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0화 (30/346)

30.

“와, 이건 좀······”

“대체 몇 골 째야······.”

표세인이 미쳐 날뛰는 장면을 지켜보던 조회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조회장은 슬쩍 눈을 돌려 뒤에 앉아 있는 자신의 딸 조연아를 바라보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소리는 내지 않는데, 주먹을 불끈 쥐고 표세인이 골네트를 흔들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아니, 양실장. 이건 너무 하잖아? 어디서 축구선수를 데려오기라도 한 거야?”

이제는 분노를 넘어 허탈의 경지에 도달한 이상무의 말에 양실장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체대 출신이라기에 체육 대회에서 다소 활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건 대체······.

-출렁!

또 다시 골네트가 흔들렸다.

“표세인!”

“우윳빛깔 표세인!”

“사랑해요! 표세인!”

개발3실 응원석은 그야말로 광분의 도가니였다.

‘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타난 거야?’

이상무는 혀를 찼다. 개발2실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쳐 날뛰는 표세인과 이따금 번뜩이는 패스를 연결하는 홍기도를 제외하면 개발3실의 역량은 대단치 못한 수준이었다.

이미 개발 2실도 4골이나 넣었다. 하지만······.

-출렁!

“또, 또 넣었어? 대체 지금 몇 골째야?”

“7골째입니다.”

아예, 에이스급 인재들을 전부 표세인 하나에 붙여 놓은 개발2실이지만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주 죽여버려! 반칙이라도 해서 막아!”

김순영은 비명처럼 외쳤으나, 부질없었다.

‘반칙이 안 되잖아.’

밀어도 끄떡없다. 잡으면 끌려간다. 게다가, 머릿속으로 반칙을 하려고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바람처럼 내달려 사라져 버린다.

기본 피지컬의 수준이 다르다. 그렇다고 축구 기술이 떨어지냐?

발을 손처럼 쓴다는 표현이 그저 관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현란한 드리블은 어떠한가?

상대의 동작을 읽고 작은 동작으로 상대를 속이는 수 싸움을 오랜 기간 수련해온 태권도 선수의 페인팅은 일반인들의 눈을 속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막아! 막아!”

-콰앙!

180 후반의 체격과 눈 돌아가게 빠른 주력이 더해진 그 슈팅. 거기에 더해 평생 각력을 단련해온, 태권도 선수의 슈팅이 아닌가?

-철썩!

“다음부터 체육 대회에 축구를 금지하든지, 저 친구를 금지하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짜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네.”

함전무가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고, 조회장 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어도, 너무 많이 뛰어넘지 않았나?

“꺄아아악! 표세인!”

여성 개발자 비율이 높은 캐쥬얼팀 답게 응원의 열기는 가장 높았다.

표세인의 쉴 새 없는 활약에 경기를 뛰는 선수들보다도 응원하던 이들의 체력이 먼저 고갈될 지경이었다.

“함전무, 이상무.”

조회장이 급히 두 임원을 불렀다.

“예.”

“그쪽 팀들 잘 다독여줘.”

사기 진작을 위해 준비한 행사가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를 박살내는 상황.

체육 대회 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팀의 회식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아직 경기가······.”

함전무는 아직 자신이 지원하는 개발1실의 경기가 남아있음을 피력했으나,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조회장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게임은 끝났다.

저런 괴물이 날뛰는 판에, 무슨 이변이 있을 수 있겠나?

*

*

*

“삐빅! 8:3으로 개발3실 승리!”

이변은 없었다. 아니, 이미 표세인의 등장부터가 이변이었지 않나.

전통적인 강호였던 개발2실을 9:4로 짓밟은 개발3실은 그 기세를 몰아 개발1실을 큰 점수 차로 무너트렸다.

“그럼 우승팀 발표가 있겠습니다!”

전혀 긴장감이 감돌지 않는 발표.

“우승은 개발3실입니다!”

“와아아!”

“이게 머선 일이고!”

“자, 잠깐 비켜봐 봐! 나도 표과장이랑 친해!”

한팀장과 오팀장을 필두로 표세인 주변에 있던 모두가 그를 얼싸안고 승리를 만끽했다.

“다음으로 MVP 발표가 있겠습니다.”

“표세인! 표세인!”

이미 진행자가 MVP를 발표하기도 전에 먼저 표세인의 이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개발3실 표세인 과장님이 금년 체육대 회의 MVP입니다!”

“와아아아아!”

모두가 알고 있던 결과였지만, 그렇다고 열기가 퇴색되는 일은 없었다.

“그럼 회장님이 직접 시상과 금일봉 수여를 해주시겠습니다.”

