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7화 (37/346)

37.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곧장 남궁대리를 찾았다.

“남궁대리.”

“예?”

그런데, 남궁대리의 행색이 묘했다.

“지금 어디 가려고?”

“안 그래도 외근 신청하려고요. 좀비로얄 개발사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함송희가 고안한 퍼포먼스 증진 건에 대해서 전화로만 이야기하려니, 진전이 좀 더딘 것 같아서요.”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디젤 엔진에 얼리엑세스 문제를 건의하러 나도 가려던 참이었다.

“잘됐다. 함께 가자.”

“잠깐, 다 가면 저 혼자 사무실에 남아요?”

홍대리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면 끝나고 돌아오게? 너 야근할 거야?”

홍대리는 현재 모두의 부동산을 컨트롤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야 외근 상황에 따라서 바로 퇴근할 수 있어도 홍대리는 그렇지 않다.

“잘 다녀오십시오!”

역시 야근이라는 단어가 나오기가 무섭게 홍대리는 곧장 태세전환을 시도했다.

“그런데 차장님은 무슨 일로?”

남궁대리가 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담당하는 게임이다 보니, 궁금하기도 하겠지.

“박대표하고 얼리엑세스 문제 좀 논의하려고.”

“얼리엑세스? 설마 우리 디젤 스토어 먼저 출시하나요?”

전 세계의 게임 시장이 디젤 스토어의 유통망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해진 상황이지만, 국내 게임사들은 아직 자사 런처를 이용해서 배급하고 있다.

‘남궁대리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라면······.’

문이사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아마,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지.

당연히 좀비로얄 역시 맥베스 런처를 통해서 출시할 것으로 예상할 터.

‘통수는 언제나 즐겁다니까?’

딱히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닌데도, 워낙 인프라가 훌륭한 회사이다 보니, 밑바닥에서 굴러먹던 내 사고방식이 언제나 묘수처럼 작용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꿀은 빨 수 있을 때, 원 없이 빨아줘야 하는 법!

나는 이 계획이 틀림없이 문이사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줄 뿅망치가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응. 디젤 스토어로 출발하려고.”

“괜찮겠네요. 확실히 해외 시장 반응도 뜨거운 상황이니까요.”

내가 던진 그물에 걸린 미튜버들이 앞다투어 좀비로얄의 영상을 올리고, 그 뒤를 이어 해외 유수의 미튜버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좀비로얄에 대한 홍보 경쟁에 나선 상황.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이미 크라우드 펀딩의 미칠듯한 기세로 증명이 되지 않았나?

“솔직히 요즘 세상에 디젤 스토어 상단 노출 이상의 홍보 효과도 없잖아?”

“그렇죠. 그런데······. 혹시 언제쯤 예상하세요?”

“앞으로 한달 쯤?”

순간 말을 하고 보니, 남궁대리의 업무 부담이 걱정되었다.

‘홍대리라면 펄쩍 뛰겠지.’

일단 가볍게 레이아웃이라도 잡아주자.

“얼리엑세스 들어갈 테스트빌드는 알파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아. 인원수 줄이고 맵도 작은 규모로 해서······. 이해했지?”

“맵과 레벨디자인 새로 구상하고······. 인원은 5인 3팀 15명 규모, 목적지까지 도착이나, 탈출, 점거 미션 정도 바리에이션이라면······.”

이미 남궁대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다.

‘이런 느낌은 좀 신선하네?’

오랫동안 홍켓몬과 단둘이서 일하다 보니, 이런 모습이 무척 신선하다.

이미 남궁대리는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서 뭐에 홀린 것처럼 머릿속에서 얼리엑세스 기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래야, 기획자지.

새로운 기획이 시작되면 일단, 미친 듯이 파고드는 맛도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차장님 어디로 가세요? 지하철역은 저쪽인데요?”

“시간도 없는데, 택시 타자.”

“요즘 택시비 영수증 처리 잘 안 해주지 않나요?”

“영수증 처리 필요 없어. 가자.”

이런 별것 아닌 사치가 요즘 나의 작은 변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

*

“아이고, 우리 표전무님, 오셨습니까?”

박대표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전무?”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남궁대리와 함송희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거 계속하실 겁니까? 지난번에 그냥 이사로······. 아니, 앞으로는 그냥 차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차장? 승진했어? 벌써?”

“그렇게 됐네요.”

흐흐흐. 역시 진급 소식을 전달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잠깐, 그 미소는 뭐지? 우리 회사 전무 보다, 맥베스 차장이 더 기쁘다는 거야?”

네. 솔직히 그렇네요. 어차피 임시보직 아닙니까.

