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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41화 (41/346)

41.

양실장은 문이사측에서 확률 100배라는 초강수를 준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딱히 개발2실에 인맥이 없는 탓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다름 아닌 양실장의 예측이다.

정확히 100배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파격적인 강수를 준비할 것이다. 어차피 백배라고 해봤자, 국내 게임의 극악무도한 확률을 고려한다면 게임이 휘청일 수준은 아닐 것이다.

0.01%의 100라고 해봐야 고작 1% 아닌가?

어차피 이런 식으로 오래된 아이템을 떨이 처분 한 뒤에, 더 좋은 신규 아이템 추가하는 것이 국내 개발사들의 국룰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신나서 달려들 것이다. 매출 상승은 확실하겠지. 그러나 분명 과도한 이벤트에는 그만한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급조된 기획이라면 더더욱.

‘부채질하는 시늉 정도는 해야겠지?’

그들이 강수를 준비하는 이유는, 내가 윤과장을 통해 흘린 거짓 정보 때문일 터.

만약 우리가 확률 10배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 거짓임이 탄로 난다면, 그들은 계획을 철회할지 모른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인트라넷에 정말 허접스럽게 작성한 확률 10배 이벤트 기획을 업로드했다.

인트라넷에 올린 자료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지만, 내가 전달하지 않는 이상, 실제로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요즘은 낚시가 정말 재미있다. 미끼를 뿌리는 족족 월척인데, 어찌 즐겁지 않을까?

실제로 낚시를 해본 적은 어릴 때, 아버지를 몇 번 따라나선 것이 고작.

‘어쩌면 나 낚시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홀로 키득거리고 있을 때였다.

“차, 차장님? 이게 뭔가요?”

응? 걸리라는 월척은 안 오고, 남궁대리가 슬며시 다가왔다.

“확률 10배 이벤트······. 단기 매출 뽑으시게요? 그래도 10배는 좀 과하지 않나요? 물론 차장님이 하시는 일이시니, 계획이 있으시겠지만, 후폭풍이 상당할 텐데요?”

남궁대리는 무척 염려스럽다는 눈치였다. 역시 남궁대리는 정통파 파이터라서 이런 잔재주에 대한 이해는 적은 모양.

우리 파이터에게 이런, 때 묻은 뒷공작을 지시할 수는 없는 법!

“신경 쓰지 마.”

나는 싱긋 웃으며, 홍켓몬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내 광역 도발에 버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홍켓몬의 전용기가 아니겠나?

표세인 : 이거 좀 띄워봐.

홍켓몬 : 이거, 가라군요. 어그로 작업용?

역시 홍켓몬은 바로 알아차린다.

표세인 : 제법인데? 바로 알아 보네?

홍켓몬 : 기획 수준이 딱 신입 수준이잖아요. 핵심 없고 겉만 번드르르······.

표세인 : 잘 아네.

홍켓몬 : 불길 어디로 잡아야 하는 겁니까?

표세인 : 개발2실. 윤과장 귀에 들어가게 할 수 있냐? 김차장이면 더 좋고.

홍켓몬 : 그럼, 액션 레벨 좀 올려야 겠네요.

어차피 개발2실의 이목이 은연중에 우리를 향해 있음은 명약관화.

그저 작은 불티만 날려도 알아서 본인들 진영에서 장작 넣고 활활 태워줄 터.

홍켓몬 : 그럼 시작합니다. 레벨 제한 있음?

표세인 : 없어. 잘 부탁해.

홍켓몬 : 라저.

-쾅!

순간 홍대리가 주먹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사무실 전원의 이목이 홍대리에게 집중되었다.

“지금 장난합니까?”

언제나 싱글벙글한 얼굴인 홍대리의 샤우팅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홍대리가?’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데?’

평소에 화내는 일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면, 주변의 놀람은 배가 되는 법.

홍대리는 성난 얼굴로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거 뭐에요?”

“왜, 임마?”

나도 어디 가서 연기력으로 밀리지 않는 타입이지만, 홍대리에 견줄 수준은 아니다.

내가 탱킹 위주의 올라운더 타입이라면, 홍대리는 이런 잡기에 스텟 몰빵한 캐릭터가 아니던가?

최대한 말을 자제하고 홍대리의 흐름에 편승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쇼는 흥행보증 수표나 다름이 없다.

“지금 버그 픽스 덕분에 매출도 상승하고 있는 시점 아닙니까, 그런데 갑자기 확률 상승 이벤트라니요! 할 거면 벌써 했어야지, 벌써 지갑 연 유저들 대놓고 호구 만들겠다는 것 아닙니까?”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란 말 몰라? 지금 우리 상황에서 매출 상승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잖아? 신규 컨텐츠도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해야, 유저들이 기뻐할 것 아냐!”

“그래도 이건 아니죠! 게다가 애초에 신규 컨텐츠 없을 거라고 못 박은 것은 차장님 아닙니까? 인제 와서 이벤트 추가라고요?”