단상위에 선 표세인을 향해 조회장이 다가왔다.

“잘봤네.”

“감사합니다.”

겉보기에는 훈훈한 장면. 하지만 그들이 남모르게 작은 소리로 수군대고 있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음부터 운동 관련 미션은 없어.”

“아쉽네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다음 미션 기대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단상을 내려섰다.

“그럼 회식 장소를 예약해 두었으니, 팀 단위로 이동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

*

회식장에 도착하기까지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과장님 원래 축구선수였어요?”

“아니야.”

“아니, 표과장 왜 축구선수를 안 했어?”

기획팀원들을 시작으로 한팀장까지 들러붙어 실세 없이 질문을 던져대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표과장 이쪽!”

먼저 도착해있던 오팀장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아니, 저 기획팀인데요. 거긴 그래픽팀 자리잖아요.

“아니, 오늘 표과장은 이쪽이지! 그래픽팀 축구 뛴 사람 몇 없잖아! 그렇지 표과장?”

한팀장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기획팀이라고요.’

내가 기획팀과 함께 앉겠다고 말하려는 찰나, 뒤에서 불쑥 양실장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대표가 있었다.

“오셨습니까!”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하하. 앉으세요. 다들 오늘 하루 수고가 많았습니다.”

김대표가 모두를 치하하는 사이, 양실장이 넌지시 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표과장님은 우선 저희 쪽 자리를 빛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표과장님은 우리 고기 구워줘야 하는데.”

홍대리가 뜬금없이 볼멘소리를 했다. 물론 내가 고기를 잘 굽기는 하지.

운동부 출신들은 혼자 10인분씩 처먹는 선배들 수발드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보니, 고기 굽는 기술 하나는 확실히 깨우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 고기 굽는 모습에 속이 타서, 나도 모르게 가위와 집게를 손에 쥐게 된다.

아니, 그보다 홍대리는 진짜 개념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겁을 상실했다.

“그러고 보니 홍기도 대리라고 했던가? 오늘 활약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젊었을 적에는 족구 참 좋아했는데, 홍기도 대리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 괜찮으면 홍기도 대리도 함께······.”

김대표는 홍대리의 족구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한 모양.

“거기 여자 있어요?”

이, 이건 나조차도 당황했다.

“오늘은 아쉽게도 우리뿐인 것 같군.”

“그럼 저는 패스!”

홍기도는 냉큼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얘가 나쁜 애는 아닌데, 좀 모자라서요.”

“하하, 내가 농담도 구분 못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발랄해서 좋아.”

아니요. 이놈은 순도 100% 진심이라서 문제인 겁니다.

다행히도 김대표는 홍대리의 캐릭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저 농담이라고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먼저 먹고들 있어.”

“네! 빨리 오세요!”

나는 팀원들에게 먹고 있으라고 말한 뒤, 김대표와 양실장과 함께 내실로 향했다.

고깃집 안쪽에 따로 비치된 내실. 김대표가 맞은편 상석에 자리하고 나와 양실장이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나는 왜 부른 걸까?’

양실장은 그렇다치고, 김대표와는 딱히 안면도 없는데······.

하지만 분위기를 통해 전해진다. 이 둘이 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틀림 없다.

고작 체육대회  MVP를 축하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뭐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나쁜 일은 아니겠지.’

어쩌면 뭔가 하나 얻을 기회일까?

“내가 한잔 따라주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공손히 김대표의 술을 받고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오늘 아주 인상적이었네. 솔직히 족구 시합 때까지는 홍대리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지만······.”

동감입니다.

홍켓몬에게 그런 재주가 있을 줄은 트레이너인 나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회의 때도 인상적이었더랬지. 자네 같은 인재가 넝쿨째 굴러들어오다니, 우리 회사도 장래가 밝아.”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덕담. 이런 분위기라면, 이 자리에서 내 대사의 80% 정도는 감사합니다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갑자기 김대표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표과장.”

“예.”

“내가 선물을 하나 준비한다면, 그것을 받아 주겠나?”

선물을 준비하는데, 받아주겠냐고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양실장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는 살짝 눈을 내리깔고 은은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알아서 하라는 거군.’

하지만 결국 이것도 퀘스트다. 아니, 미션이다.

조회장님과 게임을 시작한 이후, 모든 것이 게임 속 퀘스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퀘스트는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잘 소화하면 약이지만, 잘 못 하면 독이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나?”

이미 받겠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결연한 눈빛을 유지했다.

‘설사 독이라 하더라도······.’

정면으로 받아낸다. 내 포지션은 언제나 탱커가 아니던가?

“흔쾌히 받아주시니, 기분이 좋군요.”

