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부모님 식당은 주말 매출 비중이 중요한 덕분에, 우리의 상견례는 평일로 예정되었다.
그리고 당일 아침, 나는 먼저 회사에 출근했다.
“표차장!”
“표차~장!”
뭐, 뭐야?
사무실에 고개를 내밀기 무섭게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해냈어! 우리 지난 분기 매출 넘었어!”
“뿐만이야? 클래식 빌드 일일접속자 수 미쳤어! 동시접속도 장난 아니야!”
하부장과 한팀장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 드디어!”
마침내 기다리던 희소식이 찾아왔다.
“출시된지, 수년이나 지난 게임이 매출 반등이라니, 이야~ 표차장 대단해, 정말 대단해.”
“아닙니다. 모두가 애써주신 덕분이죠. 특히······.”
순간 하부장과 한팀장 뒤에 있던 오팀장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래픽’팀과 프로그램팀이 정말 열심히 해주신 덕분이죠.”
원래는 프로그램팀을 먼저 말하려고 했었는데, 이쯤에서 그래픽팀 체면 안 살려줄 수는 없는 일.
나는 유독 그래픽팀에 힘을 주어 말했다.
“오팀장!”
“예! 부장님!”
“싸랑해요~”
대체 언제적 유행언지 짐작도 안 되는 멘트를 날리며 하부장은 오팀장을 향해 하트를 날렸다.
“이야! 좋아, 좋아! 회식이다!”
“와아!”
하부장의 회식 선언에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길었던 크런치의 끝. 이제 한동안은 한숨 돌릴 수 있으리라, 이런 날은 술 한잔으로 지난 날의 노고를 씻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혹시 오늘입니까?”
“그럼! 이런 건 미루는 거 아니야!”
“표차장 지난번 체육대회 뒷풀이도 일찍 도망쳤지? 오늘은 집에 못 갈 줄 알아!”
한팀장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일찍 퇴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내 말에 주변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식어버렸다.
“무슨 일 있어?”
“혹시 나쁜 일이야?”
“아닙니다. 오늘 상견례가 있어서요.”
“누구 상견례? 설마 표차장 결혼해?”
“당장은 아니지만, 일단 오늘 상견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내 말에 하부장과 한팀장은 눈을 껌뻑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고, 우리 표차장이 먹을 복이 없네. 부장님 오늘은 제가 표차장을 대신해서······.”
“다음에 하자.”
“네?”
“다음에 하자고, 생각해보니 나도 오늘은 어제 먹은 술이 덜깼어.”
“그러고 보니 저도 지난 주에 마신 숙취가 남아 있네요.”
아니, 지난주에 마신 숙취가 아직까지 남아있으면, 병원을 가야죠.
“방금 전에 이런건 미루는 거, 아니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오팀장의 말에 하부장과 한팀장은 어색하게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내일할까?”
“마침 내일 주말이고 좋네요.”
“표차장도 내일은 괜찮지?”
“내일도 어렵겠습니다.”
“뭐?”
“아, 왜!”
마치 떼쓰는 아이들처럼 하부장과 한팀장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일에 치여서 기획팀 회식을 한번도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팀원들 좀 챙겨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 표차장이 참 바쁘네요. 아쉽지만, 그럼 부장님 내일 회식이라고 팀원들에게 전달할까요?”
“다음 주는?”
“다음 주는 괜찮잖아?”
하부장과 한팀장은 오팀장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나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음주는 가능합니다.”
“조~았어! 오팀장!”
“예!”
“다음주 회식! 전달해!”
“아, 알겠습니다.”
오팀장은 어찌되었건 기쁜 소식을 팀원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상관 없는 것 같았다.
‘괜시리 좀 미안하네.’
하지만 상견례도 기획팀 회식도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고기는 준비 되었는가?”
“아씨! 깜짝이야! 너 내 뒤에 함부로 붙고 그러면 죽는 수가 있어!”
농담이 아니라, 놀라서 한 대 칠 뻔했다.
“소고기는 준비되었는가?”
하지만 홍켓몬에게는 제 목숨보다 소고기가 중요했던 모양인지, 그저 소고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기도야.”