“하! 나 기분 상하려고 그러네? 그보다 표차장, 표창장, 폐차장. 어감 별로야. 놀림 받기 딱 좋아.”

“저 그런 별명 사양하는 타입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원체 큰 키에, 운동까지 하다 보니, 이따금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할한 사회생활을 위해 나는 이따금 광대 노릇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마침 이름이 좀 개성적인 덕분에 후세인 같은 우스꽝스러운 별명들이 늘 따라다녔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덩치 큰 놈이 무게 잡는 것만큼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도 없지 않나?

“좋아. 내가 양보한다. 표이사로 하자.”

그게 왜 양보입니까? 그리고 애초에 사외이사에게 전무나 상무를 붙이지는 않는 거잖습니까?

“왜 차장님이 이사에요?”

“나도 몰라, 뭔가 있나 보지. 그보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시작하자.”

함송희의 질문에 남궁대리는 새침하게 대꾸했다.

역시 남궁대리는 이런 업무 외적인 이슈에 관심이 없다.

홍켓몬이 곁에 있었다면 한바탕 소란이 있었을 텐데, 역시 남궁대리를 이쪽에 붙이길 잘했다.

“차장님 저희는 우선 이상승 과장과 미팅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 나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네. 가자.”

남궁대리와 함송희는 우리에게 인사한 후에, 개발실로 향했다.

“표전무가 어감이 좋았는데······.”

박대표는 아직도 이러고 있다. 대체 내 주변은 홍대리를 시작으로 다들 왜 이 모양이지?

“형, 우리 지금 이럴 때 아니야.”

이럴 때는 계급장 떼고 들이대는 것이 좋다.

“왜? 뭐 급한 일 있어? 다른 곳 가봐야 해?”

“아니, 급한 일은······. 이제부터 여기가 바빠지겠지.”

“그게 뭔 소리지?”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우리는 대표실로 들어갔다.

“아, 잠깐 기다려봐 나 이번에 캡슐커피 기계 새로 샀거든? 이거 은근 괜찮다?”

크라우드 펀딩까지 합하면 백억도 넘게 손에 쥐게 된 양반치고는 참 소박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필요하다면 직원들의 커피까지 대신 타서 대령할 사람이다.

보통 돈맛 보기 전의 게임사 사장들은 대개 이런 느낌이다.

‘이 형도 나중에는 변하려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쩐지 박대표는 나중에도 크게 변할 사람은 아니라는 막연한 예감이 든다.

“괜찮네요.”

“그렇지? 나는 비싼 커피 머신 보다 이런 게 좋더라.”

“저도요. 딱히 커피 맛도 잘 몰라서.”

“하긴 넌 진짜 좀 없어 보이긴 하지. 밥도 걸신들린 듯이 해치우고.”

한창 바쁜 시즌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허겁지겁 해치우고 사무실로 뛰어 올라가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가?

아니, 근데 없어 보인다니? 지금 한도액도 모르는 블랙카드 소지자한데······.

블랙밸트 보다 무서운 블랙카드 소지자를 뭐로 보고!

하지만 지금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다.

박대표의 페이스에 휘둘리면,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으며, 시간 낭비할 것이 분명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이달 말까지, 테스트 빌드 하나 완성하죠.”

“테스트 빌드?”

“디젤 스토어에 얼리엑세스로 출시하는 겁니다.”

“어?”

“뭘 놀라십니까. 원래 인디 스타일로 계획하셨으니, 당연히 디젤을 염두에 두셨던 것 아닙니까?”

“그, 그렇지.”

아무래도 맥베스의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본인도 헷갈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거 맥베스 상부의 뜻 맞아?”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한해서, 제 의견이 곧 회사의 의견입니다.”

내 말에 박대표는 살짝 뜨악했다.

“이야, 너 진짜 요즘 잘나가나 보다?”

“제가 잘나간다기보다, 운 좋게, 라인을 잘 탔습니다.”

“양실장?”

“네.”

“흠······.”

뭐지? 이 반응은?

“왜요? 뭐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도?”

“나 그 사람이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난번 투자 계약 때, 한 번 대화한 것이 고작이지만······. 사람이 너무 빈틈없어 보여서 인간미가 없다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박대표와는 성향이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와 양실장은 죽이 잘 맞는 편이기는 하다.

아직 찰떡궁합이라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무엇보다 이유는 모르지만, 양실장은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지 않나?

“그 양반이 너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

“그렇습니까?”

“이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것들을 소소하게 묻더라고. 처음에는 뭔가 네 약점이라도 캐려고 하나 싶었는데, 표정은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딱 그때만 사람 같더라.”

나도 얼마 전까지는 양실장의 캐릭터를 파악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연아에게 묻기도 했더랬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라인을 탄 상황.

