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2화 (22/346)

22.

2+ 화염검의 위력은 대단했다.

모두의 부동산 개발실은 며칠째 말소리 하나 없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진짜 죽이고 싶다. 오팀장.’

‘아, 진짜 저 트롤 좀.’

그래픽팀장은 실력보다 정치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안 그런 파트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실적은 물론 입사 연차에서도 앞서는 안차장을 앞지르고 팀장을 달아버린 오팀장은 더욱 눈에 띄는 케이스였다.

그래픽팀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차가운 시선을 한 번씩 던지고 가는 통에, 그래픽팀의 분위기는 전에 없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홍대리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오늘 점심 어디서 먹을까요?”

“오늘도? 너는 기획팀이랑 밥 안 먹어?”

“나 그래픽 명예 팀원이잖아. 우리 그래픽팀이 이럴 때일수록 끈끈한 결속을 드러내야지.”

“하하. 너 그러다 표과장님한테 밉보인다.”

밉보이긴, 오히려 그래픽팀과 식사하라고 등을 떠민 장본인이 바로 표과장이었다.

“괜찮아. 하나도 안 무서워. 남자한테는 이쁨 받는거 아니야.”

“진짜 말은 잘해요.”

“그보다 오팀장님은 오늘도 따로?”

홍대리의 말에 그래픽 팀원들이 슬쩍 오팀장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하부장의 샤우팅 이후로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모습.

“응. 아까 먼저 말씀하시더라, 따로 드시겠대.”

홍대리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자신의 이번 임무는 그래픽 팀을 다독이면서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다져 놓는 것.

홍대리는 그 점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과장 욕이 나와도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오팀장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건 악수지.’

다른 팀원들이야 타성에 젖어 표과장에 대한 가벼운 투정 정도는 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팀장은 지난번 일로 정말로 표과장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서 표과장 욕을 함께 할 수는 없는 법.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커피 쏘는 것 잊지 마라.’

‘한잔 사다 드릴까요?’

‘아니. 나는 내 돈으로 먹을게. 그쪽이나 신경 써.’

표과장과 아이컨택으로 신호를 주고 받은 즉시 홍대리는 가볍게 미리 조사해둔 새로운 맛집에 대한 정보를 늘어 놓았다.

“여기 이 집, 오늘부터 신메뉴 개시한데요. 우리가 또 이런 거 못 참잖아.”

“일은 안 하고 맨날 이런 것만 찾고 있지?”

“아니지! 안차장님, 아니 누나 나 모름?”

“너랑 함께 일 하는 표과장님은 정말 얼마나 힘드실까.”

안차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요즘 홍대리가 방문하는 시간만이 그래픽팀에 웃음이 감도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윤이는 잘 있어요? 잘생긴 오빠 안 보고 싶대?”

“웃긴 삼촌이라던데?”

“애기 때는 역시 얼굴보다는 유머인가?”

“그래도 너 찾긴 하더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러 가도 되죠?”

“그러면 나야 고맙지.”

라는 말을 하며 홍대리와 그래픽팀원들은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

*

*

‘오케이. 타겟 하나만 남았다.’

홍대리를 그래픽팀에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며칠간 오팀장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오늘 미안한데 밥 둘이 먹어.”

“어디를 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 시선이 오팀장을 향해 있다 보니, 그것이 조금 이상해 보인 모양.

“또 무슨 작전을 꾸미시나 보네요. 어쩜 과장님은 모든 일을 작전 수행하듯이 하세요?”

“아, 내가 그런가?”

“처음에는 홍대리 주접에 물드셨나 했는데, 이제 보니, 과장님 본인 천성이신 것 같아요.”

“그건 생각 안해봤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상사의 눈치는 기본이고, 프로그래머 눈치, 그래픽 눈치 거기에 같은 기획팀 눈치까지 살피다보니, 그냥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태권도 겨루기는 완벽한 수 싸움의 향연이다.

팔에 비해 수발이 자유롭지 않은 다리를 이용한 경기인 탓에, 한 수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도래한다.

