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70화 (70/346)

70.

함성준.

대학 시절 선배였던 조양길과 함께 게임 동아리에서부터 지금의 맥배스를 일궈낸, 창업 공신.

타고난 대장 기질이 있어, 젊은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을 아우르고 이끄는 일에 능했다고 한다.

덕분에 회사 창립이래, 외부 일정으로 바쁘게 나다니던 조양길 회장을 대신해 사내의 기강을 잡고 진두지휘를 도맡아 왔더랬다.

그리고 현재 자연스럽게 맥배스 최대 파벌인 전무군단의 수장이 되었다.

‘오늘은 개발자들만 모이는 자리인가?’

재무팀의 고부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함전무 파벌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고부장뿐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자, 한잔하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술잔부터 돌리는 사람.

때때로 술자리에서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을 때가 있다.

“다들 잔 들어.”

가벼운 식사제안이라고 생각했던 자리는 사실상 전무군단의 회식 자리.

아니, 어쩌면 항상 이런 느낌으로 식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음식 나오기 전에 3잔 정도는 비우고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하하, 맞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음주 시작부터 템포가 빠른 경우가 많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비웠다.

“자, 받게.”

음식이 나오기 전에 3잔 정도는 비워야 한다는 말은 정말이었던 모양.

함전무는 잔이 비워지기가 무섭게 내 잔을 채워준다.

초대 받은 객이란 입장 때문일까? 나는 쟁쟁한 상사분들을 대신해 함전무의 옆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테이블 끝에서 나를 향해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마팀장의 눈빛이 신경 쓰인다.

‘나도 달갑지 않은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이런 자리에서 전무 옆자리는 달갑지 않다.

“제가 한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아니, 오늘은 표팀장에게 한잔 받고 싶군.”

“예.”

나는 함전무에게서 술병을 건네받아 공손히 잔을 채웠다.

“자, 다시 건배.”

연거푸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 음식 나와버렸네. 하하하.”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피치를 올렸어야 했는데.”

이름 모를 임원이 함전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아까 했던 말인데, 벽조목 주사위. 그거 어떻게 좀 안 되겠나?”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님 친구분께서 만들어주신 물건인데. 다시 구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제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딱히 어떤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정말로 몰라서 한 대답이다.

애초에 그 주사위는 나도 모르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회장님은 되고, 나는 안 된다?”

뭐지? 말에 묘하게 가시가 느껴진다.

“표팀장.”

“예.”

“군대 다녀왔지?”

“예.”

갑자기 군대 이야기?

“병은 말이지. 병끼리 구르는 법이야. 간부한테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곁에서 함께 일 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법이거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태클을 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임원 레벨이 함께 일한다고 여길 수가 있나?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저 부사관 출신이라서 병 생활은 잘 모릅니다.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나는 그저 경청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팀장, 그깟 주사위가 뭐라고! 전무님이 원하시는데 대답을 그렇게밖에 못하나?”

그깟 주사위라니! 우리 아버지가······. 그런데 내가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함전무가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별로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진다.

“그깟?”

“예?”

“지금 그깟 주사위라고 했나?”

“아, 아니 그게······.”

“내가 원하는 물건이 그깟 거야?”

“죄, 죄송합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체 아버지는 어떤 선물을 준비하신 거람.

그 주사위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물건이었나?

그보다, 고작 주사위 때문에 이사급 인사에게 눈을 부라리다니, 회장님도 그렇고 전무님도 그렇고······.

정말 취미에 진심이시구나.

“일단 알아봐 준다니, 고맙네. 정말로 꼭 좀 갖고 싶어서 그래.”

“확답을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제 선에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요.”

“좋아. 그거면 됐어. 자, 한잔하자고.”

템포가 정말 빠른데? 다들 평소에도 이런 템포에 맞춰서 술을 먹나?

지켜보니, 딱히 술을 남기거나 하는 사람도 없다.

설마 이 자리의 모두가 주당은 아닐 테고······.

다들 정말 빡세게 사는구나.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진급과 새로운 팀을 맡게 된 것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원래 좀 더 일찍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냉큼 미국으로 떠난 탓에 기회가 없었지. 너무 타박하지 말아 주게.”

딱히 축하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진짜 용건을 듣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건 마치, 보스를 상대하기 전에 미리 클리어해야 하는 기믹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술과 음식을 즐기는 것에 열중하자.

