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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79화 (79/346)

79.

취업난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마치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우리네 삶에 들러붙어 떠나지 않은 지 오래.

더욱이 남들과는 다른 루트의 삶을 살아왔다면 취업난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가 새삼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

수십 개의 이력서가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표세종은 면접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몰라보게 핼쑥해졌다.

“너 괜찮냐?”

“······아니.”

“아니, 밥을 굶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핼쑥해졌어?”

“아니, 형이 준비하라고 한, 자격증 다 따고, 면접 학원까지 다니다 보니.”

“면접 학원도 갔었어? 무슨 돈으로?”

“지난번에 형이 돈 줬잖아. 그걸로 웅변학원 다녔어.”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빛에도 표세종은 묵묵부답이었다.

선수 출신이 취업준비를 시작하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표세종이었다.

나름 게임 아카데미의 강사에게서 준비한 포트폴리오가 훌륭하다는 칭찬을 들었기에 자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게임 업계는 가끔 대기업들이 오히려 학벌 무시하고 뽑을 때도 있어. 그러니 기죽지마. 3M 개발자들 중에 인서울 아닌 사람들 엄청 많아.’

강사는 게임 업계는 오히려 대기업들이 가끔 학벌을 무시하고 인재를 영입한다는 말로 표세종을 격려했었다.

그리고 정말로 맥베스에서 면접 날짜를 통보받았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

“입맛도 없네.”

그러면서도 깨작거리는 젓가락질로 밥 3공기를 순식간에 비워낸다.

“이참에 너도 살 좀 빼자.”

“이거 살 아니거든? 죄다 근육이거든?”

“그럼 근육도 좀 빼자.”

“근육을 왜 빼!”

“니가 이제 힘쓸 일이 뭐가 있어?”

아버지의 타박에 표세종은 움찔했다.

“우락부락한 체형은 여자들한테 인기 없어.”

“무슨 소리야! 나동석 형님 모름?”

“아이돌들이 왜 죄다 날씬하다고 생각하니? 그게 상품성이란 거야. 네 몸매는 대중적이지 않아.”

상당히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그저 식비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세종은 살짝 고민에 빠졌다.

“네 형은 그래도 몸매 관리 잘해서 연아처럼 예쁜 애인도 만들었잖니. 너도 이참에 살 좀 빼자.”

여자친구라는 말에 표세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만 먹지?”

“한 그릇만 더.”

“너 긴장한 것 맞냐?”

“일부러 티 내는 거지?”

“잘 생각해라. 유난 떨다 떨어지면 더 창피한 법이야.”

부모님의 정신공격에도 불구하고 표세종은 허겁지겁 마지막 그릇까지 싹싹 비웠다.

“나 다녀올게.”

“그래.”

“긴장 바짝하고, 그래야 평소처럼 헛소리 안 하지.”

“긴장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건 평소에 정상적인 애들이나 그런 거고, 넌 좀 많이 긴장해야,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니까.”

뭔가 이상한 격려였지만 표세종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집을 나섰다.

“저놈 평소처럼 긴장 엄청나게 했지?”

“그러니까요. 세인이는 긴장 같은 거, 안 하는 타입이었는데, 쟤는 시합 때만 되면 항상 얼굴이 새파래지니까······.”

“음, 좀 풀어주려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는데, 이게 효과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

“······.”

“뭐 알아서 하겠지.”

“그렇죠. 알아서 하겠죠.”

생애 첫 면접을 떠나는 막둥이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은 길지 않았다.

*

*

*

-세종씨가 우리 회사에 지원한 것 알고 있어?

“맞아. 그리고 이력서까지 덜컥 합격해 버렸다네.”

내 말에 연아는 뭔가 고민에 잠긴 듯이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렇구나.

“안 놀라? 나는 좀 놀랐는데?”

-세종씨 준비 많이 했다며?

“학벌이 안 되잖아?”

-원래 우리 회사는 항상 30%는 학벌 무시하고 뽑았는데?

하긴, 게임 업계는 오히려 대기업들이 학벌에 관대한 면도 있지.

어중간한 회사들이 학벌에 목숨을 더 걸지.

-솔직히 좋은 대학 나왔다고 게임 잘 만드는 것 아니잖아? 그러면 내가 오빠보다 개발을 잘해야 겠네?

“뭐,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어쩌면, 오빠 이름값 때문에 일단 얼굴이나 보자는 심정일 수도 있고, 세종씨를 손에 넣어서 오빠에게 압박감을 주려는 걸까?

역시 연아는 눈치 100단이다.

