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44화 (44/346)

44.

“김차장님, 지금 게시판 난리 났어요!”

“김차장! 아직 수정 안 됐어?”

“김차장님, 빨리 올려주셔야 합니다!”

‘으어어······.’

김순영은 패닉에 빠졌다.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언제나 전교 1등을 도맡았고, 자연스럽게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의 인생에 실수란 없었다. 아니, 이따금 시험 문제, 하나, 둘 정도 틀린 적은 있었지만······.

‘김차장님 왜 이러지?’

‘왜 대답을 안 해?’

실수와 질책에 대한 면역이 없는 타입.

지금 김순영의 머릿속에는 당장 이 사태에 수습보다는 이번 실수로 인해, 자신에게 내려질 질책에 대한 공포가 앞섰다.

그러다 보니, 눈이 흐려지고, 손이 느려진다.

모니터를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스크립트가 읽히지 않고, 마우스 버튼만 무의미하게 딸각일 뿐.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드디어 문상훈이 등장했다.

“이사님, 오셨습니까?”

“지금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문제가 뭐야?”

“별일 아닙니다. 그저······.”

개발2실의 임부장은 애써 상황을 덮어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서버 롤백이 별일이 아니야?”

이미 문상훈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젠장,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

임부장은 속으로 혀를 찾지만, 그저 입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누구야?”

“네?”

“누가 이 사달을 벌였어?”

문상훈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김순영을 향했고, 김순영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김차장?”

문상훈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차장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문상훈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먹칠을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게 된다.

게다가 저 넋이 나간 얼굴은 또 뭐란 말인가?

문상훈 본인도 김순영과 같은 서울대 컴공과 출신이다.

그는 단숨에 김순영의 현재 상태를 파악했다.

‘그래도 코딩 실력 하나는 믿고 있었건만······.’

각 파트 별로 요구되는 성향은 모두 다른 법.

기획은 상황에 맞춰 뜨겁고, 차갑게, 유연한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

반면 프로그래머는 언제 어느 때고 냉철한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래픽이 예술가적인 뜨거운 열정이 필요한 것과는 정 반대.

애석하게도 실수하지 않는 프로그래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사용할 때도, 비문과 오타가 늘상 뒤따르는 법이지 않나?

어찌 그 복잡한 코딩에 실수가 없을 수 있겠나?

하지만 반면에 그것을 얼마나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느냐. 그것 역시 프로그래머의 큰 자질 중에 하나.

‘아니, 팀장급 이상부터는 이게 더 중요하지.’

부하 직원들을 컨트롤해야하는 장급 이상의 직급부터는 본인의 코딩 실력 보다, 문제를 수습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이 우선시 되는 법.

“이, 이사님······.”

속마음이 어떻건,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김차장.”

“예, 예.”

“말해봐. 뭐가 문제야?”

“죄, 죄송합니다. 이팀장이 문이사님의 이벤트를 기존 업무 종료 순으로 하달한다고 한 탓에, 제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계획을 보필하고자 열정이 지나쳤던 것뿐이다.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말고 이팀장에게 화살을 돌려라.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린 김순영은 최악의 우를 범하고 말았다.

‘남 탓 원 아웃. 내 이름 판 것 투 아웃. 무엇보다, 나 문상훈이의 질문에 헛소리한 것 쓰리 아웃.’

문상훈의 기준에서 쓰리 아웃이 가장 큰 마이너스 요소.

그는 말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내가 그걸 물은 것이 아닐 텐데? 에러를 일으킨 스크립트가 어느 부분인지, 찾았냐니까?”

“그, 그건 아직······.”

문상훈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30분이 지났다.

보통 이런 종류의 에러는 빨리 찾아내던지, 아니면 시간을 왕창 소비하게 되던지, 둘 중에 하나다.

‘에러 찾아서 고치는데 걸리는 시간, 테스트하고 리빌드와 업로드까지, 걸리는 시간. 업로드 후에 점검 시간.’

앞으로 최소한 몇 시간 정도는 더 필요하다는 의미.

문상훈은 불같은 성격으로 그저 미친개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반대로 침착한 성격이기도 했다.

지나친 나르시시즘 덕분이랄까? 문상훈이가 하는 프로젝트가 이런 작은 돌부리 때문에 좌초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스스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자기최면에 가까운 믿음.

그것이 문상훈이란 남자의 최대 강점이었다.

“이팀장.”

“예.”

