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54화 (54/346)

54.

재무팀의 고학현 부장은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기특한 녀석이군.’

아무리 이상무의 부탁이라도 무려 회장님의 지시를 지연시킨 것은 내심 간담이 서늘한 일이었더랬다.

하지만 그것을 오히려 경비 절감으로도 잘해 낼 수 있다!

라는 느낌으로 임원회의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

덕분에 요즘 재무팀의 사기가 남다르다. 언제나 남들에게 싫은 소리나 듣고, 기피 대상 1순위가 바로 재무팀이다.

지들 사정이 궁할 때는 손발을 싹싹 빌더라도 결국 등 돌리면 잘근잘근 씹히는 운명.

‘재무팀은 항상 방해만 해!’

‘재무팀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솔직히 될 법한 일도 재무팀이 금고를 닫아걸어서 안 되는 것 아니야?’

항상 이런 말을 들어가며 일해야 하는 것이 재무팀의 운명이 아니던가?

하지만 경비를 절감하면서까지 예년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결국, 재무팀의 역할과 프로젝트의 성공은 반비례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

‘아, 진짜 표팀장 이 이쁜 놈을 어쩌지?’

처음부터 예뻤는데, 갈수록 더 예쁘다. 이상무 진영에 빚 하나를 공짜로 지우게 된 것을 넘어, 회장님의 분노 대신, 재무팀의 면까지 세워주었다.

“그냥은 못 넘어가는데······.”

남들은 고학현 부장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회사 창고에 똬리를 튼 능구렁이쯤으로 여기지만, 그는 의외로 의리의 캐릭터였다.

“부장님?”

“응?”

“문이사님과 표팀장의 해외 출장건에 대한 건, 말입니다.”

“표팀장 출장간대?”

“네. 미국이요.”

“그런데?”

“문이사님이 전화로 표팀장의 항공권에 대해······.”

“잠깐!”

고학현은 부하직원의 말을 자르고 생각에 잠겼다.

표세인이 왜 갑자기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문상훈이 연락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양성태가 출사표를 던진 이후, 문이사는 발 빠르게 움직였었다.

회장님의 지시인 추가지원도 딜레이 시켜달라는 초강수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양성태, 아니 표세인의 승리.

‘배알이 꼴리겠지.’

하지만 이미 한번 이상무의 부탁을 들어준 상황, 빚쟁이 눈치 보는 채무자가 어디에 있나?

보나 마나, 문상훈은 표세인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항공권 등급을 낮추라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너 설마 섣불리 알겠다고 한 것은 아니겠지?”

“설마요. 우리 재무팀이 가오 빼면 뭐가 남습니까? 부장님께 여쭤본다고 하고 일단 대답 회피했습니다.”

때로 직급 이상의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재무팀이지 않나?

더군다나 게임 개발사의 재무팀은 이동도 없으므로 갈라파고스화가 극심한 부서이기도 했다.

“잘했다.”

“예.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규정대로 해야지.”

“그럼 비즈니······.”

“표팀장 계열사 이사잖나, 퍼스트 클래스로 끊어.”

“네?”

“뭘 놀라. 임원급은 퍼스트 클래스잖냐.”

“아, 아니 그게······.”

부하직원은 당황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문상훈의 부탁과 똑같은 소리를 고학현이 반복하고 있던 것.

“본사 직급은 팀장인데······.”

“문이사님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부, 부장님 그게······.”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하직원이 고학현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려던 그 순간.

“고부장.”

문상훈이 모습을 드러낸 것.

“흠. 어쩐 일로 이곳까지 어려운 걸음을 다 하셨습니까?”

고학현이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자, 문상훈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빚을 진 상황에 새로운 부탁까지 하려는 상황.

“내가 조금 전에 표팀장의 항공권에 대해 전화했는데, 고부장의 허가가 필요하다더군.”

“그렇지요. 그게 당연한 절차 아니겠습니까?”

고부장은 부하직원을 향해 슬쩍 눈치를 주었다. 내가 상대할 테니, 나가 보라는 의미.

