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4화 (14/346)

14.

“좋아. 그러면 그렇게 결정된 것으로 알고, 이번 주 중으로 세부 계획안 올려.”

“예.”

“아주 잘했어. 준비 잘했네.”

“감사합니다.”

회의는 큰 탈 없이 순조로웠다. 딱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하고······.

“얘기 들었어요. 프로그램팀 상황과 의도를 파악해서 그에 맞는 플랜을 준비하셨다고요. 사실 우리 그래픽도 요즘 조직개편이다, 뭐다. 정신 없는 상황이거든. 알잖아? 그래픽은 좀 아티스트 기질이 있어서, 멘탈 유지가 안되면 능률이 확 줄어드는 거. 그런 참에 이런 기획이라니, 너무 고마워요.”

오팀장은 진심으로 이 기획이 마음에 꼭 든 모양.

아, 어쩐다.

이 분위기에 통수 날리면 아주 게거품 물 것 같은데?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래픽 파트는 내 몫이 아니다.

‘홍대리에게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네.’

홍켓몬의 유일한 쓸모가 그래픽 다독이는 것이 아니겠나?

‘힘내라, 홍기도.’

*

*

*

“오셨어요?”

“응. 별일 없지?”

“있어요.”

“응?”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배속된 함송희입니다.”

처음 보는 직원이 넙죽 인사했다. 남궁대리도 여성치고는 작은 키가 아닌데, 함송희는 그 보다도 훌쩍 큰 장신이었다.

“반가워요. 그런데 신입?”

“예. 어제 인사과에서 연락받았어요.”

‘양실장이 물어다 준 신입인가? 하지만 신입이라······. 즉전감은 아니란 소리네.’

기획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반이라는 말이 있고, 인간관계는 시간이 치트나 다름없다. 따라서 기획 밀어 넣고 다른 파트 개발자들 푸쉬하는 능력이 부족한 신입은 즉전감은 아니라는 것.

‘굳이 신입을 보낸 이유가 있나?’

“원래 어디 파트였어요?”

“음······. 여기저기 땜빵 하느라고 딱히 어디 파트였다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말끝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누이 말했듯이 기획자의 중요 역량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능력이다.

변변한 기획서 한 줄, 혹은 프로그램 코딩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도 탁월한 말빨 하나로도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기획자들도 많을 정도.

‘그렇다고 말빨만 좋아도 문제지만······.’

어쨌든 당장 좋은 인력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아직 양실장의 캐릭터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일을 허투루하는 타입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굳이 신입을 보냈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건데······.’

팀원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팀 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직감에 불과하지만, 이 신입 뭔가 있을 것이다.

“뭐 맡아봤어요. 아니, 혹시 지금까지 작성한 기획 중에 하나 보여줄 만한 것 있어?”

“기획서 써본 적 없는데요.”

이게 뭔 개소리야?

“기획서를 써본 적이 없다고? 아! 혹시 테이블만 만졌니?”

게임에 들어가는 각종 수치를 기록한 엑셀 문서를 게임 회사에서는 흔히 테이블이라고 부른다.

‘테이블 전담 인원이면 나쁘지는 않지.’

수치에 빠삭하고 수학 능력이 좋은 친구들이 주로 밸런싱(보상설계) 팀에서 테이블만 끼고 사는 인원들이 많다.

“아니요.”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다.

“그럼 원래 맡은 일이 뭐였어?”

“기획은 이번이 처음이고, 원래는 프로그램팀이었습니다. 프로그램팀 신입들은 몇 개월 단위로 팀을 옮겨가며 소소한 잡일만 하거든요.”

“프, 프로그래머?”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네.”

“일단 앉아. 앉아서 이야기해야지, 왜 서 있어. 야, 홍대리. 커피 좀 사올······.”

“여기 있습니다.”

이놈은 이럴 때는 정말 마음에 든다.

“자세히 좀 들어볼까?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신입이 왜 기획팀에 들어온 거야?”

“몇 달 근무하다 보니까. 기획이 더 재미있어 보여서, 마침 조직개편 때문에 희망부서 설문 조사하기에 기획팀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어요.”

조금 전까지는 마음에 걸렸던, 조근조근한 음성도 프로그래머 출신이라는 말을 듣자, 확 마음에 든다.

