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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40화 (40/346)

40.

“아니, 대체 왜 너만 잘나가냐고!”

얘가 원래 술이 이렇게 약했나? 정말로 예전에 함께 마셨다는 기억은 있는데, 디테일이 떠오르지 않아서 분간되질 않는다.

“야, 천천히 마셔.”

“너도 비웠잖아! 그럼 나도 비워야지! 해병대 물로 보냐?”

아니, 해병대 나온 거랑 주량이랑 뭔 상관이야. 거기는 뭐, 새 간이라도 보급해주냐?

“너 내 템포에 맞추면 죽어. 좀 꺾어 마시든지.”

“꺼져! 오늘 니 차장 월급 바닥낸다.”

아니, 차장 월급으로 사는 술 아니야. 너 조회장님 카드랑 싸우면 진짜 죽어.

“야, 나도 양실장님한테 말 좀 해주면 안 되냐?”

그래, 다행히 취했어도 미끼 무는 것은 잊지 않는구나. 장하다.

그래, 월척도 아닌 놈이 쓸데없이 튕기고 그러면 안 되지.

“무슨 말?”

“나도 좀 거기 붙자. 좀 붙여도!”

슬슬 안 쓰던 방언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여기, 한 병 더 주세요.”

“야, 근데 너 진짜 괜찮냐? 돈 모아야지 임마. 결혼 안 하냐?”

“결혼하니까 좋냐?”

“그럼, 임마. 니가 몰라서 그러는데, 결혼하면 사람이 안정감이 생겨요. 안정감이!”

미안한데, 너 지금 별로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좀 해주라고!”

“야, 너 생각을 좀 해봐라. 너 양실장님하고 문이사님 관계에 대해 알아?”

“그냥 좀 껄끄럽다?”

“좀?”

“아, 나도 들었어. 그 두 양반 견원지간이라며······.”

“그래. 그리고 너는 그쪽 라인에 줄 선 놈이고.”

나는 술잔을 비우며, 힐끔 윤과장의 안색을 살폈다.

취기가 조금 올랐지만, 아직 혀까지 꼬인 수준은 아니다.

윤과장은 겉과 속 모두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다. 낮은 직급 탓에 언제나 손바닥만 비비고 있지만, 취했다고 중요한 내용까지 놓칠 정도로 허당은 아니다.

“그래서 나 줄 바꿔 타고 싶다니까?”

“맨입으로?”

“뭐?”

“네가 생각을 해봐라, 양실장님 입장에서 니가 뭐가 이쁘다고 받아주겠냐?”

“······.”

“뭐 하나 물어와 봐. 그러면 내가 확실히 양실장님께 전달할게. 결과는 장담 못 해도, 네 이름 전달은 100% 약속한다.”

“야, 이 새끼 이제 정치질도 하네? 차장이다, 이거냐?”

“언제는 좀 하라며? 그리고 이게 내가 시작했냐? 니가 꺼낸 말에 맞장구쳐준 거잖아. 그리고 솔직히 아무것도 하지 마라. 나도 괜히 귀찮은 일 생기는 거, 사양이다.”

처음부터 전부 내가 설계한 판이고 유도했지만, 그렇다고 넙죽 들러붙으면, 상대는 한발 물러나기 마련.

어디까지나, 니가 부탁 한 거다. 나는 그냥 네 부탁 못 이기는 척, 들어주는 거다.

이런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때때로 양념을 쳐야지.

“그런데, 막상 이상하네? 김차장이랑 그렇게 안 좋아? 그래도 김차장 문이사 라인인데, 너 같은 쭉정이가 넙죽 기어서 발바닥이라도 핥아야지. 너 그런 거 잘하잖아?”

“잘하지! 내가!”

아니, 뭘 또 그렇게 자부심까지 느낄 것까지야······.

“그런데, 안돼. 아주 성골 나셨어. 서울대 아니면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양반이야. 그 양반이!”

