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62화 (62/346)

62.

비전.

미래 전망이나 계획을 의미하는 단어.

현재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원하는 베타코인 CEO의 요구에 맞춰, 그를 설득할만한 구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이번 목표다.

“이건 지원사격이 좀 필요하겠네.”

갑작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획안으로 정리하던 중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

나는 모니터에 설치된 카메라를 이용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다들 잘 지내지?”

-예압!

-잘 지내죠! 팀장님은요?

오랜만에 보는 기획팀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남궁원과 함송희는 좀비로얄의 개발이 순조롭기에 밝은 얼굴일 테고, 홍기도는······. 아마 요즘 한가해서 행복할 테지.

“홍대리, 요즘 한가하지?”

-출장 선물은 준비하셨습니까?

그래. 이래야 홍켓몬이지.

“선물은 걱정하지 말고, 일 이야기 좀 하자. 지원이 필요하다.”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팀원들에게 문이사에게 들은 NFT와 협상에 필요한 카드에 대해 설명했다.

-육성과 수집. 그렇네요. 확실히 그럴듯한 카드네요.

경쟁사 측의 카드에 대해 남궁원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팀장님 계획은요?

나는 미리 준비한 기획안의 초안을 전송했다.

“일단 보면서 말할까?”

모두는 테블릿을 이용해 기획안을 훑어보았다.

-와, 이거 제대로네요.

-그런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모두는 내 기획안에 대해 긍정과 우려를 동시에 표했다.

맞다. 쉽지 않다.

하지만 비전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당장 현실화 가능성보다 만약 해낸다면, 해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심장이 요동칠 정도의 기대감이 깃든 그런 것.

애초에 어마무시한 던전과 마주할 때, 사람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그 안에 잠든 보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니겠나?

-진짜 팀장님 배포 장난 아니시네요.

남궁원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맞다. 이건 도박에 가까운 계획이다.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내 계획은 간단하다.

경쟁자들이 각각 육성과 수집에 집중한 카드를 준비했다?

그럼 우리는 둘 다, 한다!

그리고 마침 그것에 가장 가까운 레퍼런스를 갖춘 게임이 있지 않나?

전 세계 미디어 믹스 총매출 1위.

세계적 문화 현상이라 일컬어지는 전무후무한 글로벌 컨텐츠.

“소켓몬스터라면 육성과 수집 양쪽을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겠지?”

내 입에서 직접 소켓몬스터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모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게임업계 종사자 중에서 소켓몬스터라는 이름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산과 들을 내달리며 곤충을 수집하던 개발자의 유년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전설의 작품은 게임을 넘어 다양한 미디어 믹스를 통해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귀여운 몬스터와 우정을 나누고 함께 모험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플롯까지 곁들여진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견줄만한 상대가 없는 불후의 명작인셈.

수많은 아류작들이 소켓몬스터의 아성에 도전했으나, 지금까지 소켓몬스터에게 위협적인 상대는 나타난 적이 없다.

-일단은 게임만 생각하시는 거죠?

“이건 개발 기획이라기 보다는 상대에게 우리가 가진 비전을 보여주는 용도니까, 더 크게 가야지. 우리도 미디어 믹스 제작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지.”

-와,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로 우리 회사가 에니메이션 제작까지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아니, 지금 단계에서는 그냥 뻥카지. 이 정도 허풍은 떨어줘야, 상대도 혹하지 않겠나?

어차피 미국지부 사업이기도 하고.

“그래서 말인데, 한국 영상컨텐츠 제작 기술이 세계적으로 핫한 상황이잖아?”

주로 드라마와 영화에 국한된 일이기는 했지만, 요즘 K라는 타이틀을 붙인 영상물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인 흥행보증수표로 통한다고 한다.

나는 좀 늦게 깨달았지만, 제프리팀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던 모습만 봐도 한국 컨텐츠의 힘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

-그렇죠.

“남궁대리 한국 드라마나 영화 쪽에 대해 좀 알고 있나?”

기획안에 국내 영상제작 기술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여 힘을 주고 싶지만, 나는 그쪽은 완전히 문외한이다.

