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역시 뭔가 이상해.’
홍기도는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사내 여신이라 칭송받는 미인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
하지만 예전부터 느꼈던 위화감이 이번에도 역시 홍기도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왜지? 이럴 리가 없는데?’
한눈에도 감탄할만한 미인이다. 취향 문제? 외모에는 레벨이라는 것이 있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취향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조연아의 미모는 홍기도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여성을 통틀어도 단연코 탑클래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끌리지?’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위화감이 확신으로 바뀐다.
이 느낌은 마치 가족 같달까?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 엄마, 아들 이상해졌나 봐.’
홍기도는 속으로 울먹였다.
홍기도의 속내가 어떻건, 주변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새침한 표정으로 무장한 조연아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 긴장감의 원인은 바로 양성태였다.
‘대체 왜 이 시점에······.’
조연아가 조양길 회장의 막내딸이자, 비서라는 포지션을 이용해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아는 기밀 사항이었다.
양성태가 바짝 긴장하니, 덩달아 한명수 역시 눈치를 살피고 있는 상황, 결과적으로 홍기도까지 딴생각에 정신이 팔린 탓에,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연아는 준비해온 기획서를 꺼내 들었다.
“표팀장이 미국에서 작성한 기획안입니다. 이것으로 베타코인과의 파트너쉽을 성사시켰고, 곧 전사차원의 지원이 집중될 유례없는 대규모의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입니다.”
“!”
영어도 못 하는 상태로 건너간 미국 출장.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런 어마무지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양성태는 테이블 아래서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믿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아니 그 이상의 희소식이었다.
“이거 규모가 만만치 않겠군요.”
선발주자는 언제나 큰 리스크를 짊어지기 마련이지만, 후발주자 역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레퍼런스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전설적인 타이틀인 소켓몬이 아닌가?
찔끔찔끔 간을 보며 시장에 뛰어들어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시작부터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을 압도할 레벨의 블록버스터로 키워야 한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회사로서도 캐릭터 산업을 동반한 프로젝트는 처음이기에 여러모로 난항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성공했을 경우의 파급력은 기존의 프로젝트들과는 궤를 달리하겠지요.”
무려 100조가 넘는 전설의 뒤를 쫓는 일대의 프로젝트다.
절반만 성공해도 50조.
이것은 맥배스 시가 총액의 2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런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굳이 조연아를 보낸 조회장의 심중은 무엇인가?
‘설마? 이 시점에 데뷔인가?’
양성태의 얼굴에 다시금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 시점에 후계자의 등장이 과연 어떤 효과로 작용하게 될 것인가?
“그런데 조비서님께서 이렇게 저희를 찾아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러 오신 것은 아닐 테지요?”
양성태의 질문에 조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실장님께 말씀드려야 할 사안이 생겨서요. 저는 곧 사업부로 이동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포지션은 제가 담당하던, 사업부 실장직을 담당하시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제 조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후계자로서의 진면모를 드러내겠다는 선언.
‘내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의 반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회장 전담 비서와 사업부 실장의 위치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비서실 외에는 다른 타이틀이 없는 젊은 여성이 단숨에 사업부의 실장자리에 앉는다는 것에 구설수가 없을 수는 없다.
‘공표가 되면······.’
조연아가 조회장의 딸이라는 것이 회사에 알려지면 회사내부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찾아올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보시다시피, 사업부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될 테지요. 그 역할을 제가 맡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사차 양실장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일단 축하드리는 것이 순서겠지요. 조실장님.”
“아직 정식 발령 전입니다. 그냥 조비서라고 불러주세요.”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던 한명수는 그저 멀뚱히 눈만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장과 곧 실장으로 진급한 인물간의 대화다.
팀장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캐릭터가 하나 있었다.
“조연아······. 회장님 따님이세요?”
“헉!”
홍기도의 말에 한명수는 급히 숨을 들이켰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나 젊은 여성을 대뜸 실장자리에 앉히는 이유가 그것 외에 뭐가 있겠나?
“네. 맞아요.”
조연아는 이제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 대박!”
홍기도는 그 말을 끝으로 즉시 스마트폰의 키패드를 두들겼다.
홍기도 : 대박, 사건! 비서실 여신이 아버지를 숨김! 조비서님이 회장님 딸이래!
