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사이프 바수. 인도계 미국인.
미국에서 태어난 제프리와는 달리, 그는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의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재학 중에, 블록체인 기술에 잠재성을 엿보고 스타트업을 창립했다.
이것이 내가 전달 받은 베타코인 CEO 사이프의 약력이었다.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대부분 젊다지만, 설마 이렇게 젊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에 불과했는데도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의 대표라니.
“그쪽 업계에서는 별것도 아니야. 저곳에는 10대 백만장자도 수두룩해.”
-아작, 아작!
문이사는 미팅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모양. 아까부터 쉬지 않고 쿠키와 스낵 같은 것을 씹고 있었다.
“자네도 먹을 텐가?”
“괜찮습니다.”
나는 오히려 긴장하면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다.
‘딱히 긴장한 것도 아니고.’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끝냈다. 중요한 바이어를 앞에 두고 통역이 필요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홍기도와 함송희에게 부탁한 작업도 무사히 전달받았고 문이사에게 컨펌도 끝났다.
“그런데 굳이 복셀아트일 필요가 있었을까?”
문이사는 뭔가 미련이 남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소켓몬스터를 레퍼런스 삼기로 결정했다면, 애니메이션까지 고려해서······.”
이미 컨펌이 끝났음에도 문이사는 일말의 불안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는 3D픽셀 기법으로 만들어진 다람쥐 형태의 스마트폰, 강아지로 변한 모니터 등의 컨셉 디자인을 거듭 살펴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후발주자입니다. 차별성이 필요하죠. 그리고 고퀄리티의 복셀아트는 근래 핫한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조립식 블록게임이나 블록크레프트 류의 게임에 얼마나 열광하는지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국 설화의 도깨비는 여러 가지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물건에 빙의하는 형태에 주목했다.
복셀아트로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그래픽에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들에 도깨비가 빙의하여, 다람쥐나, 강아지 같은 펫의 형태를 이루는 것.
“그리고 당장 AAA급 게임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개발이 용이한 복셀아트 방식은 어필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믿어야겠지.”
-아그작!
문이사는 결국 미팅장소에 도착할 때까지도 쉬지않고 스낵을 씹었다.
“도착했습니다.”
“다 왔군.”
문이사는 즉시 물티슈를 이용해 손과 입을 씻고 옷매무시를 정돈했다.
단순히 그것뿐인데도 묘하게 눈빛마저 달라 보였다.
‘전투 모드 돌입인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문이사의 전신에 흐르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가지.”
“예.”
나와 제임스가 문이사 보다 한발 물러서 그의 좌우에 나란히 섰다.
“흠.”
문이사는 잠시 우리를 돌아보고는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맥베스에서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가시죠.”
대기 중이던 베타코인의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 넓지 않은 회의실에는 우리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A사와 B사의 일원들이 먼저 자리해 있었다.
‘A사는 경마 게임, B사는 수집형 카드 게임이라고 했지?’
두 회사 모두 한국 시장에서 서비스 하지 않는 탓에 들은 적 없는 회사들이었다.
‘다들 눈에 날이 바짝 섰네.’
경쟁사 중에서 상대적으로 체급이 가장 큰 우리인지라, 양사 모두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 날이 바짝 세워진 상황.
“하하, 모두 먼저들 와계셨군요. 반갑습니다. 맥베스의 문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모두는 자리에 앉았다.
‘모두 테스트 빌드를 준비해왔구나.’
체급이 크다고 해서 유리한 협상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를 제외한 양사는 우리보다 먼저 베타코인과 접선했었고, 그들의 니즈에 맞춘 게임 개발에 착수한 상황.
‘그에 비해 우리가 가진 것은 컨셉 기획안뿐.’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문이사 덕분에 자금에서는 다소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황.
하지만 대개의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보다 우수한 비전을 지닌 파트너를 원한다면 자금력은 그리 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상대방 측이라고 헐값에 후려칠 계획도 아닐 테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베타코인의 젊은 CEO 사이프 바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린팅 된 청바지에 스니커즈. 외모만이 아니라 패션에서도 젊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를 제외한 이 자리의 모두가 슈트 차림임이었기에, 그의 스타일은 더욱 부각 되었다.
“베타코인의 대표 사이프 바수라고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그가 등장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일순 달라졌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날카로운 포식자의 송곳니가 엿보이기 시작한 것.
베타코인과의 협상에 사활을 건 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는 거다.