“자, 한잔 받게.”

정말로 멈추지 않는구나. 함전무는 말 그대로 술고래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 같다.

슬쩍 눈치를 보니, 다른 사람들은 슬슬 템포 조절에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템포를 맞추고 서서히 눈치를 보며 속도를 조절한다.

그래, 그래야지.

술고래 타입의 상사를 모시는 직장인들이라면 당연히 술을 조절하는 노하우 정도는 갖추기 마련이겠지.

“술, 잘 마시는군. 그래, 남자라면 이래야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젊고, 딱히 숙취도 크지 않은 운이 좋은 케이스라서 별걱정 없이 술잔을 비웠다.

“주량이 얼마나 되나?”

한국인이라면 대게 수도 없이 듣게 되는 질문. 그리고 난처한 질문이다.

“딱히 주량을 체크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이 친구 술 잘하나 보네? 그래, 술꾼들은 일일이 술병 세 가며 마시지 않지. 오늘 제대로 한번 취해보자고.”

함전무는 그와 동시에 곁에 있던 이이사의 어깨를 툭 쳤다.

“이이사, 오늘은 편하게 해줄 테니까. 저쪽에서 편히 마셔. 그리고 우리 중에 술 잘하는 친구가 누구지?”

“마팀장이 술 잘하지요.”

“마팀장, 이쪽으로 오지.”

“예.”

마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이사와 자리를 바꾸었고 이이사는 살았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한잔하자고.”

“이렇게 바로 다시 뵐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요.”

나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마팀장과 잔을 나누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에게 줄 선물이 있네.”

“선물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이번에 자네가 신규팀을 맡게 되었지 않나. 알다시피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서 향후 사내 입지가 크게 변하는 법이지.”

그렇겠지.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남들 다 아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걸까?

“마침 내게 좋은 아이템이 있네. 이거 다들 탐내는 아이템인데, 표팀장에게 선물로 주지.”

“저, 전무님!”

마팀장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술잔을 든 손이 덜덜 떨릴 정도.

하지만 함전무는 마팀장을 무시하고 내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할 뿐.

대체 무슨 프로젝트이기에 저러는 걸까? 하지만 그게 뭐든지 답은 정해져 있다.

“죄송합니다만 제 첫 프로젝트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알아.”

안다고? 알면서 지금 이걸 선물이랍시고 들이밀었어?

“회장님께 들었지. 문이사가 계획하던 안건을 자네에게 맡긴다며? 그 뭐더라?”

“소켓몬이라고 들었습니다.”

마팀장도 뭔가 들은 것이 있는 모양. 벌써 함전무 파벌까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 모양이다.

“그거 감당할 수 있겠나?”

“직장인이라면 응당, 부여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디어에 캐릭터 산업까지 이거 무리야. 국내 개발사 중에 이걸 해낼 수 있는 기업은 없어.”

확실히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까지 내가 맞장구를 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분명 쉽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회장님의 관심이나, 다른 제반 사항들을 제외하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처음부터 쉽다는 생각 없이, 오직 비전만을 담았다.

다소 허황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

“나는 두 번 제안하는 사람이 아니야. 잘 생각해 보게, 회장님은 걱정할 필요 없네. 내가 잘 설명해 드릴 거야. 게다가 내 선물을 받아들이면, 내가 직접 자네 뒤를 받쳐줄 거야.”

함전무는 빠르게 잔을 비웠고, 마팀장은 곧바로 잔을 채웠다. 잔이 채워지는 동안에도 함전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요즘 게임 개발은 개발실 홀로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야. 여러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력해가며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런 점에서 내 손을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겠지?”

반대로 말하면 제안을 뿌리치면 국물도 없다 이건가?

확실히 사내에 가장 강력한 파벌을 구축한 함전무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이템이 무엇이든 거의 확정적으로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번지수를 잘 못 짚으셨습니다.

저 회장님 지원을 등에 업은 상태거든요.

이번 프로젝트에 한해, 조회장은 나에게 퀘스트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뭘 의미하겠는가?

전폭적인 지원은 물론, 회사 차원에서도 필사의 각오로 이 프로젝트에 올인하겠다는 뜻, 아니겠나?

잘 만든 컨텐츠 하나가 회사의 수십년 미래를 책임지는 법.

깨비몬은 내가 착안한 아이디어라서가 아니라, 충분히 비전이 넘치는 좋은 기획이다.