윤과장도 나름 번듯한 대학 출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이름값 앞에 주눅 들지 않는 대학교 출신이 몇이나 되겠나?

나 조차도 과거 송부장에게 짓눌려 지내던 시절에는 학벌 콤플랙스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더랬다.

‘그래도 송부장은 앞에서 설설 기는 애들한테는 학벌로 차별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지.’

내심이야 어떻든 윤과장은 송부장의 이쁨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렇게 곱게 자란 덕분에 이런 상황에 적응이 안 되는 거지.

‘슬슬 3병째네. 여기서 못 박자.’

“현창아.”

“왜.”

“진짜로 그렇게까지 힘들면, 뭐하나 물어 와봐. 내가 양실장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

“진짜로?”

어찌나 번쩍 고개를 치켜드는지, 그 바람에 내 앞머리가 흔들릴 지경.

“솔직히 100% 장담은 못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네 이름은 제대로 전달하겠다니까?”

내 말에 윤과장이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아마도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가며, 저울질을 하는 거겠지.

“그런데 뭘 물어 가야 하냐?”

“몰라서 묻냐? 양실장님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가 뭐겠냐?”

“문이사에 관한 정보?”

“뭐, 그렇겠지?”

슬쩍 의뭉스럽게, 자신이 스스로 알아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거면 된다 이거지······.”

“아니,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건 네가 잘 알 것 아니야? 윗분들 비위 맞추면서 그런 것도 못 배웠냐?”

“그래, 배웠지. 맞아. 틀림없어, 문이사 관련이 즉효겠지.”

그래. 그래.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점이, 네 아이덴티티지.

윤과장은 잠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금 분위기가 묘해. 양실장님은 기획팀 팀장을 맡질 않나, 문이사는 우리 개발2실을 들쑤시질 않나. 설마 서로 경쟁하나?”

오! 윤과장의 뒷발이 쥐를 잡았다.

“어? 그런 이야기가 있어? 어디서 들은 거야?”

내 말에 윤과장은 슬쩍 입가를 씰룩였다.

“뭐야, 너 그런 것도 모르냐? 양실장님 오른팔이라면서?”

맹세코 나는 누군가의 팔이라고 말한 적 없다.

하지만 지금은 기가 산 모양이니, 멋대로 생각하게 놔두는 편이 좋겠지.

“뭔데? 말해봐.”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한 어조.

내 연기가 먹힌 것인지 윤과장은 기세등등하게 잔을 내밀었다.

“자, 한잔 따라봐.”

“어. 그래.”

-꼴꼴꼴······.

“크, 지금 상황이 어떤 거냐면······.”

윤과장은 그렇게 잰체하며 내가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과장까지 섞어가며 늘어놓았고,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렇구나, 지금 문이사가 개발2실을 아주 닦달하고 있다 이거네?”

“그래! 양실장 입김이 닿은 3실에게 질 수 없다 이거지.”

“흠······. 그런데 이거 어쩌나?”

“응?”

“우리 지금 1차 버그 픽스 만으로도 매출 껑충 뛰었는데?”

“와, 칼바람 써늘하겠네.”

윤과장은 문이사의 냉랭한 얼굴을 떠올리며 와이셔츠를 여몄다.

“그래서 정확히 그쪽이 주목하는 포인트가 뭐야?”

“이벤트.”

“무슨 이벤트?”

“랜덤 박스 확률 5배 이벤트.”

“와, 쎄네······.”

확률 5배라면 확실히 단기 매출 상승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게임의 수명을 걸고 장난질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벤트로 확률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유저들은 평소에는 지갑을 닫게 될 것이고, 닫힌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아이템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면 게임 내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아마도, 문이사는 과거 국내 게임업계의 황금기를 잊지 못하는 모양.

이미 국내 유저들의 뇌리에 뿌리깊게 박힌 불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미국지사에서 너무 오래 계신 탓이겠지.’

게임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이건 결코 놓칠 수 없는 빈틈인 셈.

