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양실장의 뒤를 쫓았다. 그동안 양실장과 함께하며 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양실장은 대체로 자신의 속내를 소상하게 말해주는 타입이 아니다.
아마 자신이 워낙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덕분에 남들도 그 정도면 알아서 이해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런 타입이 직속 상사로 모시기는 무척 까다로운 타입이긴 하지.’
어쩌면 파벌을 만들지 않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양실장은 이를테면 낭중지추의 송곳에 가까운 남자다.
숨겨지지 않는 탁월한 인재. 하지만 그를 감싸줄 파벌, 즉 주변인들이 그를 온전히 커버하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재주는 때로는 주머니 자체에 구멍을 만들고 만다.
“운동하신 분이라서 그런지 자세가 좋으십니다.”
“아, 네.”
양실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사무업종들의 직업 병이랄까?
대부분 등은 굽고 거북목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괜찮다. 평소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는 덕분이겠지.
“제가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비서실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양실장님이 당연히 비서실장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가 비서실 신입들에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자세입니다.”
“확실히 양실장님 자세도 매우 꼿꼿하시고 반듯하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양실장은 자세만으로도 눈에 띄는 인물이다.
내 기준에서는 다소 마른, 하지만 슈트핏에 딱 좋은 훤칠한 체형과 등을 벽에 기대기라도 한 것처럼 꼿꼿한 자세가 무척 인상적이다.
솔직히 내 경우는 키가 큰 탓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팔다리, 굵기가 상당한 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즘 스타일의 타이트한 슈트핏을 소화하기 어려운 몸매다.
“네. 지금도 틈틈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뭐, 표차장님처럼 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습니다만.”
딱히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데, 물론 일반인 기준에서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체육대회 준비로 슬쩍 벌크업을 했더니, 요즘 몸이 더 운동하라고 아우성인 것이 느껴진다.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자세가 좋다는 것은 때로 그것만으로도 유용한 무기입니다. 체대 출신인 덕분에 표차장님은 남들에게 없는 무기 하나 가지고 계신 겁니다.”
살짝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체대 출신이라는 것은 언제나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하지만 체대 출신이라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니.
만약 이것이 내 마음을 사기 위한 사탕발림이라면······. 양실장은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로 가면 문이사님 방 아닙니까?”
“맞습니다.”
순간 묘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럴 리 없다는 느낌인데, 한편으로는 그럴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설마, 홍보라는 것이 선전포고였습니까?”
“정확하십니다.”
자기 생각을 알아챘다는 것이 기쁜 걸까? 양실장은 선전포고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선전포고라고는 해도, 이미 한발 늦은 셈입니다. 이미 교전은 지난번에 시작된 셈이니까요.”
“교전?”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양실장이 킥킥 웃었다.
“문이사님은 지난번 식사 이후, 곧바로 포화를 터트렸습니다. 미국지사의 영상제작에 제동을 걸고 한팀장을 포섭하려는 시도도 했죠.”
한팀장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결국 무산되었지만······. 그런데, 영상제작에 제동을 걸어? 이건 처음 듣는다.
“표차장님이 한발 앞서 인디 스타일의 홍보로 방향을 선회한 덕분에 닭 쫓던 개 신세······. 이런, 이 표현은 좋지 않군요.”
라면서도 얼굴은 웃겨 죽겠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딱히 선전포고는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저쪽이 비겁하게 기습을 했다고 해서 우리도 격 떨어지게 움직일 필요는 없지요.”
격이 떨어진다라······.
싸움이 시작되면 일단 초전에 박살 내 버리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무척 생소한 개념이다.
“세상 어느 집단에서나 그 세계 나름의 격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싸움의 향방은 누가 더 오래 이러한 격을 유지했느냐가, 향방을 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냥 기억만 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내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언제나 양실장의 가르침은······. 뭐랄까, 깊게 들어온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학원강사를 했어도 스타강사로 성공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연아의 과외선생도 했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연아 성격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과 연을 이어 갔을 리는 없으니, 확실히 그 방면으로 소질이 좀 있는 타입라는 느낌이 든다.
‘이래저래, 조회장님의 배려가 감사하네.’
처음 만났던 날, 고작 게임 한번 플레이한 대가로 양실장을 내게 보내주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치게 후한 보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역시 나도 전화를 좀 하고, 찾아가 뵙는 것이······.’
연아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이 우리 부모님께 그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하는데, 나라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도착했군요.”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문이사의 방 앞에 도착했다.
“문이사님 계십니까?”
양실장은 비서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아, 네. 계십니다. 하지만 지금 상무님과 함께 계십니다.”
이걸영 상무.
사업부의 수장으로 모바일 시장이 대두되면서 급격히 입지를 늘려간 인물.
듣기로 애초에는 회장님과 전무님의 뒤를 이어 막내 포지션이었던 탓에 파벌 형성 같은 것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는데, 문이사를 영입한 이후로 급격히 세를 키워, 어느새 함전무와 함께 사내의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한 인물.