“모두가 알고 계시다시피, 저희는 아직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확실한 비전으로 우리에게 빛나는 미래를 약속해줄 파트너를 찾고 있습니다.”
사이프의 말에 모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
이제 결전의 막이 오를 때.
“NFT 시스템과 게임의 결합에 있어, 우리 회사가 개발 중인 경마 게임은 가장 확실한 시너지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시작은 A사의 경마 게임. 그들은 사전에 준비한 개발 영상을 프로젝트에 띄워놓은 상태에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아시는 대로 경마 게임인 경주와 육성 두 가지에 포커스가 집중된 게임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손수 키운 말에 대한 애착은 다른 게임의 일반적인 아이템에 비해 유저의 애착이 남다르지요.”
확실히 경마 게임에 육성 빼면 남는 게 없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경주마를 키우는 이 심플한 시스템의 매력은 확실하다.
“더구나 캐시 수급에도 경마 게임에 열중하는 고래들의 자금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여기에 혈통서처럼 NFT가 붙는다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훌륭하겠습니까?”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브리핑이었다. 확실히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다. 하지만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것이 100점 만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경마 게임에 대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경마 게임은 확장성이 부족합니다. 본사의 게임은 카드 수집형 게임입니다. 당연히 시장성과 수익성 약쪽 측면에서 보다 확고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요.”
뒤이어 B사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TCG(Trading Card Game)는 과거 스포츠 선수들의 이미지를 입힌 상품에서 출발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확고한 안정성을 동반한 상품이란 것을 아실 것입니다.”
확실히 TCG 역시 NFT 시스템과는 찰떡 궁합이다.
“TCG 시장의 핵심 요소 중에 하나인 한정판.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일본이 자랑하는 만화 원작의 장수 TCG에 한정판 혹은 프리미엄 카드 같은 경우에는 100억원이 넘는 가격이 측정될 정도.
확실히 체급에 있어서 경마 게임은 TCG에 비할바가 되지 못한다.
브리핑 시점만 해도 자신만만하던 A사 인물들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상대적으로 B사 인물들의 얼굴은 의기양양하게 변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임스는 통역을 멈추고 내게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양쪽 모두 강력한 카드네요.”
“하지만 당신의 기획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그렇죠?”
말해 뭐하나? 나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우리가 한발 늦은 탓에 브리핑에 사용할 게임 시연 영상조차 준비하지 못한 반면, 이점도 있었다.
우리는 사전에 상대방의 카드를 꿰고 있었고 그에 맞춰,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만한 컨셉 기획을 준비했다.
경마? TCG?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그게 소켓몬하고 상대가 되나? 소켓몬 프렌차이즈의 수익은 1,000억 달러를 초과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마게임과 TCG를 합쳐도 소켓몬의 아성을 뛰어넘기 힘든 수준이지 않나?
비전이란 큰 스케일 역시 한몫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마지막이군요.”
경쟁사들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 우리의 턴이 돌아왔다.
좋은 기획도 확실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문이사만 잘하면······.’
모두의 시선이 문이사에게 집중되었다.
‘왜 가만히 있지?’
내가 문이사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노도처럼 거침없는 성정으로 언제 어느 때고 브레이크 따위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문이사가······.
“······.”
침묵하고 있었다.
‘이건 뭐랄까······.’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조부모님 댁에서 기르는 덩치 큰 개의 모습.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낯선 사람을 향해 짖어왔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것이 통용되나?
굵은 사슬과 입마개가 덧씌워지고 자신이 옳다 믿었던 행동에 질책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실패하면 미국지사에서의 영향력이 모두 사라질지 모르는 백척간두에 오른 상황.
이건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
“문이사님.”
“······.”
“젊었을 때는 미친개라고 불리셨다고 들었습니다.”
“?!”
일말의 불쾌감과 당황. 마치 이런 상황에 왜 그런 말을 꺼내냐는 것 같은 눈빛.
“양실장은 문이사님께 배울 점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이사님은 그래 봬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학습 교재로 부족함이 없지요. 원래 공부는 여러 과목을 두루, 신경 써야 하지 않습니까?’
순간 출장을 떠나기 전, 양실장이 내게 해준 조언이 떠오른다.
‘기어를 올리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이 칭찬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그리고 문이사는 그 효과가 남들 보다 배는 크게 작용하는 타입일 것이다.
“만약 실패하신다면, 본사에서 저희와 함께하시면 됩니다.”