“뒤는 안 본다 이건가?”

“나름 대비책은 준비한 것 같더라고, 어차피 신규 아이템 런칭 타이밍도 재고 있었으니까.”

신규 아이템을 업데이트하기 전에 기존 아이템을 선심 쓰듯이 떨이 처분하는 것은 국내 게임업계의 오랜 관행인 것도 사실.

‘양념을 좀 치고 싶은데.’

그때, 마침 작은 잔꾀 하나가 떠올랐다.

“그쪽에서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러면 이쪽도 맞불 작전 준비해야겠네.”

“맞불 작전?”

“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아!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말해줘! 이제 한배 탄 것 아니냐?”

탄 적 없고, 탈 생각 없지만, 여기서 발 빼면 와드가 제대로 심어지지 않겠지.

“그쪽이 5배면 우리는 10배로 가야지. 이벤트 준비 들어가야겠다.”

“너 미쳤냐?”

10배라면 차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시말서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준이다.

“승부는 이기고 봐야지.”

“10배······.”

윤과장은 다시금 고민에 잠겼다.

와드냐, 폭탄이냐. 아무거나 좋으니, 마음껏 해라.

‘뭘 하든지······.’

내가 손해 볼일은 없다.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다.

이 녀석에게 술 사는 것이 아깝지 않을 수가 있다니!

*

*

*

“그래서 지금 나 문상훈이가 내린 지시를 따를 수가 없다. 이겁니까?”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밸런스와 향후 매출을 감 안 할 때······. 지난번 랜덤박스 추가도 아직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곧 5월 성수기 아닙니까! 어차피 해야 할 할인, 조금 더 일찍 시작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 아닙니까?”

“하지만 아직 5월은······. 게다가 5배는 너무 큽니다. 2배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하, 이 사람들 참. 미국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말 들어봤습니까? 그때 할인율이 얼마인 줄은 알아요? 아주 떨이 판매나 다름없어! 그런데 그 시기에 기업 매출이 얼마나 상승하는 줄 알아요? 이래서 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서만 일해본 사람들은 그릇이 작아. 몰라도 한참 모른다니까.”

“하지만······.”

“하지만 뭐!”

문상훈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지난번 점검 업데이트를 통해 모두의 부동산은 클래식 빌드가 적용되지도 않은 시점에 작년 대비 몇 배의 매출 상승효과를 이루어냈다.

“아니, 내가 대형 컨텐츠를 추가하자고 했어? 작은 이벤트 하나 하자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그럼 반대로 묻지 이거 말고 매출을 증진 시킬 수 있는 방안 있으면 말 해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차피 대형 업데이트 없이 매출 증진을 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턱대고 받아들였다가는 후환이 두렵다.

몸보신 없이 자신의 계획에 올인할 수 있는 배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문상훈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양성태에 대한 경쟁심과 모두의 부동산의 약진.

이 두 가지 요인에 더해 미국지사에 있는 동안 약해진 본사에서의 자신의 입지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문상훈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미 낡아 빠진 모두의 부동산 보다 개발2실의 프로젝트는 더 젊고 확장성이 있다.

‘이걸 손에 쥐고도 양성태에게 밀린다면······.’

이것이 대리인 싸움임에도 문상훈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이유였다.

“아무리 그래도······.”

“끝까지?”

기어코 문상훈이 이빨을 드러내려는 찰나였다.

“10배······.”

“뭐야? 지금 누구야?”

윤현창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당황했다.

지난번 표세인과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자네 이름이 뭐지?”

“프로그램팀 윤현창 과장입니다.”

“지금 자네가 여기서 입을 열 군번인가?”

장일국 부장은 안 그래도 문상훈의 샤우팅에 맞서느라 진이 빠질 노릇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리도 없이, 뒤에 서 있는 과장급이 입을 연다?

“잠깐, 이야기나 들어보지. 지금 10배라고 했나?”

“아······. 그, 그게······.”