부하직원이 떠나고 단 두 사람만 남았다.

잠시 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문상훈이 먼저 운을 뗐다.

“염치없는 것은 알지만, 내 부탁하지. 표차장의 항공권 변경 내게는 중요한 일이야.”

문상훈에게 있어, 표세인의 좌석을 자신과 같은 일등석으로 만드는 것은 장대한 포섭 작전의 주춧돌 같은 플랜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하이 클라쓰 공간과 뒤이어지는 이 문상훈이의 현란한 포섭 공세.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문상훈은 결심을 굳혔다.

“내. 이렇게 부탁하네.”

“그렇게 말씀하셔도 곤란합니다. 이미 결재는 떨어졌습니다. 규정대로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 자존심 강한 문상훈이 살짝 고개까지 숙였건만 고학현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난번 귀국과 동시에 자신을 찾아와서 강짜를 부렸던 일까지 떠오르자, 더더욱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선을 긋자. 재무팀의 파워, 그리고 나는 함전무님의 사람이 아닌가?’

고학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표팀장이 당장은 좀비로얄 개발사 이사직을 달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둘이서 꼭 붙어서 가셔야 할 겁니다.”

“붙어서 간다?”

“예. 두 사람 좌석, 일등석 좌우로 나란히 붙여 두었습니다.”

고학현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등석에 앉아, 옆자리의 표세인을 보며 긴 이동시간 내내 표정을 구길 문상훈의 얼굴을 떠올리자, 고학현은 내심 흡족했다.

‘그런데 표정이 뭔가 이상한데?’

자신이 기대하던 표정이 아니었다. 문상훈은 덥석 고학현의 손을 잡았다.

“고맙네. 결국, 이렇게 내 체면을 세워주는군.”

“예? 예?”

“내가 이 빚은 꼭 갚겠네. 나 문상훈이가 빈말하는 성격 아닌 것은 알지? 그럼 나중에 보자고. 하하하!”

문상훈은 통쾌한 웃음소리만을 남기고 재무팀을 벗어났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고학현은 영문을 몰라, 눈만 껌뻑였다. 어째선지, 표세인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일이 술술 풀리는 기분.

“이거 어떻게 된 거냐?”

“그게······. 처음부터 문이사님의 요구는 표팀장 좌석을 자신과 같은 일등석 옆자리로 배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 그럼 너 그걸 안된다고 한 거야?”

“네? 네. 본사 직급은 팀장이니까······.”

“하, 이 이쁜 녀석.”

“저, 잘한 겁니까?”

“너 말고!”

뭔지는 몰라도 자신은 자존심을 챙겼고, 문상훈은 만족했다.

모두가 행복한 상황?

“진짜 뭐라도 안 쥐여 주고는 못 배기겠네. 뭐 더 없나?”

고학현은 자신이 챙겨줄 수 있는 다른 건수를 찾기 위해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출장에서 돌아오기만 해봐, 아주 그냥 돈 쭐을 내줘야지.”

황금 고블린은 혜자 루트를 선택했다!

*

*

*

“내일이군요.”

“예.”

출장이 어느새 내일로 다가왔다. 틈틈이 여행자용 단어집 같은 것을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거다.

“준비는 잘 되셨습니까?”

“딱히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연아의 조언대로 옷가지는 미국에 가는 김에 그곳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싸구려는 사지 말고.’

‘외국에서 물건 많이 사면 세금 내야 하지 않아?’

‘응. 영수증 미리 제출하고, 과세 지불하면 당일 통관할 수 있어.’

연아는 언제나처럼 쿨했다. 역시 이런 부분에서 재벌집 딸내미 포스가 풀풀 풍긴다.

덕분에 딱히 짐이랄 것도 없이 반쯤 비어있는 캐리어 하나 준비하는 것으로 끝.

“그곳에서는 문이사님을 잘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용이요?”

“네. 출장 선물입니다. 뭐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실 것은 없고, 표세인 팀장님을 잘 챙겨주라고 이야기해놨습니다. 그러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의 우산 아래에 포지션을 잡으시는 것도 좋겠지요.”

