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8화 (18/346)

18.

크라우드 펀딩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뭐니, 뭐니해도 맛깔나게 편집된 영상이다.

출시 예정 사양보다 고퀄리티의 해상도로 올리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역 조명 방식 (Local Illumination)이 아닌, 아직 적용할지 말지, 결정되지 않은 전역 조명 방식((Global Illumination)의 셰이딩까지 첨부한 그럴듯한 영상을 박진감 넘치게 편집해줘야 한다.

이런 작업에 한해서는 맥베스 조차도 전문 기업에 아웃소싱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왕 인디 스타일을 내세우기로 한 이상, 조금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오셨어요?”

사무실로 돌아오자,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퇴근하는 홍대리가 보였다.

“어. 그래. 너 어디 가냐?”

“유치원이요.”

“뭐?”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홍대리는 정말로 그 말만 남기고는 휑하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약빨이 약했나?’

분명 지난번의 눈빛은 집중 모드였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돌아올 거에요.”

남궁대리가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어디가는데?”

“과장님이 만드신 폭탄 투하를 쟤가 직접 전달했잖아요.”

“그랬지.”

“당연히 그래픽팀 뚜껑이 열렸는데, 일단 일정 계산부터 하고 정식으로 항의하려는 모양이더라고요.”

결국, 못 막았나? 아니, 그런데 그런 와중에 탈주?

아니지.

홍대리는 아예 일을 안 맡으면 안 맡았지, 맡은 일을 쉽게 펑크내는 타입은 아니다.

“저도 잘은 모르는데, 그래픽팀 실세는 팀장님이 아니라, 안문주 차장님이래요.”

“그래서 안문주 차장님을 먼저 공략한다?”

“공략은 이미 했고, 대금 정산 중이랄까? 안차장님 남편분이 해외 출장 가셨는데, 안차장님 어머님이 다리가 불편하셔서, 자녀분을 유치원에서 집까지 픽업해줄 사람이 필요하셨던 모양이더라고요.”

“그걸 홍대리가 맡았다.”

“그렇죠.”

“진짜 기가막히네.”

“네. 저런 잔재주는 끝내주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전문 파이터인 남궁대리는 물론 나조차도 그런 아이디어는 떠올리지 못했다. 이건 정말로 홍대리 정도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 그래픽팀내 불화는 안차장님이 커버해주기로 했대요. 하지만 팀장 레벨에서 항의 들어오는 것까지는······.”

“거기까지 기대하지는 않지.”

랭크 별로 감당할 영역이 따로 있는 법이다. 하지만 실무자들의 불화만 잠재워 준다면, 거의 끝난 게임이다.

불만 가득한 상태로 업무를 보는 것은 맨파워 측면에서 손실이 크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같은 업무라도 감정 상태에 따라서 능률이 크게 차이 나는 법.

그것이 그래픽 계통 업무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일정을 기한 내에 맞추는 것이 기획 업무의 중요 파트인 만큼 우리로서는 그래픽팀이 큰 불만 없이, 업무를 수행해주는 것 이상 감사한 일이 없다.

“그런데 돌아온다고?”

평소의 홍대리라면 저 핑계로 퇴근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돌아와서, 그래픽팀에 넘길 세부 기획서 작업 해야죠. 과장님이 그래픽팀은 쟤 몫이라고 하셨잖아요.”

아, 그걸 그렇게 받아들였구나. 나는 큰 소란 없이 전달하고 좀 달래주란 의미였는데······.

어쩌지? 예상치 못한 오해가 있던 모양이다. 홍대리가 야근이라니······.

‘못들은 걸로 하자.’

홍켓몬이 바쁜 만큼 트레이너는 편해지는 것 아닌가?

뭔가 더 오해해줄 만한 건덕지가 없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어. 그런데 어차피 우선 다른 일부터 처리해야 해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뭐 도와줄 일 있어?”

“아니요. 어차피 버그 리포트 수정하고 체크하는 것뿐이니까요.”

파이터형 캐릭터는 이래서 좋다. 스스로 당당하니까, 상대에게 윽박지를 수도 있는 거다. 남궁대리의 일 처 내는 속도는 에이스 소리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혼자서 버겁지는 않지?”

“함송희가 잘해요. 버그 잡는 귀신인데요.”

“그래?”

신입은 뭐라도 하나 장점이 있으면 그저 기특한 법이다.

슬쩍 보니,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홀린 듯이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연주중이다.

좋네, 좋아.

“그럼, 부탁한다.”

“네.”

자리에 앉아, 데스크탑에 전원을 켠다.

‘일단 전문가 매칭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

지금 편집하려는 영상은 게이머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나는 미튜브 전문 편집자들을 검색했다.