“이미 쏟아진 물이야. 긴장하지 말고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이나 해.”

“네, 맞습니다.”

“10배? 크큭.”

문상훈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10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한사코 반대만 하던 다른 이들에 비하면 그래도 자신 쪽 스탠드라는 생각에 조금 흥미가 동했다.

“왜 그런 말을 했지?”

윤현창은 생각했다.

‘문이사를 포함해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기회인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일까?

‘표세인 그놈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

더군다나 양실장의 이름값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고고한 늑대나 다름없는 남자. 그에 반해 문이사는 이상무 라인의 오른팔이지 않던가?

언제나 자신을 한참 내려다보는 김차장 조차 문이사와 한번 말이라도 섞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공민아, 공준아······.’

이제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해, 와이프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평생 과장에서 머물 수는 없다. 어차피 언젠가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무엇보다, 표세인만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비록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언제나 그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지 않았나?

학벌도, 프로그래머라는 포지션도, 무엇 하나 그에게 뒤지지 않음에도 번번이 표세인은 자신보다 한발 먼저 승진했고, 이제는 차장까지 달았다.

‘여기서 나도 뭔가 해내야 해.’

윤현창은 이를 악물었다.

“모두의 부동산은 10배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

“10배? 확실해? 그 말 책임 질 수 있어?”

“예.”

윤현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10배라니······.”

이건 문제 소지가 발생하면 조용히 덮고 갈 레벨이 아니다. 하지만 문상훈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뒷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남자였다.

‘10배라고?’

마치 5배를 떠올린, 자신의 그릇이 양성태 보다 한참 작다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들었어? 들었냐고!”

-쾅!

급기야 문상훈은 회의실 테이블을 내려치며 격분했다.

“적들이 저 정도 무기를 준비할 때, 우리는 고작 5배도 무섭다고 징징대는 거야? 나 문상훈이가 우스워?!”

“······.”

문상훈의 격분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문상훈 몰래 윤현창에게 질책 섞인 눈짓을 보낼 뿐.

‘아, 이건 너무 아픈데······.’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졌다.

윤현창은 주변의 시선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축축해진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우리는 100배로 간다.”

“이, 이사님!”

“시끄러워! 게임사의 최대 무기가 뭐야! 우리 상품은 디지털 카피라고! 어쨌든 팔기만 하면 남는 장사 아냐!”

IT의 최대 장점. 한번 개발이 끝난 상품은 원자재 따위가 필요 없는 탓에, 팔리는 족족 순수익인 것.

“하, 하지만 그러면 밸런스가······.”

“언제부터 한국 게임이 밸런스가 잘 맞았어? 그리고 그건 당신들이 책임질 일이지. 100배 가는 거야. 그리고 그쪽은 향후 데미지 컨트롤 보고서 올려!”

문상훈은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양성태 보다 못한 것도, 그릇이 작은 남자로 여겨지는 것도······.

모든 요소가 문상훈이라는 남자의 정신세계에는 치명적인 데미지였다.

‘데미지 컨트롤에는 자신 있다. 게다가 모바일 게임의 트랜드는 무한정 퍼주기가 아닌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낼 것이 아니라. 아예 혜자스럽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퍼주면 된다! 어차피 이 게임도 그럴 때가 됐어.’

문상훈의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했다.

수습만 가능하다면, 100배 이벤트의 위력은 확실하다.

문상훈은 자신의 감을 확신했다.

어차피 확률 상승 정도가 아니라, 랜덤박스의 최고 보상을 공짜로 줄 정도로 유저들을 붙잡기 위해 출혈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게임들이 허다하다.

그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었을 뿐.

“앞으로 나 문상훈이의 지시에 반대하려거든 사표 들고 와. 알아들어?”

벽력같은 일갈에 모두는 혼비백산할 뿐이었다.

“그리고 자네.”

“예.”

“그 정보 출처가 어디야.”

“표세인 차장입니다.”