오징어 게임이란 드라마도 미국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을 정도니까.

-아, 저도 그쪽은 딱히······. TV는 뉴스밖에 안 봐서.

남궁대리도 그쪽에는 별다른 조예가 없는 모양.

“대단한 건 필요 없고 핫한 K영상물에 대한 소소한 자료 정도와 인기요인 분석, 그리고 그것을 통한 영상매체 제작에 적용 범위 정도만······.

-제가 해도 돼요?

의외로 함송희가 나섰다.

“드라마 좀 많이 봐?”

-네. 좋아해요.

“좋았어! 부탁 좀 할게. 그리고 홍대리.”

나는 홍기도를 불렀다.

“너는 그래픽팀에 부탁해서 예시 이미지 시안 좀 만들어줘.”

-······선물은 역시 고기가 좋겠지.

홍켓몬······. 너에게 트레이너의 매콤 채찍을 날려줄 수 없어서 슬프구나.

“정신 안 차리냐?”

-선물은······.

제길, 지구 반대편에서 홍켓몬을 컨트롤 할 방법은 없다. 이럴 때는 순순히······.

-출장 선물로 한우 콜?

“이 미친놈아! 미국에서 한우를 어떻게 사가냐!”

-아, 그러고 보니 요즘 그래픽팀 바쁜 것 같던데······.

진짜 저거 방생하고 새로운 몬스터 하나 수집하든지 해야지.

“알겠어. 돌아가면 쏠게.”

-몇 장이면 됩니까? 컨셉은 미니멈, 노말, 마운트, 자이언트. 이 4가지 컨셉이면 충분합니까?

“그래. 거기에 적힌 대로 예시 이미지 좀 잘 만들어줘. 너라면 원화팀에서 이 기획안에 적합한 그림체를 가진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지?”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옥체 보존하소서.

내가 만약 한우 전문점 차리면 홍켓몬을 노예로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부탁 좀 할게. 염치없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 주길 바라.”

-알겠습니다.

-옛썰!

오케이. 이걸로 대강 준비는 끝났다. 나는 팀원들이 보강해줄 자료가 들어갈 자리만 남기고 문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아! 전화.”

문서 작업을 끝내자, 어느새 12시. 연아에게 전화해야 할 시간임을 깨달았다.

-여보세요?

“나야. 들어봐, 내가 지난번에 1억 이야기 한 것 기억나지?”

-응. 잘됐어?

“그거 다행스럽게도 돌려받았어. 그때는 급한 마음에 정신을 좀 놨었나 봐. 다시 생각하니······. 듣고 있어?”

-······라고.

“뭐라고?”

-좀 쓰라고! 그리고 옷은 샀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이래저래 바빴던 탓에 근처 마켓에서 파는 싸구려 흰 티와 청바지를 대충 돌려 입고 있던 상황.

“죄송합니다.”

-문이사님한테 말도 못 꺼냈지? 둘 사이 어색해?

“그건 아닌데, 깜빡했어.”

-어휴, 일 열심히 한다고 욕할 수도 없고.

“죄송합니다.”

이럴 때 백배사죄 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나?

-난 오빠가 좀 멋있게 보이면 좋겠어. 오빠는 가만두면 가끔 너무 아저씨 티를 내니까.

“나 괜찮아. 지난번에도 아나씨가 같이 넷플릭스 보자고 했다니까? 나 마냥 아저씨처럼 보이지는 않아.”

-넷플릭스?

“응. 뭐, 여자친구 있다고 거절하긴 했는데······.”

-넷플릭스 같이 보자는 말이 무슨 말인 줄은 알아?

“외국 애들은 극장보다 집에서 팝콘 먹으면서 TV 보지 않나? 친구들끼리 그러고 노는 거 아냐? 그런걸 홈파티라고 하지?”

연아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연아야?”

-······혹시 예전에 유행하던, 라면 먹고 갈래? 기억나?

“아, 그거 무슨 영화에서 나온 말이지? 그거 19금 멘트잖아.”

-인터넷에 그거 검색해봐. 나 바빠서 먼저 끊을 게.

