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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78화 (78/346)

78.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기회를 손에 쥐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운동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은퇴를 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을 보며 절망하는 등.

하지만 그것은 사회에 나와서도······. 아니 바깥은 더욱 심했다.

원하는 직장을 손에 넣는 것. 그곳에서 원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수준의 일이 아닌가?

연아 덕분에 조회장과의 게임이 시작되고 이런저런 여정을 거쳐 현재에 도착했다.

깨비몬.

솔직히 내가 가장 선호하는 타입의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개발자로서는 더없이 흥미로운 소재다.

무엇보다 이것을 성공시키면······. 어쩌면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이것만으로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반대로 그것 외에 다른 것들은 그저 코웃음만 날 뿐이다.

“한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아이디어?”

“어쩌면 캐릭터 디자인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랄까?”

“그게 뭔데?”

연아는 귀를 쫑긋 세웠다.

“강력한 OST가 필요해.”

“OST?”

“한국이 또 노래 만드는 기술은 끝내주잖아?”

내 말에 연아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걸 잊고 있었네.”

“죠스 가족이 세계를 휩쓸었지. 우리도 시작은 그것으로 하면 어떨까 싶어.”

230억뷰를 달성한 강남스타일을 넘어선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한류 동요.

죠스 가족.

“아무리 낙관해도 소켓몬의 아성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지. 일단 노래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좋은 생각이네.”

뭐지?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뭔가 문제가 있어?”

“없어. 아주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그래서 조금 분해.”

“분하다?”

“오빠에게 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연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킬킬 웃었다.

“연아야.”

“왜?”

“장비 성능과 경쟁 하지 마. 넌 앞으로도 많은 무기로 무장할 것 아냐.”

“그래야지.”

“나도 네가 가진 무기 중에 하나야.”

“!”

경영자와 개발자는 엄연히 사고의 결이 다른 법이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연아의 몫이 아닌가?

더군다나, 최고 경영자라면 아랫사람들과 재주를 겨루겠다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다.

승부욕은 좋다. 하지만 승부의 방향성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장비는 날카로울수록 좋다. 고민해야 할 것은 그것을 어떻게 휘두를 것이냐는 것뿐.

“······그렇네. 맞는 말이야. 내가 좀 조급했던 모양이네.”

“마음껏 사용해. 나 나름 강화템 아니겠어?”

나는 킬킬대며 웃었고 연아는 그런 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오빠의 이런 점이 좋아.”

“어떤 점?”

“존경할 수 있는 점?”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무슨 존경씩이나.”

“헤헤, 우리 남친 멋져요!”

가끔 찾아오는 연아의 장난끼 모드가 발동했다.

“그, 그만해.”

연아의 정신공격은 너무 강력하다.

“나는 오빠가 부끄러워할 때가 좋더라. 이제 올라갈까? 장비 성능 좀 테스트해볼까?”

어? 그 테스트에는 +10강 버프가 걸리는데요.

*

*

*

한편, 표세인이 여자친구의 정신공격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표씨 집안의 막둥이 표세종은 깊은 고뇌에 잠겨 있었다.

“다, 다 떨어지다니!”

자신의 스펙에 자신은 없었지만, 설마하니 그 많은 이력서 중에 하나도 연락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표세종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어쩌지? 눈에 띄는 곳은 모조리 넣었는데······.”

표세종은 다시금 취업사이트의 스크롤을 내리며 새로운 회사를 찾았지만, 더는 지원할만한 회사는 없었다.

“남은 곳은 3M뿐인가······.”

감히 엄두도 나지 않은 탓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최상위 던전을 눈앞에 두고 표세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야. 어쩌면 이것이 운명이지. 큰 고기에게는 큰물이 필요한 법!”

무엇보다 3M의 일각이라 할 수 있는 맥베스에는 자신의 형인 표세인이 근무 중이지 않나?

“형도 받아준 회사인데, 나라고 안되리란 법은 없지.”

