 들어본다. 나쁘지 않네. 그 보다 뜯어 먹다니?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간 사람이 누군데?

“사내 프로젝트입니다. 정확히는 단순 투자가 아닌 파트너쉽이 될 거고요.”

“맥베스?”

“예.”

“맥베스가 인디 개발사랑 파트너쉽을 한다고?”

단순 투자보다 개발 역량 지원까지 추가되는 파트너스는 훨씬 더 좋은 계약이다.

물론 뼛속까지 인디 정신으로 무장한 일부 개발자들은 대형개발사의 갑질이 싫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종류의 파트너쉽은 인디 개발사에게 무조건 이득이다.

“세인아!”

아, 왜 갑자기 손을 잡으시죠?

“나랑 하자. 너 나랑 하려고 찾아온 거잖아 그렇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우리가 만든 프로토타입 좋다. 진짜로 좋아.”

“뭐 개발하시는데요? 업무기밀이라면서 개발 프로젝트 이야기는 안 해주셨잖아요.”

“잠깐 기다려봐라. 상승아!”

박영수는 직원을 불렀다. 테이블 위에 렙탑과 게임패드가 세팅되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거 비즈니스니까, 서운해하기 없기입니다.”

“안다. 내가 과장 따위에게 무슨 큰 기대를 하겠냐.”

그러면 이제 손 좀 놓죠. 저 여자친구 있는 몸인데.

“자, 시작한다.”

프로토타입 특유의 로고 하나 없는 썰렁한 시작.

맑은 하늘과 메마른 잔디.

그리고 녹이 슬어 방치된 폐건물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황량한 장소 한복판에 서 있는 주인공.

카메라 뷰는 TPS(3인칭 슈터). 총기 줌 버튼을 누르자, 솔더뷰로 줌인 된다.

“모션 묵직하네?”

“그렇지? 컴벳 그라운드 같은 국산 FPS 모션 보다는 조이스테이션의 퍼스트 파티 게임과 비슷하게 구현했어. 우리 이상승이가 그쪽 고집이 좀 있어서.”

박영수의 말에 이상승이라는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일단 조작감 좋다. 앉고 일어나고, 앉는 버튼을 길게 누르니 자리에 눕는다. 그러니 버튼 아이콘이 출력된다.

“포복 위장?”

“요건 내 취향. 군필 개발자라면 이 정도 디테일은 물어줘야지.”

오케이. 동감입니다.

-그르르······.

순간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좀비?”

어물쩍거리며 주위를 배회하는 좀비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마침 바닥에 놓인 돌멩이에 떠올라 있는 버튼 아이콘.

“주워서 던지나?”

딱히 질문이 아니었기에, 나는 곧장 돌멩이를 주웠다.

조준 트리거를 당기자······.

“와인드업? 설마 트리거 구분이 있나요?”

“응. 바로 던지지 않고 누르고 있으면 적중도와 대미지 상승.”

군더더기라는 느낌과 흥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감각. 이건 좀 더 면밀한 테스트가 필요하겠다.

아무리 참신하고 좋은 기획이라도, 유저 편의성보다 중요한 아이디어는 없으니까.

어쨌든 조준점에 맞춰 돌을 던지자 좀비의 머리에 피가 튀고 휘청인다.

“한방 킬은 아니구나.”

“이제 뛰세요.”

“뭐?”

-그워어어어!

“어?”

언덕 뒤편에서부터 순식간에 수많은 좀비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음······. 지금 쟤들 소리 듣고 달려드는 거죠?”

“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

“숫자가 불어날수록 좀비 속도와 내구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겠네요.”

“어?”

“그렇게되면, 더욱 은신이나, 전략적인 플레이가 강요 되겠죠?”

“지,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네요.”

“야, 기똥차다!”

내 말에 박영수와 직원은 무언가를 미친 듯이 적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몇 가지 아이디어만 접목하면 더 훌륭한 물건이 나올 것 같다.

“이거 사양 좀 타겠네요.”

지금은 텍스쳐 레벨이 바닥이라 괜찮지만, 제대로 각 잡고 완성하면 사양 꽤 필요할 것 같다.

결국은 최적화 문제. 최적화는 게임 완성도와는 별개로 게임의 판매량에 직결된다. 게임이 아무리 재미있으면 뭘 하나?

컴퓨터에서 안 돌아가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부분은 중소개발사의 약점이니, 확실히 케어가 필요할 것 같다.

최소한 100마리는 될 것 같은 좀비들의 질주.

“스테미너 게이지는 손 좀 봐야겠고.”

어느 정도 달리자, 나타나는 스테미너 게이지. 줄어드는 폭이 다소 느리다.

이러면 긴장감이 약하지.

“테스트 빌드라서 아직 면밀하게 손 보지는 않았습니다.”

알아요. 굳이 변명할 필요 없습니다.

“아, 총이다.”

한참 달려 도착한 버려진 건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구식 AK-47을 발견했다.

“조준 트리거 당긴 상태에서 단발, 연사. 소음기도 있나 보네요?”

“아직 추가는 안 됐어.”

인벤토리를 열자, 총기 슬롯이 눈에 띄었다.

“좋네요. 요즘 총기 개조 못 하면 아쉽죠.”

“그렇지. 그렇지.”

“그래서 이 게임 목적이 뭐죠?”

대충 게임은 파악했다. 중요한 것은 컨셉을 확인해야 한다.

“좀비들을 뚫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거. 이 과정에서 좀비를 유인하거나 다른 플레이어를 좀비에게 미끼로 만드는 식으로 전략적 플레이를 하게 되는 거지. 결과적으로 많이 살아남으면 나중에 유저끼리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어라? 이거 괜찮은데?

“컴벳 그라운드의 자기장 시스템을 좀비가 대체한다?”

“그렇지. 좀비라서 좀 더 유기적으로 전략을 고민하거나, 때로는 이용할 수도 있겠지.”

듣다 보니 점점 괜찮다. 게임업계에서 높게 평가받는 컨셉이란,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존의 좋은 평가를 받은 아이디어에 약간의 개성을 첨가하는 것.

“좀비인 만큼 유동적으로 유저를 유도하거나, 유저가 개척할 수 있겠군요.”

“맞아. 맵도 자신이 발견한 좀비들이 맵에 마킹되는 방식이라서, 맵핑에 재미를 주려고 하고 있어.”

“음······.”

“어떠냐, 컨셉 잘빠졌지?”

정말로 괜찮다. 물론 제대로 구현해 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동안 왜 저에게도 비밀로 하고 계셨는지, 알 것 같네요.”

“미안하다. 알잖냐. 이 바닥이 벤치마킹이란 이름으로 날치기 개발 횡행하는 것. 솔직히 우리도 컴벳 그라운드에서 모티브 많이 얻었으니, 할 말 없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발사가 날치기당하면 개발력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지.”

구구절절 옳은 말씀.

어쨌든 정리해보자면, 배틀로얄 장르에 좀비를 추가한 컨셉.

색깔도 분명하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소감은?”

“합격. 이 말 외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저, 정말로?”

박영수의 얼굴이 활짝 폈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다른 곳과 이야기 진행 중인 곳 없죠? 그리고 지분은? 형님 100%?”

“나중에 우리 애들한테 스톡옵션 주기로 구두 약속한 것이 있긴 한데, 일단은 100%지.”

오케이! 투자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주식배분 문제다.

배분이 복잡하면 이래저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언제 정식으로 미팅 날짜 잡으시죠.”

볼 것도 없다. 이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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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드디어 마법을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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