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좀비 로얄의 펀딩페이지의 기세는 두려울 정도였다.
“과, 과장님. 저 좀 무서운데요?”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죠?”
나뿐만이 아니었다. 홍대리와 남궁대리 마저 잔뜩 상기된 표정.
‘역시 이거겠지.’
일반적인 펀딩 모금 방식은 패키지 가격을 시작으로 몇 단계 차등 금액과 그에 따른 보상을 제시한다.
패키지를 시작으로 게임 내 아이템을 약속한다거나, 그 밖의 굿즈 등을 보너스로 제공하는 형식.
좀비 로얄 역시 기본은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옵션이 더 있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후원 금액에 따라, 차후 개발 완료까지 개발에 들어간 투자금 대비 수익을 보상으로 받게 되는 시스템.
‘컴뱃 그라운드의 수익률은 무려 700%’
후원 금액 제한이 없는 항목인데도 불구하고, 뜨억! 할만한 액수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과장님은 마케터로 취업했어도 성공하셨겠네요.”
“그럴 리가, 이건 컴벳 그라운드라는 성공사례가 있으니, 우연히 얻어걸린 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생각하는 일마다, 기대 이상의 성과가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
“좋아. 잘 되고 있으니, 일하자! 일!”
“넵!”
“예~압!”
왠일로 홍대리까지도 순순히 자리로 돌아갔다. 보통 이 시점에 커피나, 담배를 들먹이며 조금이라도 업무 시간을 줄이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녀석인데······.
아무래도 분위기를 탄 것이겠지.
요즘 기획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클래식 빌드 개발은 안정적이고 좀비 로얄을 향한 외부의 관심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뜨겁다.
‘일할 맛이 난다는 거겠지.’
곧장 업무 모드에 돌입한 팀원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흐뭇한 기분이 든다.
‘파티 잘 꾸렸어.’
아직 얼마 되지는 않은 신생 파티이지만, 내가 아무리 밖으로 나다녀도, 든든하게 내 뒤를 받쳐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응?”
마침 주변을 배회하던 +2 화염······. 아니, 하부장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시지?’
딱히 고민할 것도 없이, 나에게 용건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뭔가 주저하며 다가오질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가야겠구나.’
나다, 싶으면 나서야 하는 법!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부장님?”
“어, 어. 표과장.”
“무슨 용건이라도?”
“아니, 내가 곧 있으면 임원회의 들어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눈알을 불안하게 굴리는데, 그 시선 끝이 연거푸 나와 한팀장을 오가고 있다.
‘아, 원래는 한팀장과 함께 들어갔었구나?’
일전에도 지금도, 현재 기획팀에는 차장급이 없다.
임원회의 최소 참가는 보통 차장급이 마지노선인 법.
그런데, 이번에는 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쩐다.’
사실 이미 자료는 모두 넘긴 상황.
프로젝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상 DAU(일단위 접속률)나 PPU(DAU 내에서 결제한 비율)등의 예상도까지 면밀하게 계산한 자료를 부장님께 넘겨 드린 상황이니, 딱히 기획자가 필요한 부분도 없다.
하지만 하부장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아니, 안 되겠다. 표과장, 나랑 같이 좀 들어가자.”
하부장이 직접 요청한다면 나야 방법이 없다.
내가 알겠다고 대답하려는 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지만 그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실장님?”
야생의 양실장이 등장했다.
“제가 명색이 기획팀장 아닙니까. 실례지만, 표과장은 오늘 저와 함께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것도 그렇군요.”
하부장은 즉시 수긍하고 물러났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까지 양실장이 나를 임원회의에 대동한 경우는 없었다.
어차피 개발실의 일정 보고는 하부장의 몫이 아닌가?
‘뭔가 있나 본데······.’
양실장은 슬쩍 주변을 돌아보고는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내게 말했다.
“용건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새로운 미션. 이것은 임원회의에 들어가서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논의하면 좋을 것 같군요.”
아직 첫 번째 미션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미션이 떨어진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그렇군요. 2번째는요?”
“2번째는 보다 중요한 용건입니다.”
“미션 보다 중요하다고요?”
“예.”
대체 이 시점에 회장님의 미션 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표과장님께서 임원회의의 느낌을 파악하고 사내 권력도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작해야 과장인 내가 벌써부터 임원회의에 대한 느낌과 사내 권력도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지?
물론 경험치 획득의 기회야 언제든 환영이지만······.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양실장은 실풋 웃었다.
“지금은 너무 과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지난번 한식집 기억하십니까?”
“네.”
분명 양실장은 내가 머지않은 시일 내에 중역급 인사를 대접할 일이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 그 한식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트레이닝의 일환인가? 대체 양실장은 무슨 생각일까?
나는 그냥 결혼 후에 나태한 기둥서방을 꿈꾸는 평범한 서민인데······. 이 사실을 알면 양실장은 얼마나 놀랄까?
“이해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죠.”
“잠시, 자료라도······.”
“필요 없습니다. 하부장님이 이미 자료를 가지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건 발표자 자료고······.”
“그거면 충분합니다.”
라는 것은······.
정말 단순히 나에게 임원회의의 느낌을 알려주기 위해 동행한단 말인가?
의아스러운 일이었지만, 솔직히 임원회의가 궁금하기는 했다.
이전 회사에서도 몇 번 정도 경험이 있지만, 그곳과 이곳 맥베스는 체급이 달라도 한 참 다르다.