“소소한 이벤트 정도는 있을 거라고 사전에 공지했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난리야? 내가 팀장님들하고 어련히 교통 정리 안 하겠어?”

“제가 그래픽팀들 뒤통수 치려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 줄 아십니까? 이거 안돼요. 전 반대입니다. 무조건 반대입니다!”

나와 홍대리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개발3실 인원들의 눈동자가 짙은 우려로 물들었다.

‘아이고, 잘한다. 바로 그래픽팀부터 꺼내는구나, 하여튼 제 밥그릇은 잘 챙겨요.’

‘근데 진짜 괜찮습니까? 차장님 체면 구기는 것 아니에요?’

‘내 체면은 실적이랍니다. 팀장은 원래 미움 받으라고 있는 거야. 탱커가 몸 사리면 파티가 제대로 굴러가겠냐? 더 질러, 더!’

‘이것도 간만에 하니, 재미있네요.’

‘그치, 옛날에는 철야 면피용으로 써먹던 액션인데, 요즘은 무대도 커져서 긴장감이 각별하지?’

나와 홍대리는 눈빛을 교환하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저거 말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니, 근데 홍대리 개념 없네. 감히 팀장에게······.’

‘무슨 말이에요. 요즘 홍대리가 얼마나 열심히 동분서주했어? 그리고 확률 이벤트? 표차장님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자기 실적 챙기기 시작하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무언의 메시지가 정신없이 오가는 찰나,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홍켓몬이 강렬한 눈빛을 발사했다.

‘큰 거 갑니다.’

‘와라!’

홍대리는 슬쩍 이를 갈더니 등을 획 돌렸다.

“씨발!”

“뭐?! 씨발?”

순간 나도 진짜로 당황했다. 이놈이 진짜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이야.

하마터면 못 가게 붙잡을 뻔했다. 하지만 덕분에 내 표정 연기는 완벽했다.

‘하마터면 진짜 한 대 칠뻔했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떠나는 홍대리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너 임마! 거기 안 서! 이 새끼가, 예쁘다, 예쁘다 해줬더니!”

순간 홍대리가 다시금 휙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새끼라고 그래요. 저는 깜빡이 키고 들어갔잖아요······.’

진심으로 서운하다는 얼굴.

‘아, 미안. 이따 커피 쏠 게. 가던 길, 마저 가.’

홍대리는 잠깐 머뭇거리고는 다시금 등을 돌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어, 어떻게 해. 우리 기도. 서운한가 봐.’

‘표차장님이 어떻게 저러실 수 있지?’

‘흐헤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 아! 창작 욕구 솟구친다.’

‘어? 이대리님! 오늘 홍표 브로맨스 새로운 에피소드 업로드 하시나요!’

그래픽 여직원들의 반응은 이런 느낌.

‘표차장님이 틀린 건 없지.’

‘그럼, 부장님이나, 우리 한팀장님 고과도 챙겨야지.’

‘하여튼 홍대리, 저거는 언제고 한번 사고 칠 줄 알았다. 맨날 여직원들한테 꼬리나 치고 다니더니······.’

프로그램팀의 반응은 대강 이런 느낌. 나는 씩씩거리는 연기를 이어가며 사무실 복도 한쪽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김차장을 발견했다.

‘걸렸구나!’

이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봤으니, 안 물고는 못 배기겠지.

가라. 가서 문이사에게 그대로 전해. 지금 우리 개발3실 개판이라고, 10배 이벤트 때문에 트러블 생겼다고!

‘이 정도면, 자충수를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

나는 모니터 뒤에 숨어 킬킬 웃었다.

*

*

*

“문이사님!”

표세인의 예상대로 김순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문상훈를 찾았다.

‘어? 윤과장이 왜, 이사님과 함께있지?’

지난번 회의 이후, 문상훈과 윤현창은 부쩍 가까워졌다.

무려 이상무와의 술자리에 자신이 아닌, 윤현창을 데리고 가지 않았던가?

김순영은 마음이 묘하게 요동쳤다.

‘아니지, 기껏해야 수발드는 종놈과 나는 다르지.’

서울대 출신으로 같은 서울대 라인을 타서 일찌감치 이상무의 파벌에 안착했던 김순영이었다.

“무슨 일이지?”

문상훈의 반응은 딱히 달갑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찔끔했을 법한 상황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총애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희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자신감이 더해진 탓에 김순영은 평소 고양이 앞의 쥐처럼 행동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지금 개발 3실 분위기가 초상집입니다.”

“어째서?”

역시 문상훈은 즉각 반응했다. 그의 반응에 김순영은 슬쩍 윤현창에게 거만한 시선을 보냈다.

‘봤냐?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하지만 윤현창은 김순영을 바라보지 않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자세히 말해봐.”