“어, 어.”

나는 통화 종료 후 인터넷을 검색했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내용 뒤에 같은 표현으로 넷플릭스 보고 갈래? 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아······. 나 죽었네.”

그동안 마왕(회장)의 던전(회장실)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음을 각오하게 될 줄이야.

그냥 라면 처먹고, 넷플릭스나 쳐봐라! 이상한 신조어 만들어서 아저씨들 괴롭히지 말고!

*

*

*

“이거······.”

문이사는 말끝을 흐리고는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임스는 평소보다도 더욱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되겠군요. 육성과 수집 요소 두 가지를 모두 공략하면서도 그 깊이는 더욱 심화된 컨셉입니다.”

제임스는 내가 만든 기획서를 들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내 기획의 핵심 요소는 단순했다.

단순히 펫을 길러내는 것을 넘어 함께 모험하며 전투를 즐기는 것. 그리고 수집한 펫을 교배하여 자신만의 유니크한 펫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래. 게다가 턴제 전투도 아닌 만큼 소켓몬스터와의 차별성도 확실하지. 그리고 미니멈, 노멀, 마운트, 자이언트라는 개체 크기를 특성화 시킨 점도 훌륭해.”

소켓몬스터와의 차별 요소로 나는 턴제 전투가 아닌 액션성을 강조.

그리고 펫의 크기에 따라서 머리나 어깨에 올리거나, 곁에 두고 싸우거나, 올라타는 등의 액션 바리에이션을 추가.

따로 두고 보면 별것 아니지만, 아직까지 이 요소들을 아우르는 게임은 없었다.

문제라고 한다면······.

“이거 단순히 모바일 게임이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다중플랫폼을 동시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벤치마킹한 타이틀이 워낙 거대하니, 이 정도 야심은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발 가능성은 외면하고 오직 비전에만 집중한 컨셉.

“하지만 만약 그 부분에 대한 문제를 걸고넘어진다면?”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요즘 국산 게임들도 디젤 스토어 시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뭐 개발력이 부족한 회사도 아니고.”

경험은 없어도 인프라와 자금은 출중하다. 그리고 이미 다른 국내 게임사들이 선방하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 어차피 미국지부의 일이다. 알아서 하겠지.

“좋아. 이걸로 끝인가?”

“아직 아닙니다. 조만간 본사에서 저희 팀원들이 보강 자료 보내올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펫의 컨셉 디자인은 첨부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듣기로 경쟁사들은 프로토타입 빌드까지 들고 올리라, 예상되는 상황. 그에 반해 우리는 겨우 컨셉 기획 안이 고작.

컨셉 일러스트라도 제공하지 못하면 무게감이 너무 떨어지지 않겠나?

“좋아, 좋아! 뭔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야. 우리도 예산 계획은 끝났어! 이만하면 해볼 만해!”

문이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열의에 불탔다. 미국지사 발령 이래 최대의 프로젝트이자, 센터장 자리를 건 한판 대결이니만큼 타오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해볼 만 하다라······.”

“?”

“제임스 왜 그러지? 뭔가 걸리는 것이 있나?”

문이사와 나는 동시에 제임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이 반응은?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설마 내가 뭔가 놓친 부분이 있는 건가?

“해볼 만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내 어설픈 영어를 정정해 주었더랬지? 문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인 모양.

“그래서?”

나와 문이사는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제임스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이어 제임스의 무거운 입이 열린 순간.

“이건 해볼 만한 정도가 아니지요. 만약 우리가 선택받지 못한다면 그쪽의 사업 안목이 형편없다는 의미겠지요. 오히려 우리 스스로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할 겁니다.”

“그, 그 말은?”

“이거 100% 됩니다.”

“오오!”

“오오오!”

나와 문이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경쾌한 손뼉 소리와 함께 문이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찡그려지기는 했지만······.

뭐, 아무려면 어떤가?

언제나 기획안이 통과되는 순간은 짜릿한 법이다.

나는 제임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살살 하세요.”

오케이!

-짝!

제임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아! 기분 째진다!

< 우리 집 미친개는 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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