물론 표세인도 처음부터 맥베스에 입사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조급한 마음에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좋아! 해보자!”

하지만 과연 프로그래머로 입사가 가능할까? 표세종은 내심 불안했다.

그래서 그는 프로그램을 비롯, 운영, 기획, QA등의 그래픽을 제외한 직군 전체를 선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표세종은 가슴 속으로 절실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던진 작은 돌(이력서)이 맥베스 본사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를······.

*

*

*

“팀장님 이것 좀 보시죠.”

인사과는 이번 분기 신규입사자의 이력서를 분류하는 작업으로 한창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뭔데?”

“입사지원서입니다.”

“뭐길래 굳이 가져와?”

인사과 팀장은 귀찮은 얼굴로 슬쩍 이력서를 바라보았다.

“체대?”

“예.”

“체대······를 뭐 어쩌라고? 관련 전공도 아니고, 입상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건 네 선에서 커트해야지. 왜 나에게 가져와?”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인사과 대리가 짧은 한숨을 쉬며 그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가족 사항이 있었다.

“헉!”

“이거 커트합니까?”

“부, 부장님!”

팀장은 인사과 부장에게로 다급히 달려갔다.

“뭔데?”

“이것 좀 보십시오.”

“뭐길래 이리 호들갑을······. 체대 출신? 희한하긴 하네. 그런데 이게 뭐라고······.”

부장 역시 자신과 같은 반응이자, 팀장은 살짝 안도하며 가족 사항을 가리켰다.

“성이 표씨네. 특이한 성······. 잠깐, 표씨인데 체대라고?”

“제대로 보신 것 맞습니까? 여기 표세인이라고 적혀있는 것 보이시죠?”

“헉! 자, 잠깐 기다려 나 잠시 전화 좀 해야겠다.”

“이거 어쩔까요?”

“어쩌긴 일단 면접자 명단에 넣어놔! 아, 이사님 이번 면접자 명단에······.”

혼란의 시작은 인사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

*

표세인은 깨비몬 컨셉 기획안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소켓몬을 레퍼런스로 삼기는 했지만, 게임성 자체는 오히려 블록크레프트에 가까운 설계.

단순히 블록들을 이용한 크레프팅 시스템뿐만 아니라, 핵심요소인 깨비몬을 육성하는 방향까지 손댈 부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한창 바쁘던 차에 제임스가 방문했다.

“바쁘신 것 같군요.”

“네. 좀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개발 초기에는 기획이 죽어나고 이후에는 차례로 다른 파트에서 곡소리가 나는 법이지 않나?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에는 다른 부분도 신경을 써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제임스는 준비해온 서류를 넘겼다.

“법인설립에 필요한 서류 목록입니다. 이번 주 내로 전부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렇군요. 이것들도 급하겠네요.”

“네. 지체해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제임스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신규 개발팀의 출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자리를 제대로 잡아야 업무를 쳐낼 수 있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점심 이후에 외근을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예. 이것들만 처리해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임스는 확실히 든든하다. 나를 비롯해 많은 개발자가 개발 이외에는 깡통이나 다름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임스 덕분에 나는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다.

‘양실장님도 그렇고 제임스도 그렇고, 회장님이 사람 하나는 기가막히게 붙여주신단 말이지.’

새삼 회장님의 배려에 감사하게 된다. 그때였다.

-우우웅.

“전화? 이놈이 웬일이지?”

지금까지 업무 시간 중에는 전화한 일이 없었는데,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형님.

“형님?”

이놈 입에서 시작부터 ‘님’자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너 설마 사고 쳤냐? 뭐야? 아버지 차로 어디 긁기라도 했냐?”

-존경하는 형님. 그 차는 이미 소유 이전이 끝난 제 차지요.

“이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엄연히 법적으로는 아버지 차지.”

-어쨌든 차는 무사합니다.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생전 전화 안 하는 녀석이.”

내 말에 세종이는 잠시 침묵했다.

“너 진짜 무슨 일 있냐?”