“단가가 이 정도인가?”

이전 회사에는 정규 마케팅 외에 결코 지출을 허락하는 일이 없었기에,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다.

하지만 돈이 깡패라고, 자금이 충분한 이상 애먹을 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작은 욕심까지 생긴다.

‘가만, 접근을 다르게 해볼까?’

영상제작자들이 자주 모이는 커뮤니티를 찾았다.

미튜버들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편집자들도 늘었지만, 차츰 개인적으로 방송과 편집을 동시에 진행하는 미튜버들이 많아지면서 저마다 일감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눈에 띄었다.

‘이거 잘만하면······.’

나는 즉시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즉시 초안을 작성했다.

[게임 홍보 영상 편집 공모전]

상금 1억.

고작 몇 분짜리 홍보 영상 제작에 대한 상금으로는 조금 과하게 큰 보상.

하지만 이 상금은 다른 것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편집자분들께서는 해당 계정으로 포트폴리오를 첨부······.]

이건 그냥 늘어놓는 뻔한 소리.

[참여가 결정되신 분들께 제공되는 편집용 영상은 좀비 로얄 스튜디오에 저작권이 있으며, 만약 이를 무단으로 외부에 유출할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음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한눈에 봐도 나사 빠진 담당자의 큰 실책으로 보이는 문구.

무단 유포에 대한 페널티가 겨우 수상 취소? 라는 것은 수상자 외에는 페널티가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걸로 가능할까?’

노이즈 마케팅을 기대하는 작은 술책.

‘다시 생각해보자.’

1억은 미끼로서 충분한가? 현재 침체기인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무척 타당하다.

바이럴 마케팅의 문제와 효과는?

만약 맥베스 본사의 이름을 내건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좀비 로얄 스튜디오의 박대표와는 마케팅에 관한 전권을 약속받았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

효과는······.

커뮤니티를 둘러보니, 영상편집자 중에는 미튜버 지망생이 많고, 반대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탓에 방송 보다 영상편집으로 입에 풀칠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미튜버의 습성에 도박을 건다.’

구독자수에 눈이 뒤집힌 미튜버들의 욕망. 남다른 컨텐츠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만약 그들이 앞다투어 게임 영상을 쏘아 올리기 시작하고, 그것을 메이저 미튜버까지 낚아챈다면?

‘계획대로라면 1억은 돈도 아니다.’

대형 미튜버의 위상과 파급력 어지간한 연예인들 이상이 된 지 오래.

대형 미튜버 몇 명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도박이지만, 이 전략에 걸어보고 싶다.

조회수에 목마른 바닥 미튜버들의 욕망!

과거에 나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사고방식. 돈이 있고 뒷걱정이 없으니, 이런 일까지 저지를 용기가 생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어차피 고작 1억. 안되면 2차, 3차 될 때까지 밀어붙이면 그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이미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 않나?

“제발 걸려다오.”

나는 고요한 영상편집자 커뮤니티에 미끼를 투척했다.

*

*

*

“표과장의 약점이요?”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소속이 미국지사에 있다 보니, 본사 사정은 잘 모르지 않습니까?”

문이사의 질문에 김차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송부장도 그렇고 문이사도 그렇고, 어째 자신의 인맥들은 하나 같이 표과장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문제는 이상하게 표과장을 건드릴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알아두셔야 할 것이 표과장이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뒤에는 양실장이······.”

-꿈틀

양실장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문이사의 눈썹이 눈에 띄게 꿈틀했다.

“지금 내 앞에서 양성태의 이름을 꺼내는 저의가 뭡니까? 내가 양성태 눈치라도 봐야 한다는 거야? 이 문상훈이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다. 은근히, 아니 대놓고 문이사가 양실장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표과장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지난번 한팀장과 있었던 해프닝이 떠올라서, 잠깐 정신이 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 어디 소속이지?”

“개발 3실입니다. 모두의 부동산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양실장이 기획팀장을 맡고 있지만, 실무는 그 친구가 다 처리하고 있습니다.”

“또.”

“죄, 죄송합니다.”

양실장이 난데없이 기획팀장을 맡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금 양실장 이름이 나오자 심기가 불편해진다.

“양성태도 참 웃긴 녀석이야. 아니, 맡으려면 PM을 맡던지. 고작 기획팀장? 애초에 원래 포지션이 뭐야? 사업부면 사업부 일이나 신경 쓸 일이지, 아니면 제 녀석이 잘하는 비서실에 들어가서 회장님 수발에나 전념하던지.”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연하지. 애초에 양실장의 행보가 요상하니까, 새파랗게 어린 조비서 같은 계집애까지 비서실장 대행이랍시고 설치지.”