일말의 담보까지 쥐여 준다. 물론 이것은 약간의 도발에 가깝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딜 미터기가 멈춰있는 딜러를 어디에 가져다 쓰겠나?
“꼬리 내린 개꼴로 그럴 수는 없지. 나 문상훈이가 그런 남자로 보이나?”
그래, 불붙었다. 그래야지!
문이사의 시선이 내게서 멀어져,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굳건히 닫혀있던 입이 열린다.
자신을 묶고 있던 사슬을 끊고 어금니를 드러내는 순간!
“······작아.”
“?”
브리핑을 자리로 이동하지도 않은 상태로, 문이사가 내뱉은 뜬금없는 한마디.
“나 문상훈이가 모두에게 충고하나 하지.”
이건 통역도 필요 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와, 이건 정말 대박이다.
영어로도 자기 이름을 언급하는 습관이라니!
브리핑 자리에서 이런 방만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 보다 나는 이 부분이 더 놀라웠다.
“Can not see the wood for the trees(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유명한 격언을 시작으로 문이사는 브리핑을······.
아니, 자리에 앉은 채로 광역 딜을 시전했다.
“경마 게임에 NFT 붙인다? 그래서 뭐? TCG 한정판매? 그게 뭐?”
일말의 매너도 찾을 수 없는 오만한 말투로 상대 회사의 브리핑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이게 문이사의 방식인가?’
경쟁이라기보다는 물어뜯는 싸움에 가까운 말투와 태도.
경쟁사들의 얼굴에 불쾌감이 서렸다.
본사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미친개라도 불렸다던, 그 기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사이프 비수는?’
나는 사이프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표정에는 불쾌감보다는 흥미가 떠올라 있었다.
젊음의 객기일까? CEO로서의 안목일까? 어쨌든 문이사의 패기가 먹히고 있다.
‘확실히 이것도 배울만한 점이 있네.’
다른 것은 몰라도 좌중의 이목을 완벽하게 휘어잡는 것에는 성공하지 않았나?
장담하건데, 지금 이 순간 사이프의 머릿속에 이전 경쟁사들의 브리핑 내용 따위는 깨끗이 지워졌으리라.
“나는 깨작깨작 돈 몇 푼 더 버는 일에는 관심 없어! NFT와 블록체인은 게임업계의 미래 그 자체야! 나 문상훈이는 이걸 발판으로 단순한 게임을 너머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생각이다!”
와, 이거 너무 세게 나가는데? 이 상태라면 말 토씨 하나만 어긋나도 기세 붕괴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미 장내는 완벽히 문이사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모두가 숨죽여 그의 다음 말만을 기다릴 뿐!
-띠링!
[표세인은 하울링(광역 도발)을 습득했다.]
“육성에 시너지 효과? TCG의 프리미엄카드? 고작 그정도 생각 밖에 못하나? 내가 이런 상대들을 상대하려고 머리를 쥐어짰어야 했어?”
문이사는 정말로 화난 것처럼 이까지 빠득빠득 갈기 시작했다.
‘저거, 연기 맞죠?’
‘어느 정도 계산은 있겠지만······. 반쯤 진심일 겁니다. 저게 미스터 문의 단점이자, 장점이지요. 쯧, 프레젠테이션은 우리가 맡아야겠군요.’
제임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이동했고, 나 역시 그 뒤를 쫓았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빙빙 돌리지 말고 그쪽이 준비한 카드나 꺼내 보시죠?”
어디 얼마나 대단한 것을 준비해왔는지, 한번 보자.
경쟁사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의 기획안의 흠집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육성과 수집? 우리는 전부 다 한다! 보여주지, 이게 나 문상훈이가 가져온 비전이다!”
문이사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우리는 화면에 복셀아트로 만들어진, 깨비몬의 컨셉 디자인을 선보였다.
“보이나? 저 귀엽고 창의적인 디자인이? 아이들을 시작으로 어른들까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펫으로 모두와 함께 숨 쉬고 정을 나누게 될, 디지털 펫이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디자인에 대해 우려를 떨치지 못했으면서도,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런 뻔뻔함이야 말로 문이사가 지닌 최고의 장점.
모두가 복셀아트로 만들어진 컨셉 아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순간.
문이사는 쐐기를 박았다.
“우리는 그냥 게임에서 머물 생각 없어! 미디어 믹스와 캐릭터 상품 산업까지 전부 삼킨다. 이게 바로 ‘깨비몬’이다! 나는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페러다임을 창조한다!”
문이사의 송곳니가 흐름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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