문이사가 나를 챙겨 줄 거라고? 지금까지의 악연을 생각해보면 잘 상상이 안 되는 그림이지만, 임원회의 때 보인 그 미소는 분명 예전과는 달랐더랬다.

“그런데 그러면 오히려 멀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 제가 포섭당하면 어쩌시려고요?”

나는 살짝 농담을 던졌다.

“문이사님은 그래 봬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학습 교재로 부족함이 없지요. 원래 공부는 여러 과목을 두루, 신경 써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와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획자로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컨텐츠, 컨셉 디자인, 보상설계, 레벨 디자인, 시나리오, 시스템 디자인 등등······.

하나에 특화된 인재는 대성하기 어렵다. 적어도 대화가 통할 정도는 모든 파트에 조예를 갖춰야 하는 법.

아마 문이사 역시, 양실장과는 다른 부분에서 배울점이 많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치 획득 루트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냇물은 바다를 품을 수 없는 법, 아닙니까?”

하, 양실장은 가끔 칭찬이 너무 후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파벌이 바다라고 칭한 걸까? 에이, 이런 겉치레는 적당히 넘겨야지.

“유념하겠습니다.”

“그럼, 가시죠. 회장님께서 함께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 가시죠.”

나는 양실장과 함께 회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연아가 없네?’

오늘 회장실 앞에 비치된 비서석에는 연아가 아닌 다른 비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서는 우리의 도착 사실을 회장님께 보고했고 우리는 허가와 함께 곧장 회장실로 들어섰다.

“출장 준비는 잘 했나?”

“예.”

오늘도 꿍꿍이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새로운 퀘스트의 내용을 밝혀지리라······.

“표세인.”

“!”

직급 없이 내 이름 석자가 회장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순간, 오싹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입이 굳어버렸다.

“요즘 아주 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모두가 자극을 받고 있지.”

“그리고 이제는 양실장과 함께 파벌까지 만들어서 구 세력에 도전장까지 던졌지.”

“······.”

“어디까지 해낼 수 있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나?”

회장님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나?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면 회장님의 질문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하리라.

하지만 내 본연의 스탠스가 무엇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나는 회장님 앞에서는 일반적인 사원이 아니다.

나는 회장님이 만든 게임의 플레이어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클리어는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기정사실이다. 이것을 의심하는 플레이어는 없다.

“질문이 잘 못 된 것 같습니다.”

“잘못 됐어?”

“플레이어에게 있어 엔딩은 너무도 당연한 보상입니다.”

“엔딩?”

“멋진 엔딩 준비하고 계십니까? 플레이어를 만족시킬 자신 있으십니까? 저는 당연히 끝을 보기 전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저는 한번 잡은 게임은 반드시 클리어합니다.

“크크큭.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 이건가?”

조회장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래저래 고민을 해봤다만, 역시 아직 둘이서 파벌입네 해봤자, 소꿉놀이 수준이라는 느낌이 들어.”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상 한팀장이 추가된 상황이지만, 중진급 인사들이 줄줄이 포진된 전무군단이나, 미국을 비롯한 해외지사를 틀어쥐고 있는 이상무 진영에 비하면 우리는 불면 날아갈 정도에 불과하다.

“역시 아직은 맨파워가 부족해. 적어도 상대가 의식할 수준은 갖춰줘야지.”

“그 말씀은?”

“원래 약할 때는 더 쎄게 나가야 하는 법이지.”

뭔가 불길하다. 저 장난기 어린 표정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이 서서히 날카로운 예기를 뽐내려 하고 있다.

“파벌싸움은 결국 사람 싸움 아니겠나?”

“······.”

“문이사 밑에 제임스라는 녀석이 있어. 그 녀석이 아주 인물이라고 하더라고.”

“회, 회장님!”

양실장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대체 제임스가 누구길래······.

“그놈 낚아와.”