“그런데 후회하지 않겠어? 연봉 테이블은 프로그래머가 더 위인데?”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던데요.”

요새는 그런가? 나 때는 차이, 많이 났는데······.

하긴, 요즘 기획들은 스크립트 이해도가 높고 더러는 자체 코딩 마저 가능한 인재도 있다.

나조차도 틈틈이 공부해서 LUA와 VBA, 거기에 더해 부족하나마 C#까지 겉핥기 정도는 다루게 되었으니까.

“요즘 애들은 좋겠네.”

“팀장님도 아직 한창이신데, 웬 노인네 같은 말을 하고 그러세요.”

남궁대리가 피식 웃었다.

“어쨌든 본인이 원해서 오게 되었으니, 열정은 있겠네?”

“네.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프로그래머 출신 기획의 가치는 상당하다. 하지만 신입 레벨에서 부서 이동을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쨌건 일반 기획자들에 비해 스크립트 이해도가 차원이 다른 프로그래머 출신의 기획자다. 더군다나······.

“그런데 가끔 일정 터지면, 간단한 코딩 정도 부탁해도 될까? 알다시피, 우리팀 규모를 볼 때, 이것, 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거든.”

가장 높은 가치는 뭐니, 뭐니해도 땜빵 능력 아니겠나?

“네. 안 그래도 그 부분이 제가 어필할 수 있는 강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좋다! 너무 좋다.

“이제 우리팀 정원 다 찼으니까, 제대로 회식 플랜 세워야겠는데요?”

홍대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왔다. 평소라면 여기서 태릉 격파왕 출신의 장기자랑 시간이 되어야겠지만······.

“콜! 네가 알아서 잘 계획해봐.”

“오! 알겠습니다!”

홍대리가 어깨춤을 추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좋나?

‘하긴, 지난 회사에서는 폐기팀에서 나랑 둘이서 죽도록 고생만 했으니, 좋기도 하겠지.’

“과장님.”

남궁대리가 나를 불렀다.

“왜?”

“지금 당장 신입에게 맡길 업무 있으세요?”

“없어. 혹시 남궁대리가 좀 챙겨 줄 수 있을까?”

아닌게, 아니라 당장 나는 일정표부터 달려야 한다. 가장 큰 산은 넘었지만, 일정표는 작성과 전달 과정부터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도 온 집중력을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

“마침 잘됐네요. 사실은 세븐메이지 팀장님이 좀 성가시게 구네요.”

“뭔데?”

뭔가 찜찜한데?

“자꾸, 자기 배신하고 표과장님에게 붙었다고 칭얼대요.”

칭얼대? 단어 필링을 보니, 의외로 친한가보네?

“정확히 어떻게?”

“신규 캐릭터 컨셉 디자인 기획 몇 개만 처달래요.”

확실히 회사 이전과 동시에 그쪽 팀원을 빼왔으니, 팀장으로서는 달가울 수는 없는 상황.

무엇보다 남궁대리는 나름 에이스 소리 듣던 인재였으니까.

“부담돼? 커트해줘?”

“아니요. 그냥 허락받으려고 말씀드린 거예요. 해달라는 거 해주고 깔끔하게 정리하려고요. 애초에 제가 하던 일이기도 했고요. 야근 좀 하면 돼죠.”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게 좋다. 하던 일은 끝까지 마무리 짓는 편이 낫지.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나를 제외하면 우리팀이 크게 바쁜 상황 아니니까, 해결해줘.”

“그래서 말인데, 이거 신입하고 같이 해도 될까요?”

“어? 진짜요?”

남궁대리의 말에 함송희가 의욕적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러게, 잘됐네. 어차피, 컨셉 디자인은 크게 경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네. 이 중에 하나 골라봐.”

남궁대리는 전달받은 요청서를 함송희에게 건넸다.

“저는 기왕이면 귀여운 캐릭터 작업해보고 싶어요.”

“마침 로리 컨셉 캐릭터 하나 필요하다고 하니. 그거 해보면 되겠네.”

“네. 감사합니다.”

대답에 조금 힘이 없는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뭐랄까, 훈훈한 분위기라서 나쁘지 않네.

‘대충 잘 정리 됐네.’

당분간 신입은 남궁 대리에게 맡기고 나는 세부 일정 기획에 전념하고······.

