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기획팀 과장 표세인입니다. 우선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드리겠습니다. 클래식 빌드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간단합니다. 우선 4페이지를 보시죠.”
나는 슬쩍 한팀장을 향해 눈짓했고 한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면을 전환했다.
일단 분위기 쇄신을 위해 모두의 시선을 내가 아닌 발표 보고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작은 행동이 때로 꽤 유효한 법.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재 모두의 부동산을 즐기는 VIP 고객들의 매출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이 아이템을 소비해야 할 목적, 즉 타겟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장급회의에서야 고래 같은 단어를 쓰지만, 임원 회의에서 그렇게 저렴한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지.
“신규 유저들의 유입은 곧 경쟁자들의 증가를 야기합니다. 그렇게 되면 VIP 고객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됩니다. 이 흐름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된 자료인, 예전 매출 현황 그래프를 보시면 파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클래식 빌드는 확실하게 신규 유저 유입이 가능하다? 어떻게 확신하지?”
문이사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달라붙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 딜링에 데미지를 입을 정도로 물렁한 탱커가 아니다.
이미 나는 ‘여친 앞’이라는 슈퍼 버프가 걸린 몸이다.
“물론입니다. 캐쥬얼 게임에서 신규 유저들이 경험 많은 유저들을 상대해야 할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여타 게임들에 비해 큽니다. 하지만 반대로 캐쥬얼 게임인 만큼 신규 유저가 기존 유저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높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어디선가 호응의 탄성이 튀어나왔다. 좋아. 제대로 가고 있다.
애초에 주사위 놀음 아니겠나? 모두의 부동산의 묘미는 기본적으로 운빨 망겜이다. 그 의미는 바로 평등한 승률에 있다.
“클래식 빌드의 경우, VIP유저들의 승리율은 인상적이라고 할 만큼 높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신규 유저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최고의 세일즈 포인트라고 확신합니다. 과거 자료로도 그 점은 명백합니다.”
과거의 자료가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강력한 치트키라는 말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와 프로젝트의 화면을 번갈아 보며 임원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클래식 빌드에는 캐시템이 부족해. 우리가 유저들 만족하게 하려고 게임 개발하는 것은 아닐 텐데?”
?????
저는 유저들 만족시키려고 게임 개발하는 건데요?
이따금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방향성을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고객들을 만족시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갑을 연다. 아마도 한국에는 팁 문화가 없기에, 이 부분을 잘 신경 쓰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유료화 게임이란 일종의 팁을 노린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우선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면 지갑은 당연히 열린다.
유저에게 기쁨을 주기 전에 그저 지갑만 열기 위해 궁리한 결과, 현재 국내 게임 산업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나?
시대는 변했다. 더이상 랜덤 박스 하나 던져주면 앞다퉈서 돈을 흩뿌리던 시대가 아니다.
“결국, 이탈하지 않고 클래식 빌드에 흥미를 느낀 유저들은 기존 빌드에 흥미를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클래식 빌드를 거친 이들은 자연스럽게 더 높은 승률을 원하게 됩니다. 영원한 신규 유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서 말을 끊는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사의 말을 끊는 것은 자살행위지만, 상대는 문이사다.
어차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아니던가? 그는 이미 이 자리에서 나의 메인타겟일 뿐!
“그리고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경쟁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유전자 레벨에서부터 불길이 타오르는 민족 아닙니까? 그런 유저들에게는 기존의 VIP들은 넘어야 할 강력한 벽이자, 성취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종특까지 언급하자, 분위기는 완벽히 뒤바뀌었다.
“내용은 그럴듯하네?”
“그러게요. 근 몇 년 동안 대규모 업데이트니, 신규 컨텐츠니 소란만 요란했지, 별다른 성과도 없었잖아?”
“게다가 타산성도 좋아. 맨파워가 많이 소모되는 작업도 아니잖아? 경제적이야.”
임원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자, 문이사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타겟은 쓰러졌고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이제 누구도 클래식 빌드에 부정적인 인상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까드득.
