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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61화 (61/346)

61.

“이건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제임스는 전에 없던 의욕에 불타는 제프리팀의 모습을 보고는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언제나 얼음처럼 냉랭하던 남자의 놀라는 모습을 보니, 퍽 유쾌한 기분이다.

“이거면 테스트는 통과한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임스는 산뜻하게 인정했다.

“그럼 이제 본 게임의 입장시켜 주시겠습니까?”

제프리 팀의 갱생은 그저 테스트에 불과하다. 본 무대는 문이사와 제임스가 계획 중인 베일에 가려진 프로젝트.

‘여기서 확실한 성과를 거두고 제임스를 포섭한다.’

그동안 나는 조회장의 의도를 읽어내려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내 나름의 답을 얻었다.

‘부끄럽게도 나와 제임스는 자네와 양실장처럼 긴밀한 관계가 아니야. 포지션상 한배를 타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지.’

문이사가 넌지시 흘린 단서 하나. 그들의 관계는 철옹성이라 부를 만큼 견고하지 않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제임스는 인간미가 없는 업무 기계라는 느낌.

이런 타입은 맡은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본인만의 비전을 수립하고 이것을 추진하는 것에는 능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건 시스템을 읽어야 하는 문제지.’

이 게임의 마스터이자, 퀘스트를 내리는 주체로서 조회장은 어떤 의도를 품고 있을까?

일견 불가능해 보이지만, 반드시 클리어의 열쇠는 존재한다.

모든 퀘스트가 바라는 이상향.

‘분명 회장님은 내가 제임스를 포섭할 가능성이 있기에 나를 보내셨겠지.’

본능적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그 열쇠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자자, 그럼 테스트도 끝났다고 하니,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지.”

문이사가 주위를 환기시켰다. 나 역시 자리에 앉았다.

“자네, NFT에 대해서 들어봤나?”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가상의 토큰.

간단히 말해 품질 보증서 같은 개념이다.

“물론이죠. 제가 그쪽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워낙 핫한 키워드 아닙니까?”

대리 시절쯤, 한창 게임업계는 NFT에 관한 내용으로 시끌시끌했더랬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소극적인 관심 정도.

근래 몇몇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이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다는 풍문은 접한 기억이 있다.

“그럼 협상 테이블이라는 것은 해당 기술을 보유한 업체와?”

“그래. 나는 이것이 우리 미국지사를 넘어 향후 맥베스라는 브랜드 전체를 지탱할 큰 프로젝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문이사는 나를 향해 단호한 확신의 눈빛을 보냈다.

슬쩍 제임스를 살피자 그 역시 동의한다는 기색이 엿보였다.

“제가 이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러는데, 조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문이사는 제임스를 향해 눈짓했다.

“간단히 말해서 현재까지 비공식적인 개념에 불과했던 P2E(Play to Earn) 시스템에 보다 명확한 목적성과 안정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명품은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품질보증서를 제공한다. 그것은 여타 비슷한 상품들로부터 브랜드의 가치를 보호한다.

더불어 거래에 있어서도 투명성이 보장될터. 디지털 보증서가 붙은 상품은 복제도 불가능할 테니.

“그렇다면 이를 통해 회사가 얻을 이익은······. 가만, 이거 당장 눈에 보이는 수익이 문제가 아니겠군요.”

내 말에 문이사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지금 국내에는 게임 산업에 고리눈을 뜨고 지켜보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이 분야가 지지부진했지만, 이미 한국은 세계에서 지폐 대신 카드를 사용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나라야.”

라는 것은······.

결국 이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 변화할 시장에 대해 준비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

“이해했습니다. 결국, 얼마지 않아 디지털 자산이 현물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죠.”

“맞아. 이건 빠르든 늦든, 같은 개념이 아니야. MMO 시장에서 모바일 시장으로 전환되던 시점에 한발 늦은 회사들은 지금 어떻게 됐지? 이건 생존경쟁이야.”

문이사의 말에는 나도 적극 동의한다. 물론 향후 게임사들이 특유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유저들의 지갑을 털어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Pay to Win과 Play to Earn은 완벽히 다른 개념이다.