“아, 역시 시작은 소부터 달려줘야겠지.”

홍대리도 불타고 있고······. 그래. 그래픽팀에 통수 기획 전달할 때까지는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렴.

*

*

*

“지금 장난해?”

다음날, 출근하기 무섭게 사무실의 소란이 눈길을 끌었다.

“뭔데?”

“아, 오셨어요. 저도 잘은 몰라요.”

홍대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너는 왜 자리에 안 있고 이렇게 멀찍이 있냐? 혹시 너한테 불똥 튈까 봐?”

“네.”

그래. 내가 괜히 물었구나. 아주 낙엽 마을 탈주 닌자가 따로 없네?

내가 기필코 차르봄바 같은 기획서 작성해서 네 손으로 그래픽팀에 전달하게 만든다.

“세븐메이지 기획 팀장이네?”

“예. 인사차 오셨다가, 컨셉 기획 보시고는 뚜껑 열렸나 봐요.”

잘 모른다면서, 잘 아네.

“지난번 그 세븐메이지 신규 케릭터 디자인 컨셉?”

“네.”

‘내가 나설 차례네.’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내 팀원이 나를 거치지 않고 다른 팀 팀장에게 깨지는 것을 두고 봐서는 안 된다.

이건 단순히 팀워크 차원을 넘어서, 향후 기획팀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나는 곧장 세븐메이지 팀장과 함송희씨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표과장. 이거 좀 봐.”

세븐메이지 팀장이 가리킨 자리에는 남궁대리의 모니터가 있었다. 그 속에는 컨셉 기획안이 떠 있었다.

“이거, 본인이 한 거?”

설마, 에이스 소리 듣던 남궁대리 작품이 아침부터 큰소리가 나올 만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건 아닌데······.”

남궁대리가 슬쩍 말끝을 흐린다. 그렇다면 신입인 함송희가 맡은 파트라는 뜻.

‘이건 뭐, 안 봐도 비디오네.’

아침 일찍 함송희의 기획서를 체크하던 중, 안부차 들른 세븐메이지 팀장의 눈에 함송희씨의 기획서가 눈에 들어왔으리라······.

대쪽 같은 남궁대리 성격에 자기가 한 것 아니라고, 말하기는 뭐해서 그냥 묵묵히 샤우팅을 감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케이 상황 파악 완료.

‘의리 있는 캐릭터네.’

역시 글러 먹은 홍대리와는 싹수부터 다르다. 이 와중에도 살짝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찬찬히 기획서를 훑어봤다.

“컨셉은 쿠마리라고······. 나쁘지 않네, 신선하고 그런데······. 아!”

함송희씨가 작업한 신규 캐릭터는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숭배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은 ‘쿠마리’ 컨셉의 캐릭터였다.

개성도 있고 디자인 파급력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컨셉이다. 하지만······.

‘키가 157cm?’

세븐메이지 팀장이 왜 뚜껑이 열렸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봤습니다. 그런데요?”

“뭐? 와, 표과장, 이렇게 말 안 통하는 줄 몰랐네, 지금 여기 적힌 캐릭터 신장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세븐메이지 팀장을 무시하고 함송희를 바라보았다.

“함송희씨, 이거 저쪽에 전달했어?”

“아니요. 아직 컨펌도 안 받아서······.”

기가 죽은 함송희가 오들오들 떨면서 말했다.

“들으셨죠?”

“어?”

“지금 컨펌도 안 난, 기획서 문제로 남의 팀에 와서 언성 높이신 겁니까?”

“어, 어?”

내가 예상보다 세게 나오자, 세븐메이지 팀장은 조금 당황한 눈치다.

당연하다. 전달 된 것도 아니고, 컨펌 조차 안 된 기획을 가지고 남의 팀에 와서 언성을 높여?

뻔하다. 에이스 뺏기니, 허탈한 마음에 그냥 투정이 부리고 싶었던 거다.

‘그래도 아직 출범식도 안 한 우리 팀을 초장부터 기죽이게 둘 수는 없지.’

까도 내가 까야 한다.

“설마 제가 이 정도 미스도 체크 못 할 거라고 돌려 까시는 겁니까? 아니지, 설마 이거 지금 저 공격하시는 겁니까?”

