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영상편집자 커뮤니티에 투하된 거대한 폭탄!
좀비로얄 홍보영상 공모전을 향한 편집자와 미튜버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리고 드디어 첫 입질이 시작되었다.
‘이건 대놓고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수다!’
과거 게임개발자 출신이었던 게임 미튜버 김정학은 단숨에 공모전의 의도를 간파했다.
일반적인 게임 유튜버들이 게임 플레이 영상에 집중하는 반면, 김정학의 주요 컨텐츠는 게임 업계의 주요 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 탓에 폭발적인 조회수를 노리기보다는 골수 게임팬들의 안정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차츰차츰 채널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아, 이거 단내가 너무 풀풀난다.’
남들이 모르는 대작 스멜을 풍기는 신작 게임 영상!
이것에 침을 흘리지 않을 게임 미튜버는 없다.
어차피 자신이 손대지 않더라도 조회수에 눈이 먼 미튜버들이 물불 안 가리고 영상을 올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어차피 엠바고도 없는 작품 아닌가?
‘마침 박대표라면 안면도 있고······.’
인디게임의 마당발인 박영수와는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상황.
그는 곧장 박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대표님?”
-아, 김정학씨. 오랜만이야.
“뭐 좀 여쭤보겠습니다. 이번에 공모전 말인데, 영상 업로드에 대한 패널티가 정말로 수상 취소뿐입니까? 단순한 실무자의 실수에요? 아니죠? 이거 미끼 투척하신거죠?”
-아······.
박대표는 잠시 머뭇거렸다. 표세인에게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유출을 허가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은 상황.
-잠깐만 내가 바로 다시 전화할게.
“기다리겠습니다.”
김정학는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박대표의 전화가 걸려왔다.
-맞아. 패널티는 그것뿐이야.
“흐흐흐. 제가 먼저 입질 당겨도 되죠?”
-그래.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제가 쌈박하게 편집해서 홍보 좀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한잔하지?
“좋죠! 기대하겠습니다.”
김정학은 즉시 영상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디 게임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요즘 인디게임에는 무슨 게임이 핫한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출력되는 좀비로얄의 홍보영상.
맨몸으로 시작해서 장비를 수집하고 홀로 떠도는 좀비를 쓰러트리거나, 대규모 좀비들을 피해 달아나는 박진감 넘치는 영상!
거기에 좀비를 유도해서 다른 유저들을 방해하거나 좀비들의 관심을 끌 것을 각오하고, 아낌없는 총탄 세례를 서로에게 퍼붓는 전략적인 요소까지!
“인디게임계의 마당발! 박영수 대표가 그동안의 게임 노하우를 아낌없이 퍼부어 만든 좀비로얄! 아시는 사람은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영상편집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무려 상금 1억원 대의 공모전!”
동시에 채널 마스코트인 겜덕 일러스트가 등장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무슨 인디게임이 홍보외주도 아니고, 공모전에 1억을 투척해? 박대표 돈 좀 만졌나?
“이런~ 의문 가지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아무래도 돈 냄새가 좀 난다 이거지!”
-그래 봤자, 인디게임 아닌가?
“아니죠~ 요즘 게임 개발 엔진이나 툴들이 워낙 성능이 좋아졌잖아. 몇 년 전 게임 업계를 뒤흔든 컴뱃 그라운드도 시작은 인디나 다를 바가 없었다니께~ 요즘 인디 게임 클라쓰, 무시 못 하죠!”
-그래서, 이 게임 특징이 뭔데?
“검증된 배틀로얄 시스템에, 좀비를 이용한 짜릿한 스릴과 전략성! 요거, 요거, 냄새만 맡아도 대작이거든!”
홍보 외주를 받은 영상 보다 자신이 발견한 핫한 아이템을 다룰 때, 게임 미튜버들의 흥이 더욱 살아나기 마련.
이날 김정학은 평소 보다 훨씬 하이 텐션이었다. 덕분에 좀비로얄 영상은 금년 최고 조회수를 넘어 역대 최고 조회수를 달성하기에 이른다.
‘올렸다 이거지?’
‘김정학님이 총대 매셨어!’
그와 동시에 눈치작전이 한창이던 다른 미튜버들까지 앞다퉈 합세!
좀비로얄은 단숨에 실검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표세인이 던진 작은 돌맹이 하나가,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
*
*
한편, 이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문이사는 재무부장을 만나 뒷공작에 한창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한번 저를 거들어 주시면, 제가 반드시 보답하겠다. 이겁니다. 저 문상훈입니다. 제 스타일 아시지요?”