“마침 잘 됐군요. 안에 기별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하, 하지만······.”
비서는 망설였다. 다름 아닌 이상무와 대화를 방해하는 것은 양실장의 이름값이라도 다소 무리가 있다.
“괜찮습니다. 아마 반갑게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양실장의 말에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선 버튼을 눌렀다.
‘이런 느낌으로 말을 하는 거군.’
역시 공부가 된다. 곁에 있기만 해도 경험치가 쑥쑥 오르는 기분이다.
“문이사님.”
“뭐죠?”
목소리가 날카롭다. 방해를 받아 짜증이 난 것이 느껴진다.
“양실장이 방문했습니다.”
“······.”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들어오라고 하세요.”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들어가시죠.”
열려라 참깨랄까? 양실장이 이 회사 내에서 열지 못하는 문은 없겠지.
진짜로 마법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실례하겠습니다.”
“하하, 양실장이 여기는 웬일이야?”
이상무는 호탕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양대 파벌의 일각, 그 파벌의 수장과 오른팔 격인 인물들의 대담.
하지만 그것보다도 무게감 있는 양실장의 방문.
‘차장을 달자마자, 보스몹 조사를 시작하다니.’
뭐랄까, 신규 확장팩이 오픈할 때, 보스 몹의 정보를 파악할 때의 기분이 든다.
“대화 중에 방해한 것은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미뤄둘 수 없는 용건인지라서 결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오, 그 용건······. 흥미로운데?”
라고 말하며 이상무는 양실장과 나를 스윽 훑었다.
“그런데 표과장, 아니, 이제 표차장인가? 아무튼 두 사람이 함께 여기를 찾아오다니······. 설마 선전포고는 아닐 테고.”
문이사 역시 다소 날카로운 눈빛으로 양실장의 허실을 탐색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무게감이 남다른 두 중역의 매서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양실장은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맞습니다.”
“뭐?”
“선전포고 맞습니다.”
순간 장내의 온도가 2도쯤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
“하하하. 양실장이 유머가 많이 늘었군.”
“아니, 고작 두 명이서 나 문상훈이를 찾아와서 선전포고라고? 이상무님까지 계신 와중에?”
아무리 조회장의 비호를 받는 양실장이라고는 해도, 회사 내 직급은 준이사급인 실장에 불과하다.
두 사람의 반응은 마치 체급이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확실히 상황만 놓고 보면, 함전무 파벌과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경쟁중인 중량급 탑랭커에게, 경량급 선수가 도전한 것 같은 모양새.
하지만 양실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
“사실 선전포고라고는 했지만, 문이사님이 먼저 링에 오르기도 전에 손을 쓰신 터라, 그저 예의상 찾아온 것입니다.”
마치, 나는 예의도 모르는 너와는 다르다. 라는 늬양스.
순간 문이사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하하,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시나. 내가 진짜 손을 썼으면, 이미 선전포고하러 올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이제 뒤에서 깔짝깔짝 얕은 수작 말고, 제대로 한 번 해보시지요.”
문이사와 양실장의 기 싸움에 이상무는 참견하지 않고 슬쩍 소파에 등을 기대고 관전 모드에 돌입했다.
“얕은 수작?”
“지난번 체육대회에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이미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앞으로 쉴틈 없이 내달려야 하는데······. 그 전에 거슬리는 돌부리는 쳐내야겠지요.”
양실장은 전에 없이 호전적인 말투였다. 그러자 문이사의 표정 역시 험악해졌다.
“한번 제대로 시작해보죠. 저와 문이사님의 정면승부.”
“호오······.”
반응은 문이사가 아닌 이상무의 입에서 나왔다.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
그에 반해 문이사는 입가가 부들부들 떠는 것이 훤히 드러났다.
“나 문상훈이와 제대로 한판 해보시겠다?”
“설마, 천하의 문상훈님이 이 양성태의 도전을 거절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양성태의 말에 문이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굈다.
“그래서 방식은?”
“저와 문이사님은 입장이나 포지션상 직접 힘겨루기를 하기가 마땅치 않지요. 그러니 대리인을 세우는 겁니다.”
“챔피언(대전사)으로 겨룬다? 나쁘지 않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문이사도 역시 게임 업계 사람인 모양.
사용하는 단어가 친숙하다.
“그럼 그쪽은 당연히 표세인 차장?”
문이사는 나를 향해 턱짓했다.
“제게 다른 누가 있겠습니까? 문이사님도 팀장급으로 맞춰주시죠.”
“오케이. 그래서 승부 방식은?”
“가타부타 말고 다음 분기 수익으로 하죠. 프로젝트 레벨을 맞출 수는 없으니, 기존 수익의 상승률을 놓고 겨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실장의 말에 문이사는 슬쩍 이상무를 바라보았다. 이상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관전자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의도 같았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런데, 승부에는 뭔가 걸만한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이사의 말에 양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먼저 배팅해 보지?”