“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일단 돌아가시죠. 하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저랑 먼저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해. 내가 조금 흥분했네.”

싸움의 방향을 신입에서 나로 바꾼다. 이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결국, 당황한 세븐메이지 팀장은 순순히 등을 돌렸다.

“저 과장님··· 죄송합니다.”

첫 기획서부터 폭격당한 탓일까? 함송희가 잔뜩 수그리며 사과했다.

“지금 일은 세븐메이지 팀장님이 실수하신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기획은 조금 문제가 있네.”

“문제요?”

아무래도 아직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모양.

“로리타 캐릭터의 니즈가 뭐지?”

“동안에 귀엽고 어린 캐릭터······?”

스스로도 자신이 없는지, 슬쩍 말끝을 흐린다.

“맞아. 그런데 로리 캐릭터 키가 157cm라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

“보통 더 작은 것은 알아요. 알지만, 그렇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컨셉 보다는 조금 색다르게 해석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아, 신입은 신입이구나.

아마도 게임 업계 밖의 사람들에게 고작 캐릭터 키 몇 cm가 무슨 큰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캐릭터의 신장 이상의 문제다.

아까 자신을 감싸준 나의 대응 덕분인지 함송희의 눈빛에 반항기는 없었다. 단순히 실책을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함송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확실히 설명해주기로 했다.

“함송희씨.”

“네.”

“만약에 함송희씨가 등산을 가려고 등산화가 필요한데, 신발가게 주인이 하이힐이 더 예쁘다고 하이힐을 추천하는 거야. 그러면 어떨 것 같아?”

“아, 그게······.”

“고객들은 각자의 니즈가 있고 세븐메이지 팀장님이 거기에 맞춰 컨셉을 내려주셨지. 로리 캐릭터라고 하면 누가 봐도 아, 로리구나, 마초 캐릭터라면 누가 봐도 아, 마초구나, 하는 말이 나와야 해.”

“저는 단순히 조금 색다른 도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기획자는 아티스트가 아니야. 이걸 오판하면 나중에 골치 아파져.”

색다르고 참신한 것. 물론 좋은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형화된 패턴과 니즈가 존재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기획자의 태도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쿠마리 컨셉으로 디자인한 것은 좋아. 이 부분은 참신해. 하지만 참신함이 필요한 부분과 정확하게 핀포인트에 맞춰야 하는 부분은 다른 거야. 이걸 혼동하면 곤란해.”

아직 기획서 상에 한 문장에 불과한 작은 오류다. 150을 120이나 130으로 수정하면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납득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 업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위에서 원하는 기획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는 기획자들이 종종 있다.

나는 적어도 함송희씨가 그런 타입으로 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캐릭터 나이가 12세인데, 157cm라면 한국 평균 여성 신장보다도 높아. 이건 어딜 봐도 로리 계열 캐릭터 컨셉이라고 여겨지지 않네. 이런 부분은 그래픽팀에서라면 상당히 강력한 클레임이 들어올 부분이야.”

“네······.”

“참신함을 적용할 때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컨셉을 바꿀 정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기획은 협업이란 것을 기억해둬.”

“네!”

신입을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키느냐가, 우리처럼 소규모 팀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처음이라서 더 세게 말한 것도 있는데 다행히 함송희는 알아듣는 듯했다.

“일단 신장은 수정하고 예시 이미지 중에서 안 맞는 예시는 교체해. 이건 남궁대리가 도와주고.”

“예. 알겠습니다. 여기 봐봐.”

“네.”

기획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을 기회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전체 프로젝트의 결정권을 손에 쥔, 메인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메인디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지시된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해외 유명 소설의 명대사 중에, 지휘관이 되고 싶다면 섬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오, 지금 진짜 팀장 같았어요.”

아, 깜짝이야. 홍대리가 어느새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뭐 지켜보면 알 일이지.’

“내가 제대로 충고한 것 같냐?”

“예. 그리고 세븐메이지 팀장, 탱킹해주신 것도 멋있었어요.”

남궁 대리가 고개를 돌려, 대신 대답했다.

“꼰대 같지는 않았어?”

“꼰대는 노하우 전수가 아니라, 윽박지르는 사람들 아닌가요?”