문이사가 사업부 이걸영 상무 라인의 에이스라면, 재무부장 역시 함전무 라인의 중핵이었다.
평소에는 서로 자리다툼에 여념이 없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각을 세우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평소라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그랬다.
평소라면, 외부개발 프로젝트 따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갑을 여미는 것이 재무팀의 역할이다.
게다가 문이사에게 빚을 만들어 놓는 것도 결코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이것은 회장님의 입김이 닿은 프로젝트였다.
다름 아닌 양실장이 직접 회장님을 언급하며 지갑에 구멍을 뚫어 놓고 가지 않았던가?
“죄송합니다. 정말로 거들어 드리고 싶지만, 이 건은 어렵겠습니다.”
또 거절?
문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미국지사로 발령난 몇 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천하의 문상훈이의 제안이 이렇게나 쉽게 거절될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단 것인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함전무와 이상무의 파워 싸움에 밸런스가 무너지기라도 했나?’
문이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양실장이 찾아와서 회장님의 뜻이라며 단단히 언질을 주고 간 상황입니다. 이거 이미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 능구렁이가!
순간 문이사는 자신을 향해 닭 쫓던 개 운운하던 조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발 늦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표과장을 찾아가서, 예산안 작성을 지시했습니다. 이거 못 물립니다.”
재무부장의 말에 문이사는 이를 갈며 즉시 이걸영 상무를 찾았다.
“상무님.”
“오, 문이사. 무슨 일이야? 안색이 안 좋은데?”
“혹시 요즘 사내 파워밸런스에 묘한 움직임이 있습니까?”
“묘한 움직임?”
“예를 들어 회장님께서 직접 직속 파벌을 키우려고 하신다든지······.”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조회장이 액션을 취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양실장을 총애하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그렇다 치지만······.
현재 양실장이 겸임중인 기획팀장의 대행을 하고 있는 표과장은 단순한 꼭두각시라고 하기에는 그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제2의 양성태가 탄생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젊은 나이에 이사까지 거머쥔 남자의 직감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런 움직임은 없는데, 애초에 지금도 양실장 외에는 회장님이 따로 만나는 직원도 없어.”
“표세인 과장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아! 알지, 이번에 장급회의를 전원 찬성으로 처리했다던데?”
위기감이 부족하다. 이걸영 상무의 표정은 그게 뭐? 라는 것이 고작.
“그 표과장이 어쩌면 제2의 양성태가 될지 모릅니다. 그 전에 싹을 쳐야 합니다.”
“뭐? 하하하. 자네는 아직도 양실장 이름만 나오면 이를 가는 구만.”
이상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문이사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부터 양실장 향해 경쟁심리를 공공연하게 드러냈음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양실장이 왕의 남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을 때, 문이사의 혜안이 주목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이상무는 문이사를 자신의 오른팔로 삼을 결심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때도 말했지만, 양실장은 회장님의 심복이고 수족이야. 실제로 그 이후 파벌은커녕, 충실하게 회장님 보좌역할에 전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에는 기획팀장까지 맡으면서 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느낌이 쎄하지 않습니까?”
“조직개편 때문이겠지. 그나저나, 대체 회장님은 언제까지 조직개편을 미뤄두실 생각이시지?”
양실장의 전과는 다른 행보와 양실장의 그늘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표과장.
그리고 조직개편.
순간 문이사의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회전했다.
그러고 보니······.
‘마침 곧 있으면 체육대회 아닌가? 그거까지 보고가. 이번 체육대회는 개인적으로 좀 기대되는 이벤트가 있거든?’
조회장이 넌지시 흘린 멘트가 떠올랐다. 그때는 발목이 잡혔다는 생각에 깊게 고민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혹시 이번 체육대회에 대해 무언가 언질을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올해 체육대회에는 간만에 큰 건을 걸어보자고 하시던데.”
이상무는 여전히 위기감 없는 표정이었다.
‘이 정신 나간 인간들······.’
의외로 게임 업계 회장들은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국내 게임 업계의 삼두마차라 할 수 있는 3M의 일각인, MC 소프트는 아예 야구단을 인수하지 않았던가?
이따금 체육대회의 결과를 두고 파격적인 인사 조처를 시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
“이번 체육대회에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 하지만 원래 그랬잖아. 요 몇 년 그런 일이 없었지만, 회장님 성격 알잖아. 자신을 즐겁게 해주면 아주 화끈한 상을 내려주시는 것.”
