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맥베스의 면접문화는 압박 면접 스타일이 아니다.
면접담당관들은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로 면접자들이 부담 없이 본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기본적으로 파트별로 제출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업무역량을 검토한 이후, 면접 합격을 통보하기에, 면접에서 기술에 대한 질문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함께 일하기에 좋은 성격인지, 역경에 부딪혔을 때, 이를 해결하는 스타일은 어떤지와 같은 성격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표세인 팀장의 동생이라니······.’
한명수는 깃허브에 있는 표세종의 코딩작업물과 과제에 대한 답안들을 훑어보며 턱을 긁적였다.
‘업무역량에 문제는 없다.’
한명수는 애초에 학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학벌 좋은 이들 중에 김차장 같은 함께 일하기에 꺼려지는 성격의 이들도 존재하는 법.
자신의 부사수인 정팀장은 지방대 출신이지만 타고난 끈기와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누구나가 그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좋은 인재이지 않나.
‘만약 이 일로 표세인 팀장과 사이가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지.’
표세종에게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결코 가산점을 줄 생각도 없다.
면접자들 모두가 절실한 마음이란 것을 한명수도 잘 알고 있다.
‘시간이 됐네.’
좋아. 생각은 정리했다. 표세종의 업무 역량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한명수는 무척 안심되었다.
이제는 그저 균형잡힌 시선으로 면접자들을 살펴보면 될 일이다.
한명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면접장으로 향했다.
“한팀장님.”
“아, 표팀장.”
바라지 않던 조우였다. 오늘 이 시간 만큼은 표세인 팀장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표세인이 만약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라도 한다면?
팔은 안으로 굽히는 법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본인 역시 표세인의 동생이라면 궁금한 것도 많다.
하지만 그래서야 안 될 일이지 않나.
“면접장에 가시는 길입니까?”
“흠흠. 맞아.”
한명수는 살짝 눈을 피했다.
“한팀장님.”
“왜?”
“제 동생 말입니다.”
“으음······.”
피하고 싶던 화제가 튀어나왔다.
한명수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표세인의 부탁이라도 안되는 일은 안되는 일이다.
“부디 제 입장 같은 것을 신경 쓰지 마시고, 다른 면접자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표팀장 부탁이라도······. 어? 지금 뭐라고?”
“보시기에 문제가 있다 싶으시면 단번에 내쳐주시기 바랍니다.”
표세인의 표정은 단호했다.
“도, 동생인데?”
“제 동생이니까요. 요즘 사내에서 저라는 사람이 이래저래 눈에 띄는 처지입니다. 실력으로 합격해도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불합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허! 그건 안될 말이지?”
“네?”
한명수의 말에 표세인이 살짝 당황했다.
“면접장에 누구 동생 같은 사람은 없어! 그냥 다 똑같은 면접자야. 낙하산 딱지? 그딴 게 무서워서 불이익을 줄 수는 없지. 나는 그냥 사람 됨됨이만 볼 거야. 면접자 모두가 포트폴리오는 통과된 인재들이야. 낙하산 같은 것 없어.”
“그놈 포트폴리오 괜찮습니까?”
“뭐, 평범하지. 그냥 딱 신입사원 수준이야.”
함송희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 포트폴리오만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신입사원 같은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마련.
“딱 신입사원 수준이야. 합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데려오면 이래저래 굴리면서 많이 배워야겠지만, 당장 못 써먹을 수준은 아니란 거지.”
“그렇군요. 제가 결례했습니다.”
“아니야. 역시 표팀장이야. 나는 혹시라도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라도 나올까, 걱정이었어.”
“설마요. 저 운동하던 놈입니다. 편파판정만큼 이 갈리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표팀장도 그런 경험이 있어?”
“왜 없겠습니까? 예전에 태권도 협회 회장 손자놈하고······. 아, 뭐 이건 중요치 않고 아무튼 잘 다녀오십시오.”
표세인은 담백하게 물러났다. 떠나는 표세인의 뒷모습을 보며 한명수는 마음이 한결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런 성격이면 좋겠네.’
누구와 대화를 나누었는가에 따라, 속이 편해지거나,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표세인은 의심할 바 없이 전자였다.
어쩌면 자신이 고민하리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마 맞겠지.’
자신보다 어린데도 무척 사려 깊은 사람이다. 나이를 떠나서 많이 배우고 싶은 사람.
한명수는 조금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
*
*
“여기 면접 질문 양식입니다.”
면접장에 도착하자, 인사과 직원이 사전에 준비한 질문 양식지를 나누어 주었다.
“천과장.”
한명수는 인사팀의 면접담당관인 천과장을 불렀다.
“네.”
“여기 면접장 맞지?”
“네.”
“그런데 왜 저기······. 저분들이 계시지?”
“음······. 저 대신 질문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도 궁금한데요.”
한명수와 천과장은 버젓이 면접관석에 자리 잡고 있는 함전무와 이상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2차 면접 아니지?”
“저분들은 2차 면접에도 참석하실 일 없는 분들이시잖습니까.”
2차 임원면접도 주로 다른 이사들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 이유가 뭐지?”
물론 각자가 개발 1실과 2실을 관장하고 있으니, 이유야 만들지 못할 것은 없다.
“글쎄요? 덕담이라도 한마디씩 해주려고?”
“큭큭, 잘도 그러겠네.”
“아무튼 저는 모릅니다. 그리고 밑에 실선 아래 항목은 기습질문입니다. 질문할 거리가 마땅치 않으실 때, 던져보십시오.”
“내가 면접 진행 한두 번 해보나.”
“하긴 한팀장님이야. 마스터시죠.”
천과장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팀장은 함전무와 이상무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그렇군, 자네가 왔군.”