남궁대리가 슬쩍 엄지를 치켜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예전에 무던히도 깨지면서 생각했더랬다.

윽박지르더라도,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이나 해줬으면 싶었었다.

어쨌든 신입 교육도 해봤으니, 뭐랄까? 슬슬 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

*

“신입을 네 손으로 꽂아줬다면서? 갑자기 기획으로 포지션 변경 희망한 그 별종 맞지?”

조양길 회장의 말에 양성태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침 딱 좋은 인재다 싶었습니다.”

“입사 때, 제출한 깃허브(GitHub) 포트폴리오로 프로그래머들 놀라게 한, 기대주가 갑자기 기획으로 가겠다고 폭탄선언 날리고, 마침 팀원 찾던 고놈의 팀이 날름 삼켰다?”

“하늘이 돕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본 표과장은 뭘 해도 되는 타입이라는 느낌입니다.”

조양길 회장은 피식 웃었다.

“볼수록 낮도깨비 같은 놈일세. 클래식 빌드를 방패막이 삼고는 뒤로는 인디게임을 인수하지 않나······.”

양성태는 조용히 조양길의 혼잣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 회의는 어떻게 됐지? 매출 문제로 골머리 썩고 있는 하부장이 클래식 빌드 같은 계획을 호락호락 승낙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혹시 네가 나섰어?”

“아닙니다. 제가 나설 틈도 없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오히려 프로그램팀 한팀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힘을 실어줬다고 합니다.”

“한팀장? 기획자 잡아먹기로 유명한 그 친구?”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짧은 시간 안에 한팀장을 구워 삶고, 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일사천리에 회의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장급 회의에서 모두가 밝은 얼굴로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그림이 상상이 가십니까?”

“하하, 정말 놀랄 노자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팀장들이 큰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만장일치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표세인의 역량에 조양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역량 평가서를 작성한다면, 현재 점수는 틀림없는 S급이겠지요.”

역경을 맞이했을 때야말로 가치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

아직 성공을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주변을 장악하고 이끄는 추진력에 더해 참신한 해결법까지.

“정말로 어디서 이런 인재를 찾으신 겁니까?”

“내가 찾은 건 아니지.”

조양길은 싱긋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신경 쓰지마. 그보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는데?”

“그 말씀은?”

“방치형 육성 게임의 묘미가 뭔 줄 알아?”

“글쎄요.”

게임보다는 자금 흐름에 재주가 있는 양성태였다.

이따금 이런 주제는 따라가기 쉽지 않다.

“방치하다가 슬쩍 들여다보니, 캐릭터가 내 예상보다 더 잘 큰 거야.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선물이라도 준비하시려는 겁니까?”

게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해도, 조양길의 사고 흐름에는 익숙했다.

“맞아. 캐시템 발라줘야지. 그냥도 잘 크는 이쁜 녀석이 캐시템까지 발라주면 얼마나 더 잘 클까? 이 기대감이 바로 유저들 지갑을 여는 핵심 열쇠거든?”

조양길 회장은 잠시 데스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고민했다.

“이번 인수한 인디게임. 그거 네 이름으로 진행하나?”

“일단 인사 관계상 제가 팀장이니 그렇게 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그놈 이름으로 진행하게 해.”

“예?”

“뭘 놀라, 가끔 외부 스튜디오 돌릴 때, 그렇게 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면 표세인은 인수한 개발사의 대주주 대행 자격으로 그곳의 이사급 직함을 얻게 된다.

‘본사 과장급이, 계열사 이사급 직함을 갖게 된다니······. 누가 들으면 회장님 아들이라고 생각하겠군.’

흡사 후계자에게 관록을 붙여주기 위한 물밑작업처럼 느껴질 정도.

“재무팀에 전해. 그 좀비 로얄인지, 뭔지, 판을 좀 더 키울 거라고.”

단순 직함 하나 달아주는 것이 아니라, 두둑한 실탄까지 추가해 준다.

“왜? 지나쳐 보여?”

“아닙니다. 지원할 때는 확실하게 지원 사격하는 것이 회장님 스타일이시지요.”

“클클, 이만큼 주면 추가 퀘스트 하달해도 문제없겠지?”

조양길 회장은 전에 없이 들뜬 모습이었다.

────────────────────────────────────

────────────────────────────────────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