“그 눈빛 좋군요. 역시 양실장님이 기대를 걸만한 인재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제가 운이 좋은 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씩 웃었다. 뭔가 조금 뻘쭘하네.

하지만 이런 칭찬, 나쁘지 않다.

“그럼 오늘의 영웅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양실장님.”

“예. 대표님.”

“아까 말씀하신 제안 긍정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솔직히 인상적인 캐릭터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한 번 정도는 스스로 체크하고 싶습니다.”

“마땅히 그러셔야지요.”

또 한 번, 내가 알지 못하는 대화가 오가고 있다.

나는 하지만 이 또한 나와 무관계한 대화가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준비가 되면 따로 연락드리지요. 부디 이것이 좋은 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차장 진급을 축하하는 선물이 될 테니까요.”

나는 놀란 마음에 양실장을 바라보았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차장 진급, 진짜로 확정이라고?’

그토록 힘들게 느껴졌던 진급이 이렇게 쉽게?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게임 회사인 맥베스에서, 그저 공 몇 번 찼다고?

이래서 임원들이 그렇게 체육대회에서 사활을 걸었던 거군.

새삼스럽게 조회장이 얼마나 통 큰 사람인지 느껴진다.

해준다면 해주는 사람이구나.

"미리 감사드립니다."

내 말에 김대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였다.

“표과장님 언제 와요!”

밖에서 홍대리가 취한듯한 목소리(100% 연기라고 확신한다)로 내 이름을 불렀다.

“죄, 죄송합니다. 홍대리가 나쁜 녀석은 아닌데, 가끔 취하면······.”

결국, 나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며 김대표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뭐랄까.

김대표는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조금 기뻐 보이는 눈치였다.

“하하하. 아닙니다. 이거, 노인네가 눈치 없이 오늘의 귀빈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곧 갈 테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는 홍대리? 그 친구처럼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원을 좋아합니다.”

김대표는 정말로 홍대리를 좋게 생각하는 듯 했다. 정말로 운도 좋은 녀석이다.

“그럼, 물러나 보겠습니다.”

“예. 예.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김대표에게 먼저, 그다음 양실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야~ 표과장, 벌써 팀원들 버리고 줄타기 시작하냐!”

밖에 나오니, 홍대리가 양 손바닥을 입에 대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나 왔다. 임마.”

나는 홍대리의 허벅지에 살포시 니킥을 꽂아줬다.

“아윽! 과장님, 저 오늘 운동했잖아요.”

살살 쳤지만, 매우 아프게.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홍켓몬과의 스킨쉽 방식이다.

“헛소리 말고 얼마나 마셨냐?”

“얼마 안 마셨어요.”

내가 너를 모르냐, 어디서 되지도 않는 수작을 벌써 두어 병 해치웠겠지.

“와! 표과장!”

“노래해! 노래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들 흥이 잔뜩 올랐다. 홍대리가 판을 주도했나?

이래서 홍켓몬을 혼자 두고 다니면 안 되는 건데.

“여기요!”

남궁대리 마저 발그레한 얼굴로 수저를 꽂은 소주병을 내게 건넸다.

아마 오늘 미친 듯이 응원하고 춤을 추느라고, 취기가 빨리 도는 모양이다.

“아니, 노래는 노래방에서 해야지.”

“어차피 이 집 우리가 전세 냈는데, 뭐가 걱정이야. 설마 표과장 빼는 거야?”

“빼면 우리 축하주 만들어도 되지?”

“야, 오팀장 뭐 좀 아네!”

한팀장과 오팀장은 웬일로 서로 합을 맞추며 물개 박수를 치고 있다.

그래도 보기 나쁘지는 않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홍대리가 스마트폰을 들고 MR을 준비했다.

그래, 내가 그거 말고 뭐 부르겠냐.

“알겠습니다!”

“오케이!”

모두가 잔을 들며 호응했다.

“푸른 언덕에~!”

그래, 이런 날은 광대 역할 한번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차장 턱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노래에 흥이 섞인다.

“다 같이!”

개발3실 전체가 목청껏 메아리를 부르짖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1시간 정도 적당히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연아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 되었다.

“나 이제 간다!”

“어? 또 어디 가요!”

“여친 만나러!”

“환상종?”

“가상의 인물 아니었어요?”

뒤에서 수근대는 팀원들을 피해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왔다.

‘자기들이 여신이라고 부르는 연아가 내 여자친구인 것을 알면 다들 까무러치겠지.’

나는 연아에게 오늘 활약에 대한 칭찬을 잔뜩 들을 생각에 한껏 들뜬 마음에 약속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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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밥이 맛있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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