형평성과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는 Pay to Win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통해 재화를 수급하는 행위에 무슨 문제가 있나?

현재 시대는 과거와 같은 노동의 개념이 일차원이던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쳤다.

나쁜 것은 자신의 절제력이 없는 일부 사람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카푸어가 늘어나는 것이 자동차 회사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시각에 따라서는 주식도 게임이나 다른 바가 없지 않나?

“무엇보다. 악성 유저들의 해킹 프로그램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가 될 거야.”

“!”

해킹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 이 말이 지닌 무게를 개발자라면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더라도, 단순히 이것 하나면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타겟은 블록체인 개발사입니까?”

“맞아. 베타코인이라는 업체야. 블록체인 열풍 때문에 수많은 블록체인 개발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베타코인이 보유한 기술은 게임업계와 매우 밀접하지.”

문이사는 짧게 베타코인이라는 회사가 보유한 기술의 장점에 관해 설명했지만, 이 부분은 대충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그래서 쟁점은?”

“우리 말고도 경쟁자들이 있어. 그리고 베타코인의 CEO는 우리에게 가장 큰 비전을 제시해달라고 했어.”

“비전?”

“그래. 솔직히 난감한 문제지. 게임사들이야 각자 생태계에서 도태될 수 없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시장에 대한 선지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렇지요.”

IT분야는 다른 업종에 비해 변화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앞날을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한발 늦은 것에 대한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한 분야이기도 했다.

“일단 경쟁자들의 자금 사정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설 만큼의 탄약은 확보했네.”

이 부분에서 제임스는 마땅치 않다는 듯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저 과장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맞지 않았던 모양.

“남은 문제는 비전입니까?”

“그래. 그리고 저들의 수도 대강 예측은 했지.”

“그래요?”

상대의 수를 모두 꿰고 있다고? 이건 상당한데?

문이사와 제임스가 역시 허투루 일하는 타입은 아니구나.

“상대방 측의 카드는 경마게임과 수집형 카드게임. 사실 NFT라는 개념을 고려하면 예측이 어려운 것도 아니지.”

자신이 애착을 갖고 키운 경주마와 수집한 카드에 NFT 시스템이 접목되는 것은 확실한 시너지 효과가 예측된다.

아마도 유저들도 기뻐할 것이며, 안착하기도 쉬울 터.

‘경마게임은 고래가 붙기 쉽고, 카드 수집형 게임은 확장성이 압도적.’

육성과 수집. 확실히 좋은 카드들이다. 그런데······.

어라? 이거 이러면······.

“그럼 이쪽은?”

“솔직히 우리 계획도 그 두 가지 방향 쪽으로 기획 중이지. 사실 육성과 수집 요소야말로 NFT와 시너지가 가장 좋은 장르가 아닌가? 게다가 애석하게도 그들이 한발 앞지른 상황이야.”

문이사는 우리 쪽의 기획안을 내게 건네주었다.

‘약하네.’

약하다. 그냥 널려있는 육성, 수집 게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게임.

‘그러면 이거 내 아이디어가 먹히겠는데?’

조금 전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친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는 순간.

“물론 이 짧은 순간에 자네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요구할 수는 없겠지. 일단 며칠정도 고민해 보고 묘수가 떠오른다면, 제안해 주기 바라네.”

이미 아이디어를 떠올린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걸 이 시점에 무턱대고 투척하는 것은 상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 때문이 아니지.’

좋은 프로젝트이며, 회사의 장래에 지내 한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니, 조력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내 개인 퀘스트도 병행해야 하는 것을 잊을 수야 없지.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중에 다시 회의하기로 하지. 나는 일단 재무검토를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군.”

문이사는 한눈에도 숨 막히는 재무제표를 들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문이사도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저쪽은 전문가가 아닐 것인데도 재무 쪽에도 조예가 상당해 보인다.

역시 이사 자리를 딱지치기해서 딴 것은 아니라는 거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와 제임스는 문이사의 방을 벗어났다.

“제임스.”

“무슨 용건이십니까?”