이쯤 되니, 살짝 걱정된다. 제발 어디서 술 먹고 주먹질했다는 이야기만 아니길······.

“설마 누구, 때린 것은 아니지?”

-형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 저 재테크에 관심 많은 남자입니다.

“깽값으로 재테크 해보겠단 것 자체가 너는 돈 굴리면 안 되는 캐릭터란 의미다.”

-씨앗머니란 말도 모르십니까.

“시드머니고, 헛소리 그만하고 용건 말해라, 가족 서비스 타입 끝나간다.”

-······형, 나 면접 잘 보는 방법 좀 알려줘.

며, 면접?

“설마 너 이력서 붙은 회사 있냐?”

-응.

“너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다고?”

-······응.

“장하다. 무슨 회사냐?”

-아, 그게······.

그때였다. 양실장이 평소와는 달리 조금 상기된 얼굴로 등장했다.

“지금 바쁘십······. 통화중이시군요.”

나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리고 양실장에게 물었다.

“급한 용건이십니까?”

“급하다기보다는, 조금 난감한 상황이랄까요?”

“난감해요?”

천하에 양실장이 난감할 만 한 일이 있어? 대체 무슨 일이지?

“너 잠시 기다려라.”

-오키.

나는 세종이에게 대기령을 내리고 양실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회사 전체가 시끌시끌합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출근하기 무섭게 자리에 틀어박혀서 자판만 두들긴 탓에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길이 없다.

“표세인 팀장님. 혹시 동생이 있으십니까?”

“예. 한 놈 있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호구조사는 왜?

“동생분께서 우리 회사에 이력서를 내신 것은 알고 계십니까?”

서, 설마! 이 녀석이 맥베스에 이력서를 투서했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주제를 몰라서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저 때문에 탈락시키기 미안하다, 뭐 그런 것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체대 출신에 기껏 반년 정도 프로그래밍 맛만 본 녀석에게 맥베스는 언감생심이죠.”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나조차 인수합병이라는 행운이 아니었다면, 맥베스의 문턱도 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탈락이라······.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저희 쪽에서 탈락시키려고 해도, 다른 쪽에서 가만두고 보지 않겠지요.”

“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표세인 팀장님의 사내 입지도 이제 만만치 않게 되셨습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차세대 대들보 같은 느낌이랄까요?”

대들보······. 굳이 회사의 대들보 같은 것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만······.

“최악의 경우는 적대 파벌에서 동생분을 손에 넣는 것이겠지요. 아무리 공과사에 엄격하다고는 해도, 한 핏줄에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적대라는 단어부터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지만······.

대충 느낌은 알겠다.

“그러니까 제 동생 놈이 이 회사에 지원서를 낸 것 때문에 다른 파벌 쪽에서 시끌시끌하다는 거죠?”

“예.”

나는 다시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동생아.”

-예. 형님.

“너 진짜 무슨 깡으로 이 회사에 지원했냐. 솔직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 정도 깜냥은 안 되잖냐.”

-벼랑 끝이었습니다.

그래. 요즘 같은 세상에 취준생의 마음을 나라고 왜 모르겠나.

게다가 내 입장 때문에 멀쩡한 동생 앞길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운도 실력이다.

세종이가 천운으로 얻은 입사찬스를 내 입장 때문에 아웃시킬 수도 없는 노릇.

“일단 면접은 그냥 소탈하게 해라. 오바하지도 말고, 긴장하지도 말고.”

-좀 더 그럴듯한 충고는 없습니까?

“그럼 유튜브라도 보던지.”

-오옷! 좋은 아이디어!

이 정도 생각도 못 하는 녀석이 뽑혀도 정말 괜찮으려나?

일단 세종이에게 연아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로 하라고 전달해야겠다.

갑자기 급격히 피로가 몰려온다.

홍켓몬에 더해 표세종까지······. 슬슬 나도 위장약이 필요할 시점인가?

< 안녕하십니까! 표세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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