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과장님 오셨어요?”
“여기 카드요. 잘 먹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남궁대리가 카드를 넘겨주었다.
“맛있는 것 먹었어?”
“그냥 짜장에 탕수육 먹었어요. 여자 둘이서 거하게 먹는 것도 좀 그렇더라고요.”
“미안하네, 다음에 더 맛있는 것 사줄게.”
“네.”
“그보다 홍대리는?”
“아옳옳옳옳!(저도 엄청나게 맛있는 것 먹었거든요!)”
얘는 아직도 이러네?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다.
“기도야.”
나는 홍대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
“비상사태다. 나 오늘 외근, 아니 내일도 그럴 수 있다. 제대로 할 수 있지?”
모두의 부동산 일정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해도 그래픽팀을 컨트롤하는 것.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좀비 로얄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이사가 점찍었던 게임이라고 했지?’
오는 길에 양실장에게 전해 들은 정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장님도 사업부에 추가 지원까지 지시했다고 한다.
단순히 미션 처내려고 머리를 굴려본 일이, 생각보다 판이 커질 것 같다. 아니, 키워야 한다.
“비상사태라면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처리해 놓겠습니다.”
오케이!
1년에 한, 두 번 발동되는 홍켓몬 집중 모드가 발동했다. 이럴 때의 홍대리는 믿을 수 있다. 아니, 이거라도 없으면 진짜 얘랑 일 같이 못 하지.
“미안하다. 좀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시죠?”
“그래. 알겠다.”
홍켓몬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상에 대한 확신을 요구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든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타블렛과 노트 정도만 급하게 챙겨서 사무실을 벗어났다.
“박대표님, 지금 회사에 계십니까?”
“어. 안 그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었다.”
“잘됐네요. 지금 가겠습니다. 시간 좀 내주시죠.”
“그래야지. 우리 표이사님이 시간 내라면 내야지 내가.”
이사? 벌써 이쪽에도 전해진 건가?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회사를 나와 구로디지털단지로 향했다.
*
*
*
“왔어?”
“네. 뭐, 미팅실 같은 곳은 없네요.”
“야, 인디 개발사에 그런 게 어디 있냐?”
1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다닥다닥 붙은 피씨들만 즐비했다.
“직원이 그새 늘었나 보네요?”
“어. 며칠 전에 양성태 실장님이라는 분과 가볍게 사전협의를 거쳤는데, 그 양반 일 처리 칼이더만, 일단 개발 속도를 좀 내달라면서 선금으로 바로 입금부터 때려주시던데?”
“그러셨군요. 그럼 평소 미팅 같은 것은 어디서 하시나요. 카페?”
“뭐 그렇지.”
“그럼 가시죠.”
“아니, 그전에······. 자, 다들 잠깐 인사 나눕시다. 이쪽은 맥베스의 표세인 과장, 우리 좀비 로얄의 숨통을 틔워준 은인. 앞으로는 사외이사로 활동하시면서 종종 보게 될 테니, 인사 나누세요.”
“안녕하십니까. 지난번에 뵈었던 이상승입니다. 일단은 제가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몇 차례 인사를 나눴다. 딱히 이팀장을 제외하고는 직함이 있는 직원은 없어서 인사가 번거롭지는 않았다.
회사 인근 카페 안.
“그래서 뭐가 좋아? 전무? 감사?”
일반적인 경우 사외이사는 감사 이사가 합당하겠지만, 게임 업계의 특성이랄까? 이런 부분에서 좀 규칙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우리도 의장, 집행임원 뭐 이런 식으로 좀 새롭게 가볼까?”
“지난번에는 숨넘어가는 얼굴이시더니, 활짝 피셨네요.”
“그럼, 네 덕분에 투자 들어왔잖냐. 솔직히 지분 49% 넘겨 달라고 할 때는 조금 당황했는데, 추가 투자에 차후 인수 협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그때는 솔직히 넋이 나갔다. 알잖냐. 우리 같은 개발자들이 뭘 알겠냐.”
“그렇죠.”