“그런 모양이야. 하지만 솔직히 그 녀석을 쥐고 흔들어도 내가 딱히 흔들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목에 칼을 들이댈 것도 아니고, 애초에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괴롭힘? 내 동생이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운동부에서 굴러먹던 녀석이다. 그런 괴롭힘에 굴할 녀석도 아니고,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독한 상사를 만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주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도 딱히 걱정하지 않는다.

“일단 세종이에게 우리 일은 비밀이라고 함구령을 내려놨어. 입이 싼 녀석은 아니니까 그 점은 안심해도 된다고 그 말 전하려고 전화한 거야.”

-응. 알겠어.

통화하는 내내 타자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바쁜 것 같네. 그럼 끊을게.”

-응.

통화를 끝내고 나 역시 모니터에 고개를 박았다.

바쁜 것은 나도 마찬가지.

요 며칠 제임스의 말에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인 하라는 곳에 사인했다.

그렇게 제임스의 꼭두각시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 보니, 얼렁뚱땅 법인이 세워졌다.

솔직히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대표라고 해봤자, 등재된 직원은 나 혼자뿐이 아닌가?

게다가 내 정체성은 뭐니 뭐니 해도 팀장이다.

그래서 법인 관련은 제임스 손에 맡기고 나는 그저 팀장으로서 깨비몬 컨셉 기획에 최선을 다한다.

“바쁘십니까?”

“양실장님, 오셨습니까?”

“일단 신경 쓰이실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면접 때, 참여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도 조금 궁금하군요.”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표세인 팀장님의 동생분의 역량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역량이요?”

“지금 표세인 팀장님의 동생분에 관한 관심이 뜨거운 것은 다소 정치적인 관심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어쩌면 제2의 표세인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크게 한몫하고 있습니다.”

음, 제2의 표세인이라,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는 타이틀인데.

이따금 양실장은 나를 너무 띄워준다.

솔직히 맥베스에와서 내가 해낸 일들은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그 이상으로 해낼 수 있는 기획자는 많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름난 개발자들 역시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가 기연을 만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으면, 하룻밤 새에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수많은 개발자가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고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이면서 날개가 꺾이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하지 않았나?

이런, 저런 이유로 짬된 기획서 중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기획들이 한가득할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았다. 나는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되새긴다.

“일단 한 가지만 명심하세요.”

“말씀하시지요.”

“제 동생놈은 저와는 결이 다릅니다. 차라리······.”

“차라리?”

“홍대리에 가까운 타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홍대리가 언급되자, 양실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래도 양실장 역시 그간 홍대리의 본질을 깨닫게 된 모양.

그저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그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음······. 아쉽게도 사실입니다.”

“그만한 인재라면 다른 의미에서라도 꼭 우리가 손에 넣어야겠군요.”

지금 뭐라고? 인재? 뭔가 다른 느낌인데? 다른 곳에서 사고칠까 무서워서 고삐를 손에 쥐겠다면 이해하겠지만······.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홍대리라고······.”

양실장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왜지? 뭐가 이렇게 찜찜하지?

*

*

*

“후우. 후우. 여기가 내 새로운 무대.”

아직 면접은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표세종은 눈앞에 고고하게 솟아오른 빌딩을 자신의 새로운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자! 할 수 있다!”

190cm가 넘는 거구가 길 한복판에서 고함을 내지르자, 사람들이 절로 게걸음을 시전하며 주변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표세종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누군가는 아니었다.

-쿵!

“윽!”

묵직한 꿀밤에 표세종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형!”

“내가 덩치 큰 놈들은 언행에 더 주의해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내, 내가 뭘 했지?”

“사람들 지금 너 피해서 걷고 있는 것 안 보여?”

주변을 돌아보자, 표세인의 말대로 사람들이 자신을 멀찍이 비켜서 걷고 있었다.

“역시 나의 존재감이란······. 이것이 제왕색!”

“······얼마면 되겠냐?”

“뭐가?”

“얼마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줄래?”

“후후후.”

“왜 또 불안하게 쪼개고 그러냐.”

“내가 두려운 모양이군.”

표세종의 말에 표세인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미칠 것 같이 두렵다. 그 오랜 세월 너와 내가 한 핏줄이라는 것이 세상에 드러날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

“하하하. 이제 네 시대는 끝났어! 켁!”

“어디서 반말이야. 맞을래?”

이미 목젖 치기를 시도하고선! 표세종은 캑캑 되며 눈빛으로 항의했다.