“소고기는 준비······.”
“투뿔로 가자. 가격 걱정하지 말고 맛집 찾아봐.”
“차장님! 윽!”
나는 달려드는 홍켓몬을 꿀밤으로 저지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워낙 부산스러웠던 터라, 출근한 지 10분이나 지난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소고기는 별도 포상이니까, 다른 회식 일정도 제가 정해도 되죠?”
“니가 정하지 말고 다른 팀원들 의견도 수렴하고.”
“훗, 이미 교섭은 완료인 상태지요.”
홍기도가 불안한 미소를 흘렸다.
“다들 얘한테 맡겨도 괜찮아?”
“상관없어요.”
“전 아무거나 다 좋아요.”
남구원과 함송희는 자신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충 대답했다.
“그런데 오늘 진짜 상견례에요?”
“어? 어.”
“신기하네.”
“뭐가 신기해?”
“상상 속 여친과 상견례가 가능한가?”
이놈을 어떻게 때려줘야, 잘 때렸다고 소문날까?
“근데, 상견례하면 곧 결혼하시겠네요?”
“바로는 아니고, 상견례는 아들, 딸이 이 사람과 결혼을 생각 중입니다. 하고 인사 드리는 자리지, 그때 이후가 본게임이야. 상대 부모님께 본격적인 득점 경쟁 돌입해야지.”
“그러면 나중을 위해 지금부터 총각파티 플랜을 준비해야겠네요.”
“뭐?”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 없는 차장님을 위해, 베프인 제가 다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내가 친구가 없긴 왜 없냐?”
“지금까지 한 번도 친구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요?”
“차장님 친구 없으세요?”
“제가 친구 해드릴까요?”
이제는 남궁원과 함송희까지 가엾다는 눈빛을 발사한다.
내가 친구가 없기는 왜 없냐! 일이 바빠서 자주 못 봐서 그렇지.
나도 1년에 몇 번 정도는 친구 놈들 만나거든?
“나 친구 많거든?”
“친구 없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양보다는 질! 저 홍기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베프······. 윽! 아파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일이나 해.”
“저 일 없어요. 지금 한가한 타임!”
“일이 없어? 그럼 내가 만들어 줄게!”
“아! 문주 누나다!”
홍켓몬은 탈주했다.
하여튼 정신없는 녀석이다. 그래도 할당량 다 해치운 녀석에게 일부러 일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 그랬다가는 후폭풍이 두렵다.
그나저나, 득점 경쟁이라······.
연아야, 득점 기계나 다름없는 탓에 우리 부모님께 백점 만점에 백만점 쯤 득점해 놓은 상황이니, 걱정 없지만 나도 회장님께 득점 좀 해야 하지 않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표세인 차장님.”
“양실장님?”
때마침 양실장이 등장했다.
“가시죠.”
“네? 어디를요?”
“득점하러.”
득점?
*
*
*
임원회의도 벌써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양실장의 말대로 오늘은 그저 득점 스코어를 확인하기 위한 자리.
하지만 어쩐지 오늘은 분위기가 지난번과는 딴판이었다.
우선 자리 배치가 달랐다.
‘김대표 옆에 양실장이 앉았네?’
회장석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김대표를 비롯한 비파벌 이사진들이 자리하고 좌측에는 함전무와 이상무 파벌 인사들이 자리한 것은 동일했다.
달라진 것은 오직 양실장의 자리뿐. 양실장은 이사와 상무보등을 제치고 김대표의 옆에 앉은 것.
아무리 끗발 좋은 양실장이라고는 해도, 쟁쟁한 이사진들을 제치고 김대표의 바로 옆에 앉은 것은 무척 이색적이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이 더 놀랍네.’
“표세인 차장.”
“예.”
김대표의 부름에 나는 재깍 대답하며 곁으로 다가갔다.
“인사하지, 이쪽은 일본 지사 센터장이신 오순신 이사.”
“처음 뵙겠습니다. 표세인입니다.”
“반가워요. 듣던 대로 훤칠하시네. 일본에 오면 키 때문에라도 눈에 확 띄겠어.”
