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64화 (64/346)

64.

“소, 소켓몬?”

누군가가 전설이 되어버린 타이틀을 언급했다.

몬스터를 포획하고 그들을 육성해 싸운다는 단순한 시스템.

귀엽고 다양한 컨셉의 몬스터 디자인이 알파이자, 오메가.

그리고 그 심플한 방식만으로 미국의 신화라 불리는 스타워즈와 마블 코믹스를 합친 수준의 천문학적인 매출을 기록한,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전설 그 자체.

소켓몬스터를 레퍼런스 삼은 게임으로 NFT와 블록체인의 가치를 폭증시킨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이대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경쟁사들의 공세가 시작 되었다.

“말은 쉽지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소켓몬스터의 아성에 도전한 작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않습니까? 실현 가능성 없는 비전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들 발표 때, 저런 트집 따위는 잡지 않는데······.

하지만 이해한다. 오죽하면 저러겠나?

압도적인 비전과 모두를 물어뜯는 문이사의 프레젠테이션.

이 두 가지 요소를 그냥 놔두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자신들을 집어삼킬 것을 예상한 것.

“······당신들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그런 보잘것없는 포부를 비전이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문상훈이는 달라.”

문이사의 딜링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만, 이제 그만 요점이 듣고 싶습니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소켓몬입니다. 차별점과 강점. 그리고 우리 회사의 시스템이 결합 되었을 경우에 발생할 시너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시아프 바수는 결코 요점을 놓치지 않았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이 나이는 중요치 않다. 타고난 그릇과 그 안을 채우는 경험.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완성도가 중요할 뿐.

“지금부터 하지. 세인.”

이 타이밍에 내 이름을 부른다고?

“예스.”

나는 어색한 영어로 대답했다.

‘이게 내 스타일이야. 나는 플레이어가 아닌 감독 스타일이지.’

‘아니, 플레이어로서도 충분하셨습니다.’

분위기를 이 정도까지나 달궈놓는 퍼포머로서의 자질.

하지만 그러면서도 효율을 중시해, 아군에게 마이크를 건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좋다. 문이사 오늘 멋있다. 그렇다면 내가 판을 깰 수야 없지.’

파티원이 딜미터기를 부수고 있는 상황에서 신나지 않을 탱커는 없다.

나는 제임스에게 눈짓했다.

제임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통역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저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통역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제임스는 차분한 어조로 내 말을 통역했다.

“우선 소켓몬스터와 깨비몬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유니크한 나만의 펫을 만들 수 있단 것입니다.”

“나만이? 그 많은 유저들이 모두 유니크한 디자인의 펫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디자이너를 대체 얼마나 고용할 생각이지? 타산이 안 맞잖아.”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프로젝터에 출력된 복셀아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것이 우리가 복셀아트로 방향성을 잡은 이유입니다. 각 파츠별로 독자적인 오브젝트 정보 값을 지정하여, 디자이너가 일일이 그려낼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래밍을 짜 넣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죠.”

그리고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너무 손쉽게 공격을 막아내자, 경쟁사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공격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투박하잖아!”

“아이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겠어?”

약하다. 너무 약해서 간지럽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블록크레프트 역시 복셀이며 보시다시피, 저희의 복셀은 훨씬 입자가 작아서 정교합니다.”

블록크레트프 이름까지 나왔다. 여기에 토를 달면 그 사람은 게임업계 사람이 아니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소켓몬이 지닌 강점 중은 우수한 미디어매체 전환을 통한 파급력에 있습니다. 이점에 대한 대책이 궁금하군요.”

역시 사이프는 날카롭다. 하지만.

“컨텐츠 제작에 대한 기대치는 맥베스가 한국계 기업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들고 싶군요.”

“한국이라는 것이 강점이다?”

“K-드라마를 시작으로 영화까지, 이제는 세계 전체가 한국 컨텐츠 제작 능력에 주목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 물론 이것만으로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이 이상의 카드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헐리웃의 미친 제작비를 감당하겠나? 그게 아니라도 근래 들어 주춤한 일본 에니메이션 업계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스퀴즈 게임······.”

순간 낯익은 이름이 사이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와, 이거 진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구나.

“다음으로 방금 언급하신 스퀴즈 게임과 같은 영상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OTT(Over The Top) 서비스들의 경우 ‘선택형 미디어’ 시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건 함송희가 보낸 아이디어였다. 나도 잘은 모르는 개념인데, 단순히 시청하는 것을 넘어 시청자가 직접 플롯의 방향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깨비몬의 영상제작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이 점을 중점적으로 도입할 예정입니다.”

“선택지를 넣겠다는 겁니까?”

“그게 작품의 질에 어떤 효과가 있지?”

“아니죠. NFT 기술을 통해 자신만의 유니크한 펫을 소유한 유저는 영상 시작 부분에 고유 코드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영상 중, 등장하는 펫을 시청자의 펫으로 대체시키는 겁니다.”

“어?”

“이 부분은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마치 광고처럼 팝업 기술을 적용하는 등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상상의 영역이다. 이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그리고 후속타가 들어오지 않도록 곧바로 화제를 전환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NFT라는 것은 결국 디지털 인증서입니다. 게임 안에 국한한다면 사실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결국은 외부로의 확장성! 그 지점에 NFT 기술의 진정한 가치가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순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시아프가 주먹을 꽉 쥐는 그 장면을!