“도와줄 거 아니면 저리 가. 나 지금 심각해.”

“심각해야지. 먹는 것밖에 모르는 식충이니까. 어이구, 운동 그만두더니, 살 붙은 것 봐라.”

“체, 체중 규정 있어? 체급 맞춰야 해?”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한 표세종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긴장해. 긴장하고 차라리 말을 더듬어버려 그냥. 그러면 귀여워 보일 수라도 있지.”

“왜 자꾸 긴장하래!”

“네가 제정신으로 면접 보면 붙을 것 같냐?”

“······.”

“아무튼, 잘해라. 혹시 아냐? 기적이라도 벌어질지?”

“기적이란 게 있을까?”

“······.”

“왜 입 다무냐!”

나는 생각보다 긴장해있는 세종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맨날 장난스러운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쫄아든 건 오랜만에 본다.

부모님께 세종이가 나름 준비를 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형인 내 눈에는 한참 모자라 보였다.

나도 면접 준비를 하던 중에는 무척 떨렸었지.

장난 그만하고 격려라도 한 마디 해줘야 할까?

“너가 면접에 뽑힌 것부터가 기적이야.”

아니다.

나까지 진지해지면 더 쫄아 들라,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될 것도 안 되고, 안 될 것도 돼버릴 수 있어.

위험해.

그때였다.

“팀장님?”

홍기도가 마침 표세인을 발견했다.

“누구에요?”

“아, 이 녀석은······.”

표세인이 동생을 소개하려는 찰나.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진) 표세종입니다!”

지나가던 모두가 고개를 돌릴 것 같은 큰 목소리.

“팀장님 동생이에요?”

“애석하게도······. 모두 우리 부모님 잘못이지.”

표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홍기도의 눈이 반짝였다.

“세종이라고?”

“네!”

“고기 잘 굽게 생겼네?”

“그럼요! 저 고깃집 막둥이입니다.”

“팀장님 보다 잘 구워?”

홍기도의 말에 표세종이 피식 웃었다.

“제가 형보다 크잖아요?”

“그렇네.”

“그만큼 많이 먹었다는 의미죠. 청출어람이라고 들어보심?”

“만나서 반갑다. 나 홍기도야. 니네 형, 아니. 팀장님 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언제나 부족한 표씨집안 장남이 사람 구실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것이 벌써 느껴지는군요.”

“조만간 한번 고기 먹으러 갈까?”

“불러만 주신다면 표씨 집안의 비전을 유감없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유도부 전원을 책임진 저 표세종의 스킬은 지금도 장안의 화제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뜨거운 시선을 교환했다.

“어, 어? 니네 그러는 거 아니야. 니네 같은 애들은 그러면 안 돼.”

들린다, 회사 주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띠링!

[표세인은 공포 상태가 되었다.]

*

*

*

“저기 팀장님.”

“왜?”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눈 감고 귀 막아라. 아무 생각도 하지마.”

“대체······. 왜 전무님과 상무님이 신입사원 면접에 참석하신 거죠?”

공채도 아닌 비정기 면접에 임원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당 파트의 담당자, 주로 팀장급들이 면접을 보는 것이 관례.

보통은 면접 1차 합격 이후, 임원 면접 때나 얼굴을 비추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게다가······.

함전무와 이상무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긴장감.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나?”

“그러는 전무님은 왜 오셨습니까?”

서로 뻔히 목적을 알면서도 굳이 언급하지 않고 기 싸움이 벌어진다.

“표씨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화통이 치밀 텐데, 이번에는 그냥 내게 양보하지?”

함전무의 말에 이상무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라고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상무님 부탁드립니다.’

‘부탁이요? 설마 합격시키라는?’

‘아니요. 부족한데도, 합격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을 막아주세요. 그리고 만약 합격이라면 함전무님 휘하에 들어가는 것도······.’

‘······알겠습니다.’

얼마 전 조연아의 부탁을 받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마 표과장 동생에 대한 이슈를 인지한 차기회장의 노파심일 터.

하지만 내막은 중요치 않다.

조회장의 당부로 조연아를 지원하기로 한 이후, 첫 번째 임무인 바.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상황.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 양보 못 합니다.”

“이게 그 정도까지 각을 세울 일이야?”

“아니면 후배에게 양보 좀 해주시죠.”

평소 꺼내지 않던 후배 언급까지 나오자, 함전무의 두꺼운 눈썹이 꿈틀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뭐가 더 있나?’

짐짓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표세종입니다!”

우렁찬 고함과 함께 파란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 자네 ...축구 잘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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