“왜, 업무 순으로 이벤트를 처리한다고 했지?”

이팀장은 올 것이, 왔다는 심정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다, 다름 아닌 문이사님의 지시 아닙니까, 기존 업무에 대한 걱정을 남긴 상태로 맡길만한 작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원 스트라이크! 게다가 김순영 본인이 증명해냈다. 괜한 부담에 자신의 이벤트에 문제를 일으켰더라면 더 큰 문제다.

“지금 손 비어있는 사람이 누구지?”

“윤과장?”

마침 굴러온 돌인 덕분에 자잘한 업무만 처리하고 있던 윤현창이었다.

이팀장이 자신을 지목하자, 윤현창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문상훈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윤과장에게 넘겨.”

“예.”

“자, 잠깐만요! 문이사님 제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 김순영입니다! 저 아시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윤현창이 근래 들어 문상훈의 신임을 받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던 김순영이었다.

이벤트가 윤현창에게 넘어갔다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김순영의 멘탈은 완전히 부서졌다.

‘이 새끼가?’

김순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상훈의 역린을 건드렸다.

문상훈이 평소 자신의 이름을 곱씹는 것은 작고하신 아버지의 평소 습관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 말투를 유지해왔고, 때때로 그것이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신입 시절부터 말끝마다, 저 문상훈입니다!를 연발하는 모양새가 선임들의 눈에는 얼마나 우스웠겠나?

“어이, 김순영이.”

확 바뀐 문상훈의 분위기에 김순영은 혼비백산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뭐가 너한테 이러면 안 돼? 서버나 떨어트린 놈이, 아직도 입이 살았네?”

딴에는 자기 라인이기에, 적당히 두둔해줄까 했었더랬다, 그런데 이 머저리는 입을 열 때마다, 성질을 돋우고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어물쩍 넘어가면, 문상훈이의 이름값이 흔들린다.’

이상무가 걱정하는 문상훈의 지나친 격정. 아직 원숙미가 부족한 거친 성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팀장.”

“예.”

“이거 자네가 픽스해.”

“아, 알겠습니다.”

“이, 이사님!”

“임부장.”

“예.”

“김차장 징계위원회에 회부 해.”

“네?”

서버 롤백이 큰 실책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은 시말서 정도다. 더욱이 김순영이 이런 큰 실수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던가.

“왜 두 번씩 말하게 하지? 한국 사람이, 한국말이 어려워?”

“이사님!”

“너는 가서 시말서나 작성하고 있어. 징계팀에서 연락 올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고.”

문상훈은 한번 눈 밖에 난, 이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타입이 아니다.

김순영은 자신의 동아줄이 완전히 끊어졌음을 실감하고 허물어지듯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잘됐다. 유저들에게 보상해준다는 의미에서라도 확률 이벤트에 대한 반감은 사그라들겠지.’

문상훈은 정확히 표세인이 예측한 그대로 생각하며, 애써 자기 위안에 돌입했다.

*

*

*

“와, 이거 재미있네.”

“처음에는 기대하던 액션 씬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스릴러도 괜찮네요.”

내 말에 홍 대리가 커피를 쪽쪽 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나름 스펙터클했지.”

“그래도, 액션은 아니었음.”

“너 액션 영화만 보냐? 스릴러도 재미있는 영화 많아.”

“저는 라블 코믹스 영화만 봄여.”

하긴, 사실 요즘에는 다들 블록버스터 아니면, 집에서 보긴 하지.

나와 홍대리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와중에, 김차장을 완전 가루로 만들어버린, 문이사가 등을 돌려 이쪽으로 향했다.

“이크, 튀자.”

혹여 문이사와 마주쳐 불똥이라도 튈까봐, 모두들 우르르 썰물처럼 달아났다.

나 역시 급히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등을 돌린 순간 양실장과 눈이 마주쳤다.

“양실장님?”

“이런, 제가 한발 늦었군요. 좋은 볼거리를 놓쳐서, 아쉽습니다. 어떻던가요? 리뷰 소감이나 들려주시죠.”

양실장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보아하니, 문이사 면전에 엿 하나 던져주겠다는 심보인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기름에 불붙이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재미지지!

홍대리 역시, 쿠키 영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평소처럼 탈주 닌자 모드 대신,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흠······.”

결국 텅빈 복도에서, 우리 세 사람과 문이사만이 마주하게 되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도 아니고, 분위기 참 묘하다.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양실장을 발견한 문이사가 목 가다듬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양실장은 해맑은 미소를 건넸다.