중심축이 어디냐, 어깨선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냐, 상체의 탠션과 하체 움직임의 리듬.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훈련한 결과 지금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전반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기억해둬. 저렇게 약해졌을 때, 공략하면 친목도 상승에 버프 들어간다.”

“우울한 사람은 그냥 놔두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향상심이 있는 캐릭터라서일까? 남궁대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송희씨도 열심히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는다. 아니, 함송희씨는 아직 멀었고······.

“그럼 다녀올게.”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는 우선 프로그램팀으로 향했다.

“가시죠.”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이미 한팀장과 입을 맞춘 상황이었다.

오팀장이 밉거나 말거나, 그는 그래픽팀장이다. 개발은 어느 한 파트라도 낙오되서는 안된다.

미우나 고우나, 같은 개발실 소속이라는 것. 나는 은연중에 이 점을 한팀장에게 어필했고, 팀장끼리 한 번쯤 친목 도모도 나쁘지 않으니까.

보통이라면 술자리가 좋겠지만, 듣기로 오팀장은 술자리를 기꺼워하지 않는 다고 들었다. 그 결과 오늘 같은 상황을 노리게 된 것.

“오팀장님.”

“네?”

얼마나 기가 죽어 있던지, 나와 한팀장이 다가가자, 오팀장은 화들짝 놀랐다.

“혹시 괜찮으시면, 함께 식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제안에 오팀장은 눈에 띄게 눈알을 굴렸다.

“아, 그게······.”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은 눈치다.

절반은 맞다.

나는 꿍꿍이가 있다. 하지만 기획자의 꿍꿍이야, 언제나 일정 디펜스가 고작 아닌가?

“오팀장. 그러지 말고 일어나, 팀장끼리 한번 밥도 먹어야지.”

결국, 꿍꿍이 따위는 없는 한팀장이 쐐기를 박았다.

“그러시죠.”

“다들 국밥 괜찮지?”

“음, 전 한식은 안 좋아해서.”

“그럼 뭐, 중식?”

“중식도 조금······.”

“초밥은 괜찮으실까요?”

뜬금없이 스파게티 같은 거라도 튀어나오면 곤란하다. 나는 적당히 받아들일 만한 음식을 제안했다.

“그거라면야.”

“아, 초밥은 금방 꺼지는데.”

한팀장은 투덜대면서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사람이 그렇게 사무실을 나서는 길이었다.

“어? 니들 밥먹으러 가냐?”

하부장과 마주치자, 오팀장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아니, 진짜로 이런 새가슴으로 어떻게 팀장까지 올라간 거지?

“네. 팀장끼리 친목도모 좀 하려고요.”

가장 연차가 높은 한팀장이 대표로 대답했다.

“잘했네. 그리고 오늘 프로그램팀 나랑 한잔 하자.”

“오늘이요?”

“어. 다른 날은 내가 바빠서 안되고, 우리 어차피 시간도 없지 않냐.”

아마도 한팀장의 미국지사 발령건을 염두한 소소한 회식이 아닐까 싶다.

특히 프로그램팀 같은 남초 파트는 특유의 결속력이 강력하니까.

“안그래도 드릴 말씀이······.”

“이따, 술집에서 해. 평소처럼 치킨집이면 되지?”

“뭐 그렇죠.”

“허구헌날, 치킨에 맥주. 예전에 프로그램팀은 술 잘 마셨는데.”

“세대가 다르죠.”

“너랑 나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럼 간다. 점심 맛있게 먹어라.”

“부장님도 맛있게 드십시오.”

“그래. 그리고 오팀장.”

“네?”

“왜 그렇게 기가 죽었어? 뭐 죄졌어?”

“아, 아니 그게······.”

“회사 생활 하다 보면 한 소리 듣는 날도 있는 거지. 난 다 잊었어. 그러니까, 이번 건만 잘 해줘. 내가 그래픽팀 회식도 준비할 테니까.”

“아, 네.”

하부장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마지막에 은근슬쩍 일정에 대한 엄포를 잊지 않는다.

좋다. 이런 분위기. 항상 일정으로 닦달하는 것은 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에서 대신 나서서 눌러주니, 요즘 기획서 전달하는 맛이 난다.