문이사는 자신이 본사를 방문했을 때, 사전에 연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불쾌감을 드러냈던 조비서의 시선을 떠올렸다.

“반반하다고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까. 아주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양실장과 조비서 거기에 이어 표과장까지, 미국지사에 있는 동안 줄줄이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늘어났다.

‘이래서 외부지사에 오래 있으면, 안되는 건데······.’

미국지사라고 하면 대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한국 기업의 특성상 결국은 본사야말로 진정한 메이저 무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참에 수를 써야 해.’

어차피 얼마후면 자신은 본사로 복귀한다. 그 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가만, 모두의 부동산이라면······. 한팀장이 있는 곳 아닙니까?”

“네.”

“그렇단 말이지.”

한팀장은 사내에 누구나가 알고 있는 기획자 잡아먹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짬도 짬이고 험상궂은 인상과 걸걸한 성격으로 사내 모든 기획자들의 기피 대상 1순위가 아닌가?

“표과장도 애 좀 먹고 있겠군.”

어쩌면 손쓸 것도 없이 제풀에 무너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두의 부동산을 견인하는 동시에 좀비 로얄까지 신경 쓴다?

아무리 양실장이 뒷배를 봐준다고는 해도 일게 과장 따위의 깜냥으로는 어림도 없다.

과부하.

틀림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쩍 입가가 늘어진다. 언짢았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그것이······.”

“뭡니까?”

머뭇거리는 김차장의 반응이 마땅치 않아, 또 한 번 짜증이 치솟았다.

처음에는 학벌도 좋고, 말주변도 좋아서, 일찌감치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어째 미국 지사에 가 있는 동안 사람이 영 맹탕이 되어버린 것 같다.

‘차장 진급을 너무 빨리 시켜줬나?’

문이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표과장이랑 한팀장이 아주 찰떡궁합입니다.”

“뭐?”

지금 내가 뭘 잘 못 들었나? 문이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획팀장과 프로그램팀장이 찰떡궁합?

이건 뭐, 남북정상이 찰떡궁합이라는 말이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설명 좀 제대로 해보지?”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둘이 죽고 못 삽니다. 지난번 장급 회의 때, 표과장의 PT를 한팀장이 아주 열렬히 지지했답니다.”

“확실합니까?”

“네. 사내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 팀 PM대행을 하고 계신 하부장도 간만에 진짜배기 기획이 왔다면서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대행, 대행.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하는 말이다. 조직개편을 핑계로 한참이나, 괴상한 체재로 돌아가고 있다.

‘정말 개판이군. 회장님은 대체 무슨 꿍꿍이지?’

근래 국내 게임 업계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개발보다는 투자와 인수에 주력한 탓일까? 그 부작용으로 세계시장의 흐름을 놓치고 돈만 밝히는 저급한 개발사라는 인식만 남아 버렸다.

게다가 실적에 눈이 먼 임원들이 프로젝트의 허들을 오로지 돈벌이에 맞춘 탓에, 변변한 대형게임 하나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바꿔야 해.’

이것은 회장님이 보내는 신호가 틀림없다. 이 신호를 제대로 캐치하고 직원들을 이끌고 역경을 헤쳐가는 자가, 전권을 손에 쥘 수 있다.

문이사는 그것을 확신했다.

‘다른 늙어빠진 뒷방 퇴물들과 나는 다르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을 차지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

헌데, 그런 자신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 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사소할 일을 꼼꼼하게 처리해야, 큰일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는 법.

“한팀장에게 시간 좀 내라고 전하세요.”

“예? 한팀장을요?”

“······.”

“아, 알겠습니다.”

김차장은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면서도 넙죽 기었다.

김차장이 떠나고 홀로 남은 문이사는 다시금 스마트폰을 열었다.

-말씀하십시오.

역시 자신의 오른팔은 김차장 같은 볼품없는 종자와는 결이 다르다.

이 깔끔한 문답은 국내정서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문이사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래서 외국물이 중요해. 한국에서만 자란 것들은 전형적인 소심한 아시아인 근성을 못 버려.’

“지난번에 말한 영상제작실문제 말인데, 혹시 본사에서 요청 들어온 건은 없었나?”

-없습니다.

“한 건도?”

-기존에 예정되어 있던 것들을 제외하면 신규 요청은 없었습니다.

혹시 놓친 것은 아닐까?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오른팔이 아닌가? 그런 실수는 있을 수 없다.

그가 없다면 없는 것이다.

“알겠다. 그럼 수고해.”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설마? 일 처리 수순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를 상대로 내가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문이사는 의아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그 시각.

영상편집자 커뮤니티는 불타고 있었다.

────────────────────────────────────

────────────────────────────────────

────────────────────────────────────

강화에 성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