남궁원 : 아,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조씨였네.
함송희 : 듣고 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기대 이하의 반응이었다. 남궁원이야 원체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캐릭터고, 함송희는 아직 사내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할 짬밥이 아니었다.
‘팀장님 뭐하고 계십니꽈! 이런 빅이슈를 들었으면, 냅다 한우를 앞세우고 썰 좀 풀어보라고 딜을 하셔야 할 것 아닙니꽈!’
홍기도는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남궁원 : 근데 커피 안 가져오냐?
홍기도 : 지금 그게 중요함?
함송희 : 성과장님이랑 차대리님도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홍기도 : 내가 왜 남자들에게 커피를 사다 바쳐야 하지?
남궁원 : 니가 사온다매!
홍기도 :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큰 인물이라는 증거!
남궁원 : 미X놈.
홍기도 : 넌 나보다 싸움 잘하게 생긴 걸 다행으로 알아라.
남궁원 : 뭐래, 미X놈아. 아무튼 너 거기서 밥 먹는다는 거지?
표세인 : 다들 밥은 먹었어?
남궁원 : 팀장님!
함송희 : 거기는 지금 한밤중이죠?
홍기도 : 제 메시지 못 보심? 비서실 여신이 회장님 딸이라니까요?
표세인 : 기도야.
홍기도 : 네! 저는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한우만 약속하신다면 이 극비 정보를 포함한 자세한 디테일을 설명드릴······.
표세인 : 입단속하고 있어라, 나 내일 들어간다.
홍기도 : 라져.
표세인 : 그리고 늦게라도 성과장이랑 차대리에게 커피 사다 주고.
홍기도 : 음······.
표세인 : 나 아직 한우 안 샀어. 방심하지 마.
홍기도 : ㅇㅋㄷㅋ.
표세인 : 다들 내일 보자.
남궁원 : 내일봬요!
함송희 : 조심해서 오세요.
홍기도는 그제야 스마트폰에서 눈을 뗐다.
“그래서 저희 쪽 생각으로 새로운 스튜디오는 보다 독립적인······.”
“여러 가지를 여건을 고려할 할 때, 표팀장의 직급상······.”
양성태와 조연아는 곧 발족하게 될 신규팀에 대한 논의에 여념이 없었다.
“넌 뭐하냐?”
할 일이 없는 한명수가 넌지시 홍기도에게 물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홍기도의 말에 양성태와 조연아가 대화를 중단하고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지금 표팀장과 대화했습니다.”
“어?”
표세인이 언급되자, 모두가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
“뭡니까? 그 준비라는 것은?”
양성태는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다른 이들의 평가야 어떻건 표세인의 오른팔인 홍기도가 아닌가?
자신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중요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영식!”
“네?”
“출장 다녀왔으니, 환영식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화, 환영식?”
“메뉴는 한우로 가는 겁니다. 팀장님, 소고기 엄청 좋아해요!”
홍기도는 전에 없던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홍기도가 다소 엉뚱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조연아 앞에서 이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파벌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연아의 눈에 어찌 보일 것인가?
양실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조연아의 눈치를 살폈다.
‘어? 웃어?’
양성태는 조연아와 오랜 친분이 있었다. 처음봤을 때부터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였고, 지금까지도 쭉 그대로였다.
‘이런 웃음을 짓는 아이였나?’
그가 과외 선생으로 조연아와 처음 만났을 당시, 조연아는 부모님 문제와 학업 스트레스로 가시를 바짝 세운 상태였었다.
이후, 회사에서 만났을 때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라도 빈틈없는 모습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양실장은 조연아가 이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홍대리님.”
“네.”
“표팀장님 환영회, 잘 준비하실 수 있으신가요?”
“훗,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군요. 저 홍기도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쪽에서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업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지.”
한명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무시.”
“뭐?”
“무시.”
“크큭. 재미있네요. 이거 받으시죠.”
연아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업부로 이동하는 첫 업무네요.”
“하명하시지요.”
홍기도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공손히 카드를 받았다.
“표팀장님 환영식, 화끈하게 해주세요.”
“회장님 따님의 지시이니······. 한도액 같은 것 걱정 안 해도 되죠?”
“나중에 표팀장님께 확인할 테니까, 제대로 해주세요.”