“뭐 나랑은 안맞아도, 너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으니, 잘 해봐.”

“그런가요?”

사실 양실장에게는 좀 미안한 감정도 있다. 일단 나와 연아의 관계에 대한 것부터 비밀로 하고 있지 않은가.

“뭐 그거야, 네가 어련히 잘 할 테지, 그래서 네 생각에 얼리엑세스가 답이다, 이거지?”

사실 상황이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다듬은 뒤에 출시를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문이사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이상,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올려놓는 것이 상책이다.

“맞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분위기 좋을 때, 배 한 번 띄워 보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테스트 빌드까지 컨트롤 할 수 있을 만한 인력이······.”

그때였다.

“일정이 왜 이렇게 두루뭉술해요! 우리가 업데이트하는 것도 아닌데, 빌드 통합 시기를 기점으로 나눈 이유가 뭐죠?”

밖에서 시원한 샤우팅이 들려왔다.

“뭐지?”

뭐라기보다······. 우리 파이터가 슬슬 딜을 넣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아, 아니 그게 우리가 처음에 기획자 없이 시작하다 보니······.”

작은 규모의 개발사는 주로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편성하기 마련.

당연히 프로세스 전반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는 소스 취합자를 따로 한 명 지정하고, 업무 규모 별로 유동적으로 일을 처리해야죠. 소스 취합 안 되면, 끝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거예요?”

“아, 아니죠.”

이상승 과장은 남궁대리가 휘두르는 매서운 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슬쩍 창문 너머로 살펴보니, 화이트보드에 엉성하게 그려놓은 일정표를 남궁대리가 일일이 수정하고 있었다.

“이상승 과장이라고 했던가요?”

“어, 저래 봬도 코딩 실력 끝내준다.”

“다행히 남궁대리랑 궁합이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던진 아이디어에도 즉각 반응했던 것이 기억난다. 오만하지 않은 성격과 피드백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 타입.

저런 타입은 남궁대리 같은 카리스마 있는 기획과 시너지가 좋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남궁대리랑 통화할 때는 쩔쩔매는데, 고민하던 부분이 안개 걷히듯이 싹 걷혔다고 기뻐하더라고.”

혼자서 기획하며 코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종종 스스로 머리가 혼란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겠지.

그럴 때, 남궁대리가 요소요소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니, 기쁠 수밖에.

“그럼 이견은 없으신 거죠?”

남궁대리라면 충분히 이 좀비로얄의 테스트 빌드도 차질 없이 완수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박대표 역시 그 점에 동의하는 기색이다.

“우리 전무······. 아니, 이사님 말씀이신데.”

“그냥 차장이라고······.”

“그건 거기서고, 여기서는 사외이사잖아. 우리 회사 이사직급이 부끄럽냐? 너 월급 안 받을 거야?”

“월급이요?”

설마, 여기서 내 월급까지 지급된다고?

“어. 당연히 지급되지.”

“얼마나?”

“얼마면 되겠냐?”

나, 요즘 계속 같은 멘트를 반복해서 듣는 느낌인데?

“음······. 그건 저도 일단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어차피 앞으로는 맥베스 재무팀에서 우리 경리업무까지 컨트롤 하기로 했거든. 우리가 따로 요청하지 않으면, 거기서 책정해 주겠지.”

“그게 맞죠.”

“그래도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마라, 나도 지금은 쟤들이랑 크게 차이 없이 가져가고 있다.”

당연히 개발 초기 단계에서 대표랍시고 제 잇속 챙기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그나저나 월급, 한 50% 정도는 인상되려나?’

*

*

*

“재무부장님.”

“왜?”

“좀비로얄 사외이사 급여 문제 말씀입니다만.”

“그게 왜?”

“본사 차장급이 사외이사로 등재되어 있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고부장은 슬쩍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표세인 차장?’

고부장은 피식 웃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니 적당히······.”

“미국지사 급에 맞춰줘.”

“네?”

“미국지사 급에 맞춰주라고!”

“그, 그러면 연봉이 어지간한 임원 수준이 될 텐데요?”

“그럼, 이사가 이사급 연봉 받아야지.”

확실히 과한 것은 맞다. 하지만 어차피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떼어낼 직함일 터. 그때까지, 조금 후한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또 큰 문제는 아니다.

‘짜식. 내가 의리 없는 사람 아니라고 했던 것 기억하겠지?’

고부장은 지난번 표차장이 자신을 위해 양실장을 설득하겠다며 결의를 보였던 것을 떠올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언제나 떡은 이쁜 놈 손에 쥐여주는 법이다.

어차피 자기 돈 나가는 일도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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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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