“거절하면······.”

“?”

“술값 제가 내야 합니까?”

“크큭······. 푸하하하! 이 친구 물건인데? 안 그런가?”

함전무의 말에 마팀장은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갑자기 담배가 당긴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담배 연기와 함께 후련하게 뱉어내는 것이 좋다.

“후우.”

아직 팀 구성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그만큼 사내에서 눈에 띄게 되었다는 의미겠지.

두어 번 연거푸 연기를 내뱉으니, 머릿속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다.

항상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이 맛에 담배를 못 끊지.

“아주 세상이 자기 것 같지?”

“?”

돌아보니, 마팀장과 몇몇 인물들이 나와 있었다.

“담배는 기분 좋게 태우는 것이 어떠십니까?”

회사에서 한번,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투아웃이다.

딱히 직급도 같은 상대에게 참아주는 것은 쓰리 아웃까지 아니겠나?

뭐, 이것도 많이 봐주는 거지.

“네깟놈이 뭐라도 되는 것 같지? 어?”

술 세다며? 이 사람 이거 왜 이래?

“마팀장, 참아. 왜 그래. 안에 전무님도 계시는데.”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저깟 놈이 뭐라고!”

“어차피 저거 다 한때야. 전무님도 진짜로 저 친구에게 그 아이템 넘겨 주시려고 한 게 아니잖아. 아직도 전무님 마음을 몰라?”

뭐랄까? 예전에 송부장에게 찍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런 상황이었다.

옛 상사를 욕하는 송부장에게 맞장구를 치지 않은 탓에 분위기가 싸해졌고, 도망나온 나를 쫓아와서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데, 진짜 옛날일처럼 느껴지네.’

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성내는 마팀장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때, 와······. 지금은 세상 좋아졌지! 군대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것이 말이 되나? 그게 군대야?”

안으로 들어오니, 군시절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아, 이거 별론데.’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병 출신의 군대 이야기에는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나는 눈치껏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팀장 일행들도 착석했다.

마팀장은 자리에 앉고 나서도 여전히 나에게 고리눈을 보내고 있다.

‘아, 불편해라. 좋아. 너 쓰리 아웃. 하나만 걸려라.’

나는 마팀장을 적으로 설정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나도 널 불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나?

그런데, 여기 회가 참 맛나네. 고소한데?

부모님도 좋아하시겠네.

횟감을 질겅질겅 씹으며, 빨리 이 지겨운 술자리가 끝나기만 기다릴 때였다.

“나 때는 30개월이었어! 알아? 지금 군대가 몇 개월이라고?”

“글쎄요? 십몇 개월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군대야! 자, 한잔해! 마팀장.”

“네!”

“너 몇 개월이었어?”

“24개월입니다. 딱 2년 채웠습니다.”

마팀장의 말에 함전무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래!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지, 군대 다녀왔습니다. 할 수 있는 거지.”

“함전무님 말씀대로 2년도 안갔다온 요즘 세대들이 군생활이란 것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2년이나, 18개월이나······. 뭐 그리 차이가 난다고······.

잠깐? 설마 이 흐름이면······.

“표팀장은 군생활 얼마나 했지?”

함전무의 유치한 질문이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가만있자, 어차피 좋은 관계 유지는 글렀고, 마팀장도 마음에 안 들고.’

나는 잔을 비우는 짧은 시간 동안 컨셉을 정했다.

“함전무님 말씀이 옳습니다.”

“내 말이 옳다고?”

“군 생활 짧게 한 녀석들이 군대 운운하면 귀엽죠. 함전무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최소 3년은 해야지요.”

“그, 그렇지?”

내 멘트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함전무가 어색한 얼굴로 동조했다.

“그래서 표팀장, 군생활 얼마나 했다고?”

“4년.”

“뭐?”

“정확히는 4년 3개월 했습니다.”

부사관후보생 기간 3개월 합치면 특전사는 4년 3개월간 복무하게 된다.

나는 707특임대에서 그 긴 시간을 보냈더랬다.

“요즘 군대 너무 짧아요. 그쵸?”

에라, 모르겠다. 니들 다 같이 엿이나 먹어라!

군대 자랑도 상대 봐가면서 하는 거지.

-띠링!

[표세인은 광역 도발을 시전했다.]

< 마왕과 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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