게임 개발 외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개발자들이 많다. 나도 별다를 것 없는 처지.
“하지만 결국에 통장에 돈 들어오고, 인원 충원해서 직원들 얼굴 좀 피니까, 나도 살겠더라. 밀린 월급에 보너스까지 줄 때, 그땐 내가 더 기쁘더라고, 넌 이 기분 모를 거다.”
“다행이네요. 그보다 개발 플로우 맵 좀 보여주시죠.”
“어, 그래야지.”
솔직히 클래식 빌드가 실패할 경우의 다른 옵션 정도로 생각했던 투자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판을 더 키워야 할지도······.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개발 플로우는 알겠고, 마케팅 파트는? 그쪽은 생각 안해 보셨어요?”
“생각은······. 뭐 가끔?”
“가끔?”
“알잖냐. 개발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마케팅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어.”
마케팅이 게임의 성공을 좌우하는 시대다. 잘 만든 게임들 중에 마케팅 전략의 부재로 상승세를 타지 못한 게임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디업계의 개발자들은 그저, 게임의 완성이라는, 골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경주마처럼 내달릴 뿐.
“오케이, 이 부분 저랑 같이 좀 시작하시죠.”
“어떻게 하려고? 바로 마케팅비라도 지원해주냐?”
돈맛을 보더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다. 인디개발자가, 마케팅에 돈쓸 생각부터 하다니.
“정식 마케팅은 나중에 따로 논의하기로 하고, 이건 그 전 단계에서 시작할 일입니다.”
“뭔데?”
“크라우드 펀딩부터 시작하죠.”
“아······.”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말에 박대표가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컴벳 그라운드 벤치마킹 아닙니까? 마켓은 디젤 스토어 생각하셨던 거잖아요.”
“그렇지. 처음에는 조이스테이션이나 넥스박스 같은 콘솔시장도 생각해 보긴 했는데, 여기는 여러모로 쉽지 않고, 이미 빌드도 PC버전에 맞춰서 진척했으니까.”
“어차피 시작점은 인디 게임으로 컨셉 잡았지 않습니까. 규모는 개발중에 덩치를 키우면 될 일이고, 일단 지금 컨셉 포인트만 잡아서 영상하나 만들죠. 내실은 차차 채우기로 하고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몸이 달았어? 나야 기쁘긴 한데.”
왜냐고? 확신이 생겼거든. 문이사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뒤에서 수작까지 부릴 정도라면 내 눈이 확실했다는 증거 아니겠어?
아마도 문이사는 내 기를 죽여서 못 먹는 감에 상처나 내보자는 심정이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자신을 얻었다.
“사무실로 돌아가셔서, 프로토타입 빌드랑 지금까지 편집한 영상 있으면 싹다 긁어서 보내주세요. 이 건은 제가 맡겠습니다. 아니, 앞으로 이 프로젝트의 대외 마케팅은 제가 전담하는 것으로 하죠.”
“아이고, 우리 전무님 노력하시네.”
“그냥······. 이사로 하죠. 전무는 너무······.”
“아이고 우리 이사님······.”
이거 계속 하실 건가?
‘어쨌든 시간 싸움이네.’
자금력이 부족한 개발자들이 프로젝트의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목표 금액과 모금 기간을 통고, 이를 확인한 익명의 다수(crowd)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을 크라우드펀딩이라고 한다.
2005년 영국에서 시작한 대출 중개 서비스가 모태가 된 이 개념은 차츰 소셜펀딩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2017년 기준 크라우드 펀딩 규모는 약 18조원.
비록 누구나 펀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인디업계 개발자들에게는 황금 동아줄이나 다름없는 기회.
‘좀비 배틀 로얄 컨셉의 게임이라면 북미와 유럽 게이머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도 충분하지.’
크라우드펀딩은 대부분 유럽과 북미 등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행스럽게도 좀비 서바이벌 컨셉류의 게임이라면 그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문이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수가 얕다.
과장 따위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대뜸 나에게 먼저 제안이라는 이름의 협박을 날렸겠지.
하지만 그는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될성부른 프로젝트에는 누구도 초를 치지 못한다.