“그리고 이쪽은······. 앞으로 종종 보게 될지 모르니, 안면들 익혀두게.”
이후로 몇몇 임원들 앞에서 90도 인사를 해야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일본 지사의 오순신 이사가 한 말이 신경쓰였다.
‘일본에 오면?’
순간적으로 지난번에 회장님이 말씀하신 해외 출장에 관한 사안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 회장님께서는 영어에 대해 말씀하셨었다.
아마도 일본은 회장님이 고려하신 출장지는 아니라는 느낌.
그렇다면 짐작가는 부분은 하나 뿐이다.
‘지난번에 김대표님이 준비하신다던 선물은 일본에 있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일제히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조회장과 그를 수행하는 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조회장과 달리, 연아는 오늘도 시크, 도도한 표정으로 살짝 내리깐 눈으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림자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뭔가 참 안 닮은 부녀야.’
이목구비는 은근히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정말로 다르다.
다소 능글맞고 여유로운 조회장과는 달리, 회사에서의 연아는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
어쩌면 저 모습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위한 가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앉지.”
조회장의 말에 임원들은 일제히 착석했다. 거기에 맞춰 나처럼 뒤에 서 있던 보좌진들 역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이제 시작이다.
“시작하지.”
“예.”
조회장의 말에 연아가 움직였다. 임원들의 눈길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사전에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담담하게 브리핑하는 연아의 모습은 정말로 멋졌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예년과는 달리 이번 분기는 시작부터 좋은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개발2실과 개발3실의 성과가 주목할 만합니다.”
작년 매출 동향은 푸른색, 올해는 녹색으로 표시된 그래프에서 특히 우리 개발3실의 녹색 막대의 상승 폭은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개발3실의 경우 딱히 작년에 비해 마케팅 비용에 추가 지출 없이도 이만한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입니다.”
추가 지출 없는 매출 상승이라는 부분에서 임원들이 저마다 수근대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양실장이 회장님의 지시로 움직였다기에, 상당한 추가 지원을 등에 업은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군요.’
‘양실장 기세가 더욱 거세지겠군. 그러고 보니 지난 체육대회에서 출사표도 던졌더랬지?’
‘하지만 역시 아직은 변변한 라인도 구성되지 않았으니······.’
‘그래서 지금이 기회가 아닐까?’
‘눈치를 보아하니, 김대표님과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하지만 아직 판단하기는 일러, 개발2실 매출 총액이 한참 높잖아.’
개발3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총액은 분명 개발2실의 프로젝트의 우세였다.
“그리고 지난주, 디젤 스토어에서 넘어온 결과를 확인하시겠습니다.”
“어?”
“어!”
드디어 좀비로얄의 판매량에 관한 대목으로 넘어가자, 임원들의 눈이 희둥그레졌다.
“벌써 출시했어?”
누군가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입 밖으로 소리를 냈고, 그것을 들은 조회장이 짧게 혀를 찼다.
“누들 스토어만 신경 쓰지 말고 다른 플렛폼도 신경들 좀 쓰지?”
“죄, 죄송합니다.”
애초에 국내 게임업계는 모바일 시장의 성장세를 등에 업고 비약을 이룬 곳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개발사들이 PC 시장에서 발을 뺀 것도 거진 10년이 되어갈 지경.
하지만 모바일 시장이 포화상태로 돌입한 반면, PC 시장은 점점 규모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글로벌 마켓의 절대 강자는 모바일이다.
게임업계의 수익 전체를 따져봐도 거진 절반 가까운 수익이 모바일 업계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지.’
모바일은 규모가 작다. 따라서 출시되는 게임의 숫자도 부지기수.
그 반면 PC와 콘솔 시장의 경우 AAA급 게임 몇 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그리고 시장은 계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이걸로 승부는 확정됐다. 모두의 부동산과 좀비 로얄의 얼리엑세스 판매량을 합치면 개발2실의 매출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나는 슬쩍 눈을 돌려 문이사를 바라보았다.
‘예상보다 침착하네.’
문이사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웃어?’