‘대기업의 임원회의.’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회의 참석전에 설명을 좀 드리죠. 우선 김대표님과 함전무님, 그리고 이상무님에 대해서······.”
나는 양실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 한마디도 놓쳐서는 안 된다.
사회생활에서 이런 정보야말로 경험치 그 자체가 아닌가?
*
*
*
가장 급이 낮은 우리를 시작으로 차츰 빈자리들이 속속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묘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직급순대로라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할 김대표가 우리 다음으로 중역 중에서 가장 먼저 도착했다.
“김대표님은 외부영입 인사이십니다. 사실 국내 표현상 대표와 전무로 나뉘지만, COO(최고운영책임자)에 가까운 포지션이십니다. 전무님은 CFO(최고재무책임자), 상무님은 CTO(최고기술책임자)에 가깝지요.”
“사실상 CEO(최고경영책임자)는 회장님의 역할인 셈이군요.”
“정확하십니다.”
말을 듣고 보니, 상황이 파악되는 것 같다. 어쨌든 주요 핵심은 외부영입인사인 김대표 보다 함전무와 이상무의 입김이 더 강하다는 것.
그 증거로 김대표에 이어, 이상무와 함전무가 뒤를 이어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보스의 등장.
“회장님 오셨습니까.”
“아아, 다들 앉지.”
평소라면 하늘 같던 중역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광경.
그야말로 기사들의 충성을 받는 영주의 모습이나 다른 바가 없다.
그리고 조회장님의 뒤를 따라, 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예쁘다.’
‘알아.’
‘아니, 너한테 한 말 아니거든요? 혼잣말이거든요?’
‘안다고.’
평소처럼 새침한 모습으로 살며시 눈을 깔며 회장의 뒤에 기립한 연아의 모습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아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이제 시작이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눈에 힘을 빡 주고 내심 기합을 넣는다.
“오늘 주요 안건이 뭐지?”
“주요개발실 일정과 조직개편입니다.”
“그래. 시작하지.”
내 착각일까? 순간 회의실의 온도가 1~2도 정도 살짝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실장급 임원들과 그 사이에서 안정제 처방이 간절해 보이는 하부장이 짧은 부산을 떨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지난번에 그 건은 보류하기로 했던 것 아냐?”
“따라서 이 현황은······.”
“그런 뻔한 소리밖에 못 하나? 지금 여기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화끈하다. 저레벨 던전(회의)에서처럼 불같은 샤우팅이 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마디, 한마디가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 증거로 평소에는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는 실장급 인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리고 하부장의 차례가 왔다.
‘힘내십시오!’
나는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따라서 커뮤니티의 반응에 따라 저희의 이번 분기는 클래식 빌드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게 매출에 도움이 되나?”
“아, 그, 그게······.”
결국 하부장은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안 그래도 허옇게 질려있던 얼굴이 이제는 퍼렇게 보일 지경.
‘부장님 제가 아래 따로 달아놓은 예시 문답을 확인하세요!’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발표문 하단에 따로 대처 문답을 첨부해 놓기도 했는데, 하부장은 애꿎은 발표서류를 넘기며 패닉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한팀장 역시 어버버하며, 쩔쩔매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안 좋다. 물 흐려진다.’
분위기가 탁해지기 시작하면, 프레젠테이션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다.
“그런데, 사실 이건 기획팀에서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부장은 아직 정식 개발실장도 아니니까요.”
이때, 문이사가 나와 양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임원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언뜻 하부장을 도와주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며 공격이다. 이미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발표에 우리를 밀어 넣는다?
‘차라리 고맙네.’
안 그래도 애가 타던 상황이다.
‘이거였군.’
나는 양실장을 슬쩍 바라보았다. 왜 그가 다른 자료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었는지, 왜 나를 하부장이 아닌 자신과 동행시켰는지.
그는 처음부터 문이사의 수법을 간파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내가 긴장할 것을 염려했으리라.
‘덕분에 긴장도 풀렸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부장 멘탈까지 갈려나가는 임원회의다. 만약 그 곁에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침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앞사람이 긴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 되려 긴장이 풀리는 그런 기분.
‘덕분에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가면 됩니까?’
이 무대는 양실장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내가 나설 차례다.
‘역시 이해가 빠르십니다.’
양실장은 싱긋 웃었고 나는 곧바로 발표석으로 향했다.
“마이크 주십시오.”
“어, 어. 부탁한다.”
하부장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좋아. 일단 마이크 잡은 이상 퇴로는 없다. 쓸데없는 생각들은 나중으로 미루자. 무조건 잘 해야 한다. 왜냐하면······.’
연아가 보고 있다.
회장님도 임원들도 상관없다. 지금 이 자리에 내 여자친구가 있다.
죽으면 죽었지, 연아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이 분위기에 일반적인 진행은 묘수가 아니다. 타겟팅으로 간다.’
그 왜, 게임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어그로가 튀는 상황이 있지 않나? 이럴 때 탱커가 당황해서 잔챙이들까지 잡으려고 들면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전멸뿐.
‘확실한 대물 하나 붙잡고 끝을 본다. 그리고 그게 해결되면 흐름은 내 것이다.’
이 시점에 타겟은 당연히 문이사뿐!
‘락온!’
나는 문이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사냥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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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세요? 축구는 혼자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