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45화 (45/346)

45.

얼리엑세스 출시가 시작된 이래, 미완성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디젤 스토어 판매 1위를 기록하는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분명 흔치는 않지만, 전례가 존재하던 일. 하지만 국산 게임 중에 그런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한 사례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기적과도 같은 현상에는 마침 대작 게임 출시가 없는 시즌임을 포착한 표세인의 동물적인 감각도 한몫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좀비로얄 개발팀의 미친 듯한 하드 러쉬 덕분이기도 했다.

“지금 밥을 밖에서 먹겠다고요? 여기 김밥 사 왔어요! 자르지 않았으니까, 들고 씹으면서 일해요!”

퇴근도 아니고, 저녁 식사하러 가자는 말을 했을 뿐인데, 남궁원의 서슬에 이상승 과장은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커피라도······.”

“당연히 준비했지!”

남궁원은 미리 준비한 더치커피를 인원수대로 배분했다.

“그런데 더치커피? 난 그냥 아메리카노면 되는데?”

그리 대단한 가격 차이는 아니지만, 고작 대리 월급에 이 많은 인원수의 몫을 구매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터. 더군다나, 김밥까지 준비하지 않았나?

하지만 남궁원에게 가격은 문제가 아니었다.

‘콜드브루가 카페인 함량이 훨씬 높거든!’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의 통상 카페인 함량은 105mg 정도, 그에 비해 콜드브루 방식의 더치커피는 404mg 수준으로 거의 4배에 달한다.

“표차장님께 카드 받아왔어요! 이거 차장님이 쏘시는 거예요!”

“오오!”

“역시 우리 이사님!”

“상무 아니었어?”

“전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요즘엔 이사래.”

“강등당했어?!”

박영수 대표가 하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통에 직원들은 표세인의 직급을 혼동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표차장님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 얹은 것에 불과했지. 하지만 얼리엑세스는 달라!’

남궁원은 얼리엑세스를 언급하던 표세인의 표정을 떠올렸다.

‘마치 걱정된다는 눈빛이었지.’

표세인은 단순히 남궁원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염려한 것이었으나, 남궁원은 그것을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홍기도도 의외로 만만치 않고······.’

소문만 무성하던 표세인의 업무 역량은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다.

손대는 족족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그러면서도 그 속도가 다른 이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

거기에 한참 아래로 깔보던 홍기도 역시 남궁원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기발한 방식으로 그래픽팀의 크런치를 무사히 컨트롤 하지 않았던가?

‘파이터라고 영입된 주제에······. 이번 얼리엑세스를 기회로 내 능력을 차장님께 보여드리는 거야!’

표세인과 홍기도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케미는 아직까지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 그렇다면 결국 능력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ENTJ, B형, 사자자리라는 히틀러도 울고 갈 법한, 하늘이 내린 독재자의 기질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와! 이거 웬 거야? 나도 하나 먹자!”

한발 늦게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박영수 대표가 김밥에 손을 데려고 하자, 남궁원이 찰싹! 손등을 때렸다.

“왜, 왜 그래?”

“이건 개발자들 몫이에요!”

“어? 그, 그래도 나 사장인데?”

“제 사장님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이 말 몰라요?”

“어?”

“요즘 돈방석에 앉았다고 코딩 한 줄도 작성 안 하시면서, 개발자들 몫으로 준비한 야식에 손대시면 안 되죠!”

남궁원의 말에 개발진 전원이 그럼, 그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생 스타트업이 다 그렇듯이 사장과 직원의 위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박대표는 각성하라!”

“최소한 빌드라도 한 손 보태든지!”

직원들의 항의에 박영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평소에도 워낙에 허물없이 지냈고, 본인도 아직 사장보다는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이 짙은 탓이었다.

“알았어! 오늘 미팅도 없으니까, 할게. 뭐, 뭐! 급한 거 넘겨줘 봐. 야, 내가 하면 니들 보다 두 배는 빨라, 알아?”

“코딩 손 뗀지 좀 되셨는데? 그게 되시겠어요?”

한때, 자신의 부사수였던 이상승이 콧방귀를 뀌자, 박영수는 살짝 약이 올랐다.

“어쭈? 내기해? 너 지금 뭐 작업하고 있어?”

“콜! 뭐 거실래요?”

순간, 남궁원의 머리에 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뭐지? 이거······. 이 상황에서 표차장님이라면······.’

이전까지의 남궁원이라면 이런 사소한 대화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을 소소한 대화.