조연아는 피식 웃었다.
‘이, 이런 게 요즘 세대 느낌입니까? MZ세대란 느낌?’
‘저도 한팀장님과 같은 세대 아닙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외로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양실장과 한팀장은 눈만 껌뻑였다.
*
*
*
“정말 이거면 되겠어? 첫 출장인데, 더 사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문이사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여기서 더 사면 들고 가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만약 돈이 문제면······. 내가 내준다니까? 이번에 세인이 일 잘해줬으니, 보답도 하고 싶고.”
아니, 정말로 돈 문제 아닙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동안 맛있는 음식들 대접해주신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정말로 하나 같이 어찌나 맛있던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다른 것보다 그게 좀 아쉽네요.”
내 말에 문이사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확실히 식도락에 관심이 많은 타입이다.
“이제 좀 가까워지나 싶었는데, 벌써 이별이라니 아쉽네.”
“하하, 우리 같은 회사 직원 아닙니까. 영영 이별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사님 목표는 대표 자리 아니십니까?”
“나야 그런데, 자네가 불안하지.”
“제가 불안해요?”
“혹시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라도 받고선 홀랑 사라질까, 걱정된달까?”
나는 문이사의 말에 크큭 웃었다.
“그럴 일 없습니다.”
“정말로?”
“네, 정말로요.”
우리 회사 사람 전부 이직해도, 저는 그럴 일 없습니다. 마음 놓으시죠.
“어쨌든 돌아가서, 우리 깨비몬 잘 좀 부탁할게.”
“그런데 그거 정말 제가 맡게 되는 것 맞습니까?”
솔직히 비전을 제시라하는 말에 조금 과한 기획을 냅다 투척한 것은 사실이다.
일단 먹고 보자는 마음에, 걱정 없이 투척한 기획을 정말로 내가 개발하게 될 줄이야.
“이미 회장님과 이야기 끝냈어. 혹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면 다른 계획이라도 생각하고 있던 거야?”
문이사가 답지 않게 우려 섞인 눈빛을 보냈다.
솔직히 다른 계획을 고려 중이긴 했는데, 사실 이거야 뭐가 문제겠나?
월급쟁이야, 까라면 까는 거지.
“아닙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개발을 이끌어 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도 자네라면 잘 할 거야. 나 문상훈이가 보증한다고!”
“어? 약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아하하하, 이제야 우리가 조금 통하는 구만!”
이제 문이사를 구슬리는 것도 익숙해졌다.
“제프리 녀석들도 많이 아쉬워하던데.”
“나중에 볼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단순한 직감 같은 거랄까? 왠지 미국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간 됐습니다. 출발하죠.”
제임스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가라고, 그리고 제임스. 세인을 잘 부탁해.”
반대로 말해야 하지 않나? 뭐랄까 지난번 일 이후, 문이사와 제임스의 관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커스 따위에게 밀려나지 마십시오.”
“하! 나 문상훈이를 뭐로 보나? 베타코인 먹었으니, 이제 승기는 내꺼야! 다음에 볼때는 센터장이다.”
제임스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다. 조금 딱딱한 느낌이지만, 문이사도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내 오른팔까지 내줬으니, 깨비몬 반드시 대박 내 줘야 해.”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문이사는 마지막으로 내 팔을 툭툭, 두드리고는 등을 돌렸다.
“아, 그런데!”
“?”
내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한국에서는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보통 직급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생각해보니, 제임스의 정확한 직급만이 아니라 이름도 모른다.
“제 포지션은 아마······. 본사 직급 체계에 맞추면 부장쯤 될 겁니다.”
부장?!
“부, 부장님?”
나보다, 어려 보이는 탓에 비슷하거나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부장님이셨습니까?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다소곳이 포개진다.
팀장 따위가 부장급에게 테스트 운운했었다니!
“직급 따위에 연연하는 것은 한국의 악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제가 테스트받을 차례이지 않습니까?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저는 표팀장님의 어시스트에 전념할 뿐입니다. 그냥 팀원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띠링!
[+3 빙결검을 획득하셨습니다!]
화염검(하부장) 다음에는 빙결검(제임스)? 어째 부장급들은 죄다 속성템이네······.
< 여기는 회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