그리고 좀비 로얄은 이미 스스로가 주목했을 정도로 싹부터 남다른 게임이었지 않나?
‘빠르게, 남들이 괜한 짓거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판을 키운다.’
사업부의 2차지원? 그런 것은 차후의 일이다. 그전에 먼저, 이 게임 시장에 산재한 인플루언서와 진성 게이머들의 뇌리에 이 게임을 박아 넣어야 했다.
“일단 영상부터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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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문상훈은 이를 갈았다.
고작해야 과장 따위. 아니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서 근무하던 보잘것없는 기획자가 아닌가?
천하의 문상훈이 내민 손을 거절해?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더군다나 양실장······.’
문상훈은 여유만만하게 식사를 즐기던 양실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한 번 더 그의 어금니가 비명을 질렀다.
‘이게 다 양실장 네놈이 꾸민 그림이겠지.’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나름 맥베스의 쌍두마차 같은 인재로 은연중에 경쟁을 했다.
문상훈은 개발실에서, 양성태는 사업부에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는 어떠한가?
비록 실장이 준이사급 직함대우라고는 해도, 자신은 어엿한 정식 이사이다.
누가 봐도 서열은 확실한 것 아닌가?
하지만 어째서인지, 본사에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양실장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그 점이 못내 배알이 꼴렸던 참이다.
어차피 상대는 회장의 애완견에 불과하다. 요즘 업계 사정이 달라져서 그렇지, 예전 같으면 개발자와 사업부의 대우는 하늘과 땅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게임 개발사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던가? 물론 대한민국의 대형게임사들이 게임 개발보다 다른 방향에 눈을 돌린 지도 오래된 이야기는 하다만······.
어쨌든 문상훈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참에 제대로 한판 붙고 서열을 가린다.
“한판 붙어볼 때도 됐지.”
문이사는 스마트폰을 열었다. 어차피 저쪽의 움직임은 뻔하다.
요새 게임의 향방은 마케팅이 좌우한다.
컨텐츠의 질이나 양, 버그 문제 따위가 어떻든 간에 마케팅비로 쓸어버리면 해결된다.
그리고 그 마케팅에서 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고객들의 눈을 홀릴 영상이 아닌가?
우선 이것부터 차단한다.
-무슨 일이십니까?
스마트폰 너머 미국지사에 두고온 오른팔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분간 영상제작실로 들어오는 제작요청 무조건 내 인가받은 후에, 진행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는다. 그래, 바로 이런 맛이 있어야지.
감히 문상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회사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가?
“1차는 이거면 됐고.”
당장 상대의 목줄을 틀어쥐었으니, 2차, 3차 방향은 천천히 고민해도 될 일이다.
“상대를 보고 까불었어야지.”
곧 아연실색할 양실장과 표과장의 얼굴을 상상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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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지사 영상제작실을 이용하지 않으신다고요?”
“네. 요즘 홍보영상에는 거품이 많아서 싫다는 것이 유저들의 평입니다. 게다가 첫 출발선이 인디게임이었지 않습니까. 인디게임의 냄새가 짙을수록 골수 게임 팬들의 흥미를 크게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골수 유저들만 타겟으로 삼는 것은······.”
양실장은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 큰물에서만 놀아본 사람.
TV에서 미튜브로, 대형 광고에서 커뮤니티로 변화해가는 영향력의 이동점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거다.
위에서 내려주는 잘 짜인 각본 같은 홍보가 아니라,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친근하고 열정적인 소개가 유저들의 욕구를 더 크게 당기는 법.
“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회장님의 뜻은 분명하십니다. 트리플 에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사의 급에 걸맞는 퀄리티로 끌어올려서 완성되기를 바라십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디 스타일을 고집하십니까? 그래서는 매출이······.”
양실장이 드물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
“인디 스타일로 홍보를 시작한다고 했지, 매출 규모까지 인디 수준에 맞출 생각은 없습니다.”
전세계 2억장 판매고를 올린, 블록 크레프트도 시작은 인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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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는 투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