그러다 치아 상하십니다. 문이사의 이빨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 그 소리가 승리의 팡파레처럼 들린다.
메인 타겟을 쓰러트렸으니, 보상 좀 확인해 볼까?
‘나 잘했어?’
‘사랑해.’
‘아니, 잘했냐고.’
‘사랑한다고.’
보상이 너무 달콤하다.
임원회의실에서 내가 행복한 감정을 느끼다니, 재벌집 사위 노릇은 정말 꿀맛이다.
“훌륭하셨습니다. 역시 표과장님은 언제나 제 예상을 뛰어넘으시는군요.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섭니다.”
“선택이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보다 웃으세요?”
“네?”
“승리했을 때는 웃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이사님의 상처가 더 아플 것 아닙니까?”
양실장은 우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문이사를 향해 턱짓했다.
‘와, 양실장 성격 있는 캐릭터였구나?’
눈에 핏발을 세운 문이사를 향해 방긋방긋 미소를 보내는 양실장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 그래서 저희도 예전 느낌을······.”
“지금 장난해? 니들은 신규 프로젝트잖아!”
나 이후로 몇 차례의 일정 보고가 이어지고 드디어 안건이 조직개편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확연하게 숙연해진 분위기. 모두가 조회장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함전무와 이상무는 김대표의 안색을 살폈다. 사내 파워 게임이야 어떻든 간에, 직급상으로는 회장 바로 다음 서열이 아닌가?
하지만 김대표는 망부석처럼 묵묵히 침묵을 고수했다.
결국, 참다못한 함전무가 나섰다.
“회장님, 지금 보신대로 조직개편이 완료가 안 된 탓인지.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된 개발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제 결단을 내려 주시지요.”
함전무는 노련하게 허술한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변명으로 조직개편에 대한 화두를 넌지시 제시했다.
“흠······.”
“회장님?”
“지금 개발계획이 신통치 않은 것이 조직개편 탓이다?”
조회장의 무거운 입이 열리자, 함전무는 아! 뜨거하며 말을 돌렸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다들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자리들 잡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들이 불편하시다?”
소크라테스가 무적의 전적을 자랑하던 산파술이 끝없이 상대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전혀 다른 사용법이지만, 의문부호를 연거푸 사용하는 조회장의 말투는 묘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면이 있었다.
“저희가 아니라······.”
조회장은 고개를 돌려 비서인 연아를 바라보았다.
“시작하지.”
“예.”
연아는 회장님 뒤에 선 상태로 리모컨을 이용해 프로젝트에 새 화면을 띄웠다.
화면 속에는 좀비와 그들에게 쫓기는 플레이어들, 이후 전환되는 화면 속에서 좀비를 처치하거나, 좀비를 이용해 다른 플레이어들을 압박하는 전술이 박진감 넘치게 이어졌다.
‘좀비 로얄?’
이게 여기서 왜 나오지?
“이거 아는 사람?”
순간 김대표, 함전무, 이상무 등의 뒤에 서 있던 보좌진이 일제히 귓속말을 건넸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게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열기가 뜨겁다지요.”
“열기가 뜨거워? 얼마나 뜨거운데?”
“그, 그게······.”
“귓속말 그만하고, 아니, 임원들씩이나 되어서, 시장 조사 안 해?”
“송구합니다.”
함전무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다들 이거 어떻게 생각해? 얼마나 뜰 것 같아?”
“그런데 이 게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이 게임 우리 거야. 공동출자.”
“헛!”
조회장의 폭탄 발언에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사전에 이 일의 전말을 미약하게나마 알고 있던 문이사는 달랐다.
“화제성과 컨셉이 출중합니다. 분명 상당한 매출을 기록하리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인디 게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미 좀비 로얄을 눈독 들이고 있던 문이사는 좀비 로얄에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자신이 훼방을 놓을 것까지 계산해서 아마도 인디게임 수준에 머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한참 전의 정보요, 계산이다.
이미 자금 수혈 들어갔고, 미튜브의 화제성에 힘입어 펀딩이 미쳐 날뛰고 있는 시점이다.