오히려 그런 잡담을 나눌 시간에 코딩 한 줄이라도 더 하라며 다그치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행동을 강요했다.

-띠링!

[파이터(남궁원)은 도발 스킬을 습득했다!]

남궁원은 표세인의 특기를 학습했다!

“내기는······. 도넛츠 쏘기?”

“코오오······ 엑!”

기세 좋게 콜을 외치려던 이상승은 남궁원의 손에 뒷덜미가 채여 나동그라졌다.

“약해요!”

“뭐?”

“벼락 졸부가 그게 뭔가요!”

벼락 졸부! 실제로 좀비 로얄의 미친 듯한 상승세 덕분에 박영수는 로또 당첨금 따위는 농협 가기 귀찮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돈방석에 앉은 상황.

“보너스!”

“오오! 맞아요! 혼자 먹기 있음?”

“남궁대리 최고다!”

“졸부는 각성하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외치자, 박영수는 당황했고, 이 기세를 몰아 남궁대리는 마지막 딜링에 돌입했다.

“1000%?”

“아이고, 남궁대리······. 우리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500%?”

순간 개발진 전원이 침묵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박영수는 현재 자신이 벼랑 끝에 내몰렸음을 깨달았다.

‘야, 이거 잘 못 하면······.’

까닥 실수하면 직원 전체 사기가 바닥을 칠 수도 있는 상황.

“100%?”

“지금 장난해요?”

“2, 200%?”

200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전원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대기업 수준에 맞추죠. 300%!”

“아니, 우리가 아직 대기업 수준은 아니잖아.”

“맞아요. 대기업 연봉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니까, 큰 부담은 아니시겠네요.”

“어?”

여기서 말실수하면 연봉협상 테이블까지 차릴 기세였다.

신생 개발사에서 인재 빼고 남는 것이 뭐가 있겠나?

‘와, 네가 이래서 남궁대리한테 꼼짝을 못했구나?’

‘포기하시죠. 어차피 보너스 후하게 생각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박영수와 이상승은 서로를 마주 보며 맥빠진 미소를 흘렸다.

“좋다! 300%!”

“콜!”

“와아아!”

“미쳤다! 남궁대리 진짜 미쳤다!”

마치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가 재현된 것 같은 광경이랄까?

모두의 열광에 남궁원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일정 못 맞추면, 감봉!”

“어?”

“가, 감봉?”

“박대표님께서 이 정도까지 해주셨으면, 이쪽도 패널티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신 없으면 포기하시든지.”

원래 줬던 거 뺏기는 게, 가장 속 쓰린 법이다.

더군다나, 무려 300%!

이건 포기가 불가능하다.

“자, 잘 먹었습니다!”

“커, 커피로는 안돼! 에너지 드링크 어디 갔어!”

순식간에 소란이 정리되고 모두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행! 여행!’

‘차 할부금!’

‘여보! 늦었지만 내가 반지 하나 맞춰줄게!’

‘마눌님이 모르는 돈! 마눌님이 모르는 돈! 마눌님이······.’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눈에 달러 마크를 띄운 채로 광분의 코딩에 매진했다.

“박대표님 수고하셨어요.”

“와, 남궁대리 무섭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제 사수한테요.”

“표이사?”

“네.”

“그 팀 파이터라더니······.”

“그런데, 박대표님.”

“왜?”

“코딩 안 하세요?”

남궁원은 처치 곤란 상태였던 기획안 하나를 냉큼 디밀었다.

“힘내세요! 이겨서, 모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세요!”

남궁원의 말에 박영수는 허탈하게 웃었다. 원래 내기의 시작은 박영수가 이기면 그걸로 끝이었으나······.

‘그래······. 이 판국에 내가 이겼다고 보너스 안주면, 아주 내 뼈마디를 고아 먹겠다고 달려들겠지.’

그렇다고, 코딩에 한 손 안보태면, 보너스 주기 싫어하는 좀생이로 여겨질 것 아닌가?

“으어어어!(보너스! 보너스!)”

“으에에에!(뭐 사지? 뭐 사지?)”

이윽고 괴상한 신음까지 흘리기 시작하는 직원들!

순간 박영수의 눈에 직원들이 게임 속 좀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

*

“하, 이제는 웃음도 안 나오네.”

조양길은 양성태의 보고를 듣고는 가만히 천장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디젤 스토어 베스트셀러? 이게 이렇게 쉬운 일이야?”