지난번에는 제임스가 나를 테스트했다. 말하자면 선공을 취한 셈.

그러니 이번에는 내 차례겠지.

“지난번에는 당신이 저를 테스트하셨죠.”

“그렇습니다. 혹시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워낙 중대한 사안이다 보니, 미스터 문의 보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테스트를 통과했으니,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동등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제임스는 말없이 내 얼굴을 주시했다.

쓸데없이 말을 돌리지 말고 본론을 털어놓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확실히 타고난 인상의 문제일까? 눈빛만으로 상대를 긴장시키는 재주가 탁월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그를 지켜봤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 속에 적개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파악했다.

“이번 협상, 제가 성공시켜 드리겠습니다.”

“!”

먹혔다.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요지부동이던 제임스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발생했다.

미세하게 좁혀진 미간과 눈썹의 떨림.

이것은 당혹스러움일까? 분노일까? 별로 상관은 없다. 어차피 파문을 일으키기 위해 다소 과장된 멘트를 날릴 것뿐이니까.

“물론 기반은 문이사와 당신이 잡아 놓으신 상황이죠. 하지만 역시 지금 상황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명확한 비전으로 상대를 만족시킬······. 테이블을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던가요?”

나는 제임스와 처음 만났던 날, 그가 언급했던 부분을 되짚었다.

“확신하십니까?”

아무래도 불쾌감도 한 스푼 첨가된 모양이다.

그간 자신들을 괴롭히던 문제를, 듣는 즉시 해결해 주겠노라며 나선 상황이 아닌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그쪽과 한팀이 아닙니다.”

“파벌에 관한 말씀이십니까?”

“그렇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이사님과 대척점에서 승부를 겨루기도 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건이 뭡니까?”

제임스는 정말로 대화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타입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의 승부 정도의 에피소드면, 조금은 흥미를 보일 법도 하지 않나?

“이번 협상에서 제가 클로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낸다면, 당신은 저와 함께 본사로 가셔야 합니다.”

“영입제의입니까? 예상 밖이군요. 제가 그렇게 만만해 보입니까?”

아니, 전혀 쉬워 보이지는 않지. 그런데 이제 서서히 본격적으로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다.

“저는 그런 장난에 관심 없습니다. 애초에 본사에서 벌어진 승부도 어처구니없다는 것이 제 솔직한 심정이고요. 그 판에서 장기말로 활동하던 당신이 이런 제안이라······. 불쾌하기까지 하군요.”

어째서일까? 제임스가 분노의 기색을 보일수록 나는 조금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아마도 상대가 요점을 헛짚었다는 것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착각?”

“저는 지금 당신에게 영입제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의도로 제게 함께 본사에 가자고 하신 겁니까?”

뭐긴, 생각보다 눈치가 느리네?

“가서 테스트 좀 받아보시죠.”

“네?”

뭘 놀래, 니가 먼저 건방지게 날 테스트했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내 차례지.

“테스트 결과에 따라서 당신을 영입대상으로 생각할지, 아니면 경쟁자라고 생각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무시할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

미안한데, 내가 오는 말이 곱지 않은 상대에게 계속 웃어주는 그런 타입이 아니야.

“제가 제프리 그룹에 이어서 협상 테이블 클로저 노릇까지 보여드리는데, 그쪽도 뭔가 좀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내가 무려 1억이라는 거금(돌려받았지만)까지 투자하면서 순순히 네 테스트를 수행하고 이제는 그쪽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의 해결책까지 내놓겠다고 했으면, 아무리 철면피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겠지?

“협상······. 정말로 성공시킬 수 있으시겠습니까?”

“Sure!”

드디어 내가 자신 있게 영어를 쓸 수 있는 찬스가 왔다!

“······이런 상황에는 Definitely가 더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미국에 온 김에 영어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부끄럽다.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죠.”

“뭡니까?”

“제가 당신과 함께 본사에 가는 것은, 어쩌면 당신이 상상하는 그림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감당할 자신 있으십니까?”

감당할 자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이거 누가 내린 퀘스트인 줄은 아니?’

< 살살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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