‘이제는 양실장 캐릭터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

젊잖고 훈훈한 미소로 무장하고 있지만, 양실장은 기회를 포착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달려와 상대의 염장을 지르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쪽은 할 일 없나? 남의 개발실 앞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무슨 구경 났나?”

“원래 남의 집 불구경은 어느 때고 흥미진진한 일 아닙니까?”

까드득. 치과 의사가 손뼉을 칠 것 같은 큰소리였다.

“이까짓 트러블쯤, 이 문상훈이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요, 고작 그 정도 말썽에 발목 잡히시면 김샙니다.”

“이익······.”

얼마나 화가 났는지, 문이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 같은 기세!

-쪼르르륵.

무거운 긴장감을 와장창 깨부수는, 요란한 빨대 소리.

“?”

“?”

“죄송합니다. 몰입감이 너무 강해서 음료가 끝난 것도 몰랐네요. 계속하시죠.”

홍대리는 비어버린 커피 용기를 흔들어 보이고는 냉큼 달아났다.

홍켓몬······.

네가 제정신이 아니란 것은 알았지만, 진짜 미쳤구나?

고작 대리 짬밥에 임원진의 기 싸움에 찬물을 끼얹는 패기!

이건 진짜, 흉내 낼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아니, 흉내 내면 바보겠지.

“흠흠, 그래서 지금 날 조롱하러 어려운 걸음을 하셨나?”

“설마요. 제가 그렇게 할 일이 없겠습니까?”

없던 일로 넘겼어?!

마치 영상편집이라도 한 것처럼, 홍대리의 만행은 깔끔이 지워졌다.

이래서 미친 척할 거면, 아주 끝을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대의 어떤 왕은 미친 척으로 목숨을 구한 일화도 있지 않던가?

홍대리······. 너의 정신 나간 수준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용건만 간단히 하지.”

“다른 것 보다, 시상식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합니다.”

“시상식?”

“승패 결과에 따른 보상이야, 이야기가 끝났지만, 저와 문이사님은 항복선언 방식 정도는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기가 차군. 고작 이런 작은 해프닝 하나로 벌써 다 이긴 기분인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쪽의 상황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승리한 쪽이, 패배한 쪽에게 밥을 사는 겁니다. 아무래도 패배한 사람에게 밥값까지 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까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고개 숙여서 항복을 선언해라?”

“고개까지 숙여주실 줄은 몰랐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양실장······. 정말로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그렇게 하자고, 깍듯하게 고개 숙이고 패배를 시인하는 거야. 그 빳빳한 고개가 숙어지는 것을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문이사는 거의 으르렁거리는 수준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다행이군요. 거절하시면 어렵게 예약한 것이 무용지물이 될뻔했습니다.”

와, 같은 편이지만, 정말 뺀질뺀질하다. 양실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용건은 그게 끝인가?”

문이사는 더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양실장의 방긋방긋한 미소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토끼 사냥이 끝나기 전에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은 아주 좋지 못한 습관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사냥개도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시대가 아닙니까. 따르는 이를 쉽게 내치는 것은 결코 이로운 습관이 아닙니다.”

양실장은 말을 끝내며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 타이밍에 나를 보지?

설마, 새로운 가르침인가? 홍켓몬을 버리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

쉽지 않은 문제로군, 더 좋은 몬스터를 만나면 바로 갈아타는 것이 트레이너의 습성인 법인데······.

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문이사는 콧방귀를 뀌며 흰이를 드러냈다.

“이제는 충고까지? 좋아. 내 이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해두지. 어디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두고 보자는 사람 치고······.”

“흥!”

문이사는 성큼성큼 양실장을 지나쳐갔다.

“흠, 이만하면 부채질은 충분했겠지요.”

“도발이 너무 센 것 아닙니까?”

“도발 아닙니다.”

“네?”

“함정입니다. 물론 성공했고요.”

양실장은 씨익 웃었다.

뭐지? 이 느낌은? 마치 마법사가 숨겨 놓은 비장의 주문을 준비한 것 같은 이 느낌은?

“한번 보시겠습니까?”

양실장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주었다.

화면에는 디젤 스토어 앱이 출력된 상태.

그리고 그곳에 익숙한 타이틀이 보였다.

‘어? 니가 여기서 왜 나와?’

디젤 엔진 베스트 셀러 목록에 좀비 로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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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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