“다른 사람도 아닌, 문이사의 오른팔을 낚아오라니요! 제임스는 현재 문이사를 대신해 미국지부를 컨트롤하는 브레인입니다. 지금은 문이사 밑에 있지만, 언제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 모르는 특급 인재인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듣기만 해도 굉장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조회장은 그러니까 재미있지! 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보다 제임스가 어떤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큰 문제는······.’

애초에 영어도 못 하는 내가 어떻게 외국인을 포섭할 수 있나?

하지만 조회장은 단호했다.

“그럼 계속 깔짝거리면서 내기나 하려고?”

“시작부터 정면 대결을 벌일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천하장사가 샅바 고치면 어차피 게임이 안 되는 법이야. 도전자답게 패기를 보이라고. 거창하게 출사표를 던졌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조회장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진다. 요건 먹혔군! 하며 속으로 조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로 불가능할까? 원래 신규 던전이 출시되면 당장의 스팩으로는 공략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회장은 자타 공인하는 레벨 디자인의 달인이다. 분명 그에 합당한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 퀘스트의 향방을 가르는 것은 그 숨겨진 기믹을 내가 찾을 수 있으냐, 없느냐의 싸움.

“자신 없나?”

“시작은 문이사 공략이 선행되어야겠군요.”

“호오.”

아직 모든 것이 환히 보이지는 않지만,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

“문이사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내가 괜히 그놈에게 이사 자리 내준 게 아니야.”

쉬운 일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숨겨진 무언가가 있고, 당장 보이는 던전 입구는 문이사뿐!

원래 첫 번째 공략은 맨땅에 헤딩이 기본 아니겠나?

그리고 탱커는 망설이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어려운 난제에 눈이 빼앗겨 있을 틈은 없다. 그보다 중요한 세부 사안을 파악해야 했다.

“이런 빅 이벤트에 쩨쩨하게 시간제한 따위를 걸면 안 되지. 제임스와 함께 귀국해. 그거면 되겠지?”

실패하면, 신혼집을 미국에서 차리라는 겁니까?

순간 눈앞이 핑 돈다.

‘아들 낳으면 군대 면제 기회 생기나? 아니지, 나도 고생했으니 그놈도 고생해야지!’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의 미래까지 그려 본다.

그만큼 정신이 아찔한 난이도.

“그럼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예.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기대하지.”

조회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

*

제임스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양실장이 몇 가지 이력 등에 대해 말해주었지만, 그 역시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결국,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전에······.

“다 왔다. 나 이제 공항이야.”

-몸조심하고, 너무 걱정 마. 아빠가 계속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면, 무시하고 그냥 들어와 버려.

말은 고마운데, 그건 안되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에게는 내 나름의 자존심이 있다.

그리고 일단은 계획도 있다.

“끊을게, 문이사님 보인다.”

-알겠어. 도착하면 연락해.

“응. 알겠어.”

나는 전화를 끊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공항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문이사에게로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나왔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지. 그런 한국식 위계질서는 잊어버려. 지금부터 우리는 아메리카 스튜디오로 가는 거야. 그곳은 대통령도 YOU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명심해.”

그럼, 말 놔도 됩니까? 라는 홍켓몬이나 칠법한 드립이 떠올랐다.

젠장, 내가 오염되고 있다.

“양실장이 똑바로 전달했나? 미국에서는 내 사람으로 활동하는 거야. 나 문상훈이를 위한 칼이 되어주는 거지. 이점 이해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본사 소속으로서 문이사님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어도 못 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믿을 것은 양실장이 준, 통역기 뿐!

“좋아! 좋아! 한번 해보자고! 자네와 제임스가 이 문상훈이의 양 날개가 되어준다는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나!”

그래. 제임스.

이번 퀘스트는 납치(?) 미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이사의 환심을 산다.’

첫 번째 타겟은 문이사! 나는 타겟을 록온하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한 108가지 아부 스킬에 시동을 걸었다.

‘내 주 종목은 아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그런데, 문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자네······.”

“네?”

“스위츠는 좋아하나? 미식축구는? 야구는? 자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전부 준비하기는 했네만······.”

타겟이 먼저 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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