“표팀장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네라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
“?”
“아무것도 아닐세.”
잠시 후, 준비를 끝마친 천과장이 한명수 옆에 앉는 것으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3명씩 면접자가 면접실로 들어오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평소 즐겨 하는 게임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코딩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동료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뤄 내본 경험이 있는가?”
‘뭐지? 예상과는 너무 다른데?’
너무나도 평범한 면접이었다. 아니, 함전무와 이상무는 기대 이상으로 면접을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왜 아니겠나? 맥베스가 덜렁 꼬죄죄한 사무실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사람들을 뽑아온 그들이었다.
팀장 기간이 긴, 한명수가 마스터라면, 그들은 그랜드 마스터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질문과 리액션을 통해 면접자들의 긴장감을 덜어주면서도 입사 이후에 겪게 될 애로사항에 대한 대처법을 세세하게 끌어내고 있었다.
‘협업이 안되는 스타일이네.’
‘눈에 띄는 포인트가 없는데?’
‘자신감이 지나친 데 반해,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가 없는데?’
한명수를 포함한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의 대답과 태도를 꼼꼼하게 점검해나갔다.
“다음 분들 들어오세요.”
몇 차례의 면접이 끝나고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했다.
‘크, 크네?’
‘저 집안은 대체 뭘 먹여서 키웠길래······.’
표세인도 키가 큰 편이지만, 표세종은 그보다도 더 컸다. 게다가 볼륨감이 남다른 탓에 원래 키보다도 더 커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표세종입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것 같은 우렁찬 인사였다.
그리고 표세종의 등장과 함께 면접관들의 표정이 일시에 돌변했다.
‘왔군.’
‘표세인 팀장의 동생이라 이거지?’
함전무와 이상무는 빠르게 표세종의 전신을 훑었다.
표세인이라는 인물은 여러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대체 어떻게 조회장이나 양실장이 표세인의 역량을 간파하고 첫출근부터 침을 발라 놓은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두 번은 안 된다. 만약 표세종도 그만한 인재라면 결코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확인해봐야 했다.
“다소 특이한 이력이던데, 프로그래머가 되기로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함전무는 질문과 동시에 표세종의 이력서를 훑었다.
특기란에 빼곡하게 채워진 수상경력.
이만한 운동선수가 굳이 게임회사를 지원한 동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제게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형이 있습니다. 형이 게임을 좋아한 탓에 저도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훈련으로 땀을 흘린 뒤에는 집에서 느긋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습니다.”
표세종은 처음에는 다소 긴장했던 모습이었으나, 말을 하면서 차츰 긴장이 풀린 것인지,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기 시작했다.
“유도는 혼자 하는 스포츠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많은 이들과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일 중에 협업에 관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이상무의 질문에 한명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다.
의외로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건전한 면접이 이어지고 있다.
“유도에는 단체전이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 단체전도 결국 혼자서 나가서 싸우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팀의 화합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전략들이 시너지를 일으켜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저는 주장이었고 제가 주장인 동안 단체전 트로피는 언제나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대답도 좋다. 성과와 결부되는 이력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다.
더군다나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성과를 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하다못해 공대장 출신들도 보너스를 받는 판에, 유도부 주장이라면 더없이 좋은 이력이다.
“본인의 경력이 게임 개발에 적용될만한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도 좋다! 마치 가렵던 곳을 긁어주는 것 같은 질문이다. 이상무의 질문에 한명수는 속으로 찬사를 보내며, 주의 깊게 표세종의 대답을 기다렸다.
“현대 게임 개발의 핵심은 트랜드 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유도도 그렇습니다. 유도에도 트랜드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지만 흥미롭군요.”
“업어치기가 유행할 때는 되치기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법입니다.”
“트랜드에 맞춘다면 업어치기를 중점적으로 연습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너도나도 업어치기에 열중하는 상황에서 되치기가 특기라면 얼마나 유용하겠습니까? 현재 게임 업계도 과도한 트랜드 추종으로 인해서, 레드오션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있을수록 한걸음 물러나 더 넓은 시야로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사실 표세종 본인의 생각이 아닌, 표세인이 혼잣말을 지껄이던 것을 기억해낸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넓은 시야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다른 면접자들에게도 같은 수준의 질문들이 이어진 이후 서서히 면접시간의 끝이 다가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 좋은 인재야.’
한팀장은 합격점을 매겼다. 물론 자신 혼자 좋은 점수를 매긴다고 합격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희 회사는 체육대회 행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체육대회의 꽃은 축구입니다.”
함전무와 이상무가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 한마디 말은 없었으나, 한명수는 그들의 눈빛에서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느꼈다.
“축구 잘합니까?”
“축구 얼마나 합니까?”
함전무와 이상무가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다소 황당한 질문에 다른 면접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표세종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설마 형과는 타입이 다른가?’
물론 형제라고 축구 실력도 같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같은 체대 출신이고 절로 기대가 가는 피지컬이 아닌가?
“이 질문은 그냥 가벼운 질문입니다. 부담갖지 말고 대답하셔도 됩니다.”
보다 못한 한명수가 운을 뗐다. 하지만 표세종은 그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희 형제는 어려서부터 축구로 유명했습니다.”
“어?!”
“만큼?”
“그, 그럼 형만큼 잘하나?”
표세종의 눈썹이 꿈틀했다.
“제 별명이 신림동 야표 스탐입니다. 은퇴한 지, 오래된 퇴물과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저 아직 현역입니다.”
표세종의 말에 한명수는 함전무와 이상무를 바라보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입술은 씰룩거리고, 주먹은 부들거린다.
‘······이거 합격이네.’
한명수는 이미 자기 점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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