“오팀장, 인상 좀 펴.”

일식집에 도착해 간단한 런치메뉴를 주문한 이후에도 오팀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 역시 술이 있었어야 했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괜히 분위기 무거울 때는 그냥 생각 없이 몇 잔 들이켜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법인데.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 시점에 오팀장에게 소외감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오팀장도 술은 별로 안 좋아하나? 평소에 뭐 마셔? 맥주? 소주는 아닐 것 같고.”

“와인 좋아합니다.”

“아, 와인······.”

물과 기름 같은 사이랄까? 서로 딱히 나쁜 감정이 없어도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이다.

슬슬 내가 나설 차례다.

“오팀장님은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있으신 것 같아요. 솔직히 와인이랑 잘 어울리는 느낌의 사람 흔치 않잖아요?”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포지션도 그래픽이시고, 은은한 조명에서 와인잔 들고 계신 느낌이 상상이 가네요.”

“확실히 오팀장이 그런 느낌이 있지.”

한팀장도 고개를 주억이며 맞장구를 쳤다.

“와인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보통 와인은 계기가 있잖아요.”

“그렇지. 소주나 맥주는 뭐, 그냥 접하게 되는 거고.”

“아,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낸 선배가 와인을 좋아해서,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웠어요.”

와인을 시작으로 양주까지 화제를 옮겨타며 흐름을 만든다.

와인은 몰라도, 양주는 조금 경험이 있는 한팀장도 흐름에 편승했고, 조금씩 오팀장의 무거운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딱 시음 맞추니까 사람들 반응이 그냥.”

“와, 대단하시네요.”

“껄껄, 오팀장도 유머 감각이 있는 타입이었네?”

카페까지 이어진 대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팀장이 팀원들 챙기는 거야. 당연하지, 우리도 맨날 기획이랑 싸우는 거 알잖아.”

“표과장 오고 나서는 안 그러시잖아요.”

“그러게, 아, 표과장이랑 싸우는 생각만 해도 무섭네.”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오히려 제가 무섭죠. 오팀장님 그거 아세요? 지난번에 한팀장님이 옥상에서 김차장님이랑······.”

적절한 막내 화법으로 대화의 양념을 뿌려가며 대화를 이끌어간 덕분에, 결국 최종적으로는 원하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무튼 지난번에는 죄송했고, 어차피 부장님의 불호령도 떨어졌으니, 저도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결국 오팀장도 산뜻하게 이번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기로 약속했다.

좋다. 이런 분위기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 요즘에는 정말로 회사 생활이 할 맛이 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전화? 박대표님이네?”

나는 별생각 없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뇨?”

뭐야, 뭐가 잘 못 되기라도 했나?

“지금 우리 회사 이메일 터졌다! 공모전 참가자가 만명이 넘어!”

“어?”

만명?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고작 1억에 이게 말이 돼?

1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그저, 유포 책임 소재를 허술하게 걸어 놓았을 뿐이었는데?

이 미끼가 그렇게 먹음직스러웠나?

-그래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 애초에 참가자 선정 기준이 뭐야?

“기준 같은 것 없습니다. 모두에게 영상을 전송하세요.”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함부로 유포하면······.

“유포가 아니라 광고입니다. 저를 믿으시고······. 아니지, 애초에 저에게 일임하기로 하셨던 일 아닙니까?”

-아이고, 우리 상무님 무섭네.

상무?

“상무로 결정됐습니까?”

-아니, 그냥 불러보는 거야. 어감 좋은 걸로 붙이려고.

사외이사 직함을 어감으로 뽑으시려고? 원래 좀 허술한 양반인 것은 알았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아니, 어쩌면 그릇이 큰 건가?

“아무튼 고민하지 마세요. 반응이 뜨거운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곧 시작될 크라우드 펀딩에 앞서 큰 이슈 몰이가 선행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오케이, 우리 이사님만 믿을게!

그래요. 그냥 이사로 합시다. 전무니, 상무니······. 그건 너무 무겁잖아.

흠흠,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엄마! 아들 이사 달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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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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