놀랍게도 문이사는 나에게 친근한 눈웃음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설마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나?’
저 불같은 승부욕을 지닌 양반이, 패배가 확실시된 이 시점에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문이사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항복선언은 끝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양실장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클래식 빌드와 좀비로얄. 이 두 가지 프로젝트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들로도 안된다면 나라고 별수가 있나?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승리했다.
조회장님의 퀘스트를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문이사라는 거물급 인사와의 힘겨루기에서도 승리한 것이다.
“양실장.”
조회장이 양실장을 호명했다.
“예.”
“수고 많았어.”
“감사합니다.”
양실장은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문이사.”
“예.”
“아직 발톱이 녹슬지는 않았나봐?”
“송구스럽습니다.”
각자마다 다른 치하의 멘트. 어쩌면 이것 또한 중요한 스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직원들을 다스리는 회장이라는 직책.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그만한 능력이 있기에 회장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다들 잘 들어.”
“예.”
“내가 아주 기분이 좋아. 하지만 가끔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에 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단 말이지? 함전무 잘 알지?”
“예.”
“판호는 아직도 해결이 안되지.”
“중국지사에서 말하기로는 올해 하반기는 되어야, 길이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판호(版號).
중국 사업에 절대적인 변수. 이 문제는 딱히 함전무의 잘못도 아니며, 조회장 조차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중국이야, 워낙 엿장수 맘대로니, 어쩔 수 없는 문제지. 자, 그럼 상황을 되짚어 볼까? 밥줄이던 중국 시장은 판호 문제로 얼어 붙었고, 모바일 시장은 과포화 상태. 그럼 남은 답은 뭐다?”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시장의 개척.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신규 개발팀을 하나 꾸려야겠어.”
“!”
그야말로 폭탄선언. 게임 회사에서 신규 개발팀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는 남다르다.
“새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다른 팀들도 이미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바로 얼마전에 조직개편을 마쳤는데, 새로운 팀이라니요.”
함전무가 우려를 표했다.
“그렇게 크게 나서려는 것은 아니야. 새로운 팀은 기존과는 달라, 개발실이 아니라, 팀이라니까?”
원래 게임업계의 단어 용례가 뒤죽박죽인 편이다.
기획팀도 팀이고, 개발팀도 팀이다. 그래도 뭉쳐놓으면 개발실이라거나, 스튜디오라고 돌려서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실 기획, 프로그래밍, 그래픽을 뭉쳐 놓은 팀이란 것은 그냥 신규 개발실이나 다름 없다.
굳이 팀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아마도 주변의 반발을 누그러트리려는 의도시겠지.
“PC나 콘솔, 그 밖의 새로운 모바일 게임. 플랫폼과 장르적 성격을 넘어서 발 빠르고 혁신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팀이 필요해. IT정신! 우리도 다시 찾을 필요가 있어.”
“하지만 그래서는 개발력이······.”
“부족한 것은 옆에서 도와주고, 안되면 외주 쓰면 되지. 원래 하던 일이잖아. 언제부터 우리가 100% 전부 개발했어? 중요한 것은 신규 아이템에 대한 발견과 개발 컨트롤이야.”
“알겠습니다. 허면, 그 팀에 대해서는 따로 고려하신 방향이 있으십니까?”
임원들이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회의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양실장.”
“예.”
“계획안 작성해서 올려.”
“알겠습니다.”
사실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 아닌가? 왕의 남자라는 타이틀에, 생전 처음 맡은 개발 업무까지 이례적인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이미 파도를 탔다.
한번 기세를 탄 순간에는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법.
“하지만 양실장은 이미 사업부 소속이기도 하고, 그런 큰일까지 처리하기에는······.”
“맞아.”
“네?”
함전무는 설마 조회장이 자신의 말에 동의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던 것 같다. 정작 반대 의견을 낸 장본인이 가장 크게 놀란 표정.
“양실장, 사업부에서 책상 빼.”
“그러면 어디로······.”