“확실해?”

“단 둘뿐인 술자리에서 직접 들은 사실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단둘?”

“예. 그 친구가 지난번 제게 얻어먹은 것을 갚겠다고.”

“오호······.”

표세인의 등장이래, 문상훈의 안에서 김순영의 가치는 한없이 바닥을 쳤다. 그런데 이 순간에 양성태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표세인과 대작이 가능할 정도의 인재가 이 진영에 있다?

“둘이 친한가?”

문상훈의 질문에 윤현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친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과연 어떤 대답이 정답일까?

“그 친구는 저를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그저 인맥관리 할 겸, 그 친구가 부탁하면 가끔 어울려 주는 정도입니다.”

터무니없는 허세! 과연 먹힐 것인가? 윤현창은 내심 마른침을 삼켰다.

“좋군. 아주 좋아. 자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나?”

프로그램팀은 현재 문이사의 지시에 따라 미친듯한 크런치에 시달리는 상황.

하지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문이사님께서 찾으시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송부장 밑에서 갈고닦은 처세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 문상훈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보며 윤현창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그래도 오늘 이상무님과 식사 약속이 있는데, 젊은 친구가 분위기 좀 맞춰주면 좋겠다 싶던 참이었지.”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두 분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수발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 문상훈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오른팔, 제임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아랫사람은 이런 맛도 좀 있어야지.’

미국지사의 철저한 사무적인 분위기에도 조금 질렸던 참이었다.

“좋아. 내가 나중에 연락하지.”

“예! 영광입니다.”

이 순간, 윤과장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

*

*

“역시 표과장님은 대단하시군요.”

“아닙니다. 이번 매출 향상은 저도 예상치 못한 성과입니다. 칭찬은 한팀장과 프로그램팀의 몫이죠.”

나는 양실장에게 한팀장과 프로그램팀의 노고를 알렸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뭐지?’

윤현창 : 5배 이벤트 확정. 문이사가 모두의 반대를 꺾었음. 그쪽 계획대로 10배 이벤트 진행하면, 승리는 확정적일 거라고 예상됨.

“풋!”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졌다.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여자친구?”

양실장의 질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지난번 윤과장과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5배?”

“네. 그것이 문이사의 계획이었다는데, 저는 거기에 맞불 놓겠다고 10배를 질렀죠. 그런데, 이 녀석이 말하는 투를 봐서는 이거 100% 전달 됐을 겁니다. 아마 문이사 성격이면 20배 정도 부르지 않을까요?”

20배면, 간단히 수습되지 않을 문제다.

“아니요. 문이사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지요. 100배쯤 부를 겁니다.”

“100배요?”

아무리 그래도, 100배는 좀 아니지 않나?

“문이사의 장점은 추진력과 배포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쟁심 탓에 눈과 귀가 흐려진 상황이니, 충분히 그 정도 부를 거라고 생각됩니다.”

뭐, 내가 문이사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니, 양실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100배는 부작용이 너무 클텐데······.”

내 작은 장난에 저쪽 집이 통째로 불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분명히 잡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문이사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니, 어떻게든 수습해 낼 겁니다.”

“그럴까요?”

“뭐 못해도 상관없죠. 우리 일 아니니까요. 어쨌든 재미있는 폭탄을 던지셨군요.”

“원래는 그냥 와드 하나 심으려던 것인데······.”

“와드?”

아, 양실장님은 게임 잘 모르시지?

“첩자?”

“그렇군요. 자기가 폭탄을 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쪼르르, 본진으로 돌아간 셈이군요. 훌륭하십니다.”

“아닙니다. 그저 작은 장난이었습니다.”

“장난으로 그런 발상을 해내신 것이 포인트죠.”

양실장은 오늘도 칭찬이 너무 후하다. 정말 장난이었는데······.

그나저나 100배라니, 유저들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진짜 이거 감당되겠나?

반사이득이란 단어를 알고는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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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링은 디버프 후가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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