‘재미있죠?’
양실장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인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지금 스마트폰 꺼내.”
조회장의 말에 모두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레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 확인해봐.”
“어?!”
가장 처음으로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문이사였다.
“이, 이게 어떻게?”
“설마 회장님께서 손 쓰신 겁니까?”
“내가 마법사야? 실검 1위가 이렇게 쉬우면 우리는 그동안 왜 못했을까?”
“그,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가 아니지!”
조회장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나와 양실장을 가리켰다.
“저쪽 솜씨야. 자네들 말대로 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양실장하고 굴러온 돌인, 표과장 둘이서 만든 실적이라고.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조직개편이 뭐 어쨌다고?”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을 짓눌렀다. 왜 기획팀이 게임을 인수하냐는, 기본적인 질문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직 한창 개발 중인 시점에서 실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타이틀 앞에 감히 누가 고개를 들 수 있을까?
“애초에 근래 뭐 변변한 실적 하나 낸 적 있어? 내가 왜 조직개편에 고심하는 줄을 알고서 떠드는 거야?”
조회장의 질책에 회의실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조회장은 넌지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연아를 향해 턱짓했다.
그러자 프로젝터의 화면이 교체되었다.
그것은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조직도였다.
“양쪽 요구 절충해서 배분했다.”
“으음······.”
“에······.”
함전무와 이상무는 미간을 구기며 화면을 뚫어져라. 훑어보았다.
아마도 자신의 파벌 인사들이 원하는 자리에 배속되었는지, 상대가 자신들보다 큰 이득을 본 것은 아닌지.
이해득실과 갈등이 교차하는 현장.
“흠흠,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빈틈없이 정리해 주셨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대강 만족한 건가?
“그런데, 승진 부분이 누락 된 것 같습니다만?”
아니었다.
파벌 싸움의 우위는 파벌 인원들의 직급이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핵심 요건 하나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
“다른 것들은 다 좋은데, 차장 진급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습니다.”
이상무 역시 이 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좋아. 우리 잠시 터놓고 이야기하기로 하지. 함전무가 미는 친구가 누구지?”
인사과가 아닌, 임원이 직접적으로 푸쉬하는 인재.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쉬쉬할 뿐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내 기밀.
그것이 지금 오픈되려 하고 있었다.
“재무팀의 변성구 과장입니다.”
“이상무는?”
“프로그램팀의 송민식 과장입니다.”
조회장은 슬쩍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인사과에서 이번 분기 차장 승진 TO는 한 자리뿐이라고 하더라고.”
그것은 함전무와 이상무 모두 알고 있던 모양인지, 가타부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의 총애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건가?’
TO는 하나뿐. 하지만 두 파벌에서 각자의 사람을 제시한 상황.
“업무역량 평가로 결정하려고 해봐도, 프로그램팀과 사업부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
이것은 게임사의 모든 파트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사안이다.
프로그램, 그래픽, 기획 거기에 운영, 사업, 마케팅 등등······.
파트별로 너무도 성격이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탓에 이런 경우 선택이 쉽지 않다.
게임 업계 밖의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언어나 한자시험 같은 승진 테스트에 더해 연수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합산하여 승진고과에 반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외국 IT의 경우에는 게임을 통해 대상자의 창의력과 직관력 등을 체크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주사위를 그쪽으로 넘기려고.”
“네?”
주사위를 넘긴다는 말에 함전무와 이상무의 시선이 서로를 마주했다.
이미 좀비 로얄을 통해 한 방 먹은 상황. 섣불리 입을 열기가 쉽지 않을 터.
“제가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지금까지 망부석처럼 자리만 채우고 있던 김대표가 말했다.
“말해봐.”
“회장님께서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마침 체육대회가 곧 다가옵니다.”
“체육대회로 결정하자? 너무 장난스럽지 않나?”
조회장은 살짝 탐탁지 않다는 표정. 승진 여부를 체육대회로 결정한다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 이 업계 특성이지.’