정작 질문은 양실장이 아닌 이상무가 했다. 아무래도 사업부의 수장으로서, 그동안 회장의 심복인 양실장이 사업부에 있던 것이 탐탁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막상 그의 새로운 거처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서실로 들어와. 어차피 여태까지도 반쯤 비서실장 노릇이지 않았나, 이참에 교통정리도 해치우자고.”
“알겠습니다.”
그동안 비어있던 비서실장 자리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순간!
파장은 작지 않았다.
“회장님! 비서실장에 신규 개발팀까지 맡기는 것은!”
비서실장은 일반적인 실장들과는 급이 다르다. 아무리 게임 개발사가 다른 기업들에 비해 비서실의 무게감이 크지 않다고는 해도, 이만한 대기업이 아닌가?
그동안 은연중에 양실장의 말은 회장의 말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이었는데, 거기에 한층 더 무게감이 실린다?
차라리 임원 진급이 나을지도 모를 정도의 상황.
“신규팀 컨트롤을 누가 양실장에게 맡긴다고 했나?”
“그, 그럼?”
함전무와 이상무의 눈에 기대감으로 타올랐다.
하지만!
“이 팀은 속도가 생명이야. 쓸데없이 윗선 결제 기다리며 움직이면 속도가 나겠어? 팀장급에서 하나 골라. 젊게 한 번 가보자고.”
조회장의 말에 모두는 자신의 라인에 속한 팀장급 인재들의 이름을 떠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뭘 그렇게 눈알을 굴리고 있어? 그리고 이번에 가장 큰 성과를 낸 곳은 누가 뭐래도 개발3실이지?”
“아······.”
한탄 섞인 신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회장님에게 고정되었다.
“개발3실이 아주 큰 성과를 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거기 표차장.”
“네.”
나는 조회장의 부름에 급히 대답했다.
“팀장으로 올라가.”
“!”
“수고했어. 아주 잘했어.”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퀘스트 클리어를 알리는 폭죽 연출 같은 것!
순간 내 눈앞에 형형색색의 화려한 폭죽 이펙트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기분!
차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팀장이라니!
차장 달고 수년 넘게 팀장 명함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럼 이만 끝내지.”
조회장은 다른 반론 따위는 듣지 않겠단 듯, 자리를 벗어났다. 한데, 마침 김대표 뒤편에 있던 나를 스쳐 가게 되었다.
‘어?’
순간 조회장은 팔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고, 나는 요령껏 몸을 숙였다.
“잘했어. 이제 포상받을 준비나 해.”
“팀장이 포상 아닙니까?”
“곧 알게 된다. 그보다 잠시 후에 보지. 부모님 잘 모시고 와.”
조회장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귓속말을 끝낸 뒤, 회장실을 빠져나가셨다.
‘양실장에게 제대로 날개를 달아주신 것 아닌가?’
‘팀 운영은 양실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잖아?’
‘그걸 믿어?’
양실장의 비서실장 부임 이슈가 워낙 큰 탓에 나의 팀장 진급은 딱히 신경 쓸 거리가 못 되는 것 같았다.
“축하드립니다.”
“아니, 고작 팀장인걸요. 저보다는 양실장님이 더······.”
“설마 지금 제가 단순히 팀장 다신 것을 축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럼 뭐가 또 있지? 설마 상견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신규팀 조직구성에 관한 계획안 부탁드립니다.”
“네? 아아, 리스트를 주시면 제가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아니, 기획팀장일 때도 일감 떠넘기기 안 하시던 분이 왜 갑자기 본인의 일을 나에게······.
“제 리스트는 필요 없습니다.”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표세인 팀장님의 팀이니, 본인이 처음부터 구성하시는 편이 좋으시겠지요.”
“네, 네?”
지금 뭐라고, 내 팀?
“축하드립니다. 신규팀. 이거 일반적인 개발실과는 여러모로 다를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날개를 펴실 수 있으시겠군요. 회장 직속 개발팀이라니, 회장님이 크게 쏘시는군요.”
회장 직속 개발팀의 팀장. 거의 실장급에 맞먹는 직책이 첫 보상이라고?
이 게임 밸런스 똥망인데?
그런데, 그래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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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견례 그리고 소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