대기업이라고는 해도 태생이 IT업계라서 일까? 게임회사의 인사 조치는 이따금 다른 업계에서 보기 드문 파격적인 일이 벌어지는 일이 있다.
더군다나, IT업계 특성상 회장의 보유지분 비율이 어마어마하다.
이미 IT업계 거물들의 재산이 국내 제일 기업인 산성 그룹의 회장 재산을 넘어선 상황.
그중에서도 맥배스의 회장인 조양길은 사내 지분 보유율이 30%가 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회장님의 노림수를 그냥 좌시했다가는 차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으음······.”
문이사는 때때로 자신의 직감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의 직감은 대체로 적중했고 그 덕분에 젊은 나이에 임원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함전무 파벌과 물밑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요즘에 회장님의 계획에 훼방을 놓는다?
‘그건 대놓고 함전무에게 먹잇감을 던져 주는 셈이지.’
이걸영 상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세력도에서 한발 뒤져있는 상황.
이 시점에 전무 파벌에 빌미를 던져 주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아니. 안돼. 시기가 좋지 않아.”
국내 게임 업계는 이전과 같은 호황이 아니다. MMO에서 모바일로 이어지는 국내 게임 업계의 황금기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근래 대두되는 패키지 시장과 콘솔 시장의 부활.
국내 게임사의 경쟁력이 심판대에 올랐고, 실제로 맥베스를 포함한 국내 게임사들 역시 그간 이렇다 할 히트작을 개발하기는커녕, 사내 허들을 넘지 못하고 거꾸러진 프로젝트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이번 조직개편이 유례없이 오래 걸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조회장은 회사의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회장이 무언가 큰 그림을 그렸을 때, 자신을 방해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철퇴는 상상 이상이다.
“명심해. 지금은 때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문이사는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품고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자. 다른 것은 몰라도 좀비로얄은 아직 내가 넘어트릴 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문이사는 상사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무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양실장은 특별 케이스야. 그와 회장님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하지만 표과장? 그 친구가 대체 회장님과 무슨 인연이 있겠나? 자네는 때로 걱정이 너무 지나쳐.”
이상무에게 있어 문이사의 걱정은 양실장에 대한 경쟁심리, 딱 그 정도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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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장의 뜻밖의 방문 이후, 나는 기획 회의를 파하고 곧바로 양실장을 방문했다.
“재무부장님이 직접 방문하셨다고요?”
“네.”
“잘됐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양실장은 재무부장의 행차가 정말로 별것 아니라는 투였다.
“제게 재량권을 일임하시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일단 기획팀장은 양실장님이시지 않습니까. 재무부장님께서 당장 예산안을 제출하라고 하시는데, 일단은 상의를 드려야 하니까요. 규모에 대해서도······.”
내 말에 양실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보고 있던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렸다.
“이거 표과장님 작품이지요?”
거기에는 좀비로얄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아, 드디어 올라갔군요. 안 그래도 미끼 던져 놓고 입질을 기다리던 중입니다.”
“미끼를 대체 얼마나 뿌리신 겁니까?”
“네?”
“지금 레이버에 실시간 검색 1위가 좀비 로얄이라는 것은 아십니까?”
“네?”
레이버 실검 1위?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고작 1억으로 이만한 홍보 효과라니······. 마법 같은 일이군요. 보통은 100억을 들여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니, 마법사는 양실장님이시죠.
“저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곧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러 갈 예정인데, 표과장님께서 이렇게나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계시니, 러닝메이트로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이런 것이 묻어간다는 느낌이겠지요? 왜 이런 단어가 유행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묻어가는 것은 제 쪽이 아닙니까? 하지만 내가 입을 열 기회도 없이 양실장은 바로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문이사님이 바쁘게 동분서주하고 계셔서, 슬슬 저도 움직여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그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표과장님이 해일을 일으키신 덕에 문이사님의 발자국이 죄다 지워질 판이군요.”
“그보다, 예산안 규모는······.”
문이사 레벨의 이야기는 어차피 내가 감당할 만한 주제가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뿐.
그러니, 회장님과 양실장이 생각하는 계획의 청사진을 알아야 했다.
“제 생각이나, 회장님 생각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회장님 의견도 신경 쓰지 말라고?
“그저 원하시는 대로 진행하세요. 장애가 있다면 제 이름을 대시고, 그것도 안 되면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내가 무슨 계획으로 얼마나 지를 줄 알고, 이렇게 무대포로 나오지?
“묻어간다. 크큭, 이거 재미있군요.”
양실장은 평소의 근엄함 따위는 벗어던지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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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무슨 슬롯머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