국내 IT업계의 회장들은 유독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3M의 일각인 MC 소프트의 회장은 야구단을 창설하는가 하면, 한 대형 게임사의 대표는 직접 미국 독립리그를 찾아가, 짧게나마 선수 생활까지 한 일화가 있다.
“체력과 리더쉽, 그 밖에도 스포츠에는 직관력과 창의력 등 은근히 많은 요소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회장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김대표는 넌지시 한 번 더 어필을 시도했다.
“게다가 어차피 업무성과로 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결국에는 운인데······. 차라리 뭔가 평가요소라도 접목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실례로 해외 IT업계에서는 게임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흐음······.”
김대표의 거듭된 어필에 조회장의 살짝 고민했다.
‘가만 이거······.’
‘나쁘지 않다!’
순간 함전무와 이상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리스크와 승산, 그들은 찰나 동안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켰고, 그 결과.
“김대표 생각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거라면 공평할 것 같습니다.”
“그래? 두 사람 모두 동의해? 그럼, 각자가 지원하는 팀이 우승하는 쪽이 승진권을 손에 넣는 거로 하면 되나?”
조회장의 말에 임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회의가 정리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 끝났나? 어?’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양실장의 팔이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뭐지?”
“만약 다른 팀이 우승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양실장의 말에 함전무와 이상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조회장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양실장도 참여해보게? 그런데 양실장이 속한 곳은 모두의 부동산이잖아. 거기는 캐쥬얼 게임이라 여성도 많아서 불리할 텐데?”
조회장의 말대로 캐쥬얼 게임에는 여성들이 많다. 다른 개발실에 여성이 찾아보기 어려운 것과는 별개로 당장 우리 기획팀만 해도 여성이 두 명이나 된다.
조회장의 말에 함전무와 이상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마치 귀엽다는 듯한 표정.
“뭐, 만일의 경우란 것도 있지 않습니까.”
“흠, 그래도 양실장이 끼기에는 판이 좀 큰데, 대신 조건이 있어. 그 다른 팀의 경우에는 MVP가 승진대상자 인거야. 만약 MVP가 차장 진급에 걸맞지 않으면 아웃. 이해했어?”
“예. 알겠습니다.”
다른 팀의 경우 우승을 해도 진급자를 결정할 권한은 주지 않겠다는 말에 함전무와 이상무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조회장이 자신들의 면을 세워준 것이 퍽 기뻤던 모양.
하지만 뭐랄까······. 나는 조금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마치, 야바위꾼의 놀이에서 첫 참가자는 반드시 돈을 따가는 것을 목격하는 느낌이랄까?
‘왜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느낌이지?’
설마 싶지만, 솔직히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다.
“다들 문제없지?”
“물론입니다.”
“예. 조건은 공평해야죠.”
함전무와 이상무는 서로를 견제하기 바쁜 탓인지, 조회장과 양실장 사이에 흐르는 음흉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이번 체육대회도 메인은 역시 축구입니까?”
“뭐, 그렇지. 우리는 축구파잖나. 옛날 대학시절부터 우리는 축구게임으로 밤새웠었잖아. 기억 안 나?”
“정말 옛날 일이네요. 그때는 정말 즐거웠는데······.”
함전무와 이상무가 조회장과의 대학 시절의 추억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있을 무렵, 나는 축구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연아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회장님께 나에 대해서 말씀드렸어?’
‘어. 잘하란 말은 안 할게. 어차피 잘 할 테니까.’
100%다. 이건 조회장의 음모다. 무섭다. 조회장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함전무와 이상무와 대학 시절의 추억담을 나누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조회장의 뱃속에 똬리를 튼 거대한 능구렁이가 보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양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솔직히 체육대회까지 혼자 힘으로 우승은 쉽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체대 출신이시라는 것 때문에 조금 기대는 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자신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네?”
자신 없습니다.
살살할 자신.
“역시, 축구라는 경기가 혼자 힘만으로는······.”
양실장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런,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이다.
“양실장님. 그거 아세요?”
“네?”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입니다.”
“?”
제 소싯적 별명이 신림동 표차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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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