결국, 그가 바라는 것은 NFT 기술의 미래, 그리고 참신한 활용 방안이 아닌가?

“소, 소켓몬은 인형과 완구, 그밖의 악세서리 같은 현물 시장에서의 파급력도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경쟁사들은 이제는 그저 논조를 흐려서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미 내 칼끝은 그들의 목에 닿았다.

살짝 힘만 주면 그들은 나무판자 아래로 떨어져, 상어 떼의 먹이가 되어야 할 위기인 것.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역시나 복셀 아트의 가치가 입증됩니다. 유니크한 디자인이라도 결국은 복셀! 근래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3D프린트 기술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차별성 있으며, 상품성 있는 제품들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질문이 들어오지 않는다.

원천봉쇄.

캬, 이 순간이 바로 탱커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기쁜 순간 아니겠나?

하지만 늘 그렇듯이 탱킹의 끝은 딜탱이다. 적의 체력이 바닥난 지점에는 매서운 딜링으로 상대의 숨통을 끊어야 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저희 게임은 복셀아트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뭐요?”

“소켓몬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약점은 턴제 전투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복셀아트. 충분히 블록크레프트와 같은 샌드박스 형식의 자유로운 플레이 방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끝났다. 초토화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소켓몬에 이어 블록크레프트.

이 이상의 비전이 있다면 가져와라. 순순히 항복한다.

나는 문이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끝났습니다. 마무리해 주시지요.’

‘왜? 본인이 마무리해도 될 것 같은데?’

‘승전보고는 지휘관의 몫, 아닙니까. 저 그렇게 개념 없는 놈 아닙니다.’

이 판은 어디까지나 문이사의 무대다. 오늘만큼은 나는 그저 문이사의 장비 1에 불과하다.

그리고 곧 제임스를 본사로 데려갔을 때, 문이사가 받을 데미지를 고려할 때, 이 정도 비위 맞추기는 필요하겠지.

‘그래. 자네는 정말 멋있는 남자로군.’

‘?’

문이사의 마지막 눈빛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되물을 새도 없이 문이사가  가볍게 손뼉을 치는 것으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이제 브리핑은 충분한 것 같군.”

문이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서 문이사에게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지.”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린 문이사는 정확히 사이프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우리는 다른 회사가 제시한 입찰액 보다 정확히 10% 아래로 제시하겠소.”

순간 희비가 엇갈렸다. 경쟁사들의 얼굴에는 일말의 희망이 생겼다는 표정이었고, 제임스는 달갑지 않다는 기색.

“우리가 이 정도까지 준비를 해왔는데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상대라면, 나 문상훈이가 손을 뻗을 만큼의 가치는 없지. 연락은 내일까지 기다리지. 내일이 지나면 협상은 결렬된 것이라 생각하겠소. 그럼, 이만.”

문이사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제임스와 함께 몇 가지 자료와 물건들을 챙겨서 다급히 뒤를 쫓았다.

‘모두······. 당황하고 있군.’

과연 이 블러핑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계획안 수준에서야 그럴듯한 답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직 실행조차 옮기지 못한 단순한 계획.

그에 비해 자금 싸움은 현실이다.

만약 안정 지향적인 사람이라면, 오히려 우리의 계획의 규모에 기쁨보다는 경계심을 가질 법도 하다.

“악수입니다. 굳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임스는 문이사에게 탐탁지 않은 심정을 전했다.

확실히 제임스 입장에서는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바로 얼마 전, 무리수까지 감수하며 계산기를 새로 두드리지 않았던가?

“이것도 유혹의 한가지 방식이지. 이건 분명히 효과가 있어.”

“효과가 있더라도 굳이 리스크를 더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자네는 이런 부분이 부족해.”

“?”

“재무재표를 읽고 플랜을 정돈하는 일에서 자네 보다 능숙한 사람은 거의 없지. 하지만 협상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이런 부분은 세인에게 좀 배울 필요가 있겠어. 안타깝게도 나와 자네는 서로에게 배움을 공유하는 그런 관계는 못되었으니까.”

문이사는 조금 착잡한 표정이었다.

“잠깐 기다리시죠.”

“?”

뒤를 돌아보니, 사이프가 살짝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느라 시간이 조금 늦었습니다.”

“그렇게 늦지는 않았습니다. 안목이 있으신 분이라서 다행입니다.”

문이사의 말에 사이프는 피식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 브리핑 중간에 이미 마음을 굳혔지만, 다른 분들께 결례가 될 것 같아서 밝힐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확실하게 가부를 전달해 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 사이프의 선택을 기다리던 포지션에서 이제는 사이프에게 훈수를 두는, 입장에 서버렸다.

“나온 김에 이대로 밖으로 나가시죠. 식사라도 하면서 계약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러시죠.”

문이사와 사이프는 보조를 맞춰 앞으로 나갔고 나와 제임스는 그것을 지켜보며 자리에 서있었다.

아마, 제임스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지난번 대화에 대한 결판을 내야 할 시점임을 깨달은 것.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까? 언제나 시험장이 수험생을 찾아오는 법은 없지요.”

제임스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사실 내심 그럴 것을 예상하였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어쨌든 퀘스트 클리어다! 나는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질문이요?”

“회장님과는 무슨 관계이신 겁니까?”

“관계?”

갑자기 이건 무슨 소리지?

“게임은 즐거우십니까?”

예상 못 한 폭탄이 터져버렸다.

< 인남캐와 감정교류 따위는 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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