“10배 이벤트를 두고 표차장의 오른팔 격인 홍대리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쌍시옷까지 꺼내 들며 대립했습니다.”

“그래?”

문상훈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그동안 눈엣가시 같던 표세인이었다.

하지만 워낙 미꾸라지 같은 캐릭터인지라, 변변히 물어뜯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팀장을 달자마자, 사고를 치다니!

‘장급부터는 일 처리보다는 리더쉽이 필요한 법이지.’

상대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면 급격히 기분이 좋아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문상훈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타입의 성격이었다.

솔직히 업무역량은 트집을 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에 더욱 얄미웠더랬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리더쉽에서 약점을 보이다니?

절로 입가가 씰룩인다.

“고작 10배 정도로 애를 먹다니, 아직 한참 멀었군.”

자신은 얼마 전 고작 5배 이벤트를 두고 골치를 썩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양.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이거지?”

“물론입니다. 개발3실 위로 먹구름이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그거 좋군.”

그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부장의 샤우팅으로 크런치에 시달리던 개발3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평소와는 다른 활력이 느껴졌다.

윤현창을 통해 듣기로는 그것은 분위기 메이커인 홍기도의 활약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개발실의 분위기를 책임지던 홍기도와 육두문자까지 입에 올리며 각을 세웠다?

‘이거, 이거······. 골치깨나 아프시게 됐어, 표차장.’

지금쯤 난감한 상황에 놓인 표세인의 구겨진 얼굴을 떠올리며 문상훈은 짧은 행복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홍대리라고 했나? 그 친구는 어떤 인재지?”

문상훈은 김순영이 아닌, 윤현창을 향해 물었다.

“업무역량 준수하고 대인관계 원만한 타입입니다. 유일한 약점은 사람이 너무 가볍고······. 다소 욜로족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흠이지요.”

“천방지축이라는 말이로군.”

이따금 나타나는 유형으로, 천재와 얼간이는 동전의 앞뒷면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타입.

종종 IT업계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이들 중에는 이런 타입이 많지만, 대체로 조직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탓에,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지는 경우가 흔했다.

“나와는 맞지 않겠군.”

“예. 누구에게 질문하셔도 같은 대답을 들으실 겁니다.”

애초에 이전 회사에서 일을 못 하는 편이 아닌데도, 표세인에게 던져진 문제아가 아니었던가?

‘애초에 송부장이 엿 먹으라며 던져준 녀석이었지. 하지만 그놈들이 싸웠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서로 죽고 못 사는 놈들 아니던가?

그런 두 사람이 싸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윤현창은 자신의 허세만큼 표세인과 홍기도의 관계에 대해서 빠삭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회 아닙니까? 이참에 문이사님께서 홍대리에게 당근을 흔들면······.”

“지금 나보고 대리급에게 당근을 흔들라고?”

사육에도 급이 있는 법이다. 어찌, 자신이 고작 대리급에게 다가가서 딜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순간 윤현창에 대한 경계심에 필터 없이 내뱉고 말았다.

명백한 실수.

조금 전 희소식을 전달한 공로가 씻은 듯이 지워졌다.

“윤과장 어떻게 생각하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필요하시다면 저나 김차장을 보내시면 될 일이시죠. 하지만 문이사님께서 껄끄러우시면 움직이지 않으실 것을 권합니다.”

“왜지?”

“문이사님의 판단이 틀릴 턱이 없지 않습니까? 만약 문이사님의 계획이 빗나가신다면, 그것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아랫사람들의 실책이겠지요.”

송부장 밑에서 갈고닦은 윤현창의 처세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클클클, 나도 사람인데, 틀릴 때가 왜 없겠나?”

“제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 친구, 말 하나는 정말 잘 하는 군. 그렇지, 않나? 김차장?”

“하. 하. 하. 네, 그렇습니다.”

김순영은 어색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

*

*

회사 근처 카페.

“그래서, 미끼는 이걸로 끝이에요?”

내가 사준 음료를 쪽쪽 빨아 먹던 홍켓몬이 물었다.

“아니, 하나만 더하려고.”

“와, 쎄게 나가시는데요? 무슨 개발2실과 원수라도 지셨음?”

양실장과 문이사의 승부에 대해 알지 못하는 홍대리가 화들짝 놀랐다.

“2페이즈에는 새로운 배우가 필요하겠네요?”

“응. 우리는 한동안 모르는 사이.”

한번 쓴 수를 반복하면 약빨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난리를 부렸으니, 당분간 주변 시선을 생각해서라도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2페이즈까지 딜링이라니······. 딜탱 태세 전환 지리네요.”

“딜링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그리고 모처럼 디버프(윤현창)까지 걸어 놨는데, 멈추면 아쉽잖아?”

문이사님, 꽉 깨무세요.

이제 본격적인 딜 들어갑니다. 디버프(윤현창) 때문에 더 아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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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라인 제대로 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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