“어렵죠. 더욱이 국산 게임이 얼리엑세스?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고전 명작 IP를 앞세운 유명 회사의 게임이 얼리엑세스 상태에서 디젤 판매율 1위를 달성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국산 토종 게임 중에서 그 근처에도 간 게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도 믿기지 않아서, 방금 표세인 차장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양성태는 출사표를 던진 이후부터, 조양길 앞에서 표세인을 표차장이라 부르지 않고, 반드시 표세인 차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미 표세인을 단순히 차장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뭐라던가?”

“본인은 그저 얼리엑세스를 시작할 계획만 수립했을 뿐, 일 처리는 밑에서 다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본인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실 조금 무서웠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본인의 업무 역량보다 시류를 읽고 아랫사람들의 역량을 끌어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 표세인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위에서 보기에는 경악 그 자체였다.

“믿기 어려운 실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는 다른 부분이 오히려 더 놀랍습니다.”

“다른 부분? 놀랄 일이 또 있어?”

“그거 아십니까? 표세인 차장이 우리 회사에 발을 들인 이후로 개발 2실을 비롯하여, 3실과 좀비로얄 개발사의 개발진 전원이 가혹한 크런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하, 것도 그렇구만.”

“하지만 곡소리는커녕, 전에 없이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원래라면 회장님이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하셔도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공공의 적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포지션이지 않습니까?”

감히 일개 직원과 회장의 역량을 비교하다니! 하지만 조양길은 이런 일에 화를 내기보다는 흥미를 느끼거나 자극받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양성태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아무리 눈앞에 먹이를 흔들어줘도,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라면 혀를 내두르기 마련인데······.”

다름 아닌, 국내 유수의 개발사를 일궈낸 장본인이었다. 개발자들 쥐어짜는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 바로 조양길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은 결국 채찍질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사기를 끌어 올린다? 이건 말 그대로 불가능했다.

양실장의 말대로 몇 번의 기적 같은 성공? 있을 수 있다.

페이스 노트의 젊은 CEO를 시작으로 IT 업계에는 그런 기적과 같은 일들을 이룬 이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크런치 강요와 사기진작. 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단어의 배열이 어찌 한자리에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안 되겠어.”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새로운 퀘스트를 전달할까 했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어.”

역량을 오판해도, 한참 오판했다.

프로게이머에게 다이아 승급전을 요구한 수준이 아닌가?

일반인들에게는 하늘의 별 같은 수준이라도, 표세인에게는 콧노래 부르며 오를 수 있는 작은 언덕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체육대회만 실수한 것이 아니었어. 처음부터 실수였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제가 지난번에도 분명히 말씀드렸더랍니다. 실수하신 거라고요.”

“크크큭. 그러게 말이야. 십 년 넘게 키운 오른팔도 홀랑 빼앗겼고 말이지.”

“정확히는 빼앗긴 것은 아니지요.”

양성태는 특유의 산뜻하면서도 어딘지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그놈 불러.”

“표세인 차장 말씀입니까?”

알면서도 되묻고 말았다. 양성태 본인도 모르게 표세인의 이름만으로도 방어적인 태도가 튀어 나와버렸다.

“싸고 돌긴······. 누가 잡아먹는데?”

너 아니더라도 그놈 일에 버럭 할 녀석은 따로 있다.

지금쯤 비서 테이블에 앉아, 이 대화를 들으며 후계자 수업에 전념하고 있을 자신의 딸이 바로 그 장본인이 아닌가?

‘진짜로 이거 내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은 아니게 되어버린 모양이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 한 번 웃음이 나온다.

스스로 생각해도 표세인 이름만 나오면 왜 자꾸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친자식들을 떠올릴 때도, 팔불출 소리가 두려워 이렇게 웃지는 않았더랬다.

‘뭐 내 자식놈들이 그놈처럼 유쾌한 캐릭터도 아니긴 하지.’

세 자녀 전부, 외모부터 성격까지 외탁했다. 장난기 많고 유들유들한 아버지와는 달리, 하나같이 딱딱한 얼굴에 찬바람 쌩쌩 부는 자식들과 표세인을 비교하니, 또 한 번 웃음이 나온다.

“표세인 차장은 회사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소중히 키워야 할 인재입니다. 너무 과하게······.”

양성태까지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표정으로 표세인을 걱정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이러니 내가 웃지 않을 수가 있나?’

조양길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양성태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그놈 올라오라고 해. 나도 이제 그놈 캐릭터 좀 확실히 파악하고 판을 짜야겠어.”

마왕은 용사에 관한 공부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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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 /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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