“이번 조직개편 덕분에 조금 혼선이 빚어지기는 했지만, 마침 다음 분기에 임원 진급 논의가 있지 않습니까?”
“설마?”
순간 문이사가 눈을 부릅떴다.
“어차피 이상무님 진영에서는 문이사님의 상무보 진급을 건의하시겠지요. 그때 제가 한팔 거들겠습니다.”
“시늉만하고 끝내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필요하다면 회장님과 독대라도 해서, 설득하겠습니다.”
양실장의 말에 문이사는 다급히 이상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상무 역시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 아닌 왕의 남자라 일컬어지는 양실장이다. 사내에서 유일하게 조회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의 심복.
“그러면 그쪽이 이기면 무엇을 내줘야 하지?”
“글쎄요? 저도 마찬가지로 다음번에 제가 요청하는 안건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성을 부탁드리면 될까요?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는 단 둘뿐이라서, 구색을 맞추기가 쉽지 않군요.”
이상무와 문이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임원 진급에 대한 조력 이상의 카드는 흔치 않다.
결국, 저울은 기울었다.
“좋아. 해보자고.”
“좋습니다. 그리고 이상무님께서는 심판 역할을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심판? 괜찮겠어?”
“이상무님씩이나, 되는 분께서 설마 팔을 안으로 굽히지는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하하, 그렇게까지 말하니, 낯부끄러워서라도 심판 노릇 제대로 해야겠네.”
상대 파벌 에이스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그 파벌의 수장에게 심판을 맡긴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상황.
하지만 나는 지금껏 양실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의 스타일에 조금 적응한 상태였다.
‘이건 완전히······.’
사냥감의 퇴로를 끊고, 끓는 솥까지 준비한 격이지 않나?
이상무가 심판을 역할을 맡게 되면 문이사는 발을 뺄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그가 패하기라도 한다면, 단순히 체면을 잃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상무의 신임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가만 이거 설마?’
아니, 설마가 아니다. 나는 이 순간 확신했다.
양실장은 문이사와 링에 오르겠다고 했지만, 그의 타겟은 단순히 문이사가 아니다.
이상무 파벌의 에이스인 문이사를 쓰러트리는 것으로 파벌 전체를 위축시키겠다는 거다.
“좋아. 이쪽 선수에 대해서는 조만간 통보하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상무님. 거듭 결례를 사죄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아주 즐거웠어. 그런데 양실장 좀 변했네?”
“그렇습니까?”
“회장님 곁에 오래 있더니, 스타일이 조금 닮았는데? 이건 딱 그분 스타일이지 않나?”
“어찌 제가 회장님에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
“아주 흥미롭단 말이지.”
순간 이상무의 눈에 묘한 이채가 스쳤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부유한 마주가 경마에 자신의 말을 출전시키는 이유는 상금을 바라서가 아니다.
내 말은 과연 얼마나 빠른가? 과연 다른 말들보다 월등히 뛰어난가?
지금 이상무의 눈빛은 딱 영화에서 본 마주의 눈빛과 똑 닮아 있었다.
결국 파벌 싸움의 끝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지금 문이사는 자신이 심판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표세인 차장.”
순간 문이사가 나를 불렀다.
“예.”
“지금까지는 그냥 장난이었어. 나 문상훈이가 직접 나서면 많은 것이 달라져. 이 점 명심해.”
지금 나를 위협하는 건가? 확실히 싸움 전에 상대의 기선제압을 위한 위협 멘트는 기본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야지.”
“하지만 보여주시려면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
“지난번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곤란했습니다. 모쪼록 이번에는 견문을 넓힐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반응이 예상을 뛰어넘은 탓일까? 문이사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양실장과 함께 방을 벗어났다.
“후우, 피곤하군요.”
양실장도 사람은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조금 전까지 숨 막히는 팽팽한 기 싸움을 한 탓인지,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내뱉었다.
“설마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일하십니까?”
나는 조금 황당한 눈빛을 보냈다.
“설마요. 표차장님이 계시니까, 내밀 수 있는 패가 아니겠습니까?”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나를 신뢰하는 걸까?
“보통은 이쯤에서 자신 있냐고 질문할 기회 아닙니까?”
선전포고를 날리는 그 시점까지도 내게 계획에 대한 언질도 주지 않았다.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나?
“드라마는 캐스팅이 반. 이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네, 뭐.”
“캐스팅이 예술인데, 제가 겁낼 게 뭐가 있습니까?”
아, 배우 관점에서 제작자가 저렇게 말하면 참 부담되겠다.
나는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배우들의 처지가 이해가 되었다.
“자신 없으십니까?”
인제 와서 새삼스럽긴. 양실장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나는 마주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래 봬도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그렇게 보입니다만?”
“······.”
······아니